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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Aug 02. 2020

삼시세끼 요리는 취미가 아니다

어젠 뭘했냐면요 3: 요리를 했습니다


단순한 라면 끓이기를 넘어 처음으로 요리다운 요리를 하게 된 건 스물두 살, 교환학생으로 영국 버밍엄에 있을 때였다. 언어나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미리 한참 걱정해두었지만 삼시세끼 해 먹는 문제가 그렇게 커다랄 줄은 몰랐다. 햇반 몇 개와 라면 몇 개를 챙겨가긴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비상용이었을 뿐이다. 한 번도 스스로의 식사를 온전히 책임져 본 일이 없으니, 바다 건너 낯선 나라에서 그게 얼마나 커다란 문제로 다가올지는 아예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거다.


물론 학교에 카페테리아 두어 군데와 서브웨이가 있었다. 지내던 플랫에서도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괜찮은 음식점이 몇 개 있었다. 그러나 가격이 만만치는 않았다. 외식 값 비싸기로 소문난 영국인 데다, 당시 파운드 환율은 한화로 1700원이 넘었다. 학생 식당에서 피자 한쪽에 콜라 하나만 시켜도 만 원 돈이었다. 조금 괜찮다 싶은 저녁을 먹으면 이만 원 이상. 1년 간 열심히 과외하고 알바한 돈을 긁어모아 간 교환학생이었고 매일 몇 만 원씩 밥값에 투자할 여유는 없었다.


가격은 둘째치고 사실, 맛도 없었다.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기가 어려웠다. 통념처럼 영국 음식이라고 다 맛없는 건 아니었지만 합리적인 가격 선에서 내게 주어진 선택지가 그렇게 많진 않았다. 샌드위치는 너무 퍽퍽했고 피자는 짰다. 서브웨이나 햄버거도 한두 번이지, 일주일 만에 비슷비슷한 샌드위치 류에 질려버렸다. 밀가루 빵보다 쌀밥이 먹고 싶었다. 매콤한 것도 그립고 뜨뜻한 국물도 그리웠다. 근처를 뒤져 한국음식점도 하나 찾고 베트남 음식점도 하나 찾았지만, 문제는 다시 가격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처음에는 파스타로 시작했다.


간단했기 때문이다. 2파운드면 사는 푸실리면 한 봉지에 역시 3파운드면 사는 마트 PB 파스타 소스를 사 오면 세 끼도 거뜬했다. 놀라운 가성비에 입맛에도 맞았다. 매콤한 게 먹고 싶어 소스는 늘 아라비아따. 자작하게 소스를 많이 부어 끓이면 뜨끈뜨끈한 게 한식에 대한 갈망을 반 정도 채워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소스도 다양화해보고 베이컨도 사다 넣어보고 했지만, 내가 진짜 먹고 싶은 음식은 따로 있었다. 그나마 비상용으로 가져왔던 라면도 똑 떨어지니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딱히 요리다운 요리를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일단은 해보는 수밖에.


근방을 뒤져 가까스로 한인 마트 하나를 찾았다. 내적 함성을 지르며 간장과 고추장, 익숙한 조미료부터 하나씩 구입했다. 가격이 싼 편은 아니라 하나 집어 들 때마다 깊은 고심을 해야 했지만,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한인 마트가 있다는 데 감사할 따름이었다. 가장 먹고 싶었던 떡볶이부터 시작했다. 네이버를 뒤져 제일 간단한 레시피를 찾아냈고 한인마트에서 냉동 떡 한 봉지를 (꽤 비싼 금액으로) 구입했다. 떡은 푸석푸석하고 별 맛이 없었지만 나는 감동에 벅찬 채 그릇을 싹 비웠다. 영국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다니, 그것도 내가 만들어서 먹고 있다니! 자신감이 붙었고, 그간 먹고 싶었던 한식이 줄지어 떠올랐다. 그다음은 거칠 것이 없었다.


나는 닭봉 한 봉지를 사다가 찜닭을 해 먹었다. 잔치국수를 해 먹었고, 삼겹살과 비슷해 보이는 돼지고기를 사다가 제육볶음 비슷한 것도 해 먹었다. 세상 비싼 김치 한 봉지를 사다가 김치찌개를 끓여먹었고, 남은 김치로 김치전을 부쳐먹었다. (김치전은 플랫에서 꽤나 히트를 쳐 그 뒤로 두어 번 더 만들어 플랫 메이트들과 나눠 먹었다.) 중국에서 온 옆방 친구가 미니 밥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쌀을 내가 사서 같이 밥을 해 먹었다. 요리실력은 나날이 늘었고 갈수록 끼니가 풍족해졌다. 물론 목표로 했던 요리에 실패하는 날도 있었고 한인마트에서 사 온 비빔면으로 대충 때우는 날도 있었지만. 내가 그렇게 잘해먹고 산다는 걸 엄마는 내내 믿을 수 없어했다. 요리라곤 라면밖에 못 끓이던 애가 어느 날 닭도리탕을 해 먹었다고 하는데 나 같아도 그랬겠지.


그러나 영국에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요리는 결국 욕망과 결핍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무언가 먹고 싶다는 욕망이 지극히 간절하고, 주위에서 그걸 쉽게 구할 수 없으며 누군가 내게 요리를 해주지도 않을 때-

남은 길은 딱 하나, 내가 직접 해 먹는 것뿐이니까.






한국에 돌아온 뒤로도 가끔 요리를 했지만, 내가 좋아하고 먹고 싶은 요리 한정이었다. 한식에 대한 결핍은 엄마가 자동으로 채워줬으니 오히려 파스타나 샌드위치 종류, 가끔 내가 좋아하는 간식인 떡볶이나 순대볶음 (역시 욕망과 결핍!). 장 보는 것부터 설거지와 정리까지 요리에 포함되는 모든 과정을 나는 꽤나 즐기는 편이었다. 누구는 요리가 좋아도 설거지는 싫다던데, 그게 다 즐거우니 어쩌면 요리가 진짜 내 취미인가 싶기도 했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코로나 사태로 재택이 두 달여 이어지며 내가 차지하는 요리의 비중이 점점 높아졌다. 그러다 엄마가 일주일 정도 입원을 하셨고... 아, 그 일주일의 고군분투란. 그제야 나는 내가 영국에서 얻어 온 깨달음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영국 생활의 막바지에 내 생활은 매우 단조로워졌고 매일 머리를 들쑤시는 고민은 똑같았다. 아침은 뭐 해 먹지? 아침을 먹고 정리를 하는 내내, 점심은 뭐 해 먹지? 그리고 역시 설거지를 하며 계속, 저녁은 뭐 해 먹지? 삼시세끼 메뉴를 너무 겹치지 않는 선에서 정하고,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하고, 뒷정리를 하는 일. 그 고민과 노동이 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해버려 옴짝달싹 못했던 시간들. 그건 요리를 잘하거나 요리를 즐기는 것과는 상관없이, 별개로 부담스러운 문제였다.


그러니까 내가 그 기억일랑 홀라당 잊고 '어쩌면 요리는 내 취미인가 봐', 나이브하게 생각했던 건 아무래도 엄마 덕이다. 평소의 삼시 세끼를 엄마에게 전부 일임하고서 가아끔 마음 내킬 때 '떡볶이나 먹을까? 내가 할게.' 하는 수준이었으니 나는 그 과정 전체를 즐길 수 있었다. 엄마가 없는 일주일 간 나는 먹고 싶었던 걸 원 없이 만들어 먹었지만 3일쯤 지나자 결코 그 과정을 신나게 즐기지는 못했다. 반복되는 매일이 지겨워졌고, 내가 만든 요리를 먹는 데도 질렸고, 밥이고 뭐고 그냥 뒹굴거리고 싶어 졌다. 점심 먹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저녁을 먹어야 한다니. 기가 차서 앉아 있다가 결국은 배달의 민족을 켜는 날도 있었다.




그러니 정정한다.


내게 요리는 취미가 아니라 생존 키트에 가깝다. 그 요리가 가끔의 이벤트가 아니라 삼시세끼 식사를 책임지는 일이라면 말이다. 그간 그저 많은 부분을 엄마에게 기댄 채 즐겨왔을 뿐. 말했듯이 내 요리는 욕망과 결핍에서 출발했고 엄마 덕에 더 이상의 결핍은 없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순 없는 법이다. 내가 기대고 있는 만큼 엄마는 나보다 훨씬 더, 요리를 즐기지 못하고 있을 테니까. 여전히 재택근무를 틈틈이 하고 있고 엄마의 건강은 아직 회복 중이라, 이 기회를 틈타 미뤄두었던 짐을 조금씩 가져오고 있다. 가능하면 채식의 비중을 높여가려 노력하면서 그 부분에서 다시금 욕망(필요성)을 느낀 것도 있지만.


한식은 도저히 엄마의 손맛을 이길 자신이 없어 나는 주로 독특한 요리로 승부를 본다. 같은 재료라도 엄마가 평소에 잘하지 않는 스타일을 시도하거나 가끔은 엄마가 처음 본다는 외국 음식의 레시피를 들고 오기도 하고, 갈수록 더 다양해지는 비건 레시피를 응용해보기도 한다. 인스타에도 트위터에도 유튜브에도 창의적인 레시피와 친절한 선생님이 넘쳐나는 요즘이라 그 덕을 많이 보는 중이다.


쉽진 않겠지만 삼시 세끼의 커다란 무게감이 엄마 어깨에만 얹어져 있지 않도록 앞으로도 조금씩 덜어내야지. 반반씩 나눠가지면 엄마도 나도 반 정도는 요리를 온전히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의무적으로 아침 점심 저녁 꼬박꼬박 차려내는 일이 주가 되지 않도록, 서로 먹고 싶은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데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할 때 요리도 취미가 될 테니까. 아직 엄마와 반반 나눠가지기엔 조금 서툴지만, 역시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요리도 할수록 느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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