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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Aug 09. 2020

쓸데없이 귀여운 것들 때문에 파산할 거야 나는

어젠 뭘 했냐면요 4: 쇼핑을 했습니다 

자타공인 쇼핑에 소질이 있다. 


돈 쓰는 일이야 누구나 즐기는 일이니 소질 운운하기는 좀 머쓱하지만서도, 하여간 그렇다. 좋아하다 보면 꾸준히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잘하게 되는 법이니까. 그러니 조금 가볍게 말해보자면 나는 쇼핑을 좋아한다. 기뻐도 쇼핑하고 슬퍼도 쇼핑하는, 이른바 자본주의 사회가 사랑하는 우수 고객이자 소비자, 그게 바로 나다. 이 기질이 어디서 왔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기억하는 한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쇼핑을 좋아했기에 더더욱. 유전이라고 하기엔 그 뿌리가 확실치 않고 후천적이라고 하기엔 그 근원이랄 게 딱히 없다. 뭐 어차피 정확히 알 길이야 없겠지. 중요한 건 지금의 내가 쇼핑을 하나의 취미처럼 즐긴다는 사실뿐.


쇼핑이라면 모든 종류를 다 좋아하지만 큼지막하게 카테고리를 좀 나눠보기로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쇼핑에 대해 논하기 위해선, 내가 조금 덜 좋아하는 쇼핑을 하나씩 쳐나가야 하니까. 따라서 아래는 내가 주로 즐기는 쇼핑들의 목록이다. 제일 덜 좋아하는 것부터 제일 좋아하는 것 순으로.






5. 일상 유지에 꼭 필요한 것들


쇼핑이라고 부르기도 좀 뭐하다. 굳이 따지자면 생필품 구입에 가깝다. 그러나 이것만큼 반복적이고 꾸준히 내 쇼핑 일과를 점령하는 분야도 없으니. (그리고 이미 말했지만, 나는 어떤 종류의 쇼핑이든 다 즐기는 편이니.)

일상에 꼭 필요하며 영구적이지 않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반드시 구입해야만 하는 물품들이 있다. 가깝게는 칫솔 치약부터, 샴푸와 바디워시, 화장품도 있을 것이고, 요즘에는 마스크도 당당히 한 자리 차지한다. 


아,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화장을 하지 않게 되어 화장품 쇼핑이 아주 많이 줄기는 했다. 요즘에 구입하는 건 토너와 에센스와 수분 크림뿐이니까. 각종 색조 화장품은 종류도 많고 신상도 많아 항상 내 물욕을 부추기지만, 이 정도 나이가 되니 기초 화장품은 어느 정도 정착하여 다 떨어질 때쯤 한 통 더 구입하면 끝이다. 칫솔/치약/샴푸/바디워시 등도 모두 비슷하다. 하나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써보며 떠돌던 유목민 시절이 거의 마무리되어 간다. 여전히 새로 나온 것을 가끔 집어 들지만 빈도가 많이 줄었다. 그러니 아주 안정적이고 기본적인 쇼핑이다. 여전히 쇼핑은 쇼핑이지만 너무 똑같이 반복되어 그다지 짜릿하지는 않다. 



4. 입고 신는 것들 


자꾸 늙은이처럼 말하는 것 같아 망설여지지만, 한 때는 옷 쇼핑에 열을 올리던 때가 있었다. 꾸미는 걸 한참 좋아할 나이엔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려서 아직 내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잘 알지도 못했고, 또래들 사이엔 항상 거대한 유행이 존재했으며, 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저렴한 옷을 마구 사들였다가 오래 입지 못했다. 그때는 그래도 옷 쇼핑이 즐거웠던 것 같다. 얼마든지 시도하고 실패하던 때라서 그랬을까. 입고 싶은 것도 많았고. 


요즘 옷이나 신발 쇼핑은 점점 더 내 관심 분야에서 멀어지는 중이다. 생필품보다 쬐끔 나은 정도니 말 다했다. 뭐랄까, 기초 화장품처럼 최근엔 옷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기준이 세워진 기분이다. 고만고만한 둘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스타일을 변혁하려고 하기보단 비슷한 스타일 중에 가장 내게 알맞으면서도 질이 좋은 옷을 찾게 된다. 예뻐서 사는 옷보다 필요해서 사는 옷이 많아졌다. 심심해서 쇼핑몰을 둘러보다 어 이거, 하고 집어 들기보단 '언제 언제 입을 단정한 원피스가 하나 필요해'하고 물색에 나서는 순서랄까. 그 와중에 보는 눈은 훨씬 더 까다로워져서 웬만해선 옷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 마음에 차는 옷은 과하게 값이 나갈 때가 많다. 필요해서 사야 하는 데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장고의 길로 들어서기 마련. 지치곤 한다. 



3. 먹고 마실 것들


말하자면 장 보기다. 생필품과는 또 다른 분야다. (처음엔 이게 4위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옷을 사는 것보다 장 보는 걸 즐기는 것 같아 단계 조정이 이루어졌다.) 엄마가 온전히 장 보기를 담당하던 때에도 나는 엄마와 같이 장 보러 나서는 걸 즐겼다. 마트와 시장 자체를 좋아했다. 즐비하게 늘어선 원색의 선택지들 사이로 어딘가 활기가 뿜어져 나오는 느낌. 너무 복잡한 고민 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척척 고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어차피 달걀은 사야만 하는 거지만, 열몇 개의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율권이 있으니까. 어릴 때는 그게 마냥 어른이 된 듯하여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여러 현실적 이유로 종종 장보기를 도맡는 요즘에도 변한 건 없다. 여전히 이마트를 좋아하고 집 앞 재래시장도 자주 가며 반찬가게나 빵집도 들린다. 마켓컬리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씩은 아주 편안한 쇼핑을 하기도 한다. 해보고 싶은 요리를 정해두고 공격적으로 재료를 사는 날도 있고, 딱히 그런 것도 없으면서 퇴근길에 마트에 들려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걸 담아오는 날도 있다. 채식 위주로 식단을 꾸리다 보니 요즘엔 주로 두부를 가장 많이 사고, 샐러드나 반찬을 위한 채소도 종류별로 여럿 담는다. 갈수록 본격적으로 장 보기에 나서고 있어 최근엔 '귀여운' 장바구니도 하나 샀다. 아 뭐라 콕 집어 설명은 못 하겠다. 바구니나 카트를 딱 옆에 끼고서, 종류도 다양한 두부들 사이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단 하나를 고를 때의 그 발랄한 즐거움을. 



2. 꼭 필요하진 않지만 있으면 삶의 질이 더 나아지는 것들


사실 진짜 쇼핑은 여기부터 시작이 아닐까. 꼭 필요해서 사는 것을 쇼핑이라고 하긴 좀 면구스러우니까. 세상의 많은 상품은 대부분 이 분류 안에 들어간다. 없어도 잘 살았는데, 어쩐지 상품 설명을 보는 순간 필요와 당위가 생겨나버리는 물품들. 드라이기는 생필품일 수도 있지만, 이미 드라이기가 있는 이상 다이슨 드라이기는 여기 포함된다. 애플워치가 있으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없다고 못 사는 건 아니다.


이 물욕이 무서운 것은 밖에서 주입된다는 점이다. 애플워치를 사야겠다는 욕심이 어느 날 갑자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진 않는다. 자꾸 광고를 보게 되고, 친구들이 차고 다니는 걸 보게 되고, 이래저래 얘기를 듣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꾸 내 안의 내가 나를 설득한다. 사치품일 뿐인 것을 생필품의 단계로 끌고 와서, '이건 사야만 해!' 하고 울부짖는다. 처음에는 가성비도 열심히 따져보고 굳이 필요 없을 거라고 날 다독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시간 싸움일 뿐이다. '아이패드병은 아이패드를 사야만 고쳐진다'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런 식으로 내 마음에 들어온 것들은 결국 어느 순간엔 내 지갑을 열게 한다. 


안타까운 건 이런 물품들이 대부분 비싸다는 데 있다. 신상 나이키 러닝화(그래, 러닝화도 필요하지), 마음에 쏙 든 프라이탁 가방(그래, 저렇게 옆으로 멜 가방이 하나 필요했어), 애플워치(그래, 운동할 때 쓰면 좋다더라)... 긴 기다림 끝에 사는 순간엔 너무 행복한데 종종 한 달 후 카드값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이런 것들은 보통 막상 사고 나면, 사실 그 돈을 줄 만큼 필요하진 않았다는 게 지나칠 정도로 명명백백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1. 내 삶에 전혀 필요 없는 귀엽고 작은 것들  


멀리 돌아왔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내가 사랑해마지 않으며 결코 포기할 수 없고 이미 잠식당해버린 쇼핑의 카테고리는, 단언컨대 '귀엽고', '작고', '필요 없는' 것들을 사는 일이다. 굳이 세 가지 중에 방점을 찍자면 '필요 없다'에 찍는 게 맞겠다. 쇼핑의 가장 큰 짜릿함은 바로 쓸데없는 것을 사는 데 있으니까! 필요성이 전혀 없는 것을 살 때야 말로 나는 순수하게 즐거움만을 위해 쇼핑을 하는 거니까! 너무 거대하고 값비싸다면 충동구매에 방해가 되므로 되도록 작고 싼 것이 좋다. 그리고 무조건 귀여운 것. 나는 정말 귀여운 거라면 사족을 못 쓴다. 과장이 아니고 진짜 사족을 못 쓴다. 


귀여운 엽서, 귀여운 열쇠고리, 귀여운 피규어, 귀여운 스티커, 귀여운 인형- 귀엽고, 볼 때마다 귀여워 죽겠다는 사실 외에는 내 삶에 1도 필요가 없는 것들. 마음에 드는 귀여운 캐릭터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 브랜드의 모든 상품들을 싹쓸이하다시피 한다. 포스터를 사다 방에 걸어놓고 피규어를 사다 올려놓고 스티커를 사다 여기저기 붙이고. 물론 가끔은 필요성의 탈을 쓰고 내게 오기도 한다. 아이폰이나 에어팟 케이스라든지, 달력이라든지, 노트라든지. 집에 같은 용도의 것들의 이미 많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아버리고 그저 '귀여워!' 하면서 사버리고 말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필요 없는 건 똑같지만. 


아무거나 보고 덥석 '귀여워!'하고 집어 드는 내 고약한 쇼핑 습관을 주변에서는 익히 알고 있다. 내가 '헐 귀여워 미쳤다'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구매를 확정했음을, '그거 어디다 쓰게?' 같은 질문으로는 나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그다지 값이 비싸지도 않으므로 구입에는 도통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 그렇게 천 원 이천 원 쓴 돈이 모여서 종국엔 산처럼 커진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 순간에는 천 원인 걸. 일러스트 페어며 디자인 페어며 입장료까지 내가며 찾아가서는 '귀엽다'는 이유로 엽서와 스티커를 사 오는 나를 보고 혀를 쯧쯧 차는 사람도 있었다. 너는 정말 귀엽다는 이유로 쓸데없는 걸 많이 산다고, 그러다 귀여운 것 때문에 파산하겠다면서. 


맞다. 만약 내가 파산한다면 세상에 쓸데없이 귀여운 것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인생 가장 즐기는 일 중 하나가 쇼핑이고, 개중에서도 가장 즐거운 건 귀엽고 쓸데없는 것들을 사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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