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바 위에 뜬 별 1부 제1화>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 1부
프롤로그-
인생은 도바 위에 올려진 물건과 다름없다. 언제 어느 순간, 어디로 팔려갈 지 아무도 모르는 널부러진 물건처럼, 값이 매겨지기 전부터 이미 손을 타는 것들과 무엇이 다르랴!
나는 한동안 내 삶을 그렇게 늘어놓고 있었다.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버렸는 지조차 분간하지 못한 채 정신차리고보니 인생의 막장에 서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선택의 연속이라 말한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는 선택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때도 있다.
앞으로 나아갈 힘도, 돌아설 여지도 남아 있지 않을 때, 삶은 우리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지않고 매정하게 다음 장면으로 후다닥 넘어 가 버리고 만다.
내 젊은날 인생의 한 순간이 그랬다. 국제시장 노점 골목에 티셔츠 몇 벌을 펼쳐 두고 서 있는 나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으랴.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경로를 하나씩 되짚어 설명하지는 않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무렵의 나는 무엇을 더 잃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라는 것, 삶이 나에게 요구할 것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이후로 삶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흘러갔다.
얼마 전 지인의 카카오톡 프로필에서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글을 보았다.
나는 그 말이 꽤 설득력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방향이 없는 삶이, 어느날 방향이 있는 삶으로서 전환되면서 일어나는 파란만장한 인생곡절의 이야기.
이제부터 지면을 통해 펼쳐질 모든 이야기는, 내 인생 최초의 노가다 면접에서부터 시작된다.
제1화
두번 본 노가다 면접
“ 보소 , 참 딱도 하요. 이런 말 하기엔 조금 거시기하지만 이런 손으로 도대체 뭘 할 수 있겠소?”
부장이라는 사람이 내 손을 잡고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한쪽 입꼬리를 삐죽였다. 처음 본 순간,그의 눈동자가 뱀의 그것을 닮았다고 생각했었다.근데 빈정거릴 때 마다 실룩거리는 입매도 영낙없이 뱀의 입모양과 닮아있었다.
그의 손은 거칠고 단단했다.반면에 여인네같이 희고 부드러운 내 손은 세상 물정 모르고, 온실속의 화초처럼, 펜대만 잡아온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있었다.
사무실 안쪽 소파에 앉아 있는 인부들사이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 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날건달 같은 인간의 우악스런 손으로부터 내 손을 빼내며 말했다
“… 뭐든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만 주눅 들린 목소리가 간신히 입밖으로 나왔다.
부장은 팔짱을 낀 채, 눈을 살짝 아래로 내려깔며 말했다. 어조가 조금전보다 더 거만스러워졌다.
“광고에 초보도 된다 했지만, 사실 현장은 생각하고 영 딴 판이이오. 훨씬 거칠어요. 나이 새파란 아이들이 고참이랍시고 반말 쩍쩍 씹어 될건데 견딜 수있으려나. 나이도 서른여덟이라매. 20대 한창 애들도 처음엔 버겁다고 며칠만에 들어눕는데 그 약골 몸이 하루라도 버텨내겠소?"
현대소방은 사상 시외버스주차장 뒷 길 하천변에 있었다. 사무실은 삭막했다. 오래된 소파와 낡은 책상 서너개,의자,벽에 걸린 ‘안전 제일’ 액자가 전부였다.
마흔 언저리로 보이는 부장은 담배를 입에 문 채 책상 위 서류더미를 습관처럼 손으로 툭툭 치며, 이 상황이 귀찮아 빨리 끝내고 싶은 듯한 목소리로 한 두마디 더 붙였다.
“괜히 들어왔다가 사고치지 말고, 다른 일자리나 알아보소.”
부장의 말이 끝나자, 안쪽에 있던 사내들은 또 다시 소리를 내어 웃었다.
“봐라, 김가야. 저런 손으로는 하루도 못 버틴다 아이가?”
“나는 철근 한 단 들다 하룻만에 허리 다 나간다에 한 표. 크크.”
가슴이 답답해졌다. 부장의 마지막 말이 돌덩이처럼 가슴 위에 얹혔다. 고개를 숙인 채 소파에 앉은 사내들을 훔쳐보았다. 그들의 눈빛은 연민보다 조롱에 더 가까웠다..
“예…” 짧게 대답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 설 수 밖에 없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사무실 밖은 허름한 식당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도로였다. 음식물 찌꺼기 썩는 내음, 하수구 위로 올라 오는 역한 오물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평소 같으면 구토까지는 아닐지라도,' 우 욱 '하며 욕지기라도 나올 상황이었지만 워낙 걱정이 앞섰던 터라, 내 위장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발걸음은 무겁고, 머릿속은 멍했다. 내가 타고 갈 초량 행 버스가 손님을 기다리며 대기 중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꼼짝하지 않았다. 차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후다닥 오르내렸다, 나는 두 눈을 멀뚱히 뜬 채 버스를 몇 번이나 보내 버렸다.
“이렇게 집으로 가면 뭐하노…”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돌아가면 그 방이다. 휑뎅그레한 방,주인 할머니의 집세 독촉, 끊어진 삐삐, 말라빠진 김치 몇 조각. 컵 라면 어차피 달라질 건 없었다. 이대로 버스를 타고 돌아가면ㆍㆍㆍ더 이상 내일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또 몇 대 지나갔다.
버스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그들 또한 삶에 찌들은 무표정한 얼굴들이긴 하지만 가야할 곳을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늘 떠밀려 왔던 삶이었다. 내 성질에 그만두고, 자존심에 사표 쓰고, 남 믿었다가 인생 막차를 탄 광채 없는 삶. 그것이 내가 걸어온 시간들이었다.
아쉬울 것도, 잃을 것도 없다고 자위하면서 살아왔었다 그러나 묘한 게 사람 마음이다.
그저 한 번 더, 한 번 더 하는 마음으로,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흘러 보내며 시간을 자꾸만 미루고 있었다.
딱히,집이라 말할 것도 없었다. 냄비와 밥그릇 두 세 개, 수저 한 벌. 컵라면이 든 종이박스 , 작은 냉장고. 약간의 옷가지, 때묻은 이불과 요. 그저 ‘세간’이라 부를 만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빈 소주병들이 마치 싸구려 잡지처럼 방구석에 널부러져있고, 이미 오래된 먼지가 그 위에 켜켜이 쌓여 있는 그걸 ‘세간’이라 부를 수는 없었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버스를 타거나, 다시 일자리를 구하는 것.
하루에도 몇 번씩 ‘죽으면 그만이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몰아붙였지만, 죽고 싶지 않았다.
죽기에는 아직 젊다는 생각, 그마저도 나를 붙잡는 핑계였을지 모른다
어쨌든 그날은 정말 싫었다. 저마다 목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을의 얼굴을 보며, 죽음을 구결하러 가는 나의 모습이 강하게 대비되어 싫었다.
한참 동안 버스정류장에 서서 하늘만 바라보았다 . 겨울의 한가운데. 파란 하늘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드높았다.
구름 한 점 없이 텅빈 공간. 그 무한한 공간 너머 어딘가에 혹 내가 가게 될 자리가 있을까? 차츰 쓸데없는 상념들이 가라 앉기 시작했다. 상념들이 가라앉은 자리에 내 마음의 파편들이 투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마음 이란 것 이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지 나갔다.
이대로 사라져도 아쉬워 할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여기서 무너지면 인생은 끝이다라는 두 가지 상반된 생각.
팽팽하게 서로 다른 두생각이 맞부딪치다가 갑자기 생각조차 없어지는 것을 느껐다. 내 마음의 안과밖이 한꺼번에 보이는 경험이있었다.
갑자기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서늘한 한기가 들었다. 드높은 하늘의 기운이 맑다 못해 시린 기운으로 어느 순간, 내 온몸을 투과하는듯했다. 곧 바로 뜨거운 열기가 내 온 몸을 훑고 지나갔다. 짧은 오한과 열기가 동시에 찿이왔다. 강력한 정신적충격으로 비틀거리다 끝내 땅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간신히 몸을 가누고 있었지만 내 의식은 이미 흩어져버렸고,나 라는 개체의식이 사라져 버렸다.잠시 뒤에 알 수 없는 평온이 찾아왔다.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사라졌다.
나는 정류장에서 발길을 돌려 다시 왔던 길로
걸음을 되돌렸다.
일단 한번 더 다시 부딪쳐 보자. 그렇다고 내가 손해볼 것이 없지 않은가? 그래, 쪽 팔릴 것도, 잃을 것도 없다. 대가리 피나도록 부닺쳐보는거다. 아무 쓰잘데기 없는 이 머리. 차라리 박살을 내버리는거다.
조금전에 나왔던 소방업체 사무실로 다시 돌아가는 길 한쪽 모퉁이에 공중전화박스가 내눈에 들어왔다. 녹색색깔이 평소보다 더 또렷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거기 현대 소방 맞지요? 여기 북부 소방청입니다. 대표이사님 좀 바꿔주세요.”
전화기 너머 상대방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예? 머시라고예? 소방청이라꼬예? 잠시만 기다리주이소!”
곧이어 묵직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예, 전화 바꿨습니다. 제가 대표인데, 무슨 일이오?”
순간 심장이 파르게 뛰기 시작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곧바로 사실대로 말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실은 여기는 소방청이 아닙니다.저는 조금 전 직원 채용 면접 봤던 지원잡니다. 부장님이 제 사정을 들으려 하지 않아서…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고 싶었습니다.
사장님께서 직접 한 번만 더 제 면접 봐주십시오.
초보라 해도 괜찮다 해서 왔는데, 제대로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내 말이 끝났지만 상대방의 반응이 없었다.어느새 중년의 아주머니 하나가,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내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누군가를 바쁘게 찿는 잡음만 들렸다.
내 손바닥은 어느새 땀이 배어 미끄러웠다.
잠시 뒤에 터져 나온 건 웃음소리였다.
“허허… 이 양반, 배짱 한 번 정말 기가 막히는구먼.
그래, 어떤 사람인지 얼굴이나 한번 봅시다. 지금 당장 와 보세요.”
수화기를 내려놓고 전화박스를 나오는데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여전히 태양은 머리 위에 내리 꽂히고 있었지만, 아까 전 처럼 나를 짓누르지 않았다.
나는 잠바 안으로 손을 넣어 이력서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래, 해보는 거다.”
사장의 눈빛
다시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사무실의 분위기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중앙에 있는 대형 책상에 초로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햇빛에 많이 그을은 얼굴이었지만 반백의 머리칼이 주는 이미지는 강력한 의지를 뿜는기운이었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 어떤경우에도 대처할수있다는 강한자신감이 엿보이는 인상이었다.
아까전까지 건들거리며 면접을 보던 부장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책상에서 한 걸음쯤 물러 서 있었다.
소파에 퍼질러 앉아 안하무인으로 떠들던 사내들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사장으로 보이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 쪽을 걸어가며 말했다.
“이리로 앉으이소. 아까 그 전화…나 원 참! 정말 별나더이다.어디 그쪽 사정부터 좀 들어봅시다.”
나는 그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한 뒤 차분하게 나를 소개했다.
은행 창구에서 숫자와 사람을 함께 다루던 시절,
신문 기자시절. 여행사에 투자했다가 동업자에게 뒤통수 맞고 무너진 일, 그리고 지금은 집세가 밀려 하루 한 끼도 버거운 형편에 이르렀다는 것까지.
돌려 말하지 않았다. 숨길 이유도,포장할 마음도 없었다.
마지막에 짧게 덧붙였다.
“저는 어디서든 항상 조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절대 후회하시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사장은 말없이 내 얼굴을 한 번 더 훑었다.
두 팔을 꼬고 있다가 나를 찬찬히 쳐다보며 위엄있는 어조로 또박또박 말했다.
“먼저, 그 전화—그런 장난 다시는 하지 마소. 감독기관 운운하는 건 선 넘은 거요. 이번 한 번은 내가 당신 배짱 샀다 생각하고 넘어가겠소.”
나는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사장이 부장을 불렀다.
“어이!조 부장. 내 분명히 말하지만 이 양반 잡일 시키려고 채용하는 것 아니라는 것,그것 하나는 명심하소. 그리고 당장은 현장 돌아가는 것부터 익히게 하소. 험한 일은 시키지 말고, 우리가 하는 공정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현장업무부터 자재관리까지, 우리가 하는 업무 일체를 최대한 빨리 파악하도록 도와주소. 단, 사고 나면 모두 곤란해진다, 알지?”
부장이 의외라는 듯이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 아! 예, 알겠습니다.”
사장은 다시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나는 공사장에서 삽 들고 시작해 여기까지 왔소. 근데 내가 가진 기술만으로는 한계가 있더이다.
현장은 땀으로 굴러가지만, 회사는 신뢰와 배경, 까놓고 말해 연줄로 큰다 아이요. 당신처럼 학벌있고 은행·신문사 경력 거친 사람이 도와준다면 우리 회사가 빨리 발전할 것 같기도 한데. 잘 해줄수 있겠소 ?”
“예. 제 능력껏 회사에 보탬이 되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럼 됐소. 부장에게 말해놓았으니 너무 무리 마소. 내가 지금 바쁜 일이 있으니,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내일부터 바로 출근하소. 자세한 업무설명은 반장에게 듣도록하고.”
부장이 옆에서 내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앞으로 같이 잘해 봅시다. 근데… 현장은 말처럼 안 쉽습니다. 몸이 버텨야 하는기라요.”
사장은 부장의 말이 못마땅 한 듯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내게 다시 말했다
“ 아니오. 당신은 힘쓰는 일 할 필요 없소. 보고 듣고,그리고 메모부터 해요. 헷갈리면 곧장 물어보고.”
“예.”
사무실을 나서려다, 나는 돌아서서 짧게 한 번 더 인사했다.
바깥으로 나오니 해가 제법 기울어져 있었다. 정류장엔 초량행 버스가 막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버스를 타려다 , 내친김에 그냥 집에까지 걷기로 했다. 무심한 마음으로 그저 발을 내디뎠다. 더 이상 밀릴 데도 없다. 한 번도 안 해 본 일이지만 모두가 해왔던 일이다.
나는 네 시간이상 걸리는 길을 줄곧 걸으며 집에 도착할 때까지, 버티면 산다.버티면 달라질 것이다 그 두 문장만 주문처럼 반복했다.
노가다 첫날
다음날 아침 7시, 사상 사무실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낡은 안전화와 먼지 묻은 작업복,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투덜거리는 소리.
그 틈에 서 있는 나는 여전히 어색했다.
부장이 나타나자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졌다. 인부들의 시선이 곧장 그에게 쏠렸다.
“오늘 신참 하나 새로 왔는데 현장경험 없는 촛짜이니 모두들 각별히 주의하고."
부장이 큰 소리로 말하며 턱짓으로 나를 가리켰다.
“사장님이 챙긴다고는 했지만, 현장은 따로다.
잘못하면 바로 짐 싸야 한다. 알겠나?”
잡부들 몇몇이 피식 웃었지만, 부장이 그들을 쳐다보자 삽시간에 웃음소리는그치고 약간의 긴장감이 돌았다.
그때 반장이 내 앞으로 다가와 자기소개를 하며 말했다.
“처음엔 누구나 신참이다. 소방건설일이란게 특별히 어럽거나 힘든 일은 없다. 모르는 일은 배우면 되고. 당분간 업무숙지할때까지 내 옆에 붙어 있어라.”
담담했지만 믿음가는 말투였었다.
잠시 후, 사람들은 소형 1톤 포터 두대에 나눠 타고 각팀별 현장으로 출발했다.
철근 냄새와 기름 냄새가 배어 있는 좁은 짐칸에 다섯명이 탔다.
양산 덕계 아파트 건설 현장으로 가는 덜컹거리는 길 위에서 나는 손잡이를 꼭 붙들었다.
8시 정각, 현장에 도착하자 이미 굴착기 소리와 ‘삐—’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현장 한쪽 천막에서 안전관리자가 나섰다.
“안전벨트 필수! 비계 올라갈 땐 반드시 2인1조. 밸트걸이 확인부터 하고. 흡연 절대 금지.”
사람들은 시큰둥하게 “예예” 하고 대답했지만,
눈은 부장 쪽만 살폈다. 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움직였다.
반장이 다시 앞에 섰다.“오늘 공정은 어제 표시한 S-1라인 다시 잡는 거다.행거 자리 빠꾸 난 데 다시 확인한다. 신참은 내 옆에 붙어라.”
나는 줄자를 허리에 걸고 스프레이를 들었다.
바닥에 엎드리자 콘크리트 차가움이 스며들었다.
줄자를 당기려는 순간, 부장이 비웃듯 말했다.
“은행 에서 펜대나 굴리던 손으로 줄자 댄다고? 일이 제대로 되겠나.”
인부들 사이에 낮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줄자를 팽팽히 당겼다.
반장이 곁눈질로 보며 짧게 말했다.
“잘했어. 그대로 잡아.”
오전 내내 행거 자리 표시와 드릴 소리가 이어졌다.
분진이 흩날리고, 앵커건이 ‘딱딱’ 소리를 내며 벽을 울렸다.나는 서툴렀지만, 반장은 끊임없이 짧은 조언을 주었다.
“줄은 손이 아니라 몸으로 당겨야 한다.”
“표시는 점이 아니라 십자로 해야 에라가 안나온다.”
반장의 말은 현장을 아는 사람의 말이었고,
인부들 중 몇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래도 최종적으로는 부장의 얼굴을 살폈다.
1시 반, 반장이 외쳤다.
“그만! 함바로 가자.”
사람들이 와르르 모여 함바집으로 갔다.
컨테이너를 개조한 식당 안, 김치찌개 냄새와 덜그덕거리며 철제 식판 부딪히는 소리가 가득했다.
막걸리 병이 돌고, 누군가는 큰 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내 앞에 컵이 놓였지만 나는 손사래를 쳤다.
“저는 술은 사양하겠습니다.대신 물을 마시겠습니다.”
옆자리에서 누군가가 킥킥 웃었다.
“신참 티 내네. 그래도 하루 이틀이면 달라질 기다.”
반장은 내 식판을 흘깃 보더니 짧게 말했다.
“밥을 다 먹고 난 뒤 물 마셔. 도중에 마시면 손에 힘 빠진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말은 단순한 잔소리 이상의 무게가 있었다. 물로 배를 채우다 밥을 덜 먹으면, 오후 내내 버틸 힘이 모자란다.
노가다 삶이란 게 원래 밥심으로 버티는 것이라는 믿음은 그들만의 오래된 생존의 지혜였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밥숟가락을 움켜쥐었다.입안 가득 밥알이 씹히는데, 조미료 가득 친 반찬들이 비위에 맞지는 않았지만 밥알에서 단맛이 흘러나왔다.
그때 부장이 함바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의 분위기가 한순간 조용해졌다.
그가 자리에 앉자 모두 시선을 내리깔았다. 막걸리를 마시던 이들도 잔을 내려놓았다. 부장은 밥숟가락을 뜨다 말고 내 쪽을 째려보다시피 하며 말했다.
“사장님이 챙긴다 해도, 내 눈 밖에 나면 끝이다. 명심해라.”공기는 다시 무거워졌다. 반장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부장, 일은 내가 맡아서 가르친다. 괜히 신참 겁주지 마라.”부장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동의가 아니라 적대감에 가까웠다.
오후 작업은 자재 옮기기와 밸브룸 정리였다.
나는 반장 지시대로 움직였다.
일부 잡부들은 철근에 소방배관을 철사줄로 고정시키는 가장 손쉬운 작업을 개시했다.
그들은 반생이 철사줄을 한 움큼 손에 쥐고 ,시간만 끌고 있었다. 일과를 마치면 늘 부장과 술을 마시는 축들이었다.
부장은 그런 그들을 못 본 척하고 트럭 운전석에 올라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한가한 전화질로 보내고 있었다.
5시가 되자 부장이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칼퇴다. 대신 내일은 지하 토관 들어간다. 준비들 해라.”
순간, 사람들 사이에 낮은 휘파람과 웃음이 돌았다.
누군가는 “신참, 오자마자 바로 세례 부터 받겠네” 하고 농담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속엔 묘한 조소가 섞여 있었다.
반장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생각보다 힘들었제. 일주일은 지나야 일이 몸에 베일 거야. 토관도 결국 일이다. 하지만 어둡고 축축하지.
내일은 진짜 현장 냄새를 맡게 될 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리는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두구동 전철역 화장실에서 본 내 얼굴은 단 하룻만에 새카맣게 타있었다. 내의는 연신 흘러내린 땀으로 젖어
시큼한 냄새가 났다. 땀과 흙먼지가 범벅 된 머리카락은 노숙자가 따로 없었다.
어쨌든 난생 처음노가다판에서 하루를 버텨낸 것이다.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그 토관 속 어둠이 어떤 사건으로 나를 맞이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