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당연한 사실이 누구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8월 말 우메오에 도착한 지 벌써 한 달이 훨씬 넘어 점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디자인 대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1주일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4주 동안 인터랙션 디자인 학과 내에서 디자인 기초를 다지는 Skills & Technique 수업을 마쳤고, 이제 본격적으로 회사와 산학 협력으로 진행하는 10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어느 디자인 대학교에서 그러듯 UID에서도 졸업 thesis를 빼고는 조모임과 그룹 프로젝트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협력을 중요시하고, 팀 내에서 서로서로에게 배우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는데, 조모임이 그렇듯 여럿이서 모여서 합을 맞춰간다는 사실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ID에서 이뤄지는 그룹 프로젝트가 성공적인 이유는 UID 학생 모두가 UID의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책임감을 갖고 프로젝트에 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 4주간 듣는 Skills & Technique이라는 수업은 인터랙션 디자인의 역사에 대한 이론적인 기초부터 design research 단계에서의 인터뷰, low-fi prototyping을 통한 user-centered design 등 다양한 디자인 방법론에 대해 배우고, 이를 2-3일 동안 이뤄지는 짧은 프로젝트에 적용한다. 그중, 제일 처음으로 듣는 수업은 "Workshop on Planning, Time Management & Teamwork"인데, 앞으로 UID에서, 혹은 졸업 후에도 디자인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필요한 "협업"에 대한 기초를 다룬다. 수업을 듣기 전 제목만 들었을 때는 "학사도 아니고, 석사생들 대상으로 이런 기초적인 수업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업을 듣고 나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얼마나 잊고 그룹 프로젝트에 임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각자 토스트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1분 동안 스케치를 한다. 1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그림을 그리려면 짧게 핵심만을 전달해야 된다. 1분이 지난 후 각자 그린 그림을 보면 어쩌면 가장 단순하다고 생각이 드는 토스트를 만드는 방법이 모두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미 잘라져 있는 식빵을 살 수도 있고, 식빵을 통째로 사서 자를 수도 있다. 토스트기를 사용할 수도 있고, 어쩌면 프라이팬을 통해 빵을 구울 수도 있다. 누구는 식빵에 먼저 버터를 발라 구울 수도 있고, 먼저 구운 다음 버터를 바를 수도 있다.
이는 우리 모두의 멘탈 모델이 다르기 때문인데, 멘탈 모델이란 어떠한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혹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사고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UX에서도 멘탈 모델이 많이 사용되고는 하는데, 개개인의 행동 동기나 사고 과정에 따라 사용자가 특정 버튼 UI나 특정 기능이 어떻게 적용될지 사용자의 멘탈 모델을 기반으로 디자인을 할 수 있다. 토스트에 대해 갖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인식에 따라 식빵을 굽는 방법이 모두 다른 것이다. 그리고 이는 토스트뿐만 아니라, 그룹 프로젝트에서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모든 과정에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나에게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상대방에게도 당연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우리도 모르게 Hidden Assumption을 만드는 과정에서 의사소통의 부재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각자 살아온 배경과 환경이 너무나도 다른 11명이 모여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이렇게 서로의 멘탈 모델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함께 팀 프로젝트를 해야 되는 이유가 있을까? 이는 아마 협력에 대한 개개인의 생각에 따라 답이 다르겠지만, 무엇보다 크리에이티브하고 유연한 조직을 통해 Creative Climate을 만들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다양한 시도를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Nils-Eric Sahlin은 창의적인 환경 (Creative Climate)을 위한 9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Generosity, A sense of community, Qualification, Cultural diversity, Trust and Tolerance, Equality, Curiosity, Freedom of Spirit, Small Scale.
이 9가지 원칙을 되돌아봤을 때, UID는 모든 원칙을 이미 꽤나 많이 지키고 있고, 동시에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다른 브런치 글을 통해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짧게 예시를 들자면 UID는 스웨덴에 있는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각 국에서 학생들을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실제로 석사 과정에서 스웨덴인은 10명 중 1-2명 정도이다. 또한, Equality 원칙을 지키기 위해 학교에서는 "Equal Opportunity Group"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수업이나 학교 내에서 종교, 성별 혹은 인종 차별을 방지하고 있고, Small Scale 원칙을 위해서는 각 학과 정원을 10명 내외로 유지하고 있다. (각 학과가 소규모로 유지되는 이유는 이 이유 때문만은 아니고, 교수진과 학교의 시설, 운영 비용 등을 고려했을 때 많은 인원의 학생을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교 측에서 Creative Climate을 만들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들으면 새로 입학하게 된 우리도 이런 환경을 유지하고, 동시에 더욱 나은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 함께 동참해야 된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만든다. 실제로 교수님도 우리에게 UID의 소속 식구가 된 만큼 UID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얘기하신다.
수업은 마지막으로 Group Contract을 만드는 것으로 끝을 낸다. Alex Ivanov와 Mitya Voloshchulk가 만든 Team Canvas를 사용해 각자 장단점에 따른 역할 분배, 팀으로서 함께 이루고 싶은 목표, 추구하고 싶은 가치 등 함께 협력하기 앞서 서로 생각하고 추구하는 바를 공유한다. 비록 개개인이 이루고 싶은 목표는 각자 다를 수 있어도 다른 목표라도 이를 미리 공유하는 것과 공유하지 않고 시작하는 것에는 차이가 크다.
앞으로 약 10주간 진행될 Professional Product 수업의 프로젝트 인원 4명이 정해졌고, 실제로 우리는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모여서 Group Contract를 만들었다. 일례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팀원은 스케치를 잘 하지만, 코딩을 통해 프로토타입핑 실력을 키우고 싶다고 했고, 인터랙션 디자인을 전공한 또 다른 팀원은 학부 때 배운 여러 프로토타입핑 툴과 코딩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또한 우리는 각자의 강점에 따라 역할 분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프로젝트 일정과 일의 진행 속도에 따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로 배우고 싶은 분야에 조금씩 도전해보도록 결정했다. 10주간 프로젝트를 통해 각자 기대하는 바와 서로의 목표를 공유한 후 드디어 우리는 모든 Introduction 수업을 마치고 본격적인 프로젝트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