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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Sep 13. 2020

독서의 스콥은 읽을수록 넓어진다

어젠 뭘 했냐면요 9: 책을 읽었습니다

독서는 어릴 적 내가 취미란에 유일하게 적을 수 있는 취미였다.


아이돌, 드라마, 농구나 축구 같은 주제와 활동에 진득하게 몰입하고 자기들끼리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딱히 끌리는 것이 없었다. 이런저런 아이돌을 좋아하는 척도 해보고 좋아하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는 왜 이것밖에 안 좋지? 친구들을 훨씬 높은 강도로 혹은 깊은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 같은데, 왜 난 이것밖에 좋아지질 않지? 하는 생각이 꾸준했다. 그래서 그때그때 관심사가 여기저기로 옮겨갔고, 스스로를 무언가의 골수팬이라던지, 특정 활동이 내 취미라던지 라고 말하기엔 자신감이 부족했다.


책을 읽는 건 좀 달랐다. 


그렇다고 내가 책을 매일 꼭 읽어야 하는 독서광이었다거나 특정 장르나 작가를 꿰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장 오랜 시간 동안 기분전환을 위해, 시간 때우기를 위해, 재미를 위해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활동이었다. 스스로를 책을 빨리 읽는 사람이라고 자부했고 때로는 양치기로 많은 권수의 책을 읽는 것에서 재미를 찾기도 했다. 다른 나라와 다른 시대를 그려놓은 소설을 읽으며 여행을 간 기분에 빠져들기도 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동물도감을 살펴보며 종의 이름들을 외우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순간에 독서를 즐기지는 않았다.


특히 취업이 가장 중요한 인생의 목표처럼 느껴졌던 대학 시절에는, 독서라는 취미가 쿨하지 않은, 그리고 도움이 되지 않는 취미처럼 느껴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 중에 하나는 이런 거였다. 입사 지원서 취미에 독서, 영화보기, 음악 듣기처럼 혼자 하는 취미는 적으면 안 된다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고. 그런 얘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그냥 정신이 없어서 혹은 다른 자극적인 것들이 많아져서 그랬는지, 혹은 학교 교과서와 수업 자료들을 읽는 것 만으로 충분한 읽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였는지, 한동안은 아주 가끔만 책을 읽곤 했다.


그럼에도 항상 독서에 대한 부채가 있었다.


책을 빨리 읽던 자부심이 흐려지는 듯했고, 내가 좋아했던 책을 많이 다양하게 읽는 나의 모습이 그립기도 했다. 그저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떠는 것보다 뭔가 더 남는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싶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주제는 보통 대중이 없었다. 예전엔 주로 소설을 읽던 나였는데, 오랜만에 읽으려니 뭐부터 읽어야 할지 손에 짚이는 것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책을 고를 수 있는 모임도 해봤다. 하다 보니 조금 더 관심 있는 주제가 생겼다. 해당 주제에 대한 책을 위주로 읽기 시작했다. 여전히 나에게 약간의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 책 모임엔 계속 나가고 있었다. 책을 읽는 것이 다시 버릇이 되니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늘어난 건 함께 읽고 싶은 책의 리스트였다. 다른 사람들과 책을 함께 읽다 보니 추천받는 책이 많아졌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웠던 사람들의 추천이니 한결 신뢰가 갔다.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몰라 서점에 가서도 책 냄새만 잔뜩 맡을 뿐 휘휘 돌고 말던 내게 읽고 싶은 책 리스트가 잔뜩 생겨갔다.


그러면서도 거의 읽지 않는 책 분야가 있었다.


경영 서적과 자기 계발서였다. 솔직히 말하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이야기를 하는 책들이라고 생각했었다. 혹은 너무 정답 같은 얘기들만 담고 있어서, 보기엔 그럴듯해 보이더라도 내가 할 수는 없는 이야기들만 잔뜩 들어있을 것 같았다. 자기 계발서를 읽는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혹은 따라 한다고 똑같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경영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의 운, 그 당시의 그 우연한 멤버 구성, 그 당시의 상황이나 사회적 맥락이 어쩌다 운 좋게 맞아떨어진 성공 스토리를 아름답게 포장한 것 이상의 무엇이 있을까 했었다.


그러다 최근에 그런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몇 년을 만난 애인은 나와 다르게 이런 책들만 읽는 사람이었다. 그저 신기하게만 생각하다 나도 한번 읽어보자 싶어 손을 댔다. 일과 업에 관련된 책들이었고, [일하는 마음]과 [함께 자라기 - 애자일로 가는 길]과 [다크호스]였다. 각각의 페이지 페이지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꽤나 많은 페이지에서 담아가고 싶은 혹은 닮아가고 싶은 문장들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었다.


자기가 습득한 지식이나 능력은 복리로 이자가 붙습니다. 따라서 더 빨리 자라고 싶다면 1) 어떻게 이율을 높일 것인가와 2) 지속적으로 현명한 투자를 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 함께 자라기 애자일로 가는 길 중


"중요한 건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잘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긴 하다. 그렇다고 해서 "잘하는 게 아니라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계속하는 것과 열심히 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문제다. 계속하다 보면 그것만으로 이르게 되는 어떤 경지가 있다. 당장의 '잘함'으로 환산되지 않더라도 꾸역꾸역 들인 시간이 그냥 사라져 버리지는 않는다.
- 일하는 마음 중


그저 입바른 말만 늘어놓는다고 생각하는 나의 편견은 틀렸다. 혹은 따라 하기 어려운 일들만 담겨있을 거라는 내 선입견도 틀렸다. 오히려 명료하고 깔끔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내가 배울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때로는 그런 문장들이 위로까지 해주기도 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나 방향성이 닿아 있을 때는 내가 하던 일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심을, 혹은 닿아있지 않을 때는 이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위안을 받을 때도 있었다. 여태까지 왜 안 읽었을지 약간의 씁쓸한 마음을 이제라도 이 멋짐을 깨달았으니 되었지! 하는 생각으로 다잡고 있는 요즘이다.


지금은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를 읽는 중, 그리고 회사에서 [파워풀]과 [포에버 데이 원]을 빌려왔다. 여태 읽지 않은 만큼 조금 더 빠르게 많은 책을 읽어봐야지. 


저한테 또 좋은 책 추천해주실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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