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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Aug 02. 2020

코로나가 불러온 재택 시대의 예기치 못한 임무

어젠 뭘 했냐면요 3: 요리를 했습니다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우리 회사에서도 재택근무를 시행했다.


모든 회사에서 재택을 하는 건 아니기에, 일부 지인들은 너무 부럽다며 좋겠다는 말들을 잔뜩 건네 왔다. 간혹 가다 마주치는 여유로운 날들에는 분명 침대에 누워서 업무해도 상관없는 재택환경이 아주 달가웠지만, 바쁘고 정신없는 보통의 날들에는 사실 출퇴근 시간이 없어졌다는 것 외에는 단점이 더 많았다. 허리와 엉덩이 아픈 의자, 말을 걸어오는 가족들, 나를 자꾸 유혹하는 침대까지, 쉼터로서의 집으로는 나쁘지 않았던 것들인데 일터로서는 이렇게 신경 쓰일 수가 없었다.


단순히 신경 쓰이는 요소 외에, 관심을 쏟아야 하는 요소가 또 있었으니, 바로 점심 메뉴였다.


회사에서는 보통 아침에 미리 샐러드나 도시락을 신청해두고 먹거나 그날그날 당기는 걸로, 혹은 누군가가 제안하는 걸로 사 먹기만 하면 됐는데, 집에 있는 동안엔 직접 메뉴를 고민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요리를 해야 하는 일이 잦았다. 배달 음식은 너무 종류가 한정적이었고, 일을 하다 보면 주문을 넣어야 할 적당한 시간을 놓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요리를 아주 자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재택 기간에는 왠지 모르게 더 빡빡하게 업무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아무래도 내 모습이 회사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으니 혹시나 열심히 하지 않는 것처럼 비칠까 시간을 빡빡하게 잡아 일했다.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60분 동안 집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 파악하고, 메뉴를 정하고, 요리를 하고, 먹고, 설거지까지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허기를 때우기 위한 노동을 하다 내 휴식시간이 다 끝나는 느낌이었다. 내가 아주 가끔 가다 하는 이벤트성 요리와 매일의 끼니를 위한 요리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부모님 생일에나 가끔 맡던 식사 당번 때는 미리 생각해둔 메뉴가 있었고, 그에 맞춰 새로 미리 장을 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하루하루의 점심을 준비할 땐  매번 장을 보러 갈 수 없으니 집에 남아있는 재료의 재고가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야 했다. 그 조합으로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도 해야 했다. 그리고 오후의 활력이 될 수 있는 밥이 되었으면 했으므로, 최근에 먹었던 메뉴와 겹치지 않는 신박한 메뉴여야 했다. 집에 있는 다른 가족들의 몫까지 만들어야 했으므로, 그들의 선호도 확인해야 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일상 요리야말로 종합예술이라는 걸. 

단순히 맛을 잘 그려낸다고 충분한 것이 아니었다. 제반에 깔려있는 각 식사 참여자들의 바이브도 확인해야 했고, 재료와 나의 실력에 대해 속속들이 꿰고 있어야 했다. 게다가 평소에 지나치듯 보던 홈 쿠킹 레시피들을 마치 나의 영감 노트처럼 축적해놓아야 했다. 어디서 본 것이라도 많아야, 그것의 쉬운 버전 레시피를 찾더라도 해먹을 생각이라도 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내게 다행이었던 건, 이 프로세스를 함께할 사람이 세명이라는 점이었다.

보통 내가 요리할 적엔 동생을 껴서 조수로 활용했고, 점심시간 직전까지 일이 몰아쳐서 메뉴 고민할 시간도 없을 새에는 아빠가 요리를 했다. 때로는 동생이 혼자 번듯한 메뉴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세 명의 선호를 반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대신 세 명 치 아이디어가 있어서 꽤나 다양하게 재택 기간 중의 점심을 채울 수가 있었다. 식사라는 행위가 요리만으로 끝나지 않기에,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 꼭 필수적인 (하지만 내가 가장 하기 싫어하는) 설거지도 나눠서 한다는 무지막지한 장점까지 있었다.

재택기간 중 만들었던 음식 중 일부를 공개! 나와 동생의 주 메뉴는 빵식과 면식이었다.


그러면서 새삼 엄마를 떠올렸다. 꽤 오랜 시간, 오롯이 식사 당번을 맡아온 엄마가 얼마나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이렇게 복잡하고 높은 수준의 지적 활동을 수반하는 일을 하면서도, 퇴근하고 지친 몸으로도 훌륭한 맛의 반찬들을 가득가득 만들어내면서도 엄마는 어떻게 집에 반찬을 못해놨다며 속상해했는지, 이해를 못하겠으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물씬 들었다. 나는 셋이 하면서도 투덜투덜, 이 힘듦을 느끼는데 엄마는 이십몇 년을 해냈을지 놀라웠다. 모든 집안일이 그렇듯, 요리 또한 한 명이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같이 식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함께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에 더해 또 다행인 건 나도 아빠도 요리를 꾸준히 하면서 어찌 훈련이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맞는 레시피 찾는 기술이 늘었는지 혹은 실제로 요리 실력이 늘었는지는 정확히 진단하기 어려우나) 점점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는 점이다. 비록 이제 곧 재택 기간이 끝나겠지만, 그래서 어느 정도 나의 요리실력이 퇴화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결심해본다. 오늘은 내가 요리사 모먼트를 좀 더 자주 만들어 보겠노라고. 적어도 우리 가족 안에서는 모두가 요리사가 될 수 있도록 하겠노라고.


아, 이번 주말에는 뭘 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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