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족이야기

20191104

by 아무개

퇴근 무렵, 나는 “6:29”에서 멈춰있는 모니터 구석의 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끝자리의 “9”가 “0”으로 바뀌는 찰나,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최대한 회사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잠시 바깥바람을 맡고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구내식당은 7시까지였다. 시간이 빠듯했다.

식당 앞에 붙어 있는 ‘오늘의 식단’을 살펴본다.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성이지만 안에서 나오는 음식냄새가 발을 이끈다. 가방을 한쪽 어깨에 맨 채, 식판을 집어 든다. 아침은 물론, 점심까지 먹지 않았기에 밥을 보자 식욕이 들끓기 시작한다. 욕심껏 음식을 덜어낼 때마다 배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른다. 아예 찬통에 머리를 박고 먹어 치워버리고 싶은 충동.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숟가락을 든다. 길어야 십분, 식사는 순식간에 끝난다.

더부룩할 정도로 과하게 먹은 저녁에 대한 사죄로서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기로 결심했다. 따릉이를 빌려 도림천으로 향했다. 복잡한 동네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것일까. 허벅지가 뻐근해지도록 쉬지 않고 페달을 밟는다. 숨이 차며 점점 고개가 떨궈진다. 나의 시선은 전방 2미터, 자전거의 전조등 불빛이 가리키는 지점을 넘지 않고 있었다. 호흡에 맞춰 오직 다리의 규칙적인 움직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엔 오로지 “하나”와 “둘”뿐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맞은편에서 욕이 섞인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쫄쫄이와 선글라스를 쓴 아저씨가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얼떨떨한 마음에 자전거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봤다. 역주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한숨을 내쉰 후, 차선을 바꿔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려는데, 가로등에 붙어 있는 역삼각형의 빨간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집에 돌아오면서 왜인지 나는 계속해서 ‘천천히’를 되뇌고 있었다. 이후, 며칠간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일 때, 머리를 감을 때, 자전거를 타면서 문득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흔히 쓰는 말이고, 특별한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은 그 말이 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자 그 말은 물론, 당시의 일까지 잊혀갔다.

이후 그리움과 의무감 사이의 어떤 감정으로 찾은 본가에서 아빠의 얼굴을 보자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천천히.’ 어렸을 적,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었던 말이다. “소희야, 천천히.” 나의 눈을 보며, 두 번째 ‘천’을 길게 끌어 발음하곤 했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아빠와의 대화가 없어졌으니 족히 십여 년은 듣지 못했던 말이다. 그 십여년 동안 나는 독감을 앓듯 사춘기를 보냈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회사를 전전했다. 나의 경력(이라고 할 만한 것도 아니지만)은 그야말로 ‘전전했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견디다 못해 사직서를 던지고 나오면 알 수 없는 불안이 몰려왔다.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았고, 어디로든 숨고 싶었다. 또다시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도망치듯 아무데고 이력서를 넣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불안은 조급함으로 나타났다. 출근하는 일, 밥을 먹는 일, 씻는 일, 쉴 때까지도 나의 손과 발은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 무언가 기다려야 할 때면 단 5분도 견디지 못해 짜증을 내고 끊임없이 재촉했다. 뒷통수에 불똥을 달고 다니는 사람처럼 항상 초조해했다. 익숙하게 들어왔던 그 말을 단번에 알아채지 못한 것은 아마도 오랜 기간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생활을 이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아빠의 ‘천천히’는 나의 행동이 탐탁지 않을 때, 고쳐주고 싶을 때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조금 더 신중하기를, 멀리보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 ‘천천히’를 말하는 아빠의 얼굴은 언제나 미소를 띠고 있었기에 그 의미를 이제서야 깨닫는다. 옳은 길로 안내해주어야 하는 부모의 책임과 사랑해 마지않는 딸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고심 끝에 선택한 말. 참으로 우리 아빠다운 선택이다. 이제는 욕이 섞인 고함과 삿대질을 당해도 며칠 지나면 잊어버리는 어른이 된 내게 ‘천천히’라는 말은 너무도 연약하다. 그 연약한 말이 십여년을 지나 다시 내게 돌아온 것은 그때, 아빠의 미소와 마음이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문득, 그 말이 다시 한 번 듣고 싶다. “소희야,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