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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Aug 16. 2020

인스타그램에서 뭐 보세요?

어젠 뭘 했냐면요 5: 인스타그램을 했습니다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을 지나 인스타그램에 정착한 지도 꽤 되었다. 아무래도 한 시대를 점유하는 SNS는 대개 하나로 수렴되는 것 같고, 나는 충실히 시대의 흐름 속에서 헤엄치는 사람이니까. 처음으로 인스타에 사진을 올린 건 2013년 9월 29일이었다. 그러니 지금까지 무려 7년을 사용해온 셈.


7년 간 올린 게시물은 총 433개다. 1년에 평균 약 62개. 일주일에 하나 이상은 올린 셈이지만 결코 헤비 유저라곤 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내 게시물의 대부분은 여행 중에 업로드된다. 일 년이 다 되어가도록 업로드 한 번 없다가, 연말에 긴 여행을 떠나기라도 하면 그때 서른 개의 포스팅이 우다다다 폭발하는 거다.


물론 일상에서도 종종 포스팅을 하지만 그렇게 경우가 많지는 않다. 꼭 사진첩에 넣는 것처럼, 네모난 사각틀에 박혀 오래오래 간직되는 사진들이라 괜히 기준이 까다로워진다. 24시간만 공개되었다 사라지는 '스토리' 기능이 생긴 뒤로는 더더욱 기준이 상향 조정되었다. 올리고 싶은 게 생기면 마음 편히 스토리로 올린다. 곧 사라지도록, 그러나 내 보관함 속에는 남아 있도록. 누구든 언제든지 와서 보라고 액자에 걸어 박아놓는 것보다 훨씬 가볍다.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 지울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그렇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이라는 신조어가 있는 시대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사진이란 말 그대로, 따로 정해져 있는 셈이다. 개인 공간이니 그런 흐릿한 기준쯤 무시하고 마음대로 올려도 된다는 걸 알지만, 누구나 따르는 룰을 무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들 제일 잘 나온 예쁜 사진을 더 예쁘게 편집해서 올리는 마당에 나만 가감 없이 현실을 다 내보이는 건 어려운 일이지. 좋아요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다.


하여간 굳이 그 기준으로 따지자면 내 일상에는 인스타그래머블하지 않은 순간들이 훨씬 많다. (그게 나쁘단 건 아니다. 내게 소중한 순간들은 인스타그램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때가 더 많으니까.) 해외여행은커녕 외출 자체가 많이 줄어든 올해에는 더더욱. 그렇다고 굳이 그런 순간들을 가짜로 만들어내거나 찾아 나설 만큼 인스타그램 중독은 아니고. 그래서 요즘 내 포스팅은 그닥 많지 않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The Truth Behind Instagram Photos", Chompoo Baritone



그럼에도 인스타그램은 항상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한 앱' 3위 안에 들고, '화면을 깨운 후 가장 처음 사용한 앱'으로는 늘 1위를 놓치지 않는다. 시시때때로 접속하기 좋게 아이콘의 위치도 딱 첫 화면의 가장 왼 편, 왼손 엄지가 닿기 편리한 곳을 선점하고 있다. 올리지도 않으면서 인스타그램은 켜서 뭘 하냐면, 본다. 사진들을.


물론 인스타그램엔 지나치게 잘 재단되고 잘 꾸며진 사진이 많다. 인스타그램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은 사진들도 많고. 누구든 인스타그램에는 가장 완벽하고 행복한 순간만을 올리고 싶어 하니까. 그런 사진들 속에 매몰되다 보면 내 구질구질한 현실과 다른 사람들의 완벽해 보이는 순간을 자꾸 비교하게 되어, 자존감이 떨어지게 된다는 우려도 접했다. 그러나 그게 현실과 다르단 사실만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면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나 역시 인스타그램엔 잘 살고 있단 사진만 올리니까.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남들의 스포트라이트와 내 백스테이지를 비교하는 건 우스운 일이니까.


그런 걱정일랑 잠시 묻어두고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주로 이런 것들을 본다.




귀여운 반려동물과 애기들 25%

현실의 내 강아지를 보는 걸로 모자라 남의 집 강아지도 본다. 친구가 키우는 고양이들도 보고, 모르는 사람이 키우는 귀여운 애기도 본다. 일방적이지만 애정이 담긴 행위다. 강아지들과 고양이들과 애기들은 무해하게 귀엽다. 화면 너머 보는 것뿐이지만 가끔은 현실의 내가 푸슬푸슬 웃어버리고 만다. 애착이 생겨서 팔로우해놓고 매일 같이 근황을 체크하게 되는 친구들도 있다. 세상에 귀여운 애기들은 너무 많고 인스타는 좋은 만남의 장소다.


친구들 25%

그래도 SNS라는 본연의 기능에 가장 충실한 부분이다. 맞팔을 하는 친구는 한 150명 정도 되려나. 그중에는 굳이 인스타를 통하지 않아도 근황을 속속들이 아는 절친들도 있고, 회사 동료들도 있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한 번도 못 본 친구들도 있으며, 한 번쯤 스쳐갔는데 어쩌다 보니 인스타 친구가 된 어색한 사이들도 있다. 어떤 관계든 서로 근황을 알고 가볍게 '좋아요'하기에는 인스타가 제일이다. 가까운 관계라면 서로 태그하여 사진을 올리고 DM으로 답장을 보내며 또 다른 차원의 연결을 맺을 수도 있고. 인스타그램에서만 친한 사이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비단 피상적이기만 한 건 아니다. 인스타그램이 아니었다면 진작 끊어졌을 관계들도 많으니.


사람들 15%

아는 사이는 아니고, 내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일방적으로 팔로우하는 사람들이다. 주로 유명인이 많지만 그렇다고 꼭 연예인에 한정되지도 않는다. 인스타그램에는 또 나름의 인플루언서가 따로 있으니까. 너무 잘 꾸며진 사진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대개 일상을 꾸밈없이 (꾸밈없어 보이도록 세련되게) 올리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일상을 염탐하기도 하고, 일러스트가 마음에 드는 아티스트를 팔로우하기도 하고, 요가나 채식에 영감을 주는 사람들을 피드에 올려 나를 자극하기도 한다. 미약하게나마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좋다.


유우머 15%

'둘러보기' 기능을 이용해 주로 웃긴 포스팅을 본다. 웃긴 얘기는 플랫폼을 옮겨 다니기 마련이고, 트위터나 다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우스운 유머글이 인스타그램으로도 잘 흘러온다. 예능의 웃긴 장면이 짤로 올라오기도 하고, 웃긴 댓글이 캡처되어 돌기도 하고.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를 하지 않기 때문에 내게는 이게 유일한 창구다. '너 이거 봤어?ㅋㅋㅋㅋ'했을 때 '어 봤어ㅋㅋㅋ'할 수 있는 이유는 모두 인스타그램 덕인 것. 유행에 뒤처지지 않게 해 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꿀팁 15%

'둘러보기'를 하다 보면 은근히 꿀팁도 많다. 폴더를 따로 만들어 저장해서 쌓아 둘 수 있는 것도 좋고. 예전엔 주로 맛집을, 재택이 길었던 최근에는 레시피 팁을 많이 저장했다. '제주도 여행 팁'이라든지 '거북목 교정 운동법', '은행원이 알려주는 필수 꿀팁' 같은 것도, 언젠간 필요하겠지 싶어 우선은 저장해 두고 본다. 커스텀 케이크를 자주 주문하던 때에는 아예 케이크 폴더를 따로 만들어 예쁜 케이크를 볼 때마다 저장해두었었고, 언젠가 타투를 하고 싶은 마음으로 귀여운 타투 그림도 따로 모아둔다. 딱히 이 '저장됨' 폴더를 자주 들어가 보지는 않지만, 그런 건 원래 어딘가 쌓아두었다는 것만으로 인생이 조금 풍족해지는 기분이 든다고.


스크롤(?) 5%

우습지만 그냥 스크롤 자체가 행위의 전부일 때도 있다. 5%만 주긴 민망할 정도로 자주 그렇다.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하릴없이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휙휙 사진을 넘기는 일. 딱히 사진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럴 만큼 집중하지도 않은 채로 손가락 운동을 한다. 이럴 때는 유머글을 만나도 웃지 않고 귀여운 강아지 사진을 봐도 눈에 뿅뿅 하트가 생기지도 않는다. 아마 머릿속으로는 한참 딴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그러는 동안 손가락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을 뿐.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데, 이런 걸 보는 시간이 낭비라면 낭비일 수도. 그러나 잠깐씩 짬이 났을 때 한숨 돌리기엔 이만한 것이 없다. 순식간에 현실에서 슉 빠져나와 다른 곳에 발만 담갔다 올 수 있으니까. 그게 내 일상을 좀먹지만 않는다면 나는 이런 잠깐씩의 연결을 기꺼이 허하겠다. 다들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만 올리면 뭐 어때, 그런 멋진 순간만 편집해서 보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다.


귀여운 동물들이, 내 친구들의 대다수가, 내게 영감을 주는 사람들과 다양한 유머와 꿀팁이 인스타그램에 존재하는 한 아마 나도 계속 여기 머물지 않을까. 우리 세대의 다음 플랫폼은 뭐가 될까 궁금하긴 하지만, 아직 내 주변의 대세는 인스타그램이다. 그래서, 다들 인스타그램에서 뭐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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