인터뷰부터 합격 통보, 그리고 보안 인가까지

맥킨지에서 영란은행으로, 약 3개월 간의 이직 과정

by 황소흠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 것 같은데 여전히 어려운 것은 바로 구직 활동이다. 심지어 회사를 다니면서 퇴근하고 하는 이직 준비는 더 어렵다. 맥킨지 그다음의 행선지를 정하는 내 기준은 크게 세 가지였다 - 인 하우스 팀일 것, 워킹 비자를 지원해 줄 수 있는 회사일 것, 그리고 데이터와 관련된 일을 하는 부서일 것. 이를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회사로 이직해서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는 것보다 조금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이 낫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서류전형: 워킹비자 없이 인사팀의 눈에 들기

외국에서 일을 구할 때 가장 힘든 점은 서류 탈락보다도 더 힘든 관문은 워킹 비자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슬픔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원하는 양식에 이미 내가 워킹 비자가 있는지, 없다면 회사에서 지원이 필요한지 체크하는 칸이 존재한다. 놀랍게도 규모가 큰 글로벌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비자를 지원하지 않는 곳이 굉장히 많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영국은 3년 워킹비자를 제공하려면 회사에서 약 8,000 파운드(2025년 기준) 정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된다. 지원할 때 필요한 application fee, 체류 기간 동안 국가 보험을 사용할 수 있는 insurance fee 등 필요한 비용이 여러 가지인데, 회사마다 보험비는 개인 부담인 경우도 있다. 처음부터 공고에 비자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는 기업도 많고, 지원하는 동시에 지원서를 받았다는 자동 응답 이메일과 함께 서류 탈락 이메일이 오는 곳도 있다. 회사에서 예산이 없거나, 최대한 빠르고 간편하게 사람을 뽑고 싶은 기업들은 서류 전형에서 미리 탈락시키는 것이다.

영란은행의 채용공고 홈페이지

그렇게 수많은 탈락 이메일을 받던 중, 어느 때와 다름없이 링크드인의 마케팅 이메일을 보다가 우연히 영란은행 공고를 봤다. 별 감흥 없이 공고를 읽던 중, Transforming Data Collection이라는 단어가 보였고, 기대 없이 읽기 시작한 글에 갑자기 관심이 가게 되었다. 은행권, 게다가 공무원과 비슷한 은행원이라는 직업이기에 너무 고리타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팀이라는 소식에 당장 주말부터 지원 준비를 했다.

비자가 없음에도 영란은행의 서류 전형을 뚫을 수 있었던 점은 회사에서 준비한 3가지 질문에 대답하는 약 1500자가 넘는 자기소개서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유럽에서는 자기소개서, 혹은 Cover Letter가 형식적인 면만 있을 뿐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영란은행은 형식적인 Cover Letter를 넘어서서 특정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됐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중앙은행이라는 개념 자체도 생소했던 나는 영란은행에서 하는 일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됐다. 이렇게 긴 자기소개서를 쓰라고 하는 회사는 비교적 드물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서류 전형에도 시간을 투자할 만큼 열정적인 사람을 쉽게 걸러 낼 수 있는 것이다.


대면 인터뷰: 서로의 합을 맞춰보는 시간

서류 전형 통과 후 인터뷰는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있는 대면 인터뷰였다. 신분증을 꼭 지참하라는 말과 함께 추가로 사전 과제도 주어졌었는데, 서비스 혁신에서 UX 디자인의 역할에 대해 10분 동안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됐다. 굉장히 원론적이면서 추상적인 질문이다. 서비스 혁신과 UX 디자인이라는 중요하면서 광범위한 개념 두 가지를 붙여 놓았기에 디자이너의 철학에 따라 답이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나와 질문자의 해석, 혹은 나를 뽑고자 하는 디자인 팀장의 해석이 어느 정도 일맥상통해야 된다고 스스로 판단을 내렸다. 합격 여부를 떠나서 일주일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직장에서 적어도 나와 팀의 디자인 철학이 맞아야 시너지 효과가 나기 때문에 이는 중요한 부분이다. 다행히도 안내 이메일에 내가 인터뷰를 진행할 시니어 UX 디자이너와 디자인 팀 팀장님(Head of Design)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마치 FBI 수사를 하는 것처럼 두 명의 이름을 구글링 했고, 다행히도 그중 한 분이 2019년부터 작성한 Medium이라는 플랫폼에 업로드한 블로그를 읽어볼 수 있었다. 물론 글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의 디자인 철학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고, 나는 간접적으로나마 그가 어떤 생각으로 디자인 팀을 운영하고 있을지 나만의 해석을 내릴 수 있었다.

영란은행 사무실 입구

인터뷰 당일에는 스톡홀름에서 영란은행까지 찾아갔다. City of London에 있는 London Royal Exchange 앞에 있는 사무실을 보자마자 그 규모와 고풍스러움에 압도당했다. 여행객의 입장으로 사진 찍던 곳이었는데, 같은 장소를 면접자의 마음으로 오니 더 떨리기도 했다. 인터뷰라 하면 사람들은 흔히 딱딱한 분위기의 압박 면접을 생각하지만, 뽑는 사람 입장에서도 지원자가 떨다가 자신의 실력을 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인터뷰에 들어온 팀장님은 나에게 떨리냐고 물었고, 나는 솔직하게 조금은 떨린다고 대답했다. 팀장님은 오히려 좋다면서 떨린다는 것은 네가 우리 팀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면서 나를 편안하게 해 줬다. 준비해 온 프레젠테이션을 발표했고, 내가 지금껏 해왔던 프로젝트를 설명하면서 내 디자인 철학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팀장님도 현재 영란은행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디자인하고 있는지 알려줬고, 이 조직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점들을 알려줬다. 항상 잊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들이 나를 인터뷰하는 것도 있지만, 나도 이 팀이 나한테 진짜 맞는지 인터뷰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도 빼먹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인터뷰 그 이후 기다리고 있는 보안인가 (security clearance)

다른 회사와 다르게 영란은행은 보안인가(seucrity clearance)이라는 특이한 레퍼런스 체크 프로세스를 갖고 있다. 영란은행은 공기업은 아니지만 나라를 위해 일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을 하려면 국가 기밀이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어야 한다. 맥킨지에서도 종종 국방부와 같이 공공 분야 프로젝트에서도 이 허가가 필요했는데, 내가 간첩이나 스파이는 아닌지, 범죄 경력은 없는지 등 배경을 확인하는 것이다. 지난 5년간 거주지, 부모님 성함 및 연락처, 보유 재산, 심지어 만났던 전 애인의 이름까지 사소한 개인 정보 모두를 제출해야 됐다. 물론 영란은행이 아닌 다른 회사에서 진행하기에 사생활은 철저히 보장되어 있다. 이렇게까지 자세한 정보를 제출해야 되나 조금은 불쾌하지만, 실제로 산업스파이에 대한 기사를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됐다. 보안인가는 약 4-6주 걸리고,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합격 여부를 떠나서 영란은행에 근무할 수가 없다고 계약서에도 적혀있기에 솔직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된다.




서류 전형, 인터뷰, 보안인가, 비자 신청, 그리고 스웨덴에서 영국으로의 국제 이사까지 약 2개월의 긴 여정이 지난 다음 비로소 나는 영란은행에 근무할 수 있었다. 나의 이직 과정이 해외 취업을 꿈꾸고 준비하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길 바라며, 다음 편에서는 영란은행에서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한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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