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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소영 Mar 14. 2019

잿빛 하늘 아래서 미래를 묻다

이게 현실일까? 미세먼지에 잠긴 서울은 SF영화에 나오는 디스토피아 도시 그 자체다. 건물도, 도로도, 하늘도, 심지어 사람들마저 온통 뿌연 회색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들 바쁘게 어느 방향인가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라고 할까, 모든 게 멈춰 서 버린 것 같다. 숨을 쉬기 어려운 공기 속에서 무슨 일이 의미가 있을까.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여름을 기억한다. 그러나 찬바람이 불고 겨울이 지나면서 우리는 그 연옥과도 같았던 여름을 벌써 잊은 듯하다. 전 세계 곳곳에서 일상처럼 일어나는 기상이변들, 가뭄과 기근, 홍수, 태풍, 혹한과 혹서도 그저 수많은 뉴스거리 중 하나로 스쳐간다. 기후 변화에 관한 경고음이 들려와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여가도 애써 무감각해 왔다. 문제에 비해 나는 너무 작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 앞의 일상에 집중했다. 일에 몰두하고 그 외의 시간은 소소한 행복 찾기에 열중해 왔다. 그 결과가 오늘이다. 폐 심장 깊숙이, 뼛속까지 미세먼지가 침투해 들어와도 대책은커녕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다. 

분노를 넘어 집단우울증을 동반한 체념으로 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기 한 신선한 사례를 보고한다. 환경운동의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스웨덴 10대 소녀의 이야기다. 그레타 툰베리는 작년 여름부터 학교에 가지 않고 매주 금요일이면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 변화에 관한 1인 시위를 해 왔다. 유례 없는 더위로 스웨덴에서도 작년 50건 이상의 산불이 발생하는 것을 보고 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레타는 지구라는 집에 불이 붙었다며 어른들의 행동을 촉구했다. 

“우리에게 열심히 공부하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어른들을 만나는데, 그러다가 오늘날 여기까지 왔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고 패닉이다. 그리고 행동하길 바란다.” 고향에서 30시간을 걸려 기차를 타고 온 그레타는 전용 제트기를 타고 다보스에 모인, 성공의 정점에 있는 어른들에게 일갈한다. “전 지구가 당신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대다수 지구인들이 당신들 같은 극소수의 호사를 위해 고통받고 있다”며 기후정의를 촉구했다. 10대들의 눈앞에서 그들의 미래를 훔쳐가는 일을 멈추라는 어린 소녀의 질타 앞에서 다보스는 조용했다.

어디를 보아도 미약한 한 소녀의 결단이 SNS를 타고 질풍노도처럼 전 세계 10대들을 움직이고 있다. 불과 몇 개월 사이 추적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세계 곳곳에서 수만명의 학생들이 ‘학교파업’에 동참하며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오고 있다. 학교로 돌아가라는 각 나라 정치인들에게 “당신들도 기후 변화에 관한 숙제를 했다면 지금 우리들처럼 거리에 나와 있을 것”이라며 2030년까지 탄소 제로 사회를 구현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소리 높인다. 

1990년대 초반부터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화석연료에 기반한 에너지체제를 지목하며 전 지구적 문제 해결을 외쳐온 일명 ‘오존맨’ 앨 고어의 목소리에 드디어 지구인들이 화답하기 시작했다. 지난 25년간 기후 재앙을 몸소 겪은 덕택이다. 매년 상승하는 기온과 폭주하는 이산화탄소 발생량의 상관관계를 의심하는 과학자는 이제 거의 없다. 그리고 기후 변화는 생태 환경 변화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치, 경제, 보건, 국제 관계 등 삶의 전 영역에 걸치는 시스템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금세기 최고의 비극이라 일컬어지는 시리아 내전도 가뭄으로 인한 기후난민 문제에 의해 촉발됐고,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브렉시트 등을 낳으며 유럽공동체의 존립마저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기후재앙의 시계는 그 누구의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것이 기후 변화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2050년 몇몇 해안 도시들이 물에 잠기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온실가스를 줄이는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2050년은 어느 누구도 살고 싶지 않은 미래가 될 것이라는 경고다. 화석연료에서 뿜어져나오는 미세먼지로 헬멧을 쓰지 않고는 집 밖을 나갈 수 없는, 우리가 지난주 미리 경험한 끔찍한 미래도 그 일부다.

탄소 제로 사회로의 이행은 산업혁명 이후 우리가 영위해 온 삶의 패턴을 완전히 뒤엎자는 이야기다. 최근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늘었지만 전 세계 에너지원의 80%를 담당하는 화석연료를 대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우리에게 남은 선택권은 명백하다. 절제다.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여기에 표를 던질 것인가.

놀랍게도 반전은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는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기후정의뿐만 아니라 보편적 사회정의를 외치며 사회주의적 성향이 다분한 정견을 발표하고 있는 20대 여성 정치 신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에게 미국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보편적인 건강보험, 대학 무상교육, 부유세 공약 등을 내세우며 소수자들과 밀레니얼세대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그녀는 10년 내로 전력수요 100%를 자연에너지로 충당하자는 급진적인 ‘그린 뉴딜정책’으로 변화와 혁신의 아이콘이 돼 있다. 기후재앙 앞에서 사회주의는 더 이상 금기어가 아니게 됐다. 

먼지재앙으로 전 국민이 병들고 있는 작금의 한국에서 오히려 환경단체들의 침묵이 경이롭다. 미세먼지가 중국발이 아니라는 중국의 오리발 앞에 입을 떼지 못하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지난 세기 환경운동의 선구자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떠오른다. 봄이 와도 살충제 때문에 더 이상 새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66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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