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3 은서야 보고 싶어. 네가 보고 싶어

by 옥상 소설가

은서야, 보고 싶어. 네가 보고 싶어.


가게에 도착을 하면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한다.

책상 위에 쌓여있는 지우개 가루, 휴지, 과자와 사탕 비닐봉지,

학생들이 버린 쓰레기를 치운다.

바닥을 청소기로 밀고 쓰레기통을 비운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몽롱한 정신을 깨운다.

정산을 하고 책장 안의 꼽힌 책들을 정렬한다.

여러 비품 등을 정리한다. 그리고 나면 마땅히 할 일이 없다.


강의실과 자습실 복도 화장실 창고

내 하루의 동선이다. 점심시간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 거의 배달을 시켜 먹는다.

그러고 보면 하루 종일 건물 안에 있는 셈이고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고 햇빛을 받는 대신

에어컨 바람에 형광등 불빛을 받는다.

오전에는 거의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넓은 공간에 혼자 있는 외로움도 있지만 홀가분하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편안함도 있다.

외로움을 좋아하고 익숙하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요사이 공허함과 왠지 모를 상실감이 커져갔다.

그렇게 지낸 지 이제 4년이 다 돼간다.


오후, 저녁 시간에는 강의실에서 아이들에게 수학과 물리를 가르친다.

미분, 적분 , 확률, 통계 , 운동 에너지 , 위치 에너지

정석, 일품, 블랙라벨 각종 수험서와 모의고사 문제지가 책장 안에 한 가득이다.

수능 모의고사 내신 대비 문제들은 이제 반복하고 풀어서 거의 외워버렸다.

카드 돌려막기처럼 문제 돌려막기이다. 다른 유형이면서 같은 패턴들이다.

공업 수학, 회로학, 물리학 전기학 전공과목들은 어려웠지만

지도 교수님은 먼저 해결한 학생들에게 더 어려운 문제와 논문 등을 번역하고

오류가 없는지 찾아보라고 하셨다.

공부는 끊임이 없었고 교수님은 항상 실력 향상을 원하셨다.

그런 교수님이 버거운 학생들도 꽤 많았다.

자퇴를 하고 학점을 포기한 친구들도 많았으니까


힘들게 들어왔지만 전공 수업을 듣다 보면 자신의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적성에 맞지 않으면 학점은 거의 D 나 F 였다.

이해할 수 없는 수업을 듣거나 공부를 아무리 해도 학점이 나오지 않으면

좌절감이나 무력감에 포기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전 과목이 A+ 였던 나는 그 아이들에게 조교나 마찬가지였다.

시험기간에는 동기나 후배들 심지어 선배들까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가지고 왔다.

그들에게 가르쳐주면서 저절로 공부가 됐고 4년 내내 전액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교에서 독서실로 장소만 옮긴 셈이다.

대학생들에서 고등학생으로 학생만 바뀐 셈이다.

나의 삶은 별 차이가 없었다.

입시에 절대적인 성적이 올라가자 학생들 심지어 부모님들까지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처음엔 나도 기쁘고 성취감이 들었지만 얼마지 않아

똑같은 공간에서 같은 동선을 반복하는 삶이 무료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출구 없는 복잡한 미로를 한없이 돌아다니는 생쥐 같단 생각이 들었다.

“ 형, 이번 주 금요일 7시에 강남역 앞 호프집으로 와. 거기 애들이랑 형들 다 모이기로 했어. 꼭 와. ”

“ 그래, 금요일에 보자. ”


민준이었다.

민준이는 학생 때도 나를 잘 따라주었다.

졸업 후에도 동기들 모임이 있거나 선, 후배 들을 만나면 꼭 나를 챙긴다.

가게를 해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나를 동기들과 연결시켜 주는 끈 같은 아이였다.

은서를 소개해준 은인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은서를 처음 만난 날 만났던 커플 중 우리만 결혼을 했고 나머지 커플들은 모두 헤어졌다.

결혼식 날 민준이는 참석을 했고, 은서의 친구는 오지 않았다.

지방에 출장이 있다고 축의금만 보냈다. 민준이는 은서의 친구를 기다린 눈치였는 데

얼마 후 은서의 친구도 결혼을 했고, 민준이도 선을 보고 결혼했다. 인연이란 참 알 수 없다.


테이블에는 민준이와 민혁이 앉아있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들어온다.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출입증을 목에 맨 과 동기, 선, 후배들이다.

거리에서 마주친다면 몰라볼 정도로 얼굴이 변하고 살집이 붙고

점점 아저씨가 돼 가고 있었다.

2년 만에 4,5년 만에 만나는 선배도 있었다.


‘ 지후야, 너는 어째 대학생 때랑 똑같냐? 부럽다, 부러워. “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애가 둘이라 학비에 대출금 갚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선배

지방 지사 발령 나서 여자 친구랑 헤어진 후배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을지 불안한 선배

내년 연봉이 얼마나 인상될지 기대하는 동기

모두들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 지후형, 오랜만이다. ”

“ 진짜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냈어? 형 사장님 됐다고 돈 많이 번다며?

부럽다. 얼굴 좀 자주 보자. “

“ 그래, 잘 지냈어? 오랜만이다. ”

“ 형, 결혼식 못 가서 미안했어. 그때 미국으로 출장 갔었거든. 형 온다고 해서 너무 반갑더라.

축의금은 민준 이편에 보냈는데, 받았지? ”

“ 그래, 받았어. ”

“ 형 자주 좀 나와, 얼굴 좀 보자. ”


여기저기서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고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기에 바빴다.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 맞아, 그때는 이렇게 시끌벅적 사람들과 둘러 쌓여서 살았었지. ‘

‘ 내가 취업을 했거나 대학원을 갔다면 이렇게 생활했겠구나.

이 사람들과 같은 지역에서 공간에서 비슷한 복장을 하고 일을 하며 살아갔겠구나.

해결하지 못한 업무들과 해야 할 일들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함께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피우며 상사들의 흉을 보기도 하고

금요일 퇴근 후 치맥을 하며

다가올 여름휴가와 월차, 연차 계획, 임금 협상 등을 이야기하며 살았겠구나.

나도 친구들과 같이 점심을 먹은 후 커피를 마시고 출입증을 매달고 거대한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다.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싶다. ‘


‘ 아니지, 그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지.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지. ’

‘ 부러움 일까? 아니면 외로움 때문일까? 아니면 두 개의 감정 모두일까? ’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맥주를 따르고 건배를 하며 소맥을 만다.

그 시절 교수님 학점 중도 학식 동아리 미팅 소개팅 시험들

지나간 시절 얘기가 가장 맛있는 안주이다.


“ 형, 김민준 교수님 작년 학기 마치고, 미국 연구소로 돌아가셨어.

교수님이 형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시더라. 많이 아쉬워하셨어.

미국으로 데리고 가고 싶어 하셨잖아. 형 안 아쉬워? “

“ 그런 말을 왜 하냐? ” 옆에 성민이가 영우를 쿡 찌른다.

“ 아이, 형은 그래도 사장님이잖아. 사장님

우리는 사원이야. 사원. 그냥 말단 사원 언제 잘릴지 모르는 회사원 ”

“ 진영이 형 이번에 수석 연구원 됐어. 초고속 승진이지. 파격적이야.

형, 진영이 형이랑 친하지 않았어? 둘이 일등 자리 놓고 맨날 엎치락 뒤치락했잖아.

진영이 형 이따 9시 좀 넘어서 올 거야. 일 끝나고 바로 온다고 했어.

진영이 형도 형 나온다고 하니까 무지 좋아하더라. 바쁜데 형 때문에 오는 거야.

너네 들 진영이 현한테 잘 보여야 한다. 그 형이 우리 라인이다. ”

“ 광민이는 회사 그만두고 공부하더니 수자원공사 들어갔어.

애들 중에 회사 그만두고 공사 들어가거나 공무원 시험 보고 붙은 애들 많아.

회사를 다녀도 이제 정년 보장이 안 되니까. “

“ 시간이 가도 진급이 안 되면 그만두라는 소리지. 명퇴도 너무 빠르고.

진짜 빡빡하다. 빡빡해. 형이 제일 속편 하겠다. 형은 사장님이잖아. “


김민준 교수님. 꽤나 까다로운 교수님이셨지.

교수님의 이름이 내 입에서 자꾸만 맴돈다.

교수님을 따라 미국으로 함께 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연구실에서 여러 사람들과 연구하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 야, 이번에 반도체 공장 B 라인에서 사고 난 거 알지? ”

“ 울산 생산 라인은~ ”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들이 나오고, 알지 못하는 답들이 나온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이 나를 감싸고 있다.

몰랑몰랑 부드럽지만 뚫을 수 없고 소리도 전달되지 않는 막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뱉어내는 말에 맞춰 나는 나를 상상하고 그려가느라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수많은 나를 그려가고 있었다.

어느새 동기들의 등만 바라보고 있었다.

눈 맞춤 대신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런 나 자신이 무안해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 혼란스럽고 겉도는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


복잡한 생각과 다른 내 모습을 상상하느라 술자리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

왠지 모를 서글픔과 후회가 자꾸만 자꾸만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것이 서로에게 더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말단 직원인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다.

평범한 회사원의 삶과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지금의 선택을 한 나 자신을 후회하고 있었다.


“ 얘들아, 나 먼저 들어갈게. ”

“ 왜? 형 좀만 앉아 있다가 같이 일어나자, 오랜만에 만났는데 ”

“ 그래, 진영이 형 곧 올 텐데. ”

“ 아니야, 요새 와이프가 몸이 안 좋아서 일찍 들어가야 해,

진영이한테는 미안하다고 다음에 보자고 전해줘. 다음에 또 보자. ”

“ 그래요, 형 먼저 들어가요. ”


모두들 아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지금도 내 생각을 하느라 상상을 하느라 겨를이 없다.

지하철역 안 계단으로 내려간다.

갑자기 은서가 보고 싶어 진다.


“ 오빠, 후회할 수도 있어. ” 은서의 그 말이 머리에서 빙빙 돈다, 머리를 흔든다.

“ 괜찮아, 잘 될 거야. ” 뒤에서 나를 안아주던 은서의 품이 그립다.


어서 은서에게 달려가야지.



은서야 보고 싶어, 네가 보고 싶어.




-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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