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바 위로 뜨는 별 제 3화
첫 번째 도바- 꼬여진 인생
1997년 3월
국제시장 먹자골목은 아침부터 부산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술기운이 불콰한 사내들이 허리를 굽힌 채 국수 그릇을 들이키고, 재첩국수와 비빔당면을 파는 아낙네들의 좌판 위로 펄펄 끓는 솥에서 올라오는 김이 자욱했다.
골목 안쪽으로는 리어카들이 덜컹거리며 하나 둘 들어와 저마다 장사할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골목은 트럭이 드나들기엔 너무 좁았다. 그래서 리어카에 옮겨 싣고 구석구석으로 흩어져 각자의 좌판을 바로바로 채웠다.
어제 오후, 신 상무는 그가 운전해 온 승용차에 실린 포대 두 개를 보여주며 말했다.
“한기자님, 내일 오전엔 내가 바쁜 일이 있어 같이 못 갑니다. 아침 아홉 시까지 국제시장 입구에서 다섯 번째 자리에 먼저 도바를 펴세요. 점심 무렵에 내가 잠시 들를게요. 그리고 물건하고 짐들 싣고 다니려면 차가 필요할테니 당분간 이 차를 쓰세요."
내가 신문사를 그만둔지 벌써 두 해가 지나가고 있건만 그는 여전히 나를 한기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더 이상 자세한 설명 없이 곧장 떠나버렸다.
남은 것은 르망 승용차 뒷좌석에 덩그러니 놓인 티 셔츠 포대 두 개뿐이었다.
나는 신부장이 말한대로 아침 8시에 세명 약국 골목 입구로 나왔다.
그는 점심 무렵에야 온다고 했고, 그전까지는 혼자 자리를 펴야 했다. 어림짐작으로 다섯 번째쯤 되는 자리를 찿았다. 시멘트바닥 위에 플라스틱 양동이 여섯 개를 거꾸로 덮어놓고, 그 위에 베니어 합판 두장을 붙여 올렸다. 다른 사람이 사용하던 것이라며 신 부장이 어제 챙겨준 것들이었다.
합판 위에는 신문지 여러장을 깔았다. 그위로 포대에서 꺼낸 티 셔츠를 색깔과 사이즈별로 구분하여 보기 좋게 정리하여 벌려 놓았다. 내가 처음 만든 도바였다.
골목이 점차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온 상인들이 각자 천막을 치고, 행거를 조이고, 물건을 꺼냈다.
나는 "이렇게 조잡한 셔츠가 팔리기는 할까. 내가 과연 이런 장사를 해낼 수있을까 ?" 약간 초조한 마음으로 손이 닿는대로 셔츠를 접었다 폈다 하며 불안한 시선으로 주위의 도바들을 훔쳐보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웬 남자의 욕설이 튀어나와 내 귀 고막을 때렸다. 물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이였다.
“야, 이 새끼야. 니 어디서 글러온 놈이고? 자리만 깔면 다 니 자리인 줄 아나? 일마, 이거 보기에는 그래 안 보이는데 완전 개또라이 아이가?”
짧고 땅딸막한 체구의 내 나이 또래 사내가 나를 향해 손짓을 하며 거친동작으로 다가왔다.
목소리가 하도 쩌렁쩌렁해 골목이 떠나 갈 정도였다.주위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쏠렸다.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 올라 있었고, 아직 철 이른 반팔 셔츠 위로 드러난 굵은 팔뚝이 제법 힘깨나 쓰게보였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 전개에 어이가 없어 아무런 대응을 못하다 겨우 낮은 소리로 한마디 대거리를 했다.
“여긴 신 부장이라는 사람이 깔아도 된다 해서…”
그는 나의 대꾸에 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 부장? 시발, 그 인간이 뭔데! 여긴 엄연히 내 자리다. 니 눈은 자갈치바닥에 명태눈깔이가?발 밑에 도바 경계선 금 그어 놓은 것 이것 안 보이나?”
그의 벌어진 입에서 연신 침이 튀었다. 그리고 내 멱살이라도 잡으려는 듯 팔을 들어 내게로 바짝 밀고 다가섰다. 그때 누군가 우리 사이로 비집어들며 그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만해라, 대팔아. 아침부터 핏대 올리면 당일 장사 재수 옴 붙는 것 모르나? 이 사람 도바 펴는 거 딱 보니까 오늘 처음 나온 사람 같다. 저 쪽도 사정이 안 있겠나. 그만하고 자세한 내막이나 함 들어보자”
그가 대팔이라 불린 사내의 가슴을 껴안듯이 뒤로 밀면서 달래는 투로 말했다.
“구 씨 형님아, 이게 지금 한 두 번이가. 내보고 지 자리 관리하라 해놓고, 맨날 지 마음대로 사람 꽂아버리면 뭐? 나는 허수아비가? 시발, 오늘은 내 못참는다.”
“그래도 저 사람이 무슨 잘못이 있냐? 나중에 신부장 오면 내캉 같이 따져보자.”
“조또! 사람을 바보 핫바지로 보는 기가. 지가 잘난체 해봤자. 지나 내나 이 바닥출신인데 . 신부장인지 개부장인지 오늘 오기만 해 봐라, 시발.”
구 씨 형님이라는 사람이 좋게 타일렀는데도, 대팔이란 친구는 분이 잘 가라앉지 않는지 계속 내 옆에서 식식대고 있었다.
그는 연신 나를 째려보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보소, 젊은 아재. 신 부장 말만 믿고 자리 폈는 모양인데, 저 친구가 저래하는 기 다 이유가 있으니 그쪽이 이해하소. 허술하게 보여도 여기노점에도 규칙과 법이 있소. 당신 발 밑에 금을 잘 보소. 거기가 경계선인데, 당신이 우리 동생 자리를 한참이나 많이 침범해 가지고 자리를 깔았으니 우리 동생이 더 열받은 것 아니요?”
발밑을 쳐다보니 그의 말대로 아스팔트 위에 가늘고 긴 금이 움푹 패여져 있었다.
“그 줄이 만만찮은 줄 인기라요. 바로 우리들 목숨 줄이라. 그냥 선만 그어 놓으면 된 건데, 왜 그렇게 힘들게 깊은 금을 파놓았겠소. 이 자리가는 원래 6·25 때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장사가 시작된 자리요. 벌써 수십 년째 이날 이때까지 대를 물려가며 지키는 자리 아니요?당신 나이보다 훨씬 오래된 자리이고 금인 기라.”
나는 그 말을 듣고 나니, 한편으론 수긍도되고 민망하기도 하여 ,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깔아 놓은 물건을 주섬주섬 주워 마대자루에 다시 담기 시작했다.
손끝이 떨렸다, 도바 뒤편 가게의 천막 끝자락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그 떨림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때, 구 씨 형님이란 사람이 다시 내게 다가와 동정 섞인 어투로 물건 치우는 나를 말렸다.
“아, 그렇다고 지금 걷어가지고 어디 가서 장사하겠소. 오늘 기왕 왔으니 장사는 하고 가소. 저 동생도 성질만 저렇지 알고보면 괜찮은 놈이요. 고마 치우지 말고 함 해보소. “
그렇게 말하는 구 씨라는 사람의 어투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처지를 이해 한다는 안쓰러움이 담겨있었다.
“근데 당신, 초짜 맞제? 내가보기에 완전 장사초짜 같은데… 자릿세는 얼마나 주기로했소?그것 제하고 나면 오늘 밥값이나 벌 수 있을랑가. 요새는 베테랑인 우리도 어렵는데... "
그는 재빠른 손길로 포대에서 티셔츠를 다시 꺼내어 내게 넘겨주며 걱정섞인 어투로 혼잣말을 했다.
"신 부장도 참, 대책 없는사람이지. 이런 책상물림 양반 혼자 내보내면 우짜노. 그래서 사람들이 다 지를 욕하는 기다.”
말을 마친 구 씨는 인근을지나치는 길거리 커피 아주머니를 손짓해 불렀다.
잠시 뒤, 종이컵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석 잔이 우리 앞에 배달되었다.
" 오마야.이 아저씨는 오늘 처음보는 사람이데이. 잎으로 지 쫌 자주 불러주이소. 대신 오늘 커피는 공짜라예"
커피 아주머니가 가고 난 뒤,구 씨가 대팔이라는 사람과 내 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이봐라. 손님 올 때까진 아직 좀 이르다.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서로 통성명이나 하고 얼굴이나 익혀보자.”
대팔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억지로 커피잔을 들며 자리를 함께했다.
그는 강한 눈빛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다가 툭 내뱉듯 말했다.
“나, 대팔이라 한다. 공고 중퇴지만 젊을 적에 복싱 좀 했지. 아마권투에선 케오 펀치로 이름도 좀 날렸고.”
그의 목소리에 낯선 사람 앞에서 기 죽기 싫어하는 순진한 티가 묻어났다.
"이 동생은 이름이 대팔이고 이름대로 팔이 길거든.한때 복싱유망주로 이름 날렸지. 복싱 그만두고 건축 일을 했는데, 작년에 어머니 돌아가신 뒤 부터 이 자리 물려받아 부부가 같이 장사하는 기라. 할머니부터 대팔이까지 3대째 여기서 장사하고 있어. 이모님도 바로 저 쪽에서 튀김 장사하신다 아이가.”
구 씨 형님의 소개가 끝나자, 대팔은 어깨를 으쓱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구씨형님이라는사람의 칭찬이 그의 화를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았다.
구씨형님은 계속 말을 이었다.
“봐라, 이 동네에선 대팔이한테 신 부장 말 꺼내면 안 된다. 이 동생 어머니께서 지난해 암으로 돌아가시고 동생이 돌아왔을 때, 신 부장, 그 친구가 말이야. 얍삽하게 기존 선이 그어진 자리를 지우고, 조금 더 대팔이 네 쪽으로 밀고 들어와 새로 금을 파 놓았는 기라. 돌아가신 분과 합의를 그렇게 봤다며…”
구 씨는 자신이 말을 하면서도 어이가 없는 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가지고. 대팔이가 신 부장이랑 껄끄럽게 된기라. 신 부장 이름만 꺼내도 불 난 집에 기름 붓는 격 아이가.”
구 씨는 자기에게 고3 딸이 의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데, 딸이 학업 마칠 때까지는 싫어도 장사를 계속 해야 한다고 간략하게 자기 소개를 했다.
나보다 한참 위, 마흔다섯이였다, 신 부장과 동갑이고 젊었을 적부터 아는 사이라고 했다.
그는 중키정도는 되어보였으나 호리호리한체형에 허리가 약간 굽은탓으로 왜소해보이는 스타일이였다
하지만 말을 할때면 언제나 서두에 '봐라' 라는 단어를 입에 붙이다시피 하였고, 눈동자가 심하게 반짝거려 성질이 보통 아닌 사람으로 보였다.심한 곱슬머리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 동안, 도바 맞은 편, 수입품 가게 처마 아래에서 한 사내가 아까전부터 우리 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내 기억 속 언제인가 한번 스친 얼굴 같았다. 우리끼리 대화하는 내내 그 남자의 시선이 자꾸 나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는 주위를 한 바퀴 훑어보더니 곧장 우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치 스크린 속 주인공이 천천히 화면에 들어오는 듯 강한 카리스마가 좁은 골목을 압도하고있었다.
걸어오는 도중 두어번 담뱃재를 손끝으로 탈탈 털 때, 바지 옆 한쪽으로 비껴 털었다. 아마 날리는 재가 주위 노점상들의 물건 위로 떨어지지 않도록, 몸에 밴 동작인것같았다.
그가 다가오자 인근 노점상들이 자연스레 아는척을 하기 시작했다. 더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었고, 또 다른 이 들은 “악어형님” 하고 별명같은 그의 호칭을 친근하게 불렀다. 골목에서 별나고 억세기로 소문난 재첩 장수 아주머니들마저 일하던 동작을 멈추고 잠깐 고개를 숙여 아는 척을 했다. 하지만 그는 인근장사치들의 인사에 고개만 작게 까닥이며 비교적 무심하고 담담한표정이었다. 조금 반갑게 친한 티를 내는 사람들에게 마지못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여 ㅎ씨익 웃는 정도로 인사를 받았다. 대체로 말보다 시선으로 답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지나가고 난 뒤, 구씨형님이라는 사람을 통해 그에 대해 간략히 들었다. 이 골목에서 그는 “악어 형님”이라 불리며, 골목상인들의 존경을 받고있는 인근 대각사 주지스님의 아우이며 이바닥에서 꽤오래 버틴 노점상이자 신뢰와 두려움을 함께 받는 존재라는 것을.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어디서 그를 본 듯한 기시감만을 더듬고 있을 뿐이었다. 기억의 회로를 급히 훑어 보았으나, 그와의 만남을 기억나게 하는 장면들은 전혀 떠오르지않았다. 한편으로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사람이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당시 내가 어찌 알 수 있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