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검댕이를 토하는 남편

영자 이야기

by 옥상 소설가

지후는 요새 들뜬 듯 보였다.

얼굴에는 밝은 빛이 돌고 돌장이 아가 때처럼 생글생글 웃고 다녔다.

나를 안으며 " 엄마 " 내 팔뚝살을 꼬집는 횟수가 늘어났다.


아직 나를 사랑하는 것이 분명했다.

다른 아들들은 엄마를 쳐다도 보지 않고, 대꾸도 안 한다는 데

대학교 3학년인 지후, 내 아들 지후는 껴안고, 꼬집고, 다정하고, 나와 눈을 맞춘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나의 착한 아들


숨통이 막힐 때마다 지후는 나를 숨 쉬게 만들었고

집을 나가고 싶을 때마다 지후의 물방울처럼 쳐진 눈망울은 나를 끌어당겼다.

남편은 큰돈은 아니었지만 적은 생활비라도 매달 주는 성실한 가장이었고

때리거나 욕설을 퍼붓지도 않았다.

단지 자신의 말을 조금이라도 거역하거나 토를 달면 밤새도록 왜 그의 말이 맞는지 설교를 들어야 했고

절대적인 복종과 만족할 만한 항복을 받아야 겨우 그에게서 풀려날 수 있었다.


집요한 눈빛, 주장과 설교

남편의 모든 말은 참, 정당함, 순리였고

나는 거짓, 어리석음, 억지 투성이었다.

남편은 순하고 착한 여린 남자였다.

그는 부모 없는 우리 동네 착한 고아

여동생 둘 , 남동생 둘을 간신히 먹여 살리는 키 크고 마른 총각이었다.

나를 얼핏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말은 걸지 않고 우리 집 앞만 계속 서성댔다.

그와 결혼하면 고생할 게 뻔하다고 엄마는 속초 이모네로 나를 보내버렸다.

세 달 뒤 다시 돌아왔을 때 내가 돌아온 것을 알고

그는 다시 우리 집 대문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 영자 씨, 연애합시다, 결혼합시다. ” 그런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소처럼 커다랗고 큰 눈을 껌뻑 껌뻑거리기만 했다.

세 달 동안 더 말라비틀어진 그를 보고

이러다 사람 하나 죽이겠다 싶어 겁이 났고, ‘ 내가 뭔 대수라고?......’

하는 맘으로 결혼을 결심했다.


‘ 그래, 살아보자. 열심히 살다 보면 살아지게 마련일 거야. ’


나는 그렇게 꺼이꺼이 우는 엄마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

강원도 한백, 남편은 깜깜한 탄광에서 석탄을 캤고

석탄으로 쌀을 바꿔 나와 지후를 먹여 살렸다.

검정 보리밥을 갱도에서 맛있게 먹었고, 목이 타면 까만 물을 수도 없이 들이켰다.


퇴근 후 돌아온 그를 수돗가에서 등목 해주면

깔깔깔 웃으며 “ 어 우리 마누라 시원하게 잘한다. ” 큰 소리로 말하곤 했다.

“ 조용해요, 옆집에서 들으면 주책맞다고 욕해요. ” 하면서도 실없는 그가 좋았다.

‘ 앙상한 갈비뼈에 언제 살이 붙을까?......’

내일은 장에 가서 돼지고기를 사 와 잔뜩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등 목물이 차갑다고 소리치면서도

코를 풀거나 컹컹거리며 가래를 뱉으면 그의 입속에서 검댕이들이 뭉텅뭉텅 나오곤 했다.

내가 볼까, 지후가 볼까, 검은 그 사체를 맨발로 몰래 뭉개어 흐르는 물에 사라지게 하는 속 깊은 이였다.

씻겨 내려가는 검은 가래를 보면서도 나는 못 본체 했다.

매일 아침마다 저녁마다 끊임없이 나오는, 성실한 가래들을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양 모른 체했다.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게 이를 악물고 연신 눈물을 훔쳐댔다.

때때로 나는 장님이었고 벙어리였다.

눈물이 펌프 물과 뒤섞여 그의 등으로 떨어졌다.

내 눈물이 차가운 물들이 그의 피부를 뚫고 폐로 들어가

지층처럼 켜켜이 쌓인 검은 가루들을 모조리 씻어 냈으면...... 바라고 또 바랬다.

어느 밤 검은 가래가 개미지옥처럼 남편을 빨아들이는 꿈을 꿨다.

‘ 안된다고, 살려 달라’ 고 외쳤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두 팔만 공중에서 부질없이 휘둘러댔다.

결국 남편은 검댕이 들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꿈이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인지 모를 서러움과 두려움에 대성통곡을 했다.

남편은 야간작업을 들어갔고, 지후는 자고 있었다.

새벽이 올 때까지 잠을 잘 수도, 울음을 멈출 수도 없었다.

지후가 깨지 않도록 손수건을 어금니에 꽉 물고 " 윽윽윽~ " 소리만 내며 눈물만 흘려댔다.

울다 지쳐 어느새 잠이든 나를 깨운 건 지후였다.

배고픈 지후가 내 옷을 걷어 올리고 젖을 야무지게 빨고 있었다.


‘ 내 새끼, 내 아들 ’ 얼굴과 눈은 퉁퉁 부어있었지만 웃음이 났다.


그래도 나는 아무 일도 없는 듯 남편을 검은 동굴로 들여보내야 했고

밥을 먹어야 했다. 그래야 지후에게 양껏 젖을 물릴 수 있었다.

몰염치한 나는 그가 가져오는 월급을 침을 묻혀가며 새고 또 새었다.

그러면 한 달이 가고 월급날이 오고, 또 한 달이 가고 그렇게 차곡차곡 통장에 돈이 쌓여 갔다.


넉넉하진 않아도 지후에게 돌쟁이 한복도 입히고 장난감도 사줄 수 있었다.

아장아장 걷고 웃는 지후가 세상 유일한 남편과 나의 낙이였다.

동네 여자들은 자식들에게 검은색, 회색 옷만 입혔지만

나는 지후를 모조리 흰색 티셔츠와 남방 반바지, 양말로 입히고 신겼다.

지후가 좋아하는 캐릭터 허리띠까지 채우고 서울 부잣집 도련님처럼 곱게 키웠다.


‘ 내 아들이니까 너는 하얀색만 노란색만 고운 색만 입힐 거야.’

탄광촌에서 흰옷이 웬 말이냐고, 그러다 손목 나간다고

관문 엄마는 핀잔을 줬지만 나는 들은 척도 안 했다.

검은 석탄 가루가 묻을 세라 나는 지후의 옷을 연신 빨고, 삶고, 다리고

하얗게 지후를 키워갔다.


새까만 남편이 있어야

새하얀 아들로 키울 수 있었다.

지후를 새 하얗게 키우려면 새까만 남편이 필요했다.

남편은 까만 손으로 지후를 쓰다듬고 얼굴을 비벼댔다.

지후는 아빠 손톱 밑에 지지가 산다고 “지지, 지지” 했지만 남편은 그 마저도 웃고 좋아했다.


찜통에서 삶아지는 듯 무더운 어느 날

“ 위~~~ 잉, 위~~~ 잉 ”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연달아 이틀째 , 막장이 또 무너졌다.


‘ 어제는 아무도 다친 이가 없었는데 오늘도 다친 이가 없어야 할 텐데...... ’

빨래를 하다가 놀래서 지후를 둘러업고 탄광으로 달려갔다.

쿵쾅쿵쾅 심장이 뛰고 정신이 아득하다.


‘ 지후 아빠인가? 아니야 재수 없는 생각일랑 하지를 말자.’


조장 남자가, 건장한 사내들이 팔, 다리가 축 쳐진 남자들을 업고 나왔다.

여기서 저기서 여자들의 곡소리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 개똥이 아빠, 아빠, 민석아 ”


늙은 여자, 젊은 여자, 아들, 딸 들이 수많은 이름들을 불러댔다

실려 나온 남자들은 누군가의 남편, 아들 , 형, 동생이었다.

아수라장에 놀란 지후도 울어대기 시작했다.


“ 지후 아빠 어디 있어요? ”


나는 먼저 나온 광부들을 잡고 소리쳤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들것에 실려 나온 남자들을 향해 나는 냅다 뛰어갔다.

숨이 붙어있는 남자들은 병원으로 실려 갔고 죽은 자들만 땅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었다.

모두들 새 까매서 구분해 낼 수가 없다.


“ 퉤퉤 ” 침을 뱉어 꺼먼 얼굴들을 정신없이 닦아낸다.

내 남편이 아니길 빌며 박박 문질렀다.

“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없어, 없어, 없어. ”

다행히도 지후 아빠는 없었다.

그러나 다행이라고 웃을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곳곳에서 짐승들이 포효하기 시작했다.

수컷을 잃어버린 암컷들과 새끼들이 몸부림치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기절하고 혼절해버린 사람

기괴한 춤을 추듯 온 몸을 비틀며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괴상한 소리를 내는 사람

일그러진 얼굴로 머리통과 얼굴을 때리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

옷을 찢고 가슴을 쥐어뜯는 사람

그들은 사람이 아닌 짐승들이었다.

앞집 석철 엄마도, 문간방에 새들어 사는 관문이 엄마도 없었다.

울부짖는 짐승들로 모두 변해버렸다.

오직 남편과 아들이 무사한 여자들만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다.


‘ 내 남편이, 내 아들이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야. ’

라고 안도하며 얄팍한 동정심으로 짐승들을 불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남편은 터덜터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마지막에 걸어 나왔다.

달려가 그의 가슴을 쳐대며 울기 시작했다.

“ 이제 나오면 어떡해요? 심장이 터져 나를 죽일 생각이에요. ”


그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나를 밀어내고, 누워있는 누군가에게 다가가

한 참을 소리 내어 울고, 얼굴을 만지다 집으로 돌아갔다.

“아빠” 하고 아장아장 걸어간 지후를 통나무처럼 밀쳐냈다.

울고 있는 지후를 얼른 안고 그를 따라갔다.


'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 종수 아빠의 죽음보다 지후 아빠가 죽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고

비명과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집으로 어서 돌아가고 싶었다.



굴이 무너져 사람이 다친 적은 수차례이지만 친한 친구가 죽은 적은 없었다.

저녁이면 두런두런 앉아 삼겹살이며 돼지 껍질을 같이 구워 먹던 종수 아빠가 죽어버렸다.

같은 고향 출신이고, 장남이며, 순하고 착하다고

남편은 동갑내기 종수 아빠를 좋아하고 유난히도 챙겼다.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있는 종수 아빠의 입속에서 석탄 가루를 파내며 남편은

“ 종수야, 종수야, 종수야~ ” 나지막이 흐느꼈다.

“ 미안하오, 미안하오, ” 무엇이 미안한지 얼이 빠져 우는 종수 엄마에게 연신 미안하단 말만 되풀이했다.

남편은 한 달 가까이 시체처럼 누워만 있었다.

물을 마시지도, 밥을 먹지도, 말을 하지도, 잠을 자지도 못했다.

“ 앙 ~ ”하고 지후가 울면 남편이 시끄럽다고 소리를 질러

얼른 놀란 아이를 둘러업고 마당으로 나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벌떡 일어나더니 서울로 가자고 했다.

당장 짐을 싸라고 떠냐야겠다고만 했다.


“ 복덕방에 집도 내놓고, 집주인한테 보증금도 받고, 여비를 마련해야 지요. 당장 어떻게 갑니까? ”

어이없어하는 내 말에 남편은 버럭 화를 냈다.

“ 저녁마다 종수 아빠가 찾아온다.”


움찔 놀란 나는 그 길로 조용히 짐을 싸고 이사 준비를 했다.

집주인에게는 친정 엄마가 아파서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됐다고

세가 나가면 보증금을 보내 달라고 전화했다.

마음 좋은 집주인 할머니는 이유도 묻지 않고 “ 가서 잘 사소, ” 한마디만 하셨다.

할머니는 남편과 두 아들을 탄광에서 잃었고 남은 아들과 딸을 데리고 서울로 떠났다.

세를 사는 사람이 갑자기 이사 간다는 전화는 탄광사고로 가족이 상했거나 죽었을 때라는 걸

할머니는 잘 알고 있었다.


짐이라고 해봤자 이불 보자기로 싼 덩어리 몇 개뿐이었다.

옆집으로 뒷집으로 인사를 하려고 갔지만 석철 엄마도, 관문이 엄마도 모두 갱도로 일하러 나가고 없었다.

죽은 남편 대신에 새끼들을 먹여 살려야 했던 여자들에게 회사가 일거리를 주었다.

보상금은 적었고, 산 사람들은 살아야만 했다.

여자들은 매달 일정한 돈이 필요했다.

새끼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에 보내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광부들이 캐낸 석탄 자루를 밖으로 옮기고, 레일 위 석탄 무더기에서 불순물들을 골라내는 일이었다.

팍팍한 품삯 이어도 그 덕분에 새끼들을 키울 수 있었다.

행여나 일자리가 떨어질까 회사에 새색시 마냥 고분고분했다.

해가 떨어져야 돌아오는 그녀들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서

가져간 감자, 옥수수 바구니를 마루에 두고 왔다.

아이들은 낮잠을 자고, 지들끼리 놀고, 일부는 밖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어미 잃은 강아지처럼 때가 꼬질꼬질하다. ' 저것들만 집에 두고 어떻게 일을 할 고? '

남편 있는 여자는 남편 잃은 여자를 위로 할 수 없다.

남편 있는 여자를 보는 것 만으로도 서럽다.

차라리 인사없이 떠나는 게 나을 듯 싶었다.

섭섭한 것이 쓰라린 것 보다 나을 때도 있다.


“ 잘 있거라, 몸 건강하고 , 공부 잘하고 엄마 속 썩이지 말고 자라거라.”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나는 한백을 떠났다.

한백을 떠나 서울로 이사 오고

중소기업을 다니면서 남편은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종수 아빠가 죽던 그 날부터 남편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그가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안 것은 지후가 대학교를 들어간 이후였다.

치료시기를 놓쳐버려 약물도 상담치료도 효과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 되어 나를 괴롭히고, 지후에게도 더 이상 자상한 아빠는 아니었다.

난데없이 화를 내고, 끈질기게 괴롭히는 남편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베란다에서 몸을 던져 나 자신을 죽일 것만 같았다.

가방을 싸고, 새벽을 틈타 현관문을 열고 복도를 걸어 나갔다.


" 엄마, 가지 마. 나를 두고 가지 마. “


지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몇 걸음을 가지 못해 지후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다.


' 한 번만 더 젖을 물리고, 재우고 나서 나가자. '


그러나 내가 집으로 다시 들어왔을 때

지후는 울고 있지도 깨어 있지도 않았다.

지후는 천사처럼 자고 있었다.

나는 아들을 두고 나갈 수 없는 엄마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 지후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까지만 참아보자.‘


지후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

가출 계획은 점점 미뤄져만 갔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나면 견딜만했다.

눈을 질 끈 감을 때마다

지후의 키가 자라고 덩치가 커졌다. 아들은 서서히 소년이 되어갔다.


둘째 현우는 공부도 안 하고 제 멋대로이고 속을 썩였지만

지후는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온순했다.

담임 선생님은 나를 불러 목동이나 강남 학군이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라고 했다.

지후가 영특하니 교육에 신경을 쓰라고 명문대도 갈 수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하루하루, 한 달 한 달, 간신히 아파트 대출금과 관리비를 내며 살아가야만 했다.

몸이 약해지고 히스테릭한 남편과 사는 나를

지후는 위로해주고 달래주었다.

그 아이는 나의 유일한 낙이였다.

퇴근하면 지쳐 쓰러져 자는 나를 위해 대신 청소를 해놓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를 하고

엄마를 찾는 어린 동생 현우를 포대기로 업고 잠이 들 때까지 동네를 돌 곤 했다.

동네 사람들은 지후가 현우를 업고 다니는 모습이 재미있다고, 보기 좋다고 했지만

나는 흐뭇하면서도 가슴이 아려왔다.


이른 저녁

머리 위로 빨간 하늘과 태양이 떨어지고 있을 때

우는 현우를 포대기로 업고 걸어 다니는 지후를 보았다.

“자장자장 자장자장 우리 현우, 잘도 잔다. 우리 현우

검둥개야 짖지 마라. 우리 현우 잠들었다. “


제 몸의 반이 넘는 현우를 업고 비틀거리며 지후는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지후를 재우며 불러 주던 자장가였다.

뜨거운 열 덩어리가 목구멍 속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눈알이 뜨거웠다.

목구멍이 타버릴 것 같아 연신 침을 삼켜댔다.

돈 없고, 능력 없는 무능한 나 자신을 연신 저주했다.

내 속에서 나온 지후가 너무나 가여웠다.


' 무슨 죄가 있어 네가 내 속에서 나왔을까? '

' 지후야, 내 아들 지후야. 착한 내 아들, 불쌍한 내 아들 지후야 '


나는 결심했다.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해서 지후를 공부시키겠다고

이혼 같은 건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나는 점점 늙은 아줌마가 되어갔다.

머리에는 흰머리가 늘어가고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글씨가 보이지 않고

등이 서서히 말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서글픈 것은

이제 남편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단 사실이었다.


‘ 그래도 괜찮아. 나의 첫 아이, 나를 사랑하는 지후가 있으니까. ’


그런데 '누구일까..... 지후를 웃게 만드는 그 아이는? ‘

궁금했지만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 아이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지후를 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지후는 그 아이를 집에 데리고 와 소개하고 싶은 듯했다.


" 집에 네 여자 친구 한 번 데리고 와봐, 저녁 같이 먹자, 뭘 좋아하는지 물어봐."

" 정말? 알았어. 얘기해 볼게. "


지후는 휴대폰을 들고일어나 쌩하니 복도로 나가버렸다.

여자 친구가 있을 거라는 짐작은 해 본 적 있지만

지후는 한 번도 " 있다, 없다 " 말하지도 않았고 집에 데려온 적도 없었다.


예전보다 밝아지고, 잘 웃거나 전화가 올 때 복도로 뛰어 나가서 받으면

여자 친구가 생겼을 거라고, 짐작했다.


' 다 컸구나, 내 아들 '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말이 없고, 기운 빠져 보이면 ‘ 헤어졌나 보네. ’ 얼굴 모르는 그 아이가 야속했다.

잘 만나고 있으면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섭섭했고

헤어졌다고 하면 짠하면서도 ' 아직은 아니구나.......' 안심이 되곤 했다.


그런데 그 아이를 집에 데리고 오라 하니 저렇게 좋아하다니.......

정말 좋아하는가 보네.

이제 장가를 보내야 할 나이인가 보다.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서늘해졌다.

' 무엇일까, 이 마음은?.......'

' 내가? 설마..... 아니야. 나는..... 나는 그런 유치한 엄마가 아니야.

가게에나 나가봐야겠다. '

나는 그런 내가 우스워서 현관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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