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녜 Aug 09. 2020

나는 쇼핑이 너무 어려워

어젠 뭘 했냐면요 4: 쇼핑을 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원피스를 하나, 겨우 샀다.


왜 겨우냐하면, 한 달여 동안 이십구 센티, 더블유 콘셉트, 여타 쇼핑몰들을 드나들며 위시리스트와 장바구니를 그득그득 채워가면서 겨우 골라서다. 솔직을 더하자면 한 달도 넘는 기간이었다. 6월 초부터 원피스 이미지 수집가처럼 하트와 장바구니에 추가하기를 누르고 다녔기 때문이다.


품절된 것들을 삭제하고 나니 얼마 안남았지만, 꾸준히 채워나가고 있는 위시리스트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사지는 못하고 계속 고민한 데에는 다 핑계가 있다.

여름이 시작할 때는 아직 충분히 덥지 않으니까, 하고 리스트업만 해두다 몇 주 지나니 그새 사고 싶은 원피스 스타일이 달라져버렸다. 그러다가 원피스 잘 입지도 않는데, 하고 쇼핑 의욕이 저하되는 시기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리스트업은 계속해봤다. (사실 나는 리스트업을 꽤나 재밌어하는듯!) 그랬더니 또 갖고 싶은 것들을 몇 발견했다. 꽤나 마음에 드는 걸 찾고도 고민했다. 이보다 더 마음에 드는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계속 찾고 더 찾았다. 이제는 정말 다 봤다 싶을 때 쯤 그래, 그걸 사보자, 마음먹었다. 어느 페이지에서 봤더라 다시 뒤져대다 결국 찾았을 땐 이미 품절이거나 세일 기간이 끝난 때다. 급격히 풀이 죽는다. 다시 서치를 시작한다. 그리고 무한 반복.


내가 무언가를 사는 대부분의 경우에 이런 과정을 겪는다.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이더라도 비슷하다. 마음에 드는 옷을 처음 발견하면 귀찮다는 이유로 입어보지도 않고 다른 매장으로 향한다. 그러고도 계속 머리에 맴돌면 다시 매장으로 가본다. 내 사이즈를 찾아 입어보고, 피팅룸 안에서 가격 태그도 꼼꼼히 확인한다. 마음에 들지만 확신 레벨은 아니다. 일단은 돌아간다. 그래도 생각이 나면 인터넷에서 세일을 하지는 않는지 검색한다. 인터넷에서 본, 모델이나 마네킹에 입혀놓은 모습은 내가 입었을 때와 새삼 달라 흥미가 떨어진다. 오히려 별로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가도 문득 생각난다. 다시 매장을 찾아 입어본다. 나오는 길에 인터넷에서 구매하려 다시 검색을 시작한다. 최저가를 찾아 헤매지만 발견한 쇼핑몰에는 마침 내 사이즈만 없다. 다시 매장으로 돌아가서 산다.


옷 쇼핑만 이런 지난한 과정을 겪는 건 아니다.

최근에 산 맥북에어는, 자그마치 2010년에 장만했던, 그래서 지금은 너무나도 느려진 나의 구 맥북에어를 드디어 대체하기 위해 구매했던 거였다. (노트북 파우치도 그때 샀던 거라 너무 삭아서.. 이제는 새로운 것을 사야 하는데 새로운 맥북을 산지 한 달이 넘어가는 지금에도 무엇을 살지 결정하지 못했다.) 근 일 년간을 아이패드를 살지 노트북을 살지 고민하다 겨우 결정했다. 코로나 이후 재택을 시작하면서, 거리적인 이유로도 리스크적인 이유로도 요가원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사려고 했던 요가매트는 재택을 시작했던 4월 이후 무엇을 살지 고민하다가 여전히 장만하지 못했다. (그동안 요가를 안 한 것은 아니다. 그저 맨바닥에서, 쓸리는 부위나 쿠션이 필요한 부위에 수건만 깔고 했을 뿐.) 내 데일리 가방인, 노트북을 들고 다녀야 하거나 포멀 한 룩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 정말 매일 드는 프라이탁은 정말 한 피스 한 피스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피스다 보니 The One을 찾느라고 몇 주 내내 디앤디파트먼트를 드나들며 모든 서랍장을 여닫아 댔다.


돈 쓰는 게 아까워서 그런 건 아니다. 돈 쓰는 건 내게도 물론 너무나도 즐거운 일이다.

사람들은 본인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에 시간과 돈을 쏟는다. 때로는 내가 벌어낸 시간과 돈을 무엇에 소비하면서, 그래 이러려고 그 고생하는 거지! 라며 합리화한다. 나 또한 그렇다. 하지만 내가 주로 시간과 돈을 쏟는 분야는 여행, 맛있는 음식과, 술, 그리고 커피 등이다. 경험적인 소비를 할 때에는 거침이 없다. 만족스럽지 않으면 만족스럽지 않은 대로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만족스러운 경험을 했을 때는 즉각적인 행복이 따라온다. 그 행복감에 대해 주변인들에게 알려주고 나눌 때에도 부차적인 기쁨이 따라온다.

다시 떠올려도 너무 즐거워!


하지만 내게 물건은 좀 다른 것 같다.

실물이 남는다는 점 때문이다. 물건은 아무래도 남는 것이다 보니, 사실은 휘발되고 좋은 기억만 남는 경험적 소비들보다는 더 신중해진다. 볼때마다 후회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혹은 먼 미래에 이 물건을 버리고 싶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다.

그래서 옷을 살 때는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옷들과는 어떻게 매치를 할 것이며, 어느 상황에서 입음직한 옷인지, 혹시 한 번 입고 오십 번 입은 효과를 내서 실제로 조금밖에 못 입게 될 옷인지 등을 고민해야 했다. 물건을 살 때도 내가 이걸 언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재고 따졌다. 물건을 볼 때마다 내가 후회하지 않도록 예쁘고 실용적인 것을 찾아 헤맸다. (대부분의 경우엔 예쁘기만 하거나 실용적이기만 해서 결국 쇼핑에 실패했다)


이렇게 고민이 많다 보니 결국엔 남들이 쇼핑할 돈을 먹고 마시고 노는데 다 써버리고 만다. 이 잔고가 언제 이 모양이 되었나 유형의 물건으로는 남은 게 전혀 없을 때 억울한 마음으로 결제내역을 살펴보면 사실은 죄다 내 뱃살로 가있었다. 때로는 허무하지만 그날의 추억을 떠올리면 그럭저럭 위안이 된다.


그럼에도 나도 중요한 자리에 들만한 비싼 가방을 하나쯤 갖고 싶다. 각이 잘 빠진 힐도 한 켤레 있었으면 한다. 볼드한 반지랑 귀고리도 갖고 싶다. 언제 살 수 있을지, 혹은 언제 살 결단을 내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도 또 즐겨찾기와 위시리스트를 채워가겠지.


아유 나는 정말, 쇼핑이 너무 어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