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행 일기 8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밥심으로 하는 거다. 특히 아침밥은 필수다. 연수 기간 동안 가장 절실히 기다렸던 시간은 아침이었다. 아메리칸 스타일로다가 베이글 빵을 토스터기에 넣고 크림치즈를 잔뜩 얹어 커피 한 잔과 함께하면 끝… 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잡곡 식빵, 아니 흰 빵보다는 양심적이니, 한 장을 토스터기에 바싹 구워 버터를 질펀하게 발라본다. 머리가 잘 돌아가려면 탄수화물 공급이 필수라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스크램블도 빠지면 안 된다. 단백질이잖아. 장 활동을 동와 줄 요구르트만 먹으면 섭섭하니 블루베리와 라즈베리, 멜론을 가득 얹어본다. 디저트로 달달한 스콘도 빠질 수 없다. 당이 떨어지면 곤란하니까. 이렇게 연수기간 내내 엄청 실한 아침 식사를 했더니 살이 붙었다. 동네 마실도 다니고, 맨해튼을 돌아다니고 걷고 했는데도 소용없었다.
오늘은 오전 수업만 있는 날. 수업이 끝나고 동네 마실을 다녀올 생각에 마음이 바쁘다. 다행히 수업에 그럭저럭 적응해간다. 선생님이 지시하는 대로 구글 클래스룸도 들락날락 잘하고, 문제도 잘 풀고 있다. 수업은 별다른 문제가 없는데, 학생들과는 거리 아닌 거리를 두게 된다. 너무 짧은 기간만 참여하는지라 아무래도 나이차를 극복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게다가 정을 주기에도 너무 짧은 시간이다. 선생님이 주말에 무슨 계획 있냐고 학생들에게 묻는다. “식스 플래그요!” 나도 여기서 오래 공부했으면 거기 따라갔을 거야… 식스 플래그 대신 나 혼자 맨해튼을 누볐다. 혼자 다니니 정말 미친 듯 걷게 된다. 삼만보, 금방이네.
친구 없이 혼자지만, 아주 외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같은 반에 말이 통하는 멕시코에서 온 언니, 가브리엘라가 있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몰랐는데, 알고 보니 50대 언니였다. 그녀는 수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어린 학생들은 모기소리만 하게 대답하는데 그녀는 큰 목소리로 반의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60대인 담당 선생님도 그녀의 리액션에 힘을 얻어 더 활기차게 가르치는 것 같다. 선생님이 오늘 어떠냐고 물으면 다른 학생들은 “피곤해요” 혹은 “졸려요”라고 대답한다. 선생님은 20대인 너희들은 왜 그렇게 맨날 피곤하냐며 그럼 우린 어떻겠냐고 가브리엘라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보낸다. 다행이다, 내쪽은 안 봐서. 그녀는 자기는 무척 컨디션이 좋다며 크게 웃는다. 에너자이저인 그녀가 여기 온 사연이 궁금했다.
두 딸의 엄마인 가브리엘라는 9개월이란 제법 긴 시간을 내서 여기 왔다고 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알고 보니 그녀는 도치맘이었다. 15살 딸을 혼자 보내려니 너무 걱정이 돼서 따라왔다고 한다. 물론 그 아이가 다 크긴 했지만, 그래도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옆에서 챙겨주고 싶어서 함께 왔다고 한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여기 캠퍼스에 이런 도치맘이 한둘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한 번은 40대 여성과 10대 남자아이가 살짝 거리를 두고 걸어가는 것을 봤다. 누가 봐도 엄마와 아들. 앞에 가는 아들은 누가 알아볼까 겁나, 엄마와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데, 뒤에 따라가는 엄마의 시선은 아들 뒤통수를 떠나지 않는다. 물론 아들 입장에서는 여기 어학연수까지 와서 엄마랑 함께 있는 게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멀리 타국에 있으면서 엄마의 손길이 그리울 때, 또 엄마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분명 있긴 할 터. 그런 의미에서 든든할 것 같기도 한데, 그건 순전히 엄마 입장에 가까운 내 생각이다. 아이들은 당연히 엄마 없는 자유를 더 원할 것이다. 이를 너무 잘 아는 가브리엘라도 딸이 자유로이 있을 수 있게 최대한 배려한다고 한다. 딸이 원할 때만 옆을 지킨다는데, 정말 전형적인 도치맘 아닌가. 멕시코에도 이런 문화가 있다니, 신기하다. 뭐 아이 덕분에 엄마까지 영어가 유창해지면 그것도 좋은 일이니, 도치맘 어학연수, 뭐 괜찮네.
나이로도 통하지만, 가브리엘라는 내가 한국사람이라 더 좋아했다. 딸이 kpop을 너무 좋아해서 자기도 함께 보다 보니 k drama까지 다 섭렵했다고. “딸과 함께 한국에 방문하는 게 꿈이야. 2년 안에 가고 싶은데, 그때 가면 만나줘.” 그래, 정말 그녀와 한국에서 만나게 될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녀와 종종 인스타로 연락을 하는데, 맨해튼에서 공연도 보고, 여기저기 구경 다니는 그녀를 보니 대리만족이 된다. 아, 그녀는 승급이 돼서 더 높은 레벨로 올라갔다고 한다. 나도 거기 계속 있었으면 그럴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의 기억이 흐려지고 있다. 내 글을 읽는 독자 중의 한 분이 묘사가 세세하다며, 여행 다닐 때 그날그날 메모를 하는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사실 따로 적어놓지는 않는다. 그래서일까, 여행에서 돌아와 글을 쓰면서 그 경험들을, 그 추억들을 되살려보려고 머리를 쥐어짜는 경우가 많다. 그럴 거면 메모를 남겨두면 훨씬 수월할 텐데,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그 당시에 바로 느끼는 감정들도 중요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와 그 시간들을 반추할 때 떠오르는 감정들이 더 신선하기도 하고, 더 정리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세세한 순간들은 놓치기도 하지만,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추억을 다시 만들어내는 시간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후회는 한다. 뭐였더라, 무슨 생각했었는데, 뭐지? 그럴 때는 그냥 놓아주어야지 어쩌겠나. 생각이 안나는 거면 잊어도 되는 것들이라고 믿을 수 밖에.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누군가가 읽을 이 ‘뉴욕행 일기’ 시리즈가 내게도 소소한 자극과 함께 생각할 여지를 준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뉴욕행 일기, 다음 이야기가 기대가 된다. 뉴욕도 다시 가고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