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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Dec 05. 2020

육개장 한 그릇

에세이 드라이브 6기 - 키워드: 국


저녁으론 육개장을 먹었다. 어제에 이어 이틀째다. 채식 지향적 삶을 사는 데 좀 협조해 달라고, 고기 없이 '채개장'을 끓일 수도 있다더라- 넌지시 말해봤지만 엄마는 들은 척도 안 했다. 나는 이렇게 끓이는 법밖에 모르니 채개장인지 뭔지는 네가 알아서 해 먹으라고. 이러나저러나 밥을 얻어먹고 사는 처지에는 밥상에 대고 이런저런 지향이니 주의니 떠들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이미 선택권은 날아간 걸 받아들이고 맛있게 먹었다. 이틀 연속이었지만 육개장은 끓일수록 맛있어지는 법이니까. 그래서 3일간 상을 치를 때 육개장을 끓였다던가. 아니지, 고생해서 오는 손님들께 고깃국을 대접해야 해서 그랬댔나. 분명 그 유래를 찾아본 기억이 있는데 영 가물가물하다. 결국은 육개장 한 그릇에 또 이렇게 기억 한 켠으로 빨려 들고 말았다. 속절없이.      


그러니까 아무래도 육개장의 단점은 채식이 아니라는 것보단 자꾸만 장례를 떠올리게 한다는 데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냄새 때문일까. 삼일 내내 육개장을 끓여 대접하던 식장에서는 뭉근하니 고깃내가 났다. 한 번도 벗어놓지 못했던 상복에도, 금세 새 옷 냄새가 가시고 그 냄새가 배었다. 계속 머무르다 보면 점차 사라져야 하는 감각인데 그때는 꼭 그렇지도 않았다. 육개장 냄새에 질려서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삼 일간 육개장만 내놓아선 안 된다는 법칙이라도 있는지 하루는 소고기 뭇국이 나왔지만, 어째서인지 그 국에서도 육개장 냄새가 나는 듯했다. 가까이하기도 싫었지만 조금만 틈이 보이면 여기저기서 나를 붙들어 앉혀 밥을 먹이려 들었다. 거절할 기력도 없이 자리에 앉으면 파란 유니폼을 입은 상조 도우미분들이 똑같은 손놀림으로 상을 차려주시고, 어김없이 코팅된 종이 그릇에 담긴 육개장.      


어쩌면 그 벌겋던 색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얀 일회용 숟가락으로 육개장을 한 숟갈 떠먹으면 그 숟가락은 다시는 하얘지지 않았다. 아무리 쪽쪽 빨아도 고추기름의 색이 그대로 남곤 했다. 벌건 기름 자욱이 남은 숟가락이 왜 그렇게 보기 싫던지. 육개장을 한 숟갈 퍼먹으면 네다섯 번은 빈 숟갈을 쪽쪽 빨았다. 아무리 용을 써도 절대 처음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 같아선 사람들이 다 쓰고 간 숟갈을 모아다 퐁퐁을 잔뜩 묻힌 수세미로 벅벅 빨간 기름을 닦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문질렀으면 지워졌을까. 어째 아무리 닦아도 그 얼룩덜룩한 벌건 기름이 남았을 것만 같고.     







그 삼일의 기억은 흐릿하기도 뚜렷하기도 하다. 시간순으로 차곡차곡 잘 정리된 기억이 아니라 흐릿하고, 그런데도 가끔 뚜렷한 원색으로 폭발하듯 떠오르는 장면들이 겹겹이다. 그 원색의 장면들엔 모두 육개장이 있다. 모두가 최대한 색을 죽인 식장에서, 그 한 그릇의 국이 빨갛다. 나는 몇 그릇의 육개장을 앞에 두었었나. 밥은 먹었냐는 말에 몇 번의 거짓말을 했고 몇 번이나 배가 부르다고 손을 내저었었나. 그래서 삼 일간 총 몇 그릇의 육개장을 손님들에게 대접했을까. 장례식장에서 내온 육개장은 결코 삼일 내내 정성 담아 끓여 더 맛있어진 그런 국은 아니었을 텐데. 나는 왜 자꾸 엄마가 끓여준 맛있는 육개장에 이런 기억을 끌어 담고 있나.      


하긴 장례라는 의식 자체가 그랬다. 나는 울며 주저앉았다가도 일어나 예를 차려 인사를 했고 심심한 애도의 뜻에 감사를 표했으며 찾아온 손님들을 순서대로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괜찮다며 애써 웃어 보이기도 했지만 때때로 건네진 농담에 진심으로 깔깔대고 웃기도 했다. 말없이 와락 끌어안아주는 친구를 끌어안고 나도 모르게 펑펑 울어버리기도 했지만, 세상에서 제일 어른스러운 척 묵묵히 서 있기도 했다. 그게 전부 한 공간에 얽혔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공간 안에서 울다가 웃다가 좌절했다가 도망쳤다가 위로를 얻었다가 다시 무너지고는 했던 삼일.      


삼 일간 육개장을 고면 그런 모양이 되지 않을까. 잘게 찢긴 소고기와 고사리와 파가 전부 뭉그러져서, 어디가 시작인지 끝인지 모른 채 그저 한 덩어리로 엉겨버리는. 냄새 때문도 그 벌건 색 때문도 아니고, 어쩌면 그 모양새가 감정과 닮아 자꾸만 구석의 기억을 환기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빠의 기일이 다시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벌써 4년인데, 여전히 육개장 한 그릇에서도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나는.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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