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돈과 시간 <도바 위에 뜬 별 1부 제2화>
시간과 돈이 줄줄 새는 현장
사흘이 멀다 하고, 꼭 한 번씩 같은 소동이 벌어졌다.현장에 도착하여 일을 시작할라치면
주요 공구나 자재가 준비 되어 있지않았다. 챙겨오지 않은 것이다.
스패너 한 박스, 절단석 몇 개, 심지어 꼭 필요한 배관 자재까지 빠져 다시 사무실로 트럭이 달려갔다.
우리는 그 시간 동안 담배를 피우거나 땅바닥에 주저앉아 수다를 떨며 대기했다.
결국 작업은 열 시가 넘겨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채 한 두 시간 지나지 않아 점심시간이었다.
오전의 절반이 허비되는 셈이었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대기업인 은행과 신문사에 있던 시절, 숫자와 시간, 성과물로 하루를 버티던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일까.
시간 낭비, 돈 낭비, 눈에 보이는 비효율이 안타깝고 너무 답답했다.
‘이렇게 흘려보내는 시간이 도대체 얼마짜리일까….’이런 방식으로 일하며 사업이 유지된다는 것 자체가 도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같은 일이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 나는 작업 공정별로 반드시 필요한 공구와 자재를 반장에게 물어가며 항목별로 수첩에 정리했다.
그리고 출근하자마자 공구창고 문 앞에 공정별 공구와 자재 리스트를 크게 적어 눈에 잘 보이도록 붙여 두었다.
부장이 리스트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향해 비아냥거렸다.
“니가 뭘 안다고 잘난 척하요. 작업장마다 환경과 공정이 그때그때마다 바뀌는데 이런기 무슨 도움이 된다고, 당신 일이나 똑바로 하소? ”
다른 작업자들 또한, 내게 쓸데없는 짓을 짓을 했다는 반응들이었다. 쉴 수있는 시간이 줄어든 것 말고 그들에게 도움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반장만은 “기본 공구나 자재는 모든 작업과정에 언제나 똑같다. 앞으로 이 순서대로 안 챙기는 사람은 당일 작업에서 손해 본 비용을 일당에서 다 깔 거다”라며 나를 두둔했다.
잠시 뒤 사장이 점검차 들렀다.
벽에 붙은 리스트를 보더니, 얼굴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거 참 좋은 아이디어인데… 왜 진작 생각못했지. 정작 우리는 작업에만 신경써느라 이런 생각을 못 했네. 대기업에 근무한 사람이라 우리하고 마인드 자체가 다르네"
부장의 입술이 또다시 씰룩거려지며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게 내 눈에 보였다. 날이 지나갈수록 소방 공정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배관을 자르고 연결하는 과정, 배관을 고정하는 행거와 앵커의 위치, 도면과 현장을 맞추는 순서….
하지만 알아갈수록 더 답답해졌다.
현장에는 돈과 시간이 줄줄 새고 있었다.
시간과 돈을 줄일 수 있는 방법들이 눈에 뻔하게 보였지만, 부장이 있는 한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는 사장의 처남이었고, 자금사정이 간당간당한 회사는 늘 사장 처가의 자금줄에 의존하고 있었다.
회사가 자금 회전이 막히면 사장은 처갓집, 즉 부장집에서 돈을 끌어다 쓰는 구조였다.
결국 이 회사는 처음부터 기울어진 판 위에서 굴러가는 수레와도 같았다.
아무리 현장에서 개선안을 내더라도, 위가 바뀌지 않으면 굴러가는 모양새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반장은 나를 곁에 세워 부지런히 현장실무를 가르쳐 주곤 했다. 사장이 자기 형님이라며 내게 부장의 말에 흔들리지 말라고했다.
“동생, 작업은 귀찮아도 실측이 기본이다. 자재를 잘라낼 때 한 토막 기리 빠시라도 아낄수 있도록 머리를 써야지. 이무 생각없이 자르면 남은건 통채로 버려야돼. 건설현장에서 그렇게 폐기되는 자재들이 국가적으로 엄청날거야. 막대한 돈을 폐기물 부대에 담아 그냥 내 버리는거지. 내일 다른 공정에서 요긴하게 사용될 수도 있는데 말이야 . 누구 일을 하든 그게 1년이라면 적지 않은 큰 돈이 되는 거지.”
그의 말속엔 정직한 땀과 성실한 세월이 묻어 있었다.
토관의 어둠과 결심
라디오에서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소식이 있겠습니다. ”라는 아나운서의 예보가 번번이 있었다 그러나 겨울부터 3월 까지 내내 몇 달째 비가 오지 않았다.
아나운서가 부산 김해 양산, 이 지역이 전국적인 대표 소우지라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친구 송박사는 그 특유의 시니컬한 표현으로 “부산은 전국에 포함되지 않는다 날씨에 있어서만은 대한민국이 아니다 ” 고 예보가 틀릴 때마다 툴툴거렸다.
마치 내가 이 현장에 있으면서 이 현장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비 예보에 있어서 부산은 전국에 포함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써머셋 모옴은 소설 ‘달과 6펜스’에서 “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태어난 곳에서는 오히려 나그네처럼 느끼며, 친지들에게는 이방인처럼 행동하며 늘 미지의 고향에 대하여 항상 어떤 강한 향수를 느끼며 산다”라고 했다.
흔히 사주 양명학에서는 이들을 역마살이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가족이라든가 직장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었다. 나도 그러했다. 은행이나 신문사에서 나 스스로 적응되지 않았다 . 항상 이질감이 느껴졌다.
동화되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더 거리감이 생겼다.
그만둔다고 말할 때마다 그들은 아쉬워하기보다 뭔가 숙제를 처리한 사람들 같은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동료들과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그 반대로 몇몇과는 늘 붙어 다녔다. 고독할수록 친구는 더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 현장에서도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늘 내가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날도 결국, 일기예보는 맞지 않았다.
현장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성긴 빗방울만 몇 번 후두둑 거리더니 비는 끝내 내리지 않았다.
“어이, 김기사, 으짜노 니가 기다리던 비가 안 오네. 잘하면 일당은 받고 하루 공으로 놀 수 있었는데 ...”용접 담당 박기사 아저씨가, 부장 똘만이 김 기사를 놀렸다.
그는 묘하게 반장과 부장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았다.용접기술이 좋아 되려 회사가 그의 눈치를 보는 편이었다. 거제 옥포 조선회사에서 현재 받는 급여의 두배를 준다고 오라는 데도 사장님과의 의리 때문에 안 간다며 꽤나 목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믿는 사럄은 없었다. 자격증이 없기때문이었다. 반장과 그는 하동 지리산 두메 산골출신으로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산으로와 지금의 사장님밑에서 노가다 현장을 떠돌며 일을 배웠었다.
사장은 소방건설이라는 전문분야의 일만 오랜기간 해 온 결과, 큰 규모의 소방시설이 가능한 전문면허 업체를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박기사는 정식 용접기사로 일을 할 수 없었다. 관급공사나 대기업 하청은 반드시 자격증을 요구했다.
그날, 우리가 탄 트럭은 양산 덕계 아파트단지로 가지 않고 정 반대방향인 부산에서 가장 남쪽인 장림동으로 내달렸다.
반장이 “야, 오늘 덕계 현장에 마무리해야 할 일 있는데 왜 장림으로 가노”하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반장님. 발주처에서 장림아파트 보수공사를 빨리 해주어야 결제해 준다고 해서 오늘 중으로 처리해라는 사장님 지시가 있었습니다.”하며 부장이 능글맞게 말을 받았다.
장림현장은 부실공사로 클레임이 걸려 공사 잔금 결제를 받지못한 현장이었다.다행히 법적분쟁중 화해가 성립되어 최근 공사가 재개되었다는 설명이었다.
지하현장으로 내려가는 철제 계단은 상당히 가팔랐다. 다른 설비 파트 공사 중 수도관이라도 터졌는지 계단이 매우 미끄러워 난간을 잡고 내려가야만 했다.
발을 내 디딜 때마다 미끄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환기팬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멈춰 있었다.덕트 호스는 구겨져 입을 닫아 버린 상태였다. 가스측정기는 없었다.
“어이, 신참 니가 먼저 들어가 봐라. 표시 다시 잡아야 한다.”
부장은 담배를 턱짓으로 털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졸개 둘이 킥킥대며 내 안전모를 툭 치고 지나갔다.
허리를 반쯤 접고 토관 입구로 기어들어가자, 습한 공기가 한 겹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인부들이 급할 때면 대소변을 처리한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다.
토할 것 같은 인부들의 배설물과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오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곧 뒤이어 그보다 더한 독한 신나 냄새가 확 밀려왔다. 페인트 작업하다 버려둔 신나통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페인트가 덜 마른 대형 토관 내부는 뜨거운 여름 공기와 뒤섞인 화학 물질들이 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내부는 어두웠다. 손전등에서 나온 광선 줄기가 습기 속에 금세 퍼져 희미해졌다. 토관벽면은 한겨울 김 서린 창처럼 젖어 있었고, 이끼와 검은 곰팡이가 군데군데 번져 있었다.
바닥은 모래와 흙, 기름기와 물이 섞여 질척거렸고, 발바닥이 ‘처벅’ 소리를 냈다. 천정부 틈새에서 물방울이 계속 ‘똑, 똑’ 떨어졌다.
머리 위에는 철근 가시가 삐죽 나와 안전모를 긁고 지나갔다. 오른쪽 벽엔 행거 브라킷에 남겨둔 타이와이어 꼬리가 바늘처럼 튀어나와 소매 끝을 훑었다.
발치에는 절단하다 남긴 앵커볼트 나사산이 고슴도치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나는 줄자를 뽑아 브라킷 중심에 대려 했지만, 숨이 묘하게 헛돌았다. 한 번 들이마신 공기가 폐 속으로 내려가지 않고, 강력한 저항에 걸려 목밖으로 다시 튀어 나오는 것 같았다..
머릿속이 뜨겁게 달아오르다가 곧 귀에서 ‘웅—’ 하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손전등 빔은 점점 줄어 손톱만 해졌다.
‘조금만, 표시만 하고 나가자….’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목구멍 아래 내내 참고 있었던 구역질이 드디어 치밀어 올라왔다. 진땀이 온몸에 한꺼번에 솟고, 시야 가장자리는 어두워지며 앞을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손에서 줄자 같은 것이 떨어졌는지 ‘짤그랑’ 소리가 났다.
천정부에 튀어나와 있는 뭔가에 걸렸는지 안전모가 ‘찍’ 하고 소리를 내었다.
고개를 반사적으로 숙이는 순간, 타이와이어 꼬리가 소매를 잡아채 몸이 앞으로 쏠려버렸다.
무릎이 젖은 바닥에 부딪히며 흙탕과 오수 냄새가 조금전 보다더 강하게 코안으로 밀려들어왔다.
호흡이 끊어졌다. 심장부위가 찢어지게 아팠다. 순간 잠시 기억이 사라졌고 갑자기 컴컴한 허공에 내가 들어와 있는 것이 보였다. 3차원의 공간이 아니라 2차원으로 내가 스며드는 느낌이었다.편안했다.이대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햇빛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잠시 들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는 신호가 언어가 이니라 몸으로 왔다.하지만 부질없는 이 몸이 곧 형해화되어 내 영혼이 자유롭게 토관 밖으로 나갈것이다라는 근거없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 “성호야!”
멀리서 반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아득한 소리였다. 혀가 굳어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멀리 반장의 가느다란 손전등 빛이 시야에서 흐리게 춤을 추다가 사라졌다.
모든 것이 꺼져버렸다.
구출
의식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순간, 내 몸은 뜨겁고 단단한 등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숨소리가 귓가에 바로 닿았다. 거칠지만 일정한 리듬이었다. 반장 일것이다.
그는 좁은 토관에서 기다시피하며 나를 등에 업고 앞으로 나아 가는것 같았다. 철근 가시에 그의 어깨가 긁히며 ‘찍’ 소리가 났다. 내 팔은 본능처럼 그의 작업복을 움켜쥐었다. 땀과 먼지, 기름이 뒤섞인 냄새가 났다.
“조금만 버텨라! 다 왔다—”
반장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침착했다. 입구 쪽에서 부장의 졸개들이 우왕좌왕했다.
“야, 진짜로 쓰러졌다!”
“119 불러라, 얼른!”
마지막 턱을 넘을 때, 반장은 잠깐 숨을 돌리더니 한 손을 뒤로 돌려 내 몸을 더욱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난간에 힘을 주고 우리들의 몸을 끌어올렸다.
바깥공기가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햇빛이 눈꺼풀을 뚫고 들어오는 듯 뜨거웠다.
나는 흉곽 어딘가가 ‘컥’ 하고 걸리며 기침을 했다.
반장이 나를 땅바닥에 조심스레 눕히고 내 턱을 들어 올려 숨을 쉬기 편하게 했다. 그의 손등 긇힌 상처에서 연신 피가 흐르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던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졌다.
119 이송
구급대가 도착했다.
“환기 안 된 철제 토관, 신나 계열 용제 흡입! 의식 소실 1~2분, 자극에 반응 시작했습니다!” 소방대원이 반복하는 소리가 가물거리는 의식사이로 희미하게들려왔다.
나는 들것에 눕혀졌고, 차가운 산소마스크가 얼굴을 덮었다. 라텍스 장갑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구급대원이 말했다.
“천천히, 깊게.”
시윈한공기가 가슴으로 내려가는 느낌이 조금씩 돌아왔다. 손끝 저림이 옅어졌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물속 같았다.
앰뷸런스 천장 등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나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
병실, 사장의 사과
눈을 뜨자 병실 천장이 보였다. 목은 말랐고, 이마엔 식은 땀이 맺혀 있었다. 반장은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그의 손등에 피가 말라 까맣게 굳어 있었고, 어깨에도 긁힌 자국들이 선명했다.
문이 열리며 사장이 들어왔다. 평소의 자신만만하던 얼굴은 사라지고, 침통하고 굳은 표정이었다. 그는 잠시 침묵 끝에 말했다.
“다행이오.이제 정신이 돌아온 것같네 …여하튼 이번 일은 전부가 내 잘못이오. 정말 미안하요. 내가 잘 챙겼어야 했는데 …”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부장의 조롱, 졸개들의 비웃음, 환기팬 멈춘 채 방치된 구조…. 그러나 가장 든든했던 것은 반장의 뜨거운 등이었다.
사장이 내손을 잡으며 다짐하듯 말했다.
“내 다시는 이런 일이 안생기게 하겠소.”
그리고 반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오늘 고생 많이 했다. 그라고 나머지 이야기는 우리 나중에 따로 하자 ”
반장이 볼멘 목소리로 응수했다.
“까닥 잘못했으면 사람 잡을 뻔했습니다. 부장, 저 친구 이대로 가만두면 안됩니다.언젠가는 큰일 낼 사람입니다.”
사장이 나가자 병실은 고요해졌다. 반장은 물컵을 내밀며 말했다.
“동생아, 오늘 일… 내가 잠깐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에 부장이라는 놈이 사고를 쳤더구나! 위험한 작업은 항상 2인 1조로 내 보내야 하는데 "
"반장님. 덕분에 살았습ᆢㆍ."나는 고맙다는 말을 몇 마디 더하려고 했지만 마비된 혀가 여전히 자유롭지않았다.
"어쨌든 이번에 저 놈도 식겁했을 테니 앞으로 함부로 괴롭히지 못할 끼디. 다시는 니인테 함부로 못하게 내가 본가에 찿아가 형님하고 형수님에게 확실하게 못박을거다.”
나는 부장이 건네주는 컵을 받아 물을 삼켰다. 맛은 알 수 없었지만 목으로 내려가는 감각은 느낄수 있었다.
그때 알았다. 곧 이 현장을 그만둘 것이라는 것을. 누구를 원망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도 내 자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젠가 반장 형님에게 반드시 보답하리라.
병실 창밖으로 오후 해가 기울었다. 토관 속 어둠은 멀어지고, 반장의 어깨에 남은 상처자국만이 오래 남을 것 같았다.
퇴원은 이틀 만이었다. 몸은 아직 무겁고, 숨을 깊게 들이쉴 때마다 목구멍에 화끈거림이 남아 있었지만, 퇴원하기로했다. 병실을 나서며 반장이 배웅해 주었다.
“동생아, 어디서든 몸조심하고 밥값은 하는 놈이 되어라. 네가 가진 게 머리면 머리로, 손이면 손으로. 대신 자존심은 팔지 마라.”
나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그와의 인연은 오래 이어질 것임을 직감했으니까.
이곳 노가다 현장에 오기 전 몇 달 동안 죽을 생각만 품고 있었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강인한 생존을 배웠다.노동으로 하루를 열심히 벌어 먹고 사는 삶. 그 정직한 땀이 주는 하루의 끝은 그 이전에는 한번도 느끼지 못한 시원함이 있었다.
그 짧은 노가다경험이 없었더라면 나는 향후 전개될 국제시장 노점바닥을 버텨내지 못했을것이다.그래서 사족일지도 모르는 이 이야기를 앞부분에 덧붙이기로했다.
삶의 끝에서 내 손을 잡아주고 나를 신뢰해주었던 사장님. 그로부터 바로 몇 해 뒤 그 분이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노점상 신협을 만들려고 동분서주하던 어느날 점심무럽. 단골 설렁탕 집 TV뉴스를 통해 그의 소식을 들었다.
아나운서의 건조하고 기계적인 목소리가 더욱 내 마음을 아련하게 하고 아프게하였다. 눈물이 곰 탕그릇으로 소나기 내리듯 흘러내렸다.
그렇게 강인했던 분도 세번째 부도에는 무릎을 꿇어 버렀다.
가슴답답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이제 본격적으로 좌충우돌 초보노점상 분투기를 시작한다. 아!참.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는 나의 자전적경험을 바탕으로 꾸며낸 것들이다. 모든 인물과 사건은 전부 가공의 이야기이다. 경험에 바탕한 사실적인 묘사가 많다보니 오해의 소지가 생길까봐 밝혀둔다 .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