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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Sep 13. 2020

집콕의 시대, 나만의 독서 리듬을 찾아서

어젠 뭘 했냐면요 9: 책을 읽었습니다 

내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는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동안 그 옆구리에 최대한 빈틈없이 바싹 붙어 꼼틀거리던 순간이다. 매일 밤 딸기우유 하나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들고 가면 엄마는 잠들 때까지 책을 읽어줬다. 그렇게 (이를 안 닦고) 바로 잠든 탓으로 충치 치료를 하느라 꽤나 고생을 해야 했지만... 하여간 나는 그 매일의 이야기 속에서 꼬물꼬물 자랐다. 


스물몇 해가 훌쩍 흐른 지금도 여전히 내 외연의 확장은 거의 책에 기대고 있다. 예전만큼 책에 파묻혀 있지는 못하고, 또 더 이상 책에서 접하는 모든 이야기가 나를 놀라게 하지는 않지만. 그때보다 더 어렵고 두꺼운 책을 읽는 데도 불구하고 성장은 점점 느려지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 먹는 그대로 키가 되고 살이 오르던 시절은 지난 거다. 그렇기에 더더욱 내게 필요한 걸 잘 찾아 먹고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폭발적인 성장의 쾌감 따윈 없으니, 아주 조금씩 내가 넓어지는 구석구석에 최대한 집중하면서. 나만의 플로우와 리듬을 놓지 않으면서. 




책을 고르고 


책을 고르는 일에 점점 신중해진다. 마음 가는 대로 골라 읽는 책에는 소설의 비중이 너무 높다. 그중에서도 현대 한국 소설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 읽는 족족 다 내 얘기처럼 느껴지는 직접적인 연결감이 쉬이 포기되는 건 아니라서. 그래도 최대한 비중을 맞춰보려고 나름의 규칙을 정하기도 했었다. 문학 한 권을 읽었으면 비문학 한 권을 읽는 것으로. 현대 소설 한 권 읽었으면 고전 소설이든 현대 시든, 다른 분야의 문학을 한 권 찾아 읽는 것으로. 너무 빡세게 적용했더니 읽어야 하는 비문학 책 진도가 안 나가서 (그렇다고 규칙을 어기고 문학을 읽을 순 없어서) 한 달이 넘도록 아무것도 안 읽는 사태가 빈발했다. 고지식한 완벽주의자의 패착이라. 요즘은 조금 느슨하게 적용 중이긴 하지만, 자꾸 한쪽으로 기우는 추를 붙잡긴 해야 한다. 굳이 매번 주제를 바꿔가며 독서모임에 등록하는 이유도 팔 할은 거기 있다. 독서모임은 내가 혼자서는 안 읽었을 만한 책을 열심히 탐독하게 하는 좋은 플랫폼이 되어준다. 




책을 사거나 빌리고 


읽을 책을 고르면 구매는 보통 알라딘에서 한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네다섯 권의 책을 주문하는 편이다. 읽고 싶은 책을 사러 들어갔다가 그간 장바구니에 쌓아뒀던 수십 권 중에 두어 권 꼽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또 두어 권 꼽는 식이다. 조합은 무궁무진하다. 그렇게 주문한 책을 배송 오자마자 다 읽는 건 아니므로 내 책장엔 아직 안 읽은 책이 가득이다. 그러므로 기실 다음에 읽을 책을 정할 때는, 내게 없는 책을 골라 사기보단 이 '안 읽은 책장'을 먼저 검토한다. 꼭 맞춤 서점이라도 방문한 양 재미가 있다. 어쨌든 언젠가는 읽고 싶어서 산 책이니 대부분 내 취향에 맞게 들어찬 서가라서. 


집이 궁전만 한 것도 아닌데 책을 이렇게 많이 사니. 이사 오면서 책을 많이 팔고 깔끔하게 재시작을 했는데도 슬슬 책장에 책이 두 줄로 쌓이기 시작한다. 이북리더기를 사며 좀 나아지길 기대했었는데, 아무래도 종이책과 이북 간에는 아직 크나큰 괴리감이 있다. 웬만하면 종이의 질감도, 손에 든 책의 무게감도,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의 촉감도 내 '독서'의 일부로 포함시키고 싶어서. 게다가 나는 책을 소유하고 싶단 말이다. 재밌게 읽은 책일수록 더더욱! 이북은 아무리 사서 넣어놓아도 소유의 느낌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종종 메리트는 있다. 출퇴근길의 만원 지하철은 종이책을 펼쳐 들기엔 너무 험난한 환경이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눈도 아프고, 이것저것 알림이 많아 방해 요소가 너무 많다. 아, 여행 갈 때도 콤팩트하게 챙기기 좋다. 요즘은 여행도 못 가고 출퇴근도 안 하니 이북리더기는 그저 잠들어 있지만. 


최근엔 집 근처의 도서관도 적극적으로 다시 이용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소장하고 싶은 책은 사야만 하지만, 읽기 전엔 어떨지 잘 모르겠는 책들이 있으니까. 꼭 한 번 읽고는 싶지만 절대 두 번은 안 읽을 것 같은 책도 있고 말이다. 근 10년 만에 방문한 도서관은 그 사이 여러모로 더 편리해졌다. 앱으로 미리 예약해두면 지하철역의 무인대여기에서 수령도 가능하고 역시 같은 곳에서 반납도 가능하다. 빌려 읽는 책이 너무 헐어있거나 지저분하면 으, 어쩔 수 없이 한 번 찌푸리게 되지만- 공짜로 읽는 책에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지. 도서관에서 읽고 나선 소장 해야겠다 싶으면 그때 가서 산다. 그래도 사서 한 번 읽고 중고서점에 전부 되팔 때보단 훨씬 경제적이다. 도서관 내부도 책 읽기 딱 좋게 잘 되어 있던데, 코로나 때문에 무기한 휴관 중인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책을 읽고 기록하고  


책을 읽기 위해 굳이 시간과 공간을 공들여 준비하지는 않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습관이 절로 그렇게 들었다. 시끌벅적한 환경에서도 잘 읽고 자투리 시간에 조금씩 조금씩 읽어도 잘 소화한다. 그래도 앞뒤로 일정이 싹 비워진 어느 주말의 오후, 열어둔 창으로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는 내 방 침대에서 독서등을 켜놓고 책을 펼쳐들 때의 행복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지. 직장인이 되고선 더더욱, 그런 건 그저 가끔의 행복으로 여긴다. 그런 이상적인 상태에서만 독서를 할 수 있다면 읽는 책의 양이 꽤나 줄어들 테니까. 책을 접거나 구기는 걸 매우 싫어해서 책상과 침대 근처엔 여러 종류의 북마크. 원래는 책에 밑줄 긋는 것도 싫어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이 나오면 빼곡히 다 노트에 적어두는 편이었지만 요즘엔 시간이 부족하니 많이 타협했다. 연한 색 색연필 하나로 밑줄을 긋고, 기록은 나중에 한 번에 타이핑해둔다. (빌린 책이라면 사진으로 뚝딱 찍어두기도 하고.)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갈수록 앉은자리에서 한 권을 다 읽는 경험이 흔하진 않다. 특히 소설을 읽을 때면, 내 몰입의 흐름이 갑자기 끊기는 순간은 허망하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난 더 이상 방과 후에 책 읽는 거 빼고 할 일이 없는 열 살 어린애가 아니니까. 돌봐야 할 강아지도 있고 마무리해야 할 작업도 있고 준비해야 할 내일의 미팅도 있고 그렇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예전만큼의 집중력이 나오진 않는 것 같다. 머리를 싹 비우고 가볍게 책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영 어려워졌달까. 책을 읽다가도 조금만 몰입이 깨지면 머릿속으로 스멀스멀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온다. 아 아까 메일 쓸 때 이렇게 얘기할걸 후회도 하고, 내일 미팅이 뭐뭐더라 되짚어보기도 하고, 그냥 하릴없이 스마트폰을 열어보기도 하고. 예전엔 그래도 한 권을 하루 안에 읽는 일이 많았는데 요즘엔 한 권을 일주일을 끌 때도 많고. 


대신 너무 파편화되는 것을 막으려고 다시 독서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원칙은 책을 다 읽은 순간, 그 자리에서 남기기. 바로 책 사진을 하나 찍고 이 용도로 따로 만든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다. 몇 글자 안 되더라도 책을 다 읽은 시점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꼭 남겨둔다. 예전엔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겠단 허황된 꿈을 멋대로 꾼 적도 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명확해진다. 세상에 좋은 책은 너무 많고 (막상 읽어보면 별로인 책도 너무 많고) 내 여유시간은 점점 쪼그라들고 있어서, 모든 책은커녕 그 반의 반의 반도 읽을 수 없다는 걸. 책이 너무 마음에 들어도 그거 한 권을 몇 번씩 다시 읽으며 되새길 여유도 많지는 않다는 걸. 그러니 잊지 않게 기록이라도 해두는 것이 한 번의 독서에서 최대한 많이 남기는 방법이다. 그래도 올해 1월 1일부터 이어왔더니 꽤나 습관이 들어서 이제는 이것까지 끝내야만 독서가 다 끝난 기분이 든다. 







코로나로 집에만 박혀있으면 책을 더 많이 읽게 될 줄 알았는데. 좋은 자투리 시간이었던 출퇴근도 사라지고 일상의 리듬이 완전히 깨지니 오히려 책 읽는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다. 독서 리듬도 같이 깨져버렸달까. 따로 독서를 위한 공간까진 필요 없다고 했었지만, 이젠 완전히 홈오피스가 되어버린 내 책상이나 너무 늘어지게 되는 침대보단 조금 더 나은 독서 공간도 간절해지는 요즘이다. 도서관도 휴관 중이고, 카페에서 편안히 시간을 보내기도 어려운 시대. 거실 구석에 1인용 리클라이너를 놓고 싶다는 욕망이 며칠 째 머리를 맴돌고 있다. 


마스크는 아직 벗지 못했지만 아침저녁 바람은 이미 완연히 가을. 가을이 왜 독서의 계절인지는 아무리 들어도 영 와 닿지가 않지만, 그래도 선선한 바람을 타고 다시금 가볍게 책을 들어본다. 무너진 일상이 온전히 회복될 때까지 넋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어쩌면, 나만의 이 묘한 독서 리듬만 회복하면, 다시금 내 일상은 자연스레 그 주위를 공전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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