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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Dec 07. 2022

미술관 가는 길

 예술의 의자, 의자의 예술

1872년 작은 가구 공방으로 시작해 올해로 150주년을 맞이한 프리츠한센은 당대 뛰어난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으로 끊임없는 변화를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 아르네 야콥센은 덴마크 기능주의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시리즈 7, 에그, 스완 등 프리츠한센을 대표하는 의자 컬렉션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1956년 스칸디나비아 항공은 아르네 야콥센에게 호텔의 설계를 의뢰하는데, 그때 나온 의자가 바로 ‘에그’이다. 호텔 로비에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넣어 달라는 호텔 측의 요청을 반영한 야콥센이 칸막이 대신 몸을 감싸 앉는 형태의 1인용 의자, 에그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가죽 소재의 에그는 1100여 번, 천 소재의 에그는 500여 번의 바느질이 들어간 공정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매끈한 곡선으로 사람을 편안하게 품어줄 것만 같은 에그는 프리츠한센의 의자 컬렉션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면 내 공간에 꼭 들여놓고 싶다고 한번씩 꿈꿔보는 의자이다.

에그 체어 (사진: 프리츠한센)

 야콥센의 에그 체어가 나오기 몇십 년 전, 1929년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세계 박람회의 독일관 설계를 의뢰받는다. 막힘없이 탁 트인 전시장에 어울리는 의자가 없어 고민하던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고대 이집트의 귀족 의자에서 영감을 받아 ‘바르셀로나 체어’를 디자인한다. X 자 모양의 크롬 도금된 틀 위에 가죽 시트와 등받이가 놓인 이 의자는 의도치 않게 전시회 못지않은 엄청난 관심을 받게 된다. 결국 1948년 Knoll 놀에 가구 제작 독점권이 부여되면서 바르셀로나 체어는 대량 생산되게 된다. 당시에는 이렇게 의자 다리가 아래로 향하지 않고 45도 이상 옆으로 누워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디자인이었는데,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여전히 새롭다. 옆, 앞, 뒤, 그 어떤 방 향에서 봐도 아름답고 심지어 고고해 보이는 바르셀로나 체어는 털썩하고 앉기에는 왠지 거부감이 든다. 예술품처럼 조심스럽게 다루고 싶지만, 막상 앉으면 다른 의자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안정감이 있다.

바르셀로나 체어 (사진 :knoll)


 에그 체어나 바르셀로나 체어는 모두 건축가가 디자인한 의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건축가의 의자라면 르 코르뷔지에의 ‘LC2’ 와 ‘LC3’ 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신제품을 소개할 때마 다 교복 같은 검은색 터틀넥에 청바지를 입고 앉았던 바로 그 의자이다. 스티브 잡스 의자로 알려진 LC3는 LC2에 비해 폭이 넓고 쿠션이 하나로만 되어 있는 차이점이 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의 이름을 줄여 의자 이름을 지었는데, 실제로 이 의자를 디자인하는 데는 샤를로트 페리앙의 공헌이 크다고 한다. 건축은 최첨단인데, 그에 비해 가구는 그렇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르 코르뷔지에가 페리앙을 영입해 LC2를 완성하게 된다. 처음 제작된 1920년대를 상징하는 소재인 강철관이 아름답게 L자형으로 구부러진 소파로, 엄청 푹신해 보이는 네모난 쿠션이 공간을 꽉 채워준다.

스티브 잡스와 lc2

 이렇게 의자는 공간을 구성하는 인테리어 아이템 중에 가장 흔하면서 이용 빈도가 높아 실용적인 동시에, 의자 하나만으로도 공간의 느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이기도 하다. 실제로 의자는 그것이 놓인 공간의 느낌을 정의한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바르셀로나 체어에 앉아 풋스 툴에 다리라도 올리고 앉아 있으면 성공한 사업가의 집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갈색의 에그 체어가 놓인 침실은 알을 품은 것 같은 따뜻한 공간으로 변형된다. 검은 LC3가 여러 개 놓인 라운지는 비지니 스나 예술을 논해야 할 것 같은 지적인 대화의 장으로 탈바꿈한다. 의자에는 이렇게 회화나 조각 같은 예술품처럼 공간의 분위기를 압도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모든 의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뛰어난 디자인으로 잘 만들어진 의자는 시대를 초월하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예술 작품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디자인적으로 아름답고 혁신적인 의자를 만나면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는 것처럼 경외감이 드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의자로도 예술적이지만, 단체로 모인 의자는 마치 설치미술을 보는 것 같다. 보테가 베네타의 2023 S/S 컬렉션의 무대에도 의자들이 단체로 등장해 런웨이 공간을 역대급으로 환상적으로 연출했다.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가에타노 페셰는 무대에 레진을 부어 다양한 무뉘를 바닥에 새기 고, 밝고 경쾌한 색으로 구성된 레진 의자 400개를 놓았다. 인류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보여주기 위해 각기 다른 400개의 의자를 준비했다는데, 한마디로 의자의 향연이다. 이 무대 그대로 미술관에서 바로 전시를 진행해도 될 만큼 예술성이 극대화된 사례이다.

사진 : 보테가베네타

 미술사에도 꽤나 유명한 의자가 있었다. 조셉 코슈스의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 One and Three Chairs>. 제목부터 꽤 묘한 느낌인데, 실제 의자 하나를 가운데에 두고, 양옆에 의자를 찍은 사진과 의자의 정의를 써붙여 놓은 전시였다. 작가는 나란히 제시한 세 가지 의자를 두고 어떤 것이 진짜 의자인 지 질문을 던졌다. 실제의 의자(레디메이드)와 의자 사진(자료 형식), 사전 항목의 복사(언어)로, 세 가지 형식의 의자가 동어반복의 형태를 이루게 된다. 개념미술의 상징으로 불리는 이 작품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고, 실제로 이런 전시를 미술관에서 마주치면 도대체 이게 뭐냐고 화가 날지도 모른 다. 그러나 마르셀 뒤샹 이후, 미술의 정의는 새롭게 재정립되었다. 그것에 동조하든 아니든, 코슈스의 의자는 우리 현대 미술사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의자임에 분명하다.

조셉 코슈스의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 One and Three Chairs>.

 우리나라 개념미술가 안규철 작가는 배 젓는 노를 4개의 다리로 삼은 ‘노 젓는 의자’를 전시했다. 형태부터 기괴해 보이는 이 의자는 한 곳에 머물러야 하는 의자에 어울리지 않은 4개의 노를 다리로 만들었다. 그 노를 동력 삼아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상상이라도 해보라는 의미일까.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버 리지 못한 인간의 꿈을 응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작가는 이렇게 사물의 본래 기능을 변형하고 왜곡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삶을 성찰한다.

 작가는 ‘의자의 용도’라는 제목으로 여섯 개의 의자 그림을 그렸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두 손 모아 기도하기도 하고, 의자 밑에 숨기도 하고, 의자를 들고 벌을 서기도 하고, 누군가에 잡혀 의자에 묶이기도 하고, 의자 위에 서서 뭔가를 바라보기도 한다. 작가가 제시한 용도만 해도 여섯 가지인데, 예술에서 정의하는 의자의 용도는 기존의 의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 정도로 다양하다. 이렇게 고착화된 생각을 타파하는 게 예술의 본질이라면, “예술 속 의자”는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변혁의 아이콘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사랑받는 “실생활의 의자”들은 예술과의 접점이 충분히 있다.

의자의 용도, 2016, pencil on paper , 안규철

 2022년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호에 이렇게까지 방대하게 의자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안규철 작가 가 제시한 6가지 용도 외에 다른 용도 하나를 더 추가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혁신적인 제안은 아니고, 의자에 앉아 나를 다독이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올 한 해 애썼던 나를 보듬고 내년을 편안하게 맞이 하기 위한 의식 같은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의자가 필요하다. 의자에 편히 앉아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을 하며 나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으면 다이어리에 옮겨보는 것이 다. 혹시 의자는 있지만 “이런 용도의” 의자는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나에 대한 격려의 차원이라는 꽤 괜찮은 핑계도 있으니, 이참에 눈여겨보았던 의자를 사보는 것은 어떨까.


##여성조선 12월호에 실린 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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