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한 글자 주제, 철
평생 철들지 않고 살겠다는 다짐이나 철들고 싶지 않다는 소망들을 가끔 접한다. 한때 미디어에서 노홍철을 필두로 하여(?) 철들지 않고 사는 삶의 쿨함에 대해 꽤나 강조하기도 했었다. 세상의 간섭에 휘둘리지 않고 내식대로 멋지게 살아보겠다는 건 멋진 희망이다. 타인의 기준을 맞추는 게 갈수록 영 빡빡하기만 한 시대에, 그래서인지 이렇게 사는 게 꼭 정답은 아니라고 하나둘 손을 치켜드는 시대에 딱 맞는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하다.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 길들여지지 않겠다, 나만이 가진 순진무구함과 창의성을 잃지 않겠다, 재미없고 별 볼 일 없는 어른이 되지 않겠다. 질풍노도의 반항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의 철학과 기준으로 세상에 반기를 들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득 생각해본다. 굳이 이 다짐을 꼭 ‘철들지 않겠다’라는 식으로 표현해야 하나? 언제부터 철들지 않는다는 게 멋진 일로 여겨지게 되었나. 쿨하고 독특하고 멋있게 살려면 평생 철들지 말고 살아야 한다니, 그럼 철이 든 사람은 쿨하고 독특하고 멋있게 살 수 없단 말인가?
(반기를 들기 위해) 굳이 찾아보자면, 철이 든다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철-들다
[동사]
1. 사리(事理)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힘이 생기다.
여기서 사리는 일의 이치를 말한다. 일의 이치를 분별하는 힘이 생긴다는 것. 한 번에 씹어 넘기기는 힘든 문장이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철들다'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자주 써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의 이치라는 건 대체 무엇이며, 그걸 분별한다는 건 어떻게 사는 것을 의미하는가? 언제 사람은 사리를 분별하는 힘이 생기고, 언제 우리는 그것을 눈치채 스스로 '철이 들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
좀 더 쉽게 의미에 접근하기 위해선 반대말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겠다. 철이 없는 사람을 우리는 철부지라고 부른다. 철부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야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으나, 글쎄. 평생 철들지 않고 살고 싶다는 예술적인 카피와는 영 거리가 있는 이미지들이 아닌가? 나무위키에서는 철부지를 '성인이 되어서도 철이 아직 안 들었거나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을 비꼬는 말'로 정의하고 아래와 같은 예시를 들어놓았다.
- 철이 들지 못한 일부 어린이나 청소년들 중 사회나 세상 물정 등에 어두운 사람
- 성인이면서도 아직 어린 티를 벗어나지 못해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
-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어른이면서도 상대방의 존중도 무시하고 자기 입장만을 주장하는 사람
- 성인이면서도 자신의 말, 행동이 상대방이나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생각 못하는 사람
- 남들을 신경 쓰기보다는 자기중심적인 사람
-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며 판단과 절제를 전혀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
(이하 생략)
*출처: 나무위키, https://namu.wiki/w/철부지
사람마다 그 정의가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철부지도 예시와 비슷하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못하고 제 생각만 하는 사람. 책임질 일을 만들어놓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 자신이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 남의 의견을 듣지 못하고 제 주장만 옳다고 밀고 나가는 사람. 얼마 전 고민상담을 주제로 하는 예능에서는 철부지 남편을 좀 설득해달라는 사연을 보기도 했다. 곧 아이가 태어날 예정인데 남편이 본인이 못 다 이룬 꿈을 이뤄보겠다며 그간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배우를 하겠다고 한단다. 지금 가지고 있는 차를 팔고 4-5억을 호가하는 슈퍼카를 사겠다고도. 꿈꾸던 일을 이루겠다는 것, 지금껏 번 돈으로 드림카를 사겠다는 것 모두 멋진 일이다. 그러나 곧 태어날 아이가 있는 아빠의 이야기라면? 만약 그렇게 사는 것이 본인 인생의 우선순위였으면 미래를 약속하고 가정을 꾸려서는 안 되지 않았나. 그럴 때 철부지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다시 반대로 말하자면 (내 기준에서) 철이 든 사람은 본인이 만든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자, 자신의 욕심을 앞세우기 전에 먼저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다. 철이 든다고 해서 꼭 이 험난한 세상에 완벽히 길들여진, 그저 그런 재미없는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철이 든다는 것이 곧 순수함과 동심과 예술적 창조성을 모두 잃는다는 걸 의미하지도 않는다. 물론 언어의 의미는 언제나 확장되기 마련이고, 철든다는 말이 어느새 그런 의미를 포괄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다보니 일찍 철이 들어 버린 사람으로서, 나는 부디 우리가 그 둘을 구분했으면 한다. 언어의 힘은 매우 강력해서 가끔은 언어가 섞이고 나면 그 의미조차도 두루뭉술 섞여버리고 마니까.
말하자면 나는 모든 사람이 동심을 간직한 어린아이로 남길 바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모두가 철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들은 왜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그러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우리는 영영 혼자 살 수만은 없기 때문에 철이 들어야 한다. 혼자 제 세상에 빠져 철부지로 사는 것은 행복할 수도 있겠으나 누구도 그 철부지를 평생 오냐오냐 돌봐줄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한 슬픔으로 과하게 일찍 철이 드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위의 질문을 했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처럼), 과할 정도로 늦게까지 철이 안 드는 것 역시 안타까운 일이다. 본인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 사회로 나갈 거라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살아갈 거라면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 한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은 제 욕심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고 내 의견과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아야 하며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모두가 철든 아이가 되어 만나야 서로의 경계에서 불협화음이 없을 거라고 믿는다. 직장에서 여러 번 '철부지'를 만나고 나서 더욱 진하게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산다며 낄낄, 본인이 제멋대로 사느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음을 끝내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혼자서는 참 행복해 보이기도 했다. 책임질 일은 마구 남들한테 떠넘겨가면서, 주변의 흘겨보는 시선도 미처 눈치채지 못한 채로(눈치채지 못하는 건지 보고도 신경 쓰지 않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혼자서 행복하다면 그렇게 평생 산다고 해도 말릴 생각은 없다. 다만 그럴 거라면, 회사에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 팀을 꾸려 일하며 돈 벌 생각을 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느냐고.
철이 없다는 말을 개성 있는 삶을 멋지게 꾸려가는 것과 동의어로 쓰다 보니 나조차도 가끔은 혼란이 온다. 다들 그런 모양인지 가끔 자랑스럽게 '난 철없이 살 거야!' 외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런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그 둘을 엄격히 구별했으면 좋겠다. 어린아이의 동심과 본인만의 개성을 간직한 채 사는 거 오케이. 대신에 제발 철든 아이로 살아줬으면 좋겠다고.
괜한 투정일 수도 있고 말도 안 되는 말장난일 수도 있다. 스스로를 이미 철든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철든 사람은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고 싶은 것일 수도. 그러나 뭐가 됐든 다 떠나서 적어도 나는 내 긴 인생에 최소한의 철부지만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말했듯이 철부지들은 혼자선 행복하지만 본인도 모르는 새 주변에 짜증을 선사하기 마련이니까.
이미 철이 들었다는 것이 나만의 착각일 수도, 그게 아니더라도 뭐 잘났다고 남들에게 이래라 저래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단은 나부터 더더욱 노력해야겠다. 나이에 맞게 철이 들어서 남들에게 피해 안 끼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동시에 좀 더 욕심을 내보자면, 쿨하고 멋지고 개성 넘치는 철든 아이로 살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