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얘들아, 이게 뭐지? ”
“ 어? 선생님, 잘 모르겠는데요. ”
“ 나는 저거 본 적 없는데. ”
“ 난 책상인가 서랍에서 저걸 본 거 같은데. 우리 언니 방에서. 언니가 저걸로 뭘 하던데. ”
“ 맞다! 저거 우리 엄마가 오빠 때릴 때 쓰는 거야. 나도 한 번 맞아봤는데 그렇게 아프지는 않더라고. ”
“ 안 아팠어? ”
“ 응, 회초리보다는 덜 아파. ”
" 회초리? 그건 또 뭐야? “
“ 얇은 나무 가지인데 나나 동생이 잘못했을 때 엄마나 아빠가 그걸로 때리는 거야. ”
“ 자든 회초리든 맞는 건 정말 싫어! ”
“ 맞아, 우리들은 잘못하면 맞지만, 어른들은 잘못해도 안 맞잖아!
어른들도 거짓말을 하거나 약속을 어기면서 왜 자기들은 안 맞고 우리만 때리는 거야? “
“ 너무 불공평해. ”
아이들은 자 하나를 가지고 보고, 듣고, 자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부모님들이 들으면 얼굴이 벌게진 이야기들도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말해 버린다.
‘ 애들 말이 맞아. 우리처럼 어른들도 잘못할 때 맞는다면 누가 때려야 하나?
할머니가 때려야 하나? 할아버지가 때려야 하나?
두 분 모두 돌아가시거나 멀리 사시면 동네 할머니들이 대신 때려야 하나? 경찰 아저씨? 앞 집사람? 목사님?
참 복잡하네. 만약 할머니 할아버지랑 다 같이 산다면 어른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맞을지도 몰라. 우리보다 어른들이 더 잘못을 많이 하니까
맞는 사람이 때리고, 때리는 사람이 맞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다 가겠다. 그럴 바엔 차라리 안 때리겠다.
그러나 저러나 아휴~ 저 애송이들 자를 모르다니? 언니 오빠가 쓰는 걸 못 봤구나.
나는 그림 그릴 때나 길이를 잴 때 사용하고 있는데
자나 모양자로 그리면 그림이 얼마나 예쁜데. 내가 가르쳐 줘야겠다. ‘
“ 선생님, 그 물건의 이름은 자입니다. ”
“ 그래요. 현아가 잘 알고 있네. 이것의 이름은 자 에요.
물건의 크기나 길이를 알아볼 때 사용하는 거예요. 얼마나 긴가? 짧은가? 알아볼 때 “
사랑 반 선생님은 자를 가지고 여러 가지 물건들의 길이를 재보기 시작했다.
크레파스, 스케치북, 연필, 치마, 머리카락, 장난감, 책상, 의자
친구들은 선생님이 걸어 다니면서 자로 길이를 재고 숫자를 불러 주실 때마다
그 숫자들을 따라 말하기도 하고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선생님은 숫자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다.
“ 우리 다음 시간에는 숫자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
선생님은 이제 숫자를 알려주시려나 보다. 우리 반에 아직도 열 까지 못 세는 아이가 있었다.
‘ 이럴 수가? 열까지도 못 센다고? 나는 주산학원을 다니면서 나눗셈까지 간단한 것들은 암산까지 하는 데
열을 못 세다니. 아무래도 내가 우리 사랑 반 친구들에게 숫자를 좀 가르쳐야겠어. ‘
아이들에게 숫자를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갑자기 김동주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 선생님, 자는 길이를 잴 때도 사용하지만 다르게도 쓰입니다. ”
“ 어? 다르게도 쓰인다고? ”
“ 네 ”
“ 어떻게? ”
“ 우리 아빠는 매일 자를 가지고 이렇게 사용하십니다. 선생님, 그 자 좀 빌려주세요. “
“ 그래, 나와서 보여 줘 봐. ”
김동주는 선생님이 서계신 칠판 앞으로 당당히 걸어 나갔다.
‘ 동주 아저씨가 ’ 자‘ 를 어떻게 매일 사용한다는 거지? ’
동주는 긴 자를 선생님으로부터 건네받더니 갑자기 자기 등에 스윽~ 넣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 아우~ 시원하다. 시원해. ” 하면서 등을 긁기 시작했다.
“ 어! 어! 와! 하하하~ ” 사랑 반 선생님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웃으시자 아이들은 영문을 모르고 있다 따라 웃기 시작했다.
“ 그러네, 그렇게도 사용할 수 있네. 동주 아빠가 자를 잘 사용하시네. “
“ 네, 저번에 엄마랑 아빠가 싸우실 때 효자손이 부러지면서
우리 아빠는 효자손 대신 이 자를 가지고 등을 긁을 때 사용합니다.
저도 한 번 등을 긁어 봤는데 효자손만큼은 아니지만 아주 시원했습니다. “
“ 그래, 동주 아빠는 아이디어가 참 좋으시다. ”
“ 네 ” 동주는 자랑스럽게 웃으면서 자리에 돌아왔다.
‘ 동주야, 그게 자랑이니? ’ 한심하게 동주를 바라보자, 동주가 나를 향해 씩 웃는다.
‘ 어휴~ 쟤가 언제 철이 들까? ’
소망 반 선생님인 동주 아줌마가 우리 반에 들어오자
우리 선생님이 갑자기 자를 등에 넣고는 벅벅~ 등을 긁으며 소망 반 선생님을 향해 웃으셨다.
소망 반 선생님이 어이없어하면서 쳐다보자 우리 선생님이 선생님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하셨다.
얼굴이 벌게지면서 선생님이 크게 웃으시더니
동주를 한 번 쳐다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소망 반으로 돌아가셨다.
친구들 앞에서 동주는 자를 등에 넣고 여전히 등을 긁고 있다.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철없는 동주를 보자니 마음이 착잡해진다.
다음 날 아침
소망 반 선생님 아니 동주 엄마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 제가 오늘 현아를 못 데리고 갈 것 같아서요. 우리 동주가 밤새 설사를 하네요. ”
“ 네? 동주도요? 우리 현아도 계속 설사를 하는데. 어제 선교원 음식이 상했었나? “
“ 오늘 가보면 알겠죠. 동주랑 현아만 설사를 하는지, 다른 아이들도 그런지.
현아, 열이 나거나 심하지는 않죠? ”
“ 네, 배가 아프다고 하고 밤새 설사만 했어요. “
“ 동주도 현아랑 비슷한데 미열이 좀 나요. ”
“ 그럼 오늘 동주 아빠가 동주를 보겠네요? ”
“ 네, 센터에 가실 일 있으면 동주 아빠한테 현아 맡기세요. ”
“ 아니에요, 괜찮아요. ”
소망 반 선생님은 동주를 아저씨한테 맡기고 선교원으로 가셨다.
믿음, 사랑, 소망반 친구들 어느 누구도 우리처럼 설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주랑 나만 밤새 설사를 했겠지.
어제 오후 동주는 우리 집에 찾아와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동이 언니는 자기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 현아야, 내가 맛있는 거 만들어 줄게. ”
“ 뭔데? ”
“ 어젯밤에 엄마랑 아빠가 맛있는 걸먹더라고.”
“ 어젯밤에? 아줌마랑 아저씨랑? 둘이서? ”
“ 응, 내가 좀 달라고 하니까 안 된다고 어른들만 먹는 거라고 하면서 둘이서만 먹었어. ”
“ 뭘? ”
“ 자, 봐 바 ”
동주는 냉장고에서 사이다 환타 콜라 우유 식혜를 들고 나왔다.
“ 이걸 왜 다 가지고 나와? ”
“ 어제 아빠가 음료수 세 개를 섞어서 먹었어. ”
“ 음료수? 세 개를 섞어서? ”
“ 응, 뭐라고 하더라? 칵, 각, 컥. 이름은 잘 모르겠어. 영어인 것 같아.
암튼 어른들 마시는 음료수 두 개랑 레몬 뭔가를 가지고 와서 막 섞더니 예쁜 잔에 따라서 마셨는데
엄마랑 아빠가 정말 맛있다고 좋다고 하셨어.
엄마가 사 먹는 것보다 아빠가 만들어 준 게 더 맛있다면서 정말 맛있다고 다음에 또 먹자고 하더라.
내가 만들어줄게. 우리 둘이서 먹자. “
“ 그냥 따로따로 먹는 게 낫지 않아? 나는 오렌지 맛 환타가 제일 좋은데 ”
“ 아냐, 우리 아빠가 뭐든 섞어서 먹는 게 젤 맛있데. 네가 환타를 좋아하니까 환타를 좀 많이 넣어줄게. “
“ 자, 이제 시작한다. ”
동주는 큰 대접에 사이다, 환타, 콜라, 우유, 식혜를 붓고는 국자로 젓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젤리를 자르고, 사탕과 초코를 녹이고, 젤리뽀를 으깨 넣었다.
동주가 만드는 음료수가 점차 걸쭉해지기 시작했다.
색깔도 세상 처음 보는 색이며 뭔가 찐득한 것이 좀 이상했다.
“ 현아야, 너 젤리 좋아하지? 레몬맛 사 탕 두? ”
“ 응? 왜? ”
“ 너 레몬맛을 좋아하니까 좀 더 넣어줄까? 우리 엄마가 여자들은 레몬같이 시큼한 것을 좋아한다고 하던데. ”
“ 아니, 이제 그만 넣어. ”
“ 자, 마셔봐. 현아야 ”
“ 응? 좀 이상할 것 같은데. 나 안 마시고 싶은데. ”
“ 아냐, 괜찮아. 맛있을 거야. ”
동주가 컵 가득 자신이 제조한 음료수를 따라주었다.
마시지 않으면 동주가 섭섭해할 것 같아서 음료수를 마셨지만 난생처음 맛보는 세상 오묘한 맛이다.
그나마 레몬 향이 있어 간신히 다 마셨다.
“ 음~ 맛있지는 않은데 맛없다고도 할 수 없는 희한한 그런 맛이야. 정말 다시 마시고 싶지는 않다. “
“ 정말? 나는 맛있기만 한데 ”
동주는 실망하는 빛을 조금 보이다 대접에 남아있는 음료수를 자기가 다 마셔버렸다.
“ 동주야, 안 먹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기분이 좀 이상해. 느낌도 안 좋고, 아무래도 나 집에 가야겠다. “
“ 그래, 잘 가. 내일 보자. ”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두 세 시간쯤 지났을까?
뱃속이 싸해지더니 살살 배가 아프면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갔더니 설사가 좌~ 악 나온다.
저녁을 먹으라고 엄마가 상을 차렸지만 도저히 배가 아파서 밥을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 엄마, 나 오늘 일찍 잘 게. 자꾸 설사가 나오면서 배가 아파. ”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았지만 잠이 안 온다.
배가 너무 아프다. 뱃속에 뱀 여러 마리가 들어가서 안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것만 같다.
‘ 아~ 배 아파. ’ 다시 화장실로 달려가 설사를 한다.
‘ 이제 좀 괜찮은 것 같아. 더 나올 것도 없겠다. ’
겨우 잠이 들었다. 모두들 잠든 한 밤 중, 다시 설사가 나올 것 같아 잠이 깨 다시 화장실로 갔다.
힘겹게 걸어가다 마루 한가운데 더 이상 설사를 참지 못하고 그것들을 쏟아내고 말았다.
‘ 오~ 이런 맙소사!!! 이 설사는 분명 김동주가 만들어 준 괴상한 음료수 때문이야. ’
나도 모르게 갑자기 동주를 향한 욕이 나오기 시작했다. 야채, 과일 할머니한테 들은 욕들이다.
‘ 내가 이렇게 욕을 잘하다니? 이걸 다 외우고 있었다니?’
나에게 감탄을 하다 정신을 차렸다. 욕이고 뭐고 얼른 이 흔적들을 치워야 한다.
작은 언니가 알면 또 동네방네 소리를 지르고 소문을 낼 것이 분명하다.
마룻바닥에 노란 설사를 휴지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한 참을 치우고 나니 기운이 다시 빠진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바지와 팬티를 빨아 겨우겨우 옥상에 올라가 그것들을 널었다.
그 제서야 간신히 잠이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침이 되었다.
아침이 되어 일어나니 배도 많이 아프지 않고 더 이상 설사를 하지 않았다.
엄마가 끓여준 흰 죽을 먹고 나니 이제야 살 것 같고, 힘이 다시 나는 것 같다.
엄마는 옥상에 널린 내 잠옷 바지와 팬티를 올려다보더니 나를 한번 쳐다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흰 죽을 먹었다.
“ 현아야, 엄마 센터에 갔다 올게.
집에 은동이 할머니랑 대전 댁 아줌마 있으니까 배 아프면 얘기해. “
“ 응, 갔다 와. ”
나는 기운을 차리고 마루에 누워 책을 보고 있었다.
‘ 쾅 ’ 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 동주네다.
대문 밖을 나가보니 동주 아저씨가 동주를 등에 업고 어딘가를 간다.
“ 아저씨, 어디 가세요? ”
“ 동주가 열이 나서 병원에 간다. ”
“ 열까지 나요? ”
“ 아무래도 병원에 가서 수액을 좀 맞아야겠어. ”
“ 다녀오세요. ”
아저씨 등에 업힌 체 축 처진 동주가 나를 향해 뭐라고 말을 하고 있다.
‘ 뭐? 뭐라고 하는 거야? 뭐라고? ’
나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동주에게 귀를 기울였다. 힘없는 목소리로 동주가 속삭인다.
“ 뭐라고? 동주야, 너 뭐라고 했어? ”
“ 현아야, 내가 병원 갔다 와서 다 낫고 나면 맛있는 빵 만들어 줄게.
어제 아빠가 빵을 만들었는데 참 맛있었어. 내가 다 적어놨으니까 만들어 줄게. 우리 같이 먹자. “
“ 그래, 알았어. 병원이나 다녀와. ”
동주는 스르륵 눈을 감더니 아빠 등에 업힌 채 잠이 들었다.
다시는 절대 동주가 만들어 준 건 안 먹을 거다. 안쓰러운 맘은 들었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동주 집 옥상을 올려다보니 동주의 팬티, 잠옷, 이불들 옥상에는 동주의 빨랫감들만 널려져 있었다.
동주는 이 틀 정도 더 쉬고 나서 선교원에 갈 수 있었다.
기운을 차린 동주는 우리 집을 다시 들락거린다.
호기심이 강한 동주가 또 무슨 일을 생각하고 벌일지 어떤 때는 겁도 난다.
“ 현아야, 전화 좀 받아. ”
동주가 우리 집 열린 대문 사이로 뛰어 들어와서는 말한다.
“ 동주, 왔어. 아침 먹었니? ”
“ 아니요, 아줌마, 이따 먹을 거예요. 현아랑 할 얘기가 있어서 급히 왔어요. “
“ 야~김동주, 온 김에 그냥 말해. ”
“ 안 돼, 비밀 얘기란 말이야. 아무도 들으면 안 돼. ”
“ 아~ 진짜, 나 밥 먹어야 하는데. ”
“ 누나들이랑 형들 학교 가고 나서 밥 먹으면 되잖아. 얼른 내 전화받아. “
“ 야! 김동주, 그러지 말고 그냥 지금 말해. ”
“ 싫어, 너랑 둘이서만 얘기할 거야. ”
큰 오빠가 동주를 보고 궁금한 지 묻는다.
“ 동주야, 뭔데?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아침부터 현아한테 할 말이 뭐야? 우리가 들으면 안 돼? “
“ 네, 아무도 들으면 안 돼요. 현아랑 둘이서 할 얘기가 있어요. ”
“ 어휴~너 진짜. 너, 너무 귀찮게 해. 그 전화 경화랑 하는 게 어때? 나 말고
경화는 언제든 네 전화받아줄 거야. “
“ 싫어, 나는 너랑 할 거라고. ”
큰 언니가 웃으며 말한다.
“ 현아야, 받아줘라. 동주 이러다 아침밥도 못 먹겠다.
동주가 중요하게 너랑 둘이서만 할 얘기가 있나 보네.
동주야, 얼른 가. 현아가 네 전화받을 거야. “
“ 그래, 가, 가, 가~ 내가 전화 꼭 받을게. “
“ 알았어, 나 집에 도착하고 바로 전화 걸 거니까. 얼른 받아. “
“ 알았다니까, 얼른 가라고. ”
짜증을 내며 대문 밖으로 동주 등을 밀었다.
‘ 짤랑짤랑짤랑~ ’ 말 그대로 벨이 울린다.
“ 야, 이거 진짜 벨소리네. 말 그대로 벨소리야.
동주 아빠가 고등학교 과학 선생님이고 동주랑 둘이서 과학 실험을 많이 해준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네. 사실이야. 현아야, 동주 진짜 똑똑하다.
동주 과학 책도 좋아하고, 백과사전도 많이 읽는다더니
동주 얘 진짜 너무 기발하다. 기발해.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생활에 응용을 하네.
동주도 대단하고, 아저씨는 더 대단하고. 이런 애가 과학자가 돼야 하는 거야. “
큰 오빠는 동주에게 감탄을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 오빠, 동주 걔가 얼마나 엉뚱한지 알아야 그런 소리를 안 하지? 모르면 말을 하지 마. ‘
동주가 자기 아빠랑 함께 만들고, 둘이서 우리 집에 찾아와
마루 대들보에 직접 설치까지 해 준 비밀 전화기
우리 집에는 두 대의 전화기가 있다.
동작 전화국에서 설치한 전화기, 동주 아빠가 설치해 준 비밀 전화기
' 동주 아저씨는 어쩜 그렇게 동주가 해 달라는 데로 다 해 줄 수가 있지? ’
동주 아저씨는 신기하고 이상하다. 그런 아저씨는 만나 본 적이 없다.
동주는 아빠에게 우리 둘 만 사용할 전화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아저씨는 전화기 만드는 방법이 적힌 책을 동주에게 줬고,
동주는 그중 제일 간단한 종이컵을 이용한 전화기를 선택했다.
보통 어른들은 귀찮다고, 소용없다고, 하지 말라고 할 텐데.
동주 아저씨는 동주보다 더 적극적이며 매사에 진지하고, 꼼꼼하고, 정확하다.
일주일 전 토요일 오후
우리 집 대문 두들기는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니
대문 앞에는 동주와 동주 아버지가 서 있었다.
동작 전화국 직원처럼 동주와 아저씨는 머리에 헬멧을 쓰고, 남색 잠바까지 입고 와서는 정중하게 부탁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부자는 전화국 직원 역할 놀이는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저씨와 동주의 태도는 정중하고 신중했다.
“ 현아 엄마, 우리 동주가 현아랑 둘이서만 사용하는 전용 전화기를
현아네 집에 설치해 달라고 하는데 괜찮겠어요? “
“ 네, 그러세요. 실이 대문에만 걸리지 않게 하면 돼요.
그런데 동주 아빠, 그 전화기로 정말 소리가 들릴까요? “
“ 네, 전화기 실이 팽팽하면 소리는 전달될 거예요. ”
아저씨는 동주가 만든 종이컵 전화기를 우리 집 기둥에 설치해줬다.
동주네 집은 우리 옆집으로 두 집의 벽은 나란히 연결되어 있다.
동주 네 집 마루 기둥에 달린 전화기
그 집에서 시작되었으며 우리 집까지 연결된 전화선
전화선, 정확히 말하면 명주실인 그 전화선은 동주네 집 기둥과 마루를 넘어 대문을 통과해
지붕 아래 벽을 지나 우리 집 대문을 통과하고 처마를 지나 마루에 있는 기둥에 설치해 준 종이컵 전화선이다.
아저씨는 처마와 마루 기둥 사이 제비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설치를 했지만 놀란 제비 새끼들은 둥지 안에 숨어 쥐 죽은 듯 조용히 있었다.
가장 놀란 건 어미 제비로 아저씨가 새끼들을 해치는 줄 알고 마당 안에 회를 돌며 아저씨를 공격했다.
동주와 아저씨는 전화기 설치와 전화선 연결을 마무리 지은 후 흐뭇해하며 돌아갔다.
어미와 새끼 제비들도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둥지에서 편안히 쉴수 있었다.
전화 선 사이에는 방울 몇 개를 달아서 동주가 전화를 걸었다는 신호로 실을 당기면 방울 소리가 울린다.
방울 소리가 전화벨인 셈이다.
다른 아이들이 들을 수도 있으니 비밀 얘기는 선교원에서 하지 말고 집에서 둘이 몰래 하자며
종이컵 전화기를 설치하자고 동주는 내게 간청을 했다.
며칠을 졸라대는 통에 하자고는 했지만 벨은 아침, 저녁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울려댔다.
귀찮은 것쯤은 참을 수 있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벨이 울리고 전화기를 귀에 대면 동주가 나에게 하는 말이 들리긴 한다.
하지만 그게 너무 크고 분명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동주와 나 둘만이 아닌 우리 앞집, 옆집, 뒷집, 골목길을 지나가는 행인들 모두에게 들린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엔 그 사실을 몰랐다.
“ 여보세요, 들리니까 이제 말해. ”
“ 현아야, 나야 ”
“ 알아, 너인 거 아니까 빨리 말해. ”
“ 이따가 우리 선교원 같이 가자. ”
“ 알았어. ” 선교원에 갔다 오면 앞 집 경화 아줌마가
“ 현아야, 오늘 아침 동주랑 선교원 같이 가면서 무슨 이야기 하면서 갔어? ” 물어보고
“ 현아야, 나야. ”
“ 어 ”
“ 우리 집에 엄마가 카스텔라 사 왔으니까 먹으러 와. ”
“ 싫어. 나 배불러. ”
“ 너랑 같이 먹으려고 나 안 먹고 있어. 책 보면서 같이 먹자. 기다릴게. “
” 귀찮다니까 동이 언니랑 같이 먹어. “
“ 알았어 “
갑자기 동주가 짠해져서 그 집에 가서 카스텔라를 먹고 놀다 돌아오면 뒷집 은실 아줌마가
“ 현아야, 동주가 부탁하면 좀 살갑게 해 줘. 아무래도 동주가 널 좋아하는 것 같은데. “
안타까운 눈빛과 목소리로 말한다.
“ 현아야, 나야. ”
“ 왜? ”
“ 이따 나 너희 집에 가서 놀면 안 돼? ”
“ 안 돼, 오지 마. ”
“ 왜? ”
“ 나 책도 봐야 하고. 밍키도 봐야 해. 색칠 공부도 해야 하고 ”
“ 너랑 같이 보면 안 돼? ”
“ 너는 너희 집에서 동이 언니랑 봐. 우리 집은 복잡하고 시끄러워. 너까지 오면 “
“ 알았어. ”
“ 어휴~ 알았어. 와 ”
다음 날이면 옆 집 아줌마가, 모든 사람들이 아는 것이다.
“ 현아야, 동주가 너희 집이 좋은가보다. 놀러 오면 좀 잘해줘. “
‘ 아니 동네 사람들이 나랑 동주가 하는 비밀 얘기를 어떻게 알지? ’
우리 동네 사람들 모두 듣고 있었다. 동주와 내 통화를
애초에 종이컵 전화기로 목소리는 들릴 리가 없었다.
실이 팽팽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소리가 전달될 텐데 명주 실은 너무 길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쳐지고 늘어져 소리는 전달되지 않았다.
동주가 선을 여러 번 흔들어 대면 벨은 울렸지만 작게 말하는 소리가 전달되지 않자
답답해진 동주가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을 했고, 나 역시 종이컵을 대고 큰 소리로 말을 했던 것이다.
우리는 온 동네가 다 들리게 소리를 지르며 비밀통화를 했던 것이다.
컵을 대지 않은 귀로 들리는 소리를 컵을 통해 들어오는 소리라고 착각을 한 것이다.
둘이서 비밀 얘기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통화를 하니
경화네, 뒷집, 옆집, 우리 집에 세 들어 사는 모든 사람들이
동주와 내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모두들 듣고 있었으면서도 그것이 재미있어
비밀 전화 통화를 동주와 내가 계속하도록 모르는 척, 안 들리는 척했던 것이다.
내가 심부름을 간 사이 동주가 또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이 울리자 우리 엄마가 나를 대신해 동주의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현아야. 나야. ”
“ 동주구나. 동주야, 현아 심부름 갔다. ”
동주와 내 통화를 웃기게 들은 엄마는 자기도 한번 해보고 싶었단다.
우리 엄마도 동주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 현아 심부름 갔다구요? ”
“ 응 ”
“ 아줌마, 저 너무 속상해요. ”
“ 왜? ”
“ 현아가 제 마음을 몰라줘요 ”
“ 네 마음? 그게 뭔데? ”
“ 나는 현아랑 결혼하고 싶은데 현아는 나랑 결혼하기 싫데요.
내가 커서 돈 많이 벌어서 우리 엄마 말고, 현아한테 다 준다고 했는데
현아는 그래도 내가 싫데요. 나랑 결혼 안 한데요. “
어느 순간 설움에 복 받힌 동주는 으앙~ 소리를 내며 울다 통곡을 시작했고
우리 집, 앞집 경화네, 뒷집, 옆집, 동주네 다섯 집에서 동시에 웃는 소리가 터졌다.
영문을 모르던 주변의 웃음소리에도 동주는 계속 울어댔고
심부름을 다녀온 후에 우리 식구들, 대전 댁 아줌마네, 은동이네, 은주 언니
모두 나를 보며 뜬금없이 국수 타령을 했다.
“ 현아야, 국수 언제 먹여 줄 거야? ”
“ 나 얼른 국수 먹고 싶은데. 현아랑 동주가 주는 국수 ”
“ 비빔국수는 안 되니? 현아야 ”
다음 날 동네에서도 어른들이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 현아야, 어지간하면 동주랑 결혼해라. ”
“ 동주만큼 착한 애 없다. ”
" 동주가 지가 번 돈 다 지 엄마 안 주고, 너 준다고 했다며? 그런 남자는 없다.
더 이상 동주 애 먹이지 말고 결혼한다고 해라. 그러다 걔 병난다. "
내가 동주와 같이 지나가면 어른들은 우리를 보면서 이유 없이 웃었다.
서로 옆구리를 쿡쿡~찔러대며 웃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썼다.
동네 사람들이 왜 우리를 보고 그렇게 웃어 댔는지
그 이유를 각자의 엄마를 통해 듣게 된 동주와 나는 더 이상 전화를 걸지도 받지도 않았다.
전화기는 떼 버려서 이제 전화를 걸지도 받을 수도 없지만 전화벨은 종종 울려댔다.
두 집을 연결한 전화선은 아직 남아 있었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 딸랑딸랑딸랑~ ’ 전화벨은 울려댔다.
참새와 제비 작은 새들이 앉아 쉴 때도 전화벨은 울렸다.
벨소리에 잠이 깨고,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전화선을 끊지 않았다.
낡고 낡아 전화선이 저절로 끊어지기 전까지
벨이 울려댈 때마다
동네 사람들은 동주네 집을 쳐다보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