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랜드 라디오 EP2
이번주와 다음주는 시리즈로 극장 비하인드를 다뤄본다. 먼저 공간편. 건축부터 인테리어까지 2년 넘는 시간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다 풀어내진 못했지만 어떤 생각을 갖고 만들었는지,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이야기 나눴다. 게스트는 공간 담당자 멤버 훈택.
모춘: 빠르게 왔죠. 일주일 만에. 이제는 주간으로 도전해 봅니다. 어떻게 지냈어요?
소호: 정신없네요. 저는 몇일 전에 세무서 다녀왔어요. 사업자에 무비랜드 지점을 등록했습니다.
모춘: 신기해요. 꿈이 현실화 되는 게.
소호: 여기서 음식 팔려면 일반 음식점 허가가 있어야 되는데, 그러려면 위생 교육도 하루 종일 들어야 하고, 보건증도 있어야 하고.. 할 게 많네요.
모춘: 어제는 개업 축하로 버드와이저에서 맥주를 협찬해준다고 하시고. 여러가지 일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라디오는 해보니까 어때요?
소호: 저는 좀 재밌어요.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채널이 없었는데, 좀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댓글에도 심야 라디오 듣는 거 같다는 이야기도 있고.
모춘: 저도 좋아요. 우리 너무 바빠서 이런 얘기 하는 시간이 없었는데, 이렇게 얘기하니까 내부적으로도 좋고. 댓글도 되게 장문으로 달려서 우리가 느껴지는 기분이 느껴지시나? 이런 것도 신기하고.
소호: 같이 극장 만들어간다는 댓글도 있고. 스토리 같은 데 태그도 많이 해주시고 고마웠어요.
소호: 오늘은 극장 제작 비하인드 이야기 해보려고 해요. 공간편, 제품편 두편을 이어서 다룰텐데 오늘은 공간편. 처음에 컨셉 잡고 제작하고 구현하면서 어떤 느낌을 구현하고 싶었는지. 그리고 관객분들이 이제 오실 거잖아요. 오실 때 어떤 디테일 중심으로 보시면 좋은지. 원래 비하인드 알고 보면 재밌잖아요. 우리가 처음 만들 때 무슨 생각이었나? 한번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모춘: 그때는 모베러웍스 바쁘게 움직일 때였고. 너무 신기한 느낌이었어요. 소꿉장난 처럼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찾아주고 좋아해주고 그런 것들이. 그 뽕에 취해있었던 것 같아요.
소호: 항상 하이 텐션이었지 뭔가.
모춘: 되게 전력질주 하고 있었는데 그게 알게 모르게 피로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순간에, 더현대 팝업 끝날 때 즈음이었나. 21년 말 22년 초. 한달 팝업을 하는 동안 스스로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모티비 1화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 것 같아요. 내가 일을 왜 좋아했고, 어떻게 일했을 때 좋았고 하는 것들. 사람이 다중적이잖아요. 제가 까불고 이런 모습도 있는데 한편으로 내향적인 면도 있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모베러웍스의 색을 다채롭게 하는 부분이 아닐까 했던 거죠. 더 개인적이고 내밀한 취향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소호: 저도 좀 비슷했던 게, 항상 'As Slow As Possible', 'No Agenda' 이런 얘기들 하고 다니면서 정작 저희 스스로는 너무 아젠다가 많고 너무 Slow하지 않고 Soon하게 움직이고 있었어서. 진짜 그 메시지를 처음 만들었을 때로 돌아가고 싶다...
모춘: 거짓말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하고 있는데. 뭐 지금도 그렇지만.
소호: 모순적인 상황에서.
모춘: 변속을 하고 싶었다.
소호: 초창기 컨셉 잡을 때 이야기한 공간은 두가지였는데 하나는 도서관, 또 하나가 오키나와였어요.
모춘: 오키나와 딱 한번, 3박 4일 갔다 왔죠. 소호랑 같이 갔는데 한창 전직장에서 재미있게 일하다가 몸에서 이상 신호가 와서 잠깐 쉬는 동안이었어요. 그때 간 오키나와가 너무 좋았어요. 오키나와가 원래 2차 대전 때 미군이 주둔했던 지역이어서 모든 게 Mix된 느낌. 동양적이기도 하고 서양적이기도 하고. 예전의 미군 흔적들이 남아있는 게 이국적이면서도 묘한 인상을 받았어요. 작업자로서 아메리칸 빈티지의 로컬화에 대해 고민을 하던 시기에 힌트가 되더라고요. 우리가 모베러웍스에서 얘기한 아메리칸 빈티지는 조금 소리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데 고요하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소호: 아메리칸 빈티지라고 해서 다 같은 스타일이 아니라 오키나와라는 곳과 섞인 아메리칸 빈티지가 있고, 도쿄는 도쿄와 섞인 스타일이 있고. 그런 지점에서 저희도 새로운 아메리칸 빈티지의 모습을 Mix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모춘: 제가 항상 사대주의자처럼 미국, 미국 하는데 사실 좋아했던 건 일본식 미국 스타일, 일본에서 해석한 미국 스타일 같기도 해요.
소호: 저는 당시의 정서나 상황도 많이 반영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바쁘게 살다가 살짝 쉬어가는 타이밍에 갔던 곳. 그런 순간에 도피처가 됐던 것 아닐까.
모춘: 누구에게나 동굴은 필요하니까.
소호: 도피가 필요하신 분들은 무비랜드로 오시면 됩니다.
모춘: 그런 무드로 출발을 했는데,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나 한 게 왜 성수동인가.
소호: 도피처라고 하고서 너무 도심으로 갔어. 좀 이중적인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정말 한적한 동네를 상상했었는데. 연희동 같은. 연희동에 오래 살기도 했고. 근데 성수동이 뜬다고... 천박한 자본주의자같은 선택을.
모춘: 안그래도 극장 돈 안된다고 하는데 사람도 없는데 가면 안되잖아요.
소호: 그래서 서울에서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동네에 도피처를 마련하게 됐다.
모춘: 한편으론 그게 우리 같기도 해요. Slow를 얘기하면서 밤 새고. 모순적이고 뒤틀린.. 좀 우습기도 하네요.
소호: 항상 모순적인 지점이 있는 거 같아요 우리는.
모춘: 저는 우리 공간이 구멍 가게 같았으면 했거든요. 브랜딩이나 디자인 안되있고 터프한. 그런데 또 디자인 그룹이다 보니까 멋이라는 악령 속에서 하나둘씩 각을 맞추게 되고.
소호: 그 자체도 우리다. 모순.
모춘: 파트너분들도 많았죠.
소호: 우선 건축. 원래 2층짜리 구옥이었는데 3층 상영관을 올려서 증축하는 작업은 <쿠움 건축사사무소>. 연희동을 기반으로 하시고 우리도 원래 연희동 쪽에 생각이 있었어서 연이 닿았었죠. 구옥 재생과 증축에 전문성을 가진 팀이라 함께하게 됐고. 원래는 2층 위에 증축만 하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서 아예 싹 밀고 새로 올렸는데 그러면서 설계 변경이 되고 일정도 늘어나고 비용도...
모춘: 그 뼈대 바톤을 받은 팀이?
소호: <콩과하>. 너무 고마워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했는데. 초기 기획할 때부터 지금 제작 단계까지 같이 얘기할 수 있는 협업 팀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고.
모춘: 말로만 했던 것들을 그 긴 시간동안 물고 늘어지고 구현해주신 게. 저는 어느 순간부터 놓은 면이 있거든요. 그걸 집착적으로 물고 늘어져서 만들어내는 것 보고 놀랐어요.
소호: 그리고 정말 한 팀처럼. 모베러웍스 팀 같아요. 그래서 일본 출장도 같이...
모춘: 또 재미있었던 팀이 블룸즈베리랩.
소호: 국내 뿐만 아니라 스크린 공급하는 넘버 원 스크린 회사죠. 모티비 보시고 스크린 지원해주시겠다고 연락이 와서 상영관과 대기 공간의 스크린까지 주실 예정이에요.
모춘: 바터 개념으로 그쪽에선 스크린을 제공해주시고 저희는 브랜드 디자인을 해드리고. 그런 관계가 되는 게 재밌더라고요.
모춘: 그럼 본격적으로 공간 디자이너 훈택님 모셔보겠습니다.
훈택: 안녕하세요. 저.. 다시 하겠습니다. 밖에서 볼 때는 쉬워 보였는데 막상 들어오니까 되게 떨리네요. 안녕하세요 오훈택입니다.
소호: 우리 간판 올릴때부터 함께 하고 있는. 회사와 연식이 같은 훈택님.
모춘: 어때요? 소회가. 지금 최전방에서 움직이고 있잖아요.
훈택: 생각보다 프로젝트가 길어져서, 이렇게 긴 프로젝트는 해본 적이 없잖아요. 긴 시간동안 집중력 있게 계속 몰입하는 게 어려웠다. 생각도 계속 바뀌고. 지금은 막판 스퍼트 단계고. 사이니지 간판 발주 들어가서 업체들 감리 보고.. 거의 이동하느라 시간 많이 쓰고 있어요.
모춘: 처음에 공간 맡아달라고 했을 때 요구했던 건 디자인인데, 지난 시간동안 훈택이 했던 건 민원 처리, 허가 관련.. 이런 건 사실 예상을 못했잖아요.
훈택: 추석 전날 건물 주변 이웃들 선물 돌리고. 과일 사가지고 소장님이랑 같이 '소음 죄송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하면서..
모춘: 그럼 뭐가 제일 재밌었어요?
훈택: 갑자기 2년 전에 할 얘기가 있다고 데려가서 '우리 극장 짓는다'라고 했을 때는 '잉?'하긴 했는데 한편으로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시즌 팝업만 하다가 처음 상설 매장을 하는 거니까. 기대감도 들고. 건축이나 인테리어, 사이니지 업무가 주어졌을 때 저도 만 3년 정도 일했을 시기어서. 그동안 이 팀에서 배웠던 것들 여기다 잘 녹여보자는 마음이었어요.
모춘: 실제로 그렇게 느껴져요. 졸작하듯이. 최근에 친구들 만났는데 훈택님 인스타 계정이 공식 계정 같다. 되게 보기 좋더라고요. 과정이 멋진 사람 같습니다. 발품 팔고 다니는 거 보면.
소호: 나는 좀 놀란 부분은 훈택이 이렇게 철저한 사람이었나? 모든 제작물을 '미스터 1:1 맨'이라고 해서 다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목업을 만들어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제작하더라고.
모춘: 콩과하의 하 실장님이 학을 뗐는데, 간판이 2미터 짜린데 그걸 종이로 다 기워붙여서 만들어서 건물에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붙여보고..
훈택: 스케치업 상으로 볼 수 있는데 실물을 봐야 또 느낌이 오니까. 그런 거 집고 넘어가지 않으면 찜찜해서.
소호: 보면서 좀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모춘: 공간 만들자 하고 처음에 했던 작업이 가상의 시나리오를 써보는 거였잖아요. 그때 쓴 거 한번 읽어볼까요?
소호: '극장이 서로 대화하지 않고 시선을 마주치지 않아 독립적이면서도 같은 작품을 바라보고 감상함으로써 같은 시간대의 경험을 공유하는 독특한 관계 같다.' 이렇게 시적으로.
모춘: 시인인 줄 알았어.
소호: 극장에 오는 사람들이 서로 모르는 관계인데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뭔가를 공유하는 듯하잖아요. 웃을 때 다같이 웃고 옆에서 훌쩍거리면 나도 괜히 마음이 찡해지는. 그런 게 극장만이 가지는 포인트인 것 같아요. 새로운 관계를 맺는 장소? 신기한 소속감 같은 것도 느껴지고요.
훈택: 영화를 보면서 각자의 방식대로 해석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생기기도 하고요.
소호: 지금까지 나온 제작물들 중에 이건 잘 나왔다, 자랑하고 싶다 하는 건?
훈택: 아직 나오는 중이긴 한데, 상영관 의자 잘나온 것 같고. 원단도 직접 고르고 자수도 넣고 그런 과정이 좋았어요. 주물 메인 간판도 직접 손으로 다 깎아서 만드는 데 그것도 꽤 근사하게 나올 것 같습니다.
모춘: 힘들었던 부분은?
훈택: 건축에서 힘들었던 부분은 스케일의 차이. 건축하시는 분들은 스케일이 크다 보니까 단위가 커요.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1cm 이런 것도 다 오차인데 건축은 10cm, 1m 이렇게 가니까. 그리고 현장이 너무 작고 좁아서 공사가 어려웠어요. 골목이라 차도 못들어가고 다른 데 빌려서 해야 하고. 주변에 공사 현장 보면 '아 저렇게 덤프 트럭이 쉽게 들어오는구나..' 하기도 하고.
모춘: 인테리어 얘기도 좀 해볼까요?
소호: 여러가지 컨셉 키워드가 있겠지만 저는 인테리어에서는 '나무'. 얼마전에 공간 오래 하신 분을 만났는데 이렇게 옛날 스타일로 나무를 많이 쓴 현장은 정말 오랜만에 본다고 하시더라고요. 최근에는 보통 화이트 스페이스나 나무를 하더라도 무늬목으로 하는데 저희는 원목으로.. 그래서 되게 독특한 느낌을 주고 따뜻해요.
모춘: 나무 색상도 홍조 띄게, 광도 유광으로. 보통 반짝이는 게 유치하게 보여서 누르는데 예전 학교 복도 상상하면 맨질맨질한 나무의 느낌을 내고 싶었어요. 나온 것 보면 대만족이에요.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첫인상은 나무 많다는 느낌이 들 거고.
훈택: 사이니지나 집기류 디자인할 때는 수작업으로 많이 하고 있어요. 2층에 도자기나 조형물들도 직접 만들고 있고.
모춘: 어때요, '수작업'이 저희 팀의 화두잖아요.
훈택: 아직은 실험하는 단계인 것 같고 우리의 명확한 스타일이라고 정의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해요.
소호: 결과물도 있겠지만 수작업의 묘미는 과정인 것 같아요. 작업을 하는 도중의 마음가짐. 보면 훈택이나 막내 민주도 작업하는 것 보면 그 과정이 순수하게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의미있는 것 아닌가.
모춘: 액자 그림같은 것도 손으로 직접 그리고 있고. 나무 문고리같은 것도 만들고 있고.
소호: 모베러웍스의 상징이 '모조'라는 새였잖아요. 무비랜드에서는 그 새가 축약된 심볼로 바뀌면서 필름 문양을 붙여서 저희끼리는 '필름 모조'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필름모조가 나무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는데 그런 걸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요.
모춘: 도자기는 나이트프루티라는 팀, 마라가람 작가님이랑 함께 하고 있는데 외에도 여러 분들과 협업하고 있죠.
소호: 이거 말고도 재밌는 비하인드가 많은데.
모춘: 모티비에서 차차 더 소개하는 걸로 하시죠. 훈택님 라디오 해보니까 어땠어요? 저희한테 훈수 엄청 뒀잖아요.
훈택: 생각보다 많이 떨리네요. 막상 앉아보니까 어려웠습니다.
모춘: 어쨌든 다음주면 공간 거의 마무리가 될 것 같아요. 오늘은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다음주는 제품 얘기. 하지만 녹음은 바로 이어서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호: 지금까지 무비랜드의 시네마 토크 서비스 무비랜드 라디오였습니다. 감사합니다.
Moderator: Soho, MoChoon
Producer: Jiwoo Kwon
Engineer: Hoontaek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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