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나는 너를 딸처럼 생각했는데

영자 이야기

by 옥상 소설가

너를 딸처럼 생각했는데



결혼 전에는 내가 하자는 데로 “ 네네 “ 하고 잘 따라주었다.

지후와도 잘 지내는 것 같았고 집에 놀러 왔을 때 말을 붙여보면 야무지고 똘똘한 티가 났다.

절약하고 돈 관리도 잘하는 것이 낭비하고 사치해서 남편 등골 빼먹는 여자는 아닐 것 같았다.

순종적이고 조신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얘기도 잘하고 활발한 성격이어서 조용한 지후를 재미있게 잘해줄 것 같았다.


부모님이 이혼하신 게 흠이긴 했지만 솔직히 그게 무슨 대수인가?

남편과 살고는 있지만 우리가 뭐 부부인가?


부부지만 부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데

가족이지만 가족으로 살지 않은 사람들도 허다하다.

겉으로는 하하 호호 행복해 보여도

속을 들여다보면 원수처럼 얼굴만 보면 으르렁 거리고, 남보다 못한 집도 많다.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 난 집, 무시하고 투명 인간 취급하는 부부

욕하고 때리고 바람까지 피우는 남편이어도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새끼들을 키워야 해서 참고 사는 여자들을 많이 봤으니까

아래층 여자도 남편이 시청의 고위 공무원인데 공무원 연금이 어떻고. 다음엔 국장 승진이고 ,

시댁에서 땅을 물려줘서 토지 보상비가 얼마며 맨날 자랑만 늘어놨다.

총각김치를 새로 담가 나눠 먹으려고 접시에 담아 내려갔는데

두부부는 모두 없고 민혁이가 문을 울면서 열어줬다.


“ 민혁아, 엄마 어디 가셨니? ”

“ 아줌마, 아버지가 엄마를 때렸어요. 엄마가 울면서 나갔어요. 우리 엄마 좀 찾아주세요.

안 들어오면 어떡해요? ”

“ 아빠는 어디 계시니? ”

“ 아빠도 화나서 담배 피우시면서 나갔어요. 누나들은 학원 가고 독서실 가서 아무도 없어요. ”

“ 그래, 알았다. 아줌마가 찾아볼게. 밥 먹고, 씻고 오늘은 일찍 자거라. ”


맨날 우리 남편 우리 남편, 노래를 부르던 금슬 좋은 부부의 실체였다.

다음 날 접시에 귤을 담아오면서도 아래층 여자는 어제 남편으로부터 맞은 얘기는 하지 않았다.

늘 주고받던 얘기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내려갔다.

그 이후로 아래층 공무원 남편을 부러워하는 내 마음은 사라졌다.


모두들 그렇게 살아간다.

평화로우며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인 것처럼,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그래, 다 새끼들 때문에 사는 거지? 나도 새끼들 아니면 당장 이혼했지.

현우까지 결혼시키고 나면 나 혼자 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잔소리만 하고 고집불통 남편과는 이제 좀 헤어져서 살고 싶다,

아내를 아끼고 사랑해주고 다정한 남편과도 살아보고 싶었지만

그 복은 나한테는 없다.


지후랑 현우만 보고 살자. 그래도 이 정도 아파트에 가게도 2개나 있고 노후 준비도 얼추 했고

남들은 다 부러워하지 않는가?

제 집이 아닌 사람들도 있고, 이이들 공부시키고 먹이고 입히느라 허덕이는 사람들이 쎄고쎘다.

노후 대비는커녕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고 사는 사람이 대다수다.


‘ 남편복은 내 팔자에 없다. ’ 포기하니 오히려 더 살기 편했다.

앵앵거리지 않고 그 힘으로 새끼들 먹이고 가르쳤으니까.

남편 복은 없어도 자식복은 있다. 우리 지후가 이렇게 집안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현우만 장가보내면 된다. 그 아가씨만 떼어내면 된다.

참한 아가씨를 구해서 짝으로 맺어주면 다 잊고 잘 살 거다.

결혼해서 애 낳고 살다 보면 다 잊게 마련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현우도 그 아이는 잊어버릴 거다.

그런데 요새 은서가 통 내 말을 듣지 않는다.

회사도 그만두라고 몇 번을 말해도 정확하게 대답하지 않고 말을 살살 돌린다.

아무래도 계속 다닐 모양인데....... 어림없지, 지후 집을 처가 쪽에 얻어 줄 생각은 없다.

태어날 손주도 그쪽에 가까이 두고 싶지 않다.


‘ 내 아들을 왜 처가에 뺏기나? ’ 귀한 내 아들이고 우리 집 장남인데.


은서만 내 말을 따라주면 되는데 만만하지가 않다.


‘ 사위는 우리 집보다 나은 집에서 얻고, 며느리는 못한 집에서 얻어라. ’


친정이 처지면 며느리는 아무래도 기가 죽는다. 어떻게 힘을 쓸 수 있겠는가?

믿는 구석이 없는데. 그래서 좀 쉽게 본 것도 있었다.

내가 하자는 데로 잘 따라 줄 것 같았다.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싫든 좋든 하자는 데로 다 해주었고 순리대로 잘 풀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은서는 내 의견과 자기 뜻이 다르면 조곤조곤 얘기하기 시작했다.

더 부화가 치미는 것은 지후와 남편이 자꾸 며느리 편을 든다는 것이다.

지후는 옆에서 내 눈치와 지 마누라 눈치를 보느라 아무 말도 못 하고,

남편은 애들끼리 알아서 하게 두라고 한다.

내 말이 틀리지 않는데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더 화가 나는 것은 그 애 말이 맞을 때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른이고, 시어머니인데 어찌 제 말을 그리 따박따박할까?

일단은 내 말을 다 듣고 나서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하는 척이라도 하고 뒤에서 지 뜻대로 하면 되지.

굳이 “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제 생각은 ~ ” 이러면서 자기 뜻을 말하면

옳은 지 알면서도 듣기가 싫고 인정하기도 싫다.

어른 무서운 걸 잘 모르는 아이다. 아니면 나를 무시하는 것인가?


부유한 친정이 든든하게 받쳐주고, 직업까지 좋은 며느리는 기가 팔팔하다고,

슈퍼집 아줌마가 큰 며느리한테 학을 뗐다고 했다.

처음엔 부잣집에 공사에 다니는 며느리를 얻어서 아들 장가 잘 보냈다고 좋았었는데

조금만 아들이 처를 속상하게 하거나 며느리를 혼내거나 잔소리를 했다 싶으면

아들을 처가로 호출해서 혼을 낸다고

친정에 전화해서 남편 흉을 보는 며느리도

사위를 처가로 불러서 혼을 내는 장인, 장모가 어딨냐고 화를 냈다.

하루는 집으로 사부인이 전화를 해서


“ 사부인, 저희는 아이들끼리 알아서 잘 살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른들이 참견할 만큼 어리지도 않고 영리한 아이들이니 잘할 겁니다.

결혼 생활을 유지 못 할 정도로 잘못을 한다거나

조선시대도 아니고 며느리를 함부로 대하고 생각한다면 이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영진이는 우리 집에서 귀한 자식입니다. “


그 말을 듣고 어찌나 기가 차했던지. 예전엔 상상도 못 한 일이라고

더 이상 하면 집안끼리 싸움도 나고

이혼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이젠 아들만 종종 보고 며느리는 일이 있을 때만 통화하고 본다고

차라리 그게 속 편하다고 했다.


은서는 친정에 전화해서 일일이 고자질하는 아이도 아니었고

앞과 뒤가 다른 아이는 아니다.

다만 이제 며느리가 들어와서 숨통이 좀 트이나 싶었고


딸 집처럼 편하게 왕래하고 근처에 살면서 잘 보살펴 주고 살고 싶었다.

누가 딸 집에 갈 때 일일이 전화하고 가나?

오다가다 생각나면 들리고, 문 열고 들어가는 거지.

요새 젊은 애들처럼 맛집도 가고, 카페도 가고 친한 모녀 사이처럼 지내고 싶었다.

살림도 가르치고, 아이 키우는 법도 알려주고 싶었다.

내 딸처럼 생각하고, 가르치고, 같이 살고 싶었다.


결혼 전과 신혼 초에는 고분고분 “ 네, 네 ”하면서 내 말을 잘 따라 주었는데

‘ 결혼할 때 까지는 무조건 따르고 결혼하고 나서 자기 뜻대로 할 생각이었나? ’


생각이 그렇게까지 미칠 때는 더 괘씸하기까지 했다.

그랬다면 애초에 결혼을 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순종적이고 착한 며느리를 들이고 싶었다.

은서는 단번에 “ 아니요 ”라고 얘기하지 않지만 자꾸만 토를 달고 순하게 대답하지 않는다.

눈빛도 점점 차가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 왜 이 아이가 변해 가는 거지?

내가 하자는 데로 따라 주지 않는 거지?

아무렴 지들 좋은 일이라고 잘 되라고 하는 것들인데. ‘


왜 내 말과 반대로만 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더군다나 지후도 이제 며느리 편을 드는 것 같다,

예전에는 내가 하자고 하는 데로 다 했는데, “아니요 “라는 말은 하는 법이 없었다.


“ 알았어, 엄마 하고 싶은 데로 해. ”


항상 내 말을 따라 주었는데 지후도 변했다.

아무래도 은서는 내가 생각한 아이는 아닌 것 같다. 고분고분한 아이는 아니다.



기다렸다.

지후의 첫 아이

나와 우리 강 씨 집안의 첫 아이인데 의사까지 수술하라고 했다면 사정이 있었겠지.

하지만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며느리가 자기 말만 뱉고 나서 나가버렸다.

나도 하도 놀라고 무안해서 뭐라도 말을 하고 싶었는데

휑하니 나가버렸다.

나를 아주 못되고 경우 없는 시어머니로 만들어버렸다.


지후도 얼른 지 마누라를 따라가 버리고

남편은 나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아니 그럼 아들이 처가 옆으로 가겠다는 데 그걸 찬성하는 엄마가 어디 있을까?

그리고 집을 사는 일은 큰 일인데 당연히 우리랑 의논해야지.

지들 마음대로 결정한다고? 그렇게 큰 일을?

당연히 옆에 끼고, 아들 사는 모습 손주들 자라는 거 보고 싶지.

다들 그런 거 아닌가?


아이들 키우는 거야 당연히 엄마가 키워야 하는 거고

예전에는 혼자서도 애를 여덟 아홉 명씩 다 혼자서 키워냈다.

고작해야 한, 두 명 키우면서 산후 우울증이네 육아 스트레스네

힘들다고 병원 가고 약 먹고

회사에서 일하느라 지친 남편한테 가사분담이네 공동육아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 과하다.

다들 너무 잘 살아서 너무 똑똑해서 걸리는 거다.

먹고살기 힘들면 그런 꾀병들은 걸릴 틈도 없다.

요새 아이들은 너무 약하고 불평, 불만이 많다. 나약하다.



남편은 내가 말만 하면 왜 눈에 쌍심지를 켜고 며느리 편만 드나?

걔는 똑똑하고 나는 항상 무식한 여편네인가?

코딱지만 한 월급을 가져다줘도 불평 한 번 한적 없다.

절약하고 부업거리를 가져와 일하면서 내가 어떻게 애들을 키웠는데

이 집을 어떻게 장만하고 살림을 키웠는데

툭하면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가? 말이다.


내 속이 말이 아니다.

내 맘을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엄마도 죽고 없고, 형제자매도 없으니 내 맘을 알아줄 이가 없다.

나는 아무래도 복이 없는 모양이다.


남편 복이 없으면 자식복도 없다더니.

아들복은 있는지 알았는데. 아닌 가보다.

며느리는 며느리일 뿐 딸이 아니다.

나는 너와 딸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너를 딸처럼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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