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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곽 Oct 10. 2024

미니멀 라이프?그런건 아니고 그냥 청소!

묵은 암도 사라지고, 묵은 짐도 사라져라!


  암 수술 후 친정에서 보냈던 2주간의 재택 소변줄 착용도 끝나고 나의 아들과 남편이 있는 진짜 나의 집에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청소였다. 내 몸에 있던 암 찌꺼기만큼이나 우리 집에 가득 차 있던 물건, 물건, 물건들. 특히 둘째 키울 때 쓰겠다며 버리지 못하고 모아뒀던 첫째의 육아용품이 우리 집의 방 한 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부피 큰 보행기 같은 탈 것 장난감들, 기저귀 갈이대, 모빌 등. 모두 다 치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건강을 회복하고 둘째를 다시 낳고 싶다는 소망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아니니까. 안되니까.

 

  떠올려보니 집에서 생활하면서 항상 숨 막힐 정도로 꽉 들어찬 짐들이 꽤 답답했던 것 같다. 아기 용품도 아기 용품이지만 부부가 둘 다 낮에는 출근하고 오후에는 정신없이 아기를 보면서 미처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집안은 구석구석 정리되지 못한 물건과 먼지들로 가득했었다. 아기만 낳으면, 둘째 낳고 1년 정도 지나면 다 처분하고 치워서 깨끗하게 해야지 하며 못 본 척했던 짐들. 돌보지 못했던 것은 내 몸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집안을 돌보지 못해서 내 몸이 아팠을까.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 후에는 묵은 때를 밀어내듯 모든 짐을 덜어내기 시작했다. 커다랗고 쓸만한 것은 중고거래로 팔고, 작고 괜찮은 것들은 친구도 주고, 그리고 남은 것들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꽤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오전 내내 청소하고 점심을 해 먹고, 또 운동을 하고 나면 아기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시간이었다. 힘은 들었지만 그만큼 개운했다. 커다란 물건이 사라지면 생기는 딱 그만큼의 공간이 나에게 여유를 주었다. 공간이 비었을 뿐인데 내 마음속의 여유가 생기다니 신기했다. 예전에 어떤 일본인이 쓴 청소력이라는 책에서 청소를 하면 청소하는 사람에게 에너지가 생긴다는 글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이런 게 바로 청소력일까? 중고시장에 물건을 내놓고 파는 것도 꽤 품이 드는 일이었다. 물건을 꺼내고 전시해서 사진을 찍고 게시물을 올려서 약속을 잡아 만나고. 그런 시간까지 청소에 포함해 한 달여간은 집안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청소에 집중했던 것 같다. 짐을 덜어낼 때마다 내 몸속에 찌꺼기들도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 후에 할 일은 이제 재배치였다. 육아용품으로 가득 찼던 어떤 방에는 나의 작고 소중한 아이를 위한 그림 공간을 만들어줬다. 그 방은 원래 한쪽 벽이 신혼 때 칠해놓은 칠판 페인트 덕에 남편이 칠판으로 쓰던 곳이었다. 이제 그 공간은 아들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색색깔의 분필을 마련해 주고 칠판지우개도 사줬다. 그리고 쓰지 않는 집기를 정리해 깔끔해진 주방에는 그동안 들이지 않았던 식탁을 들였다. 한동안 어른은 아파트에 기본 옵션으로 있던 아주 좁은 아일랜드 식탁을 쓰고 아기는 하이체어를 사용하여 함께 식사를 했었는데, 아일랜드 식탁이 아기의 하이체어 식판보다 높아서 아기는 우리의 식탁을 바라보지 못했었다. 차려진 음식을 함께 바라보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식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좁은 주방이지만 최대한 공간을 내어 길쭉한 타원형의 밝은 나무색의 식탁을 들였다. 같은 높이에서 밥을 먹는 첫날, 너무 기뻤다. 예쁜 식탁에 마주 앉아 이렇게 웃으며 밥을 먹을 수 있는 행복이라니. 진작 식탁을 살 걸 그랬어.


  베란다를 쓸고 닦았다. 베란다 역시 말도 못 하는 상태였는데, 신혼 때 욕심 내서 들였다가 방치된 10인용 식탁이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어서 우리 아파트가 10년이 넘은 구축이라 베란다가 굉장히 넓었음에도 불구하고 창문이 안 보일 정도였다. 우선 그 식탁부터  마침 친정 부모님이 식탁을 바꿔야 해서 이때다 하고 보내버렸다. 베란다 한켠에 박혀있던 팬트리에 있는 물건들도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건 남기면서 치웠다. 그리고 햇빛이 잘 드는 창가 쪽에는 화분을 들였다. 화분을 사는 것도 이번 기회에(?) 생긴 새로운 취미인데 따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어쨌든 기존에 있던 화분 중에 살릴 만한 것은 살리고, 화원에 가서 몇 개 새로 들여오면서 꾸며줬더니 기분이 좋아지는 새로운 공간이 되었다. 다 치우고 나서 역시 구석에 처박혀 있던 캠핑의자를 창밖이 보이도록 설치해 두고,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며 차 한잔 마시니 벌써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청소는 계속해서 현재진행 중이다. 인터넷이나 SNS에는 어쩜 그렇게 청소면 청소, 요리면 요리 살림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가끔씩 한번 들어가 보면 '나도 여기 치워야지', '저기도 치워야지' 또 새롭게 치우고 싶은 곳이 한가득이어서 자극을 받을 때마다 정리 중이다. 물론 실천은 다른 문제지만. 일단은 묵은 짐을 덜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집안 공기가 달라진 것 같아서 몹시 행복하다. 첫 단추가 청소라니. 벌써 뭔가 잘 될 것 같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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