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애 아줌마가 좋았다.
엄마는 경애 아줌마를 좋아했다.
동네 사람들은 경애 아줌마를 좋아했다.
경애 아줌마는 우리 엄마를 좋아했다.
경애 아줌마는 우리 동네를 좋아했다.
경애 아줌마는 우리 동네 사람들을 좋아했다.
우리 엄마와 경애 아줌마가 친해진 건 내가 다섯 살인 재작년 여름부터였다.
9시 뉴스에서 전국에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이번 장마는 유난히 길고 집중호우가 있을 예정이니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했다.
엄마와 나는 뉴스를 보고 난 뒤 하늘을 봤다.
장마는 내일부터 시작이라는데 이미 하늘은 흐려져 있었다.
일기 예보대로 비는 다음 날 새벽부터 ' 후두두둑 ' 떨어지기 시작했다. 장독대의 두텁고 둥근 항아리들은 굵직한 빗방울을 수더분하게 받아내 얌전히 흘려보냈고, 수돗가의 양은 세숫대야들은 사방으로 물방울을 튕겨내며 호들갑을 떨었다.
우산 밖으로 팔뚝을 내밀면 금세 따가울 정도로 비는 세차게 떨어졌고,
하늘의 잔뜩 껴있는 먹구름은 어두컴컴하고 묵직이 동네를 누르고 있었다.
언니들은 바람 때문에 치마를 입지 못했고,
제비랑 참새들은 비를 피해 우리 집 처마 밑 새 집에 들어가 있거나 빨래 줄에 쪼르르 앉아 있었다.
엄마는 새들이 먹을 수 있게 좁쌀을 마당 한편에 두었고, 새들을 괴롭히거나 쫓지 말라고 했다.
언니, 오빠들은 학교에 가고, 나랑 엄마는 집에 있었다.
아침부터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빈둥빈둥 누워 있었다.
오후쯤 엄마는 김치 부침개를 부쳐주고, 나는 부침개를 먹으며 내가 좋아하는 전래동화를 읽고 있었다.
전래동화는 몇 번을 읽고 들어도 재미있다. 거기에 엄마까지 있으면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
“ 엄마, 빗소리 좋다. 그치? ”
“ 응 ”
“ 엄마, 나는 비가 오면 이 흙냄새가 좋아. ”
“ 이젠 그만 왔으면 좋겠다. 너무 지겨워. 열흘째 빨래도 못하고 말이야. ”
“ 음~ 맛있다. 맛있어. ”
“ 맛있어? 너는 비가 오거나 말거나 무조건 좋지? 큭큭큭”
“ 응, 엄마. 난 엄마랑 둘이 있을 때가 제일 좋아.
특히 주아 언니가 없을 때가 제일 좋아. 이따 언니들이랑 오빠 오면 또 부쳐 줄 거지? ”
“ 알았어. 많이 먹어. ”
김치전을 먹고 엄마 심부름으로 두부를 사러 가는 길이었다.
쌀가게 아저씨와 아줌마가 양동이를 들고 가게에 들어오는 물을 정신없이 푸고 있었다.
“ 아저씨! 가게가 왜 이래요? ”
“ 어, 물이 역류하고 있어. 현아야 너도 좀 와서 도와라. ”
“ 네? ”
역류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안 좋은 일인 것 같다. 집으로 얼른 뛰어갔다.
“ 엄마, 쌀집에 큰 일 난 것 같은데. ”
“ 응? 무슨 일? ”
“ 물이 막 넘치고 있어. 아줌마랑 아저씨가 양동이로 가게에 있는 물을 빼고 있는데 ”
“ 뭐? 가게에 물이 넘치고 있다고? 쌀에 물 들어가면 큰 일 나는 데 ”
엄마는 그 길로 나랑 하동 쌀가게에 뛰어갔다.
“ 아저씨, 이게 웬일이에요? ”
“ 저기 하수도에서 물이 나가질 못하고 역류하고 있어. 우리 집 부엌에서도 역류하고, 미쳐버리겠네.
쌀에 물이 닿으면 다 버려야 하는데. 큰 일 났어. “
“ 아저씨, 쌀이랑 물건 들 옮길 데는 있어요? ”
“ 아니, 옥상이랑 밖에다 둘 수도 없고. 방 안에 놓자니 방으로 물이 들어올 것 같아.
옮길 만한 데가 없어. 천상 물을 빼는 수밖에. “
“ 물을 빼도 소용없어요. 여긴 지대가 낮아서 물이 다시 찰 거예요.
모레까지 비가 온다고 했는데. 잠깐만 기다려요. ”
엄마는 집으로 가서 대전 댁 아줌마 내외, 경화 아빠, 안나 아저씨를 모두 불러 쌀집으로 데리고 왔다.
비가 와서 모두들 일을 안 나가고 집에 있었다.
“ 옴마~ 아자씨, 이게 뭔 일 이래유? 성님, 이거 어떻게 해요? 큰 일이네. ”
“ 쌀이랑 가게 안 물건들이 물에 닿으면 다 버려야 해요. 같이 쌀 좀 날라주세요.
제가 얼른 가서 광을 치워 놀 테니 우리 집 광으로 옮겨주세요. “
우리 집은 언덕 아래에 있어도 지대가 높아 홍수가 나도 물이 차지 않았다.
하지만 낮은 곳에 있는 집들이나 가게는 홍수가 나면 난리도 아니었다.
올해는 일찍 장마가 시작되었고, 비가 열흘 동안 쉬지 않고 쏟아져 온 동네가 아비규환이었다.
우리 집에는 커다란 광이 있어서 안 쓰는 물건들이 있으면 그곳에 두었다.
겨울이면 수 백개의 연탄을 광에 넣지만 지금은 여름이라 광은 텅 비어있었다.
아줌마, 아저씨들은 쌀 포대가 비에 젖지 않게 비닐로 감싼 다음 우리 집 광으로 옮겼다.
쌀, 찹쌀, 콩, 조, 보리, 수수 땅에서 자라는 온갖 곡식들이 우리 집 광으로 들어왔다.
쌀가게에 있던 가전제품, 티브이, 라디오, 옷가지, 모든 물건들도 광에 넣었다.
“ 아휴~ 이제 됐다. ”
“ 고생 많았어요. 여기 두면 괜찮을 거예요. ”
“ 고마워요. 중아 엄마 ”
“ 뭘요, 별 것도 아닌데. 다들 출출하시죠? 쌀 포대 옮기느라 배도 고프실 텐데 다들 앉으세요.
김치 부침개 반죽이 있는데 얼른 부칠 테니까 드세요. 국수도 좀 삶을 게요.
대전 댁아 네가 나 좀 도와라. “
“ 야, 성님, 지가 멸치 육수 올릴께유. ”
“ 고마워요. 중아 엄마 ”
“ 아니에요. 이웃들이 어려울 때 돕고 살아야죠. ”
“ 언제까지 이렇게 비가 올 건가? ”
“ 모레까지 온다고 하던데요. ”
“ 우리야 중아 네로 옮겼지만 다른 가게들이랑 집들은 어떻게 하지? 다들 난리도 아닐 텐데. ”
“ 그러게요. 비가 얼른 그쳐야 하는데 ”
모두들 마당에서 하늘을 보며 한 숨을 쉬었다.
엄마는 김치전 반죽에 돼지고기 간 것과 김치를 더 썰어 넣어 부침개를 부쳤다. 돼지고기가 들어가니 든든하고 고소해 더 맛있었다.
' 톡톡톡 ' 빗소리와 ' 타닥타닥 ' 프라이팬에서 기름 튀기는 소리는 묘하게 어울리며 마당 구석구석을 메웠다.
쌀가게 아저씨는 롯데슈퍼로 달려가 막걸리를 사 오셨고 어른들은 기분 좋게 나눠마셨다.
비는 오지만 여러 사람들이랑 함께 먹으니 김치 부침개가 더 맛있다.
모두들 김치 부침개와 따듯한 멸치국수를 먹고 불룩한 배를 어루만지며 방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학교를 마친 우진, 우겸 오빠, 우영 언니가 책가방을 맨체 우리 집으로 왔다.
“ 얘들아, 중아네서 잠깐 쉬기로 했어. 아줌마한테 고맙다고 말씀드려. ”
“ 아줌마, 고맙습니다. ”
“ 아니야, 집이 좁아서 좀 그러네. 불편하더라도 조금만 참아. 얼른 씻고 뭐 좀 먹자. 배고프겠다. ”
“ 엄마, 우리 잠은 어디서 자? 학교는 어떻게 가? ”
“ 전국에 휴교령이 내려질 거래. 뉴스에서 등교하라고 하면 그때 학교에 가는 거야. ”
“ 우진 엄마, 잠은? 잠은 어디서 자요? 어디 잘 데가 있어요? 친척들은 이 근처에 있어요? ”
“ 아뇨, 친척들은 다 시골에 살아요. 저기 역 쪽에 있는 여관방 하나 잡아서 자면 돼요. ”
“ 애들이 이렇게 큰 데 어떻게 여관방에서 자요?
남자 애들이랑 아저씨는 우리 중아 방에서 자고, 우진 엄마랑 우영이는 안방이랑 주아 방에서 자요.
좁으면 마루에 나와서 자도 되고요. “
“ 아휴~ 중아네 신세를 너무 지네. ”
“ 물이 빠질 때 까지만요. 곧 구청에서 물 빼는 작업을 하겠죠. ”
어른들은 물이 안 빠져서 발을 동동 구르는데. 우리는 물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신나게 놀았다.
무릎까지 차는 물속으로 들어가 달리기도 했고, 물장구도 쳤다.
둥둥 떠다니는 스티로폼 위나 커다란 고무대야를 타고 노를 저어 뱃놀이도 했다.
엄마는 더러운 물이라고 피부병에 걸린다고 당장 나오라고 했지만
어떤 물이라도 아이들이랑 함께 놀면 상관없었다. 어른들의 성화에 물 밖으로 나왔지만
엄마나 어른들 몰래 다시 물속에 들어가 놀았다.
갑자기 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때면 플래시를 켜고 동네를 다니면서 귀신놀이를 했고
잠을 자지 않고 밤새 과자를 먹으며 귀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영 언니, 오빠들이랑 며칠을 재미있게 놀았다.
뉴스 특보에서는 남부지방이 물 폭탄을 맞아 난리라고 했다.
전국에 산사태가 나고, 이재민이 발생하고, 수해 피해가 막대하다고 했지만 어른들만 걱정할 뿐
우리는 휴교령이 길어져 더 놀기를 바랐다.
아줌마네가 우리 집에 있는 동안 부엌살림은 아줌마와 엄마 둘이서 했다.
부엌에서 일을 하며 엄마와 아줌마는 힘들지도 않은 지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점심은 라면이나 국수를 먹었고 저녁이면 밥을 먹고 마루에 앉아 과일을 먹었다.
쌀집 아저씨네, 은동이 할머니, 대전 댁 아줌마네, 모두 방문을 열고 빗소리를 들으면서 얘기를 나눴다.
“ 문간방에 짐은 그대로 있는 거예요? ”
“ 네, 아직 그대로 있어요. 총각이 언제 올 줄 몰라서요. ”
“ 팔도 성치 않는 사람을 왜 군대에 보냈데? 근데 손이 하나 없으면 군대에 못 가는 거 아니에요?
몸이 성치 않은 사람은 군대에 가지 못 한다고 알고 있는데. ”
“ 그 사람들이 못할 게 뭐가 있어? 아무렴 그 총각을 훈련시키려고 보냈겠어요?
학교나 여기 나와 있는 것보다 군대에 있어야 감시가 쉽지. ”
“ 총각 말로는 올해 안에 나올 수 있을 것 같데요.
훈련이나 뭐 그런 걸 받지는 않고, 주로 서류 업무만 하고 있데요. 군대에 있는 게 차라리 속은 편하다고 “
“ 안 보고 안 듣는 게 편하지.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 다 잡혀서 고생하는 걸 보면 속이 속이겠어? ”
“ 그래도 다행이에요. 다치질 않아서. ”
“ 그러게요. ”
“ 별 탈 없이 나올 거예요. ”
비는 삼일 후부터 서서히 그치기 시작했고, 물도 같이 빠지기 시작했다.
하수도가 불어나는 물량을 감당하지 못해 역류했고, 아랫동네 사람들의 집은 초토화되었다.
물은 남김없이 모든 것을 쓸어가고 진흙만 푸짐하게 남겨 놓았다.
고운 진흙이 방바닥에 깔린 것처럼
근심은 사람들의 마음에 조밀하고 무겁게 펼쳐져 사람들을 일어서지 못하게 했다.
경애 아줌마와 복 떡집 사장님이 시루떡을 들고 나타났다.
아줌마는 시루떡을 먹고 힘을 내서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사람들은 경애 아줌마의 떡을 나눠 먹은 뒤 거짓말처럼 힘이 솟아 일어서서 청소를 시작했다.
홍수로 엉망이 되었던 가게, 세간을 정리하고, 동네 골목, 전봇대, 대문, 벽, 시장 입구와 출구
너 나 구분 없이 힘을 모아 치우니 동네는 전보다 더 깨끗해졌다.
청소가 마무리되자 소독차가 수시로 다니면서 온 동네를 소독했다.
동네 아이들은 소독차 뒤를 쫓아다니며 하얀 연기 속에서 나타나는 산신령 놀이를 했다.
“ 현아야, 우리 집 화장실 말이야. 물 빠지고 나니까 아주 깨끗해졌어. ”
“ 뭐? 그게 무슨 말이야? ”
“ 물이 빠지고 나서 가 보니까 글쎄 화장실에 있던 똥이 하나도 없더라니까 ”
“ 우웩~ 더러워. 그럼 우리가 놀았던 그 물이 정말 똥물이었네. ”
“ 야, 호달이 너 네 화장실도 그래? 우리 집도 그런데. ”
“ 홍수가 나면 화장실 청소가 자동으로 되나 봐. ”
“ 악~ 더러워. 그만 얘기해. ”
역시 엄마 말이 맞았다. 우리가 신나게 놀았던 그 물은 정말 똥물이었다.
피부병이나 별 다른 이상은 없었지만
그 이후 홍수가 나도 절대 물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경애 아줌마 식구들이 우리 집에서 삼일을 같이 잔 후 우리는 친척처럼 가까워졌다.
정 중에 가장 무서운 게 밥 정이라더니 삼일 동안 같이 자고, 밥을 먹으면서 깊은 정이 들었다.
그중 가장 두터운 정이 든 사람은 아줌마와 엄마였나 보다.
엄마랑 아줌마는 서른아홉, 나이가 같았다.
경애 아줌마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엄마가 돌아가셨고 , 우리 엄마는 어릴 때부터 새엄마 밑에서
힘들게 자랐다. 두 분 다 초등학교까지 졸업했고, 주위에 가까운 형제들이 없었다.
아줌마와 엄마는 비슷한 점이 정말 많았고 서로를 알아갈수록 공통점은 늘어갔다.
“ 중아 엄마, 이 거! 이 책 누구 거예요? ”
“ 아, 그거 제 책이에요. ”
“ 우진 엄마, 박완서 좋아해요? ”
“ 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작가예요. ”
“ 어~! 나도 박완서 좋아하는데. ”
“ 그래요? 이 동네에서 책 좋아하는 사람 만나기는 처음인데요. ”
“ 나도 그래요. 나는 도둑맞은 가난을 읽고 박완서를 알게 됐어요. ”
“ 아! 그 책 참 재미있죠. 저도 읽었어요.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 도 읽어보세요. 좋아하실 거예요. ”
“ 나는 박완서도 좋아하고, 박경리도 좋아해요. ”
“ 정말요? 신기하네. 나도 박경리 좋아하는데. 우린 공통점이 아주 많은 것 같네요. ”
" 김약국의 딸들도 좋고, 나는 토지를 가장 좋아해요.
복수하는 얘기도 재미있지만 절절한 사랑 얘기가 제일 좋아요. 월선이랑 용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봉순이도 그렇고요. "
" 정말요? 토지 재밌게 읽었는데, 우리 집에 있으니 아무 때나 가져가서 읽어요. "
우진 아줌마랑 엄마는 책꽂이에 꼽힌 책을 보면서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
엄마와 아줌마가 친해진 건 그 이후였다.
부엌에서 마루에서 마당에서
두 엄마는 우리 얘기가 아닌 두 사람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엄마는 아줌마를 ‘ 우진 엄마 ’로, 아줌마는 우리 엄마를
‘ 중아 엄마 ’로 불렀었다.
장마 이후 두 엄마들은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금희 경애
엄마는 금희가 되고, 우진 아줌마는 경애가 되었다.
서른아홉 동갑인 아줌마와 엄마는 친구가 되었다.
선교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경애 아줌마가 우리들을 불렀다.
“ 현아야, 동주야, 경화야. 민정아 이리 와 ”
“ 네, 아줌마 안녕하세요. ”
“ 이거 먹어. ”
“ 어? 이거 웬 솜사탕이에요? ”
“ 응, 아줌마가 사 왔어. ”
“ 감사합니다. ”
“ 그래, 맛있게 먹고 사이좋게 놀아. ”
“ 네 ” 우리 집 마당에서 나란히 앉아 솜사탕을 먹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왔다.
“ 웬 솜사탕이야? ”
“ 응, 경애 아줌마가 주셨어. ”
“ 경애 아줌마가? 솜사탕 할아버지가 오늘 다 못 파시고 집에 오셨나 보다. 경애도 참~ ”
엄마는 내가 먹는 솜사탕을 뜯어먹었다.
달고 맛있는지 엄마는 솜사탕을 먹고 기분이 좋아졌다.
part 2 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