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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Dec 31. 2022

여행지에서는 엽서를 쓰세요  

여행의 완벽한 마무리 


2022년 11월 27일. 호찌민의 한 편집샵에서 베트남을 기억할 만한 엽서 몇 장씩을 샀다. 반미나 포에 들어가는 재료를 귀엽게 그린 일러스트 엽서도 있었고, 우리가 여행 내내 달고 살던 베트남 칠리가 그려진 엽서도 있었다. 신이 나서 각자 잔뜩 고른 엽서를 들고 우리는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펜이 모자라 하나 빌리고. 책상이 낮아 글을 쓰기 쉬운 구조는 아니었지만 거기서 몸을 구긴 채 빼곡히 엽서를 썼다. 


지금 이 순간, 같이 여행을 하고 있는 서로에게. 






친구들과 떠나는 해외여행은 언제나 사치스러운 일이다. 학생 때는 말 그대로 돈의 문제였다면 지금은 시간의 문제다. 각자 다른 길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친구들과 긴 일정을 맞춰 휴가를 내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지난 2년 간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고. 


이 여행을 계획한 건 무려 6월의 일이다. 코로나 종식의 희망이 비추던 때였다. 오랜만에 만나 미술관에서 전시를 관람하고, 카페에 앉아 잠깐 쉬다가 이야기가 그렇게 튀었다. 우리 올해 말에는 여행을 갈 수 있지 않을까. 그 자리에서 비행기표를 검색하고, 표값이 싼 쪽으로 빠르게 목적지를 정했다. 애초에 목적지가 중요한 여행은 아니었던 탓이다. 거기 같이 앉은 셋이 같이 떠난다는 게 중요하지.


약 6개월이 남은 여행이었지만 셋 다 각자의 캘린더를 확인하고, '그나마' 일정이 괜찮을 것 같은 때를 이리저리 맞춰가며 골랐다. 그래봐야 목금토일의 짧은 일정이었다. 그 정도는 휴가를 내고 갈 수 있겠지. 응, 무슨 일이 터지지만 않는다면. 약간의 불안함을 가지고도 덜컥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여행 일정이 가까워질수록 비어있던 캘린더가 점점 가득 차고 불안함은 거세졌지만 이 여행을 성공시키기 위해 다들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열심히 빈 구멍을 찾아 떠난 여행은 그 자체로 즐거웠다. 목요일 저녁 즈음에나 도착하고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돌아가는 일정이라 따지자면 겨우 2박의 일정. 도시 하나를 둘러보기엔 너무 짧은 일정이라 내내 어딘가 쫓기는 기분이었지만, 그 사실조차도 웃음의 소재로 삼을 수 있었으니. 사실은 그냥 우리끼리의 시간을 가지려고 멀리 날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밀린 이야기를 잔뜩 하고 자주 웃었다. 사진도 많이 찍고 음악도 계속 들었다. 일상에 지쳐 있던 마음이 순식간에 훅 끌어올려졌다. 그러니 마지막 날, 누구에게 엽서를 쓰겠냐고 물었을 때,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너희한테 쓸 거야! 


열심히 엽서를 쓰고 서로에게 내용을 보여주진 않았다. 그대로 쥔 채 호찌민 중앙우체국까지 걸어가서 우표를 샀다. 한국으로 보내겠다고 했더니 엽서 하나당 우표 네 장을 붙여야 한다고 했다. 이게 맞아? 의문스러워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엽서에 우표를 네 장씩이나 붙였다. 예쁜 일러스트가 다 가려진다고 울상을 하면서. 그 와중에도 우표 붙이는 스타일이 서로 다 달라서 깔깔 웃으면서. 노란 우체통에 엽서를 쇽쇽 넣으며 또 깔깔 웃었다. 이 엽서가 잘 도착할까? 설령 그러지 않더라도 즐거운 경험이 될 거라고 믿었다. 그것도 다 여행의 일부였으니까. 








엽서는 정확히 2주 후 금요일에 도착했다. 여행이 불어넣어 준 바람일랑 어느새 싹 잊히고, 다시 현실에 적응하여 퍽퍽해하고 있던 금요일 저녁. 그날따라 유난히 피곤하고 긴 하루였다. 터덜터덜 돌아왔는데 엽서 두 장이 나를 반겼다. 익숙한 호랑이 우표 네 장씩이 나란히 붙은. 


그 안에 친구들의 다정함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여행 내내 서로 나눴던 이야기와, 같이 웃었던 일들과, 주고받았던 감정들에 대해 꾹꾹 눌러 담은 글이. 얼굴 보고는 차마 전하지 못했던 솔직한 속내와 그래서 더 깊은 위로까지도. 이 엽서가 어떻게 이렇게 타이밍 좋게 도착해서는. 


순식간에 호찌민에서부터 불어 온 여행의 바람이 나를 풍선처럼 가득 채웠다. 겨우 엽서 두 장의 효과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환기감. 그제야 우리의 여행이 알맞게 매듭지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쁘게 포장되어 마음속 어딘가에 가뿐히 자리 잡은 느낌. 언제든 원한다면 그 포장을 끄르고 다시 그 향을 듬뿍 마실 수 있게끔. 


여행지에서는 엽서를 보내야지. 여행지에서 그런 기회를 놓친다면 여행이 끝나고 나서라도, 같이 여행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편지를 써야지. 그 여행의 순간들을 듬뿍 담아. 언제든 다시 열어볼 수 있도록, 그래서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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