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
엄마가 또 전화를 걸어왔다.
밥은 먹었어? 하는 일은 잘되고? 애들은 잘 크고? 바빠야 할 텐데, 걱정이다. 십여 년 째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하는 말을 이번에도 되풀이했다. 십여 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는 주로 내가 전화를 걸었었다는 것과 그 이후에는 주로 엄마가 전화를 걸어온다는 차이가 생겼다.
나는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매일 혹은 이틀에 한 번은 전화를 해 별 것 없는 일상을 이야기하며 안부를 전하는 아들이었다. 그러다 사업이 잘 안 되면서 이것저것 고민이 많아지자 자연히 전화를 드리는 일은 줄어들었다. 더불어 엄마의 걱정은 커져갔다.
시골의 작은 빌라에서 혼자 생활하던 엄마는 어느 해 가을 집안에서 삐끗하며 병원을 다녀온 후 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만의 결정으로 요양병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긴 몇 가지 일로 다른 가족들과는 집안일에 대해 상의를 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후 연락도 자주 못 하다 보니 난 엄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고 나서야 그 일을 알게 되었다. 내가 전화를 하기 전에는 어디가 아프다, 불편하다는 말을 먼저 전화로 말하지 않으시니 어쩜 당연한 일이었다. 요양병원에서 만난 엄마의 말로는 8시, 11시, 5시면 식사를 마치고, 식사를 마치고 나면 침대에서 졸거나 옥상에 올라가 느릿느릿 산책을 하는 등 그냥저냥 할 일이 없어 놀면서 죽을 때만 기다린다고 했는데 그게 내 귀엔 '그러니 자주 연락 좀 하고, 찾아와라'로 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전화를 걸어와 언제쯤 내려올 수 있냐고 물으셨다. 그 말이 사뭇 근심스럽게 들려 며칠 후 이른 아침에 출근해 일처리를 끝내고 엄마에게 내려갔다. 12시가 조금 넘어 도착하니 엄마는 이미 점심을 드시고 난 후였는데, 내 모습이 후줄근해 보였는지, 엄마가 안 됐다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 옷 좀 사 입지, 나가서 밥 사줄까? 아니면 너라도 먹고 올래? 그런 별거 아닌 실랑이와 일상 얘기 끝에 엄마가 주머니에서 꾸깃한 오만 원짜리 여덟 장 사십만 원을 꺼내서 건네준다. 애들 줘. 이거 줄려고 불렀어. 형이나 누나한테 시키면 안 보내줄 거 같아서. 이제 엄마는 돈도 없어. 엄마한테 나오던 것도 형이 다 가져갔어. 이건 얼마 전에 외삼촌이랑 이모가 와서 뭐 사 먹으라고 준 건데 내가 너 주려고 형이나 누나한테 말도 안 하고 꿍쳐둔 거야.
그날, 환자용 엘리베이터를 타는 엄마와 작별하고 밖으로 나와 주차된 차에 올라 시동을 못 건 채 한참을 울었다. 아버지 산소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와 밤이 되자 하얗게 새어버린 엄마의 머리와 홀쭉하게 살 빠진 엄마의 볼만 자꾸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