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저도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답니다.

by 옥상 소설가

" 니 사주가 아주 세단다. 결혼한다면 결국 이혼할 거고 만약 하더라도 니 기가 세서 지후가 죽을 수도 있단다.

유명한 점쟁이도 그렇고, 용하다는 스님도 그러시니

결혼을 안 하는 게 가장 좋고 만약 결혼을 하려면 굿을 하는 게 좋단다.

아버지가 요즘 세상이 그런 게 어딨냐고 그냥 시키라고 하셨지만.

나는 썩 내키지가 않는구나..... 그래도 지후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하니

정 결혼을 해야겠다면 니 기운을 누르는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내가 니 이름은 받아왔다. 그렇게 할래? "


"네, 그렇게 할게요. 저는 상관없어요.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렇게 나는 27년간 불리고 소개했던 나의 이름 '세희'를 시댁의 결혼 승낙과 단숨에 바꾸었다.

내 이름은 이제 ' 은서 '이다.

친정에는 허락을 구하지도, 이름을 바꾸게 된 내막도 말하지 않았다.


' 괜찮아...... 내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 그건 아무 의미 없어. '

" 나를 세희 라 부르지 말고 은서라고 불러줘."

"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은서 에요."


친정 식구들에게 내 이름을 더 이상 세희 라 부르지 말라고 특히나 남편과 시댁 사람들 앞에서는 조심해 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들과 지인들에게도 나의 새로운 이름을 소개했다.


" 그래야 결혼해서 잘 산데. "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친정 식구들의 반대는 없었다.

나는 어서 가야만 했다. 결혼이라는 종점으로, 가족 모두가 내가 그곳에 도착하기를 바랐다.

보통의 사람들이 가는 곳이니까. 그래야 나도 모두들 편안할 것 같았다.

가는 길에 소음은 만들지 말자. 자존심 같은 건 내세우지 말자.


지금의 나에겐 사치이다. 무조건 시댁에서 하라는 데로 하자.

"NO"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말할 수 없는 단어이다.

현재의 나에겐 오직 "YES"만이 뱉을 수 있는 말이다.

아니라고 말할 능력도 여유도 용기도 없다.


엄마와 함께 둘째 언니 집에 얹혀사는 나에게 결혼은 꼭 가야 할 안식처와 같았다.

그곳에서만이 편안히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엄마는 나에게 보호자가 돼 주지 못했다.

대학생이었던 나도 그녀의 보호자가 될 수 없었다.


우리에겐 성인 남자가 필요했다. 가장은 형부가 되어주었다.

처제가 결혼을 할 때 모녀가 둘이 살았다는 것은 흠이 될 수 있다고

언니 내외와 같이 살다가 결혼하는 것이 더 보기 좋을 것이라 말했다.

어린 형부에게 그의 아내와 두 아이

그리고 장모와 처제라는 군식구를 덕지덕지 붙여 버렸다.

그는 책임감이 강했고 묵직한 사람이었다.

살가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식구가 되는 것과 되어주는 것은 다르다.

되어야 하는 것은 "의무와 책임"이 필요하다.

그 단어들은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 자체가 피곤함이다.

책임감을 가진 사람은 그럴싸하게 멋있게 보이게 하지만 그것을 들고 가는 자를 무겁게 짓누른다.

나는 그 "무게"를 형부에게서 덜어내고 싶었다.

떼어내야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나는 그들에게 필요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 GIVE AND TAKE "

그것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법칙이다.

부모 자식, 형제, 부부, 친구, 애인 사이엔 필요 없다고?.....


아니, 그건 철 모르는 눈치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다.

가족 간에도 그 법칙을 잘 지키는 사람은 무난하게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가족에게 그 법칙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순진함이 나는 부러웠다.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그들이 살아왔다는 이유이다.

존재하지 않았으니 몰랐고,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 너희는 천당에서 살았던 거야. 행복한 거야.'


조숙하다는 것은 철이 들었다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슬픈 단어이다.

결핍과 가난함 부모의 불화는 아이를 철들게 한다. 나는 어렸지만 애어른이었다.

눈치가 빠르고 타인들의 마음에 들도록 나를 조각해댔다.

욕심, 순진함, 아이다움 '나'다움 을 모두 도려내야 했다,

그들의 욕망과 필요에 맞도록, 버림받지 않도록 나를 깎아내야만 했다.'


' 내 아이는 빨리 철이 들지도 눈치가 빠르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해맑고 철이 없는 아이다운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어.‘


어린 나는 나중에 엄마가 되면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생각하곤 했다.

그것은 내가 그런 아이로 자라고 싶은 욕심이기도 했다.


법칙의 나라에서 살던 내가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냥 '나'로 살고 싶었다. 철없는 ‘나’로 살고 싶었다.

이 남자랑 살면 그곳에선 아이로 살아도 될 것 같았다.

그곳에서 그의 보호 아래 살고 싶었다.

무엇을 주고 싶지도 받고 싶지도 않았다.


군식구로 살아가려면 계속 주어야 하고, 받아야 하고, 존재의 명분과 합리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들을 계속 생각하며 계산해야 하는 나의 삶이 지치고 힘들어져 갔다.

언니와 형부의 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했고 갈등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동생과 엄마를 데리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남편, 시댁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형부는 장모, 처재와 동거 시 발생하는 장점을 본가에 설명해야 했다.

불편함과 경제적인 부담감들을 상쇄시킬 수 있을 정도의 이익이어야 한다.

그것을 바라는 그를 이기적이라고 속물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는 어렸고 가난한 가장이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게으름, 지저분함, 무능은 나의 몸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그것들이 내게 조금이라도 붙어있으면 그들과 동거할 수 없다.

서럽지만 어쩔 수 없다. 그들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니, 그들은 나의 부모가 아니다.

나는 부지런히 청소하고, 요리하고, 조카들을 돌보고, 돈을 벌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주어야 했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하다고 믿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내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가벼워지고 싶었다. 몸에 붙은 것들을 미련 없이 훌훌 털어내고 싶었다.

넓은 집이 아니어도, 잘 먹고 잘 살지 않아도 상관없다.

좁고 오래된 집이라도 나만의 것을 꼭 가지고 싶었다.

나는 자연스러운 곳에서 편안히 살고 싶었다.


보호자도 더 이상 형부가 아닌 지후가 되어주었으면 했다.

늦잠을 자고 , 설거지를 미루고, 빨래도 자주 돌리지 않고, 하고 싶은데로 하고 싶었다.

' 그래, 나도 이제 내 집을 가져야겠어.

그러면 편안해지겠지.'


이름 따위를 바꾸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상관없어.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 그런다고 나를 바꿀 수는 없어. 나는 나니까. '

나는 그렇게 내 이름을 갈아 치웠다.

그러면 내 인생도 새것이 될 거라 생각했다.


결혼은 보통 사람들의 속도와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나도 드디어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가는구나.

음.... 좋아. 이제 나는 자유로와 질 수 있을 거야.

나는 기대하고 있었다.

더 나은 행복한 인생이 펼쳐질 거라고......


나는 몰랐다.

타인을 위하여, 결혼을 위하여

나의 이름을 바꾼 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혼을 위하여 내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현재의 나를 바꾼다는 것이고 미래의 나도 바꾸겠다는 약속이며 다짐이다.


내 의지나 욕망이 아닌 결혼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변경한 나의 이름.

잘 한 선택이었고 영리했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나는 곧 후회하게 되었다.


나의 보호자 지후는 나를 보호할 정도로 강하지 못했다.

결혼 생활에서 지후와 나는 서로에게 보호자가 돼주어야 했다.


성인이 된 내가

일방적인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그에게 시부모님들께 복종해야 함을 의미했다.


자녀가 독립하기 전까지는 부모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성인은 스스로에게 보호자가 되어야 하고 배우자에게 보호자가 돼주어야 한다.

서로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관계만이 평등하고 자유롭고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10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용하다는 점쟁이의 말처럼 나는 기 센 며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