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우리 동네에 김일성이 산다

part 2

by 옥상 소설가

돼지 문방구

우리 동네 아이들 쉼터이자 오아시스

해피 분식집과 진주 미용실은 아줌마들의 사랑방

철물점은 아저씨들의 사랑방

우리들의 사랑방은 돼지 문방구이다.

원래 돼지 문방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셨었다.

두 분이 힘에 붙여 문방구를 운영하지 못하자 새로운 주인이 올해 봄 들어왔다.

공사를 해서 깨끗이 청소도 정리도 하고

아이스크림 통 두 개, 음료수를 보관하는 냉장고도 설치했다.

새로 온 아줌마랑 아저씨는 음료수 냉장고에 시원한 보리차를 보관해놨다가

우리가 언덕 위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언덕을 내려올 때

' 얘들아 ' 하고 부른 뒤 플라스틱의 색색의 컵에 보리차를 따라 주셨다.

낯선 돼지 문방구에서 처음 보는 아줌마 아저씨에게

보리차를 받아먹는 것이 어색한 우리는 멈칫멈칫했지만

금세 익숙하게 되어

이제는 목이 마르면 돼지 문방구에 가서 보리차를 달라고 말하곤 했지만

우리들은 돼지 문방구에 가는 것이 조금은 꺼려졌다.


‘ 혹시나 문방구에 김일성이 있으면 어쩌나? ‘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김일성

6.25 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악랄한 괴수

똘이장군에서 봤던 돼지 괴수 김일성

얼굴은 돼지, 몸은 뚱뚱하고, 턱에는 혹부리 영감처럼 혹이 두 개나 있다.


우리 동네

돼지 문방구에는 돼지 괴수가 산다.

사실 괴수는 아니다. 김일성도 아니다.

우리가 김일성이라고 별명을 부친 사람은 돼지 문방구 아줌마의 남동생이다.


아줌마랑 아저씨가 외출을 하거나 공장에 물건을 떼러 가시면 김일성이 가끔 문방구를 지키곤 했다.

그 아저씨는 왼쪽 볼에 혹이 커다랗게 붙어있었다.

볼에 있던 혹이 점점 커지면서 빨간 속살들을 위로 밀어 올려 빨간 속살은 왼쪽 눈을 뒤덮어 버렸다.

왼쪽 볼은 터질 듯이 부풀어져 있고, 왼쪽 눈에는 눈알이 아닌 뻘건 속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우리들은 그 아저씨를 무서워했다.

그 아저씨가 문방구에 있으면 아무리 목이 타도 보리차를 얻어먹으러 들어가지 않았다.

아줌마도 아저씨도 우리가 그 아저씨를 무서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아저씨도 우리가 자기를 무서워한다는 걸 눈치챘는지 우리가 문방구 근처로 오면

매형이나 누나를 부르고는 얼른 집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다.

그 아저씨와 우리는 그렇게 암묵적인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저씨가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골목길에서 놀고 있는 것을 웃으며 바라보고

언덕을 신나게 달려 내려오는 것을 걱정스레 보고 있다는 것을

유리창 너머에는 그 아저씨가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 아저씨가 제일 걱정했던 그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이들과 언덕을 뛰어 내려오다 나는 발이 꼬여 데굴데굴 굴러 내려오고 있었다.

재수 없게도 흙바닥에는 깨진 병조각이 있었고 무릎의 살들이 쭈욱 찢어지고 말았다.


“ 악~~~ 악~~~ ”


솟아 나오는 빨간 피에 겁이 나 나는 소리를 지르며 울어댔고 내 주위 아이들도 덩달아 놀라 소리를 질렀다.

내 옆에서 같이 우는 호달이

우리 엄마를 부르러 뛰어간 동주

할머니를 부르며 달려간 경화

모두들 소리를 지르고 울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나가던 아줌마 아저씨들은 걸음을 멈추고 내 근처에 서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 어쩜 좋아? 얘들아, 빨리 집으로 가서 이 애 엄마 불러와 ”

“ 현아야 ”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문방구 김일성이다. 아니 아줌마 동생이다.


‘ 김일성이 내 이름을 알고 있었네? ’ 나는 놀라 김일성을 쳐다봤다.


“ 네? ”

“ 현아야, 얼른 업혀. 병원 가자. ”

“ 아니에요, 괜찮아요. 애들이 우리 엄마 부르러 갔어요. ”

“ 그래? ” 숨을 헐떡거리며 동주가 뛰어온다.

“ 현아야, 너희 집에 아무도 없어. 우리 아빠도 없는데 어떡하지? “

“ 현아야, 문방구에 매형도 누나도 없어. 얼른 내 등에 업혀서 병원 가자.

깊게 찢어지고 병 조각도 박힌 것 같으니까 얼른 병원에 가서 뽑아내야 해.

안 그러면 피도 안 멈추고 흉도 남을 거야. 빨리 가자. “

“ 네 ”


나는 아저씨 등에 업혀 초등학교 옆 제일병원으로 갔다.

안도감에 점점 몸이 풀리고 잠이 쏟아진다.

병원 접수처 간호사 언니가 내 이름을 묻고 주소랑 전화번호를 묻는다.


“ 보호자세요? ”

“ 네? ”

“ 민현아 아빠 냐구요? ”

“ 아니에요, 우리 아빠 아니에요. ”


당황한 아저씨가 나를 말없이 바라본다.

아저씨랑 나는 땅만 내려다보고 간호사 언니는 우리를 답답한 듯 올려다본다.


“ 그럼, 누구예요?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고요. 관계가 어떻게 되냐고요? “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암 말도 하지 않을 것 같다.


“ 우리 삼촌이에요. ”

“ 삼촌? 너희 삼촌이니? ”

“ 네 ”

“ 민현아, 삼촌 맞아요? ”

“ 네 ”

“ 얼른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마침 정형외과 선생님이 퇴근 안 하고 계세요. ”


간호사 언니는 눈짓으로 진료실을 가리켰고 나랑 아저씨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언니는 재미난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떠들며 웃고 있다가

우리가 들어가자 점잖게 행동했다.


“ 아이구, 저런 피가 많이 났네. 쓰라리고 아프지? 따님이 크게 다쳐서 아빠가 많이 놀랐겠어요? “

“ 네? 그게..... 저...... 제가...... 얘 아빠가........ ”

“ 아빠가 여기까지 널 업고 달려오셨구나.

얼마나 예뻐하는 딸인지 알만하다. 아빠가 아직도 숨이 거칠다. "


그러게. 우리 집에서 제일 병원까지는 걸어서 십오 분이나 걸리는데

아저씨는 나를 업고 금방 병원에 도착했다.


“ 귀한 따님 인가 봐요. 옷에 이렇게 피가 묻은지도 모르고 뛰신 걸 보면

하긴 이렇게 딸이 다치면 아빠가 놀라는 게 당연하지?

왜 아빠들은 딸이라면 사족을 못 쓸까? 딸은 시집가면 그만인데. 외동딸이에요? 아니면 막내딸이에요? “

“ 네? 저...... 그게..... 사실은....... 제가, 현아 아빠가 아니....... ”

“ 무남독녀 외동딸이에요. ”

“ 어? 무담독녀? 너 그런 말도 알아? ”

“ 네 ”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언니의 놀란 눈이 공중에서 마주친다.


“ 자, 무릎을 좀 구부려 봐. 다시 펴고, 아프지 않아? 불편하거나 저리거나 뭐 그런 거 없어? “

“ 좀 쓰라리고 아파요. ”


의사 아저씨는 나를 쳐다보다 아저씨를 보다 웃었다.


“ 뼈에 이상은 없는 것 같고, 힘줄이나 근육도 괜찮은 것 같아요.

찢어진 피부만 좀 꿰맬게요. 따가워도 좀 참아.

아저씨가 흉 안 지게 얇은 실로 꼬매 줄게. 넌 운이 좋았다. 내가 퇴근 안 하고 있었던 게

안 그러면 무릎에 흉 남았을 텐데. 나한테 고마워해라. 알았지? “

“ 네, 감사합니다. ”

“ 당분간은 목발을 짚고 걷자. 잘못해서 터질 수도 있으니까 ”


서른 바늘이 넘게 꼬매고 우리는 병원 문을 닫고 나왔다.


“ 현아야, 괜찮아? 안 아파? ”

“ 아파요 ”

“ 걸어갈 수 있겠어? ”

“ 아니요, 못 걸어요. ”

“ 어떻게 하지? ”

“ 아저씨가, 아니 삼촌이 업어주세요. ”

“ 삼촌? 너 나를 삼촌이라고 부른 거야? ”

“ 네, 삼촌이 업어 왔으니까 갈 때도 삼촌이 업어주세요.

아까 의사 선생님이 힘을 주고 걸으면 다시 터질 수도 있다고 했잖아요? ”

“ 그래, 가자. ”



삼촌은 터덜터덜 걸어갔다.

나를 업고 이제야 힘이 드는 걸 느끼는지 내 엉덩이를 목발로 받치고 천천히 걸어갔다.

딱딱한 목발이 내 엉덩이를 받쳐주니 편해지면서 눈이 슬슬 감기려 한다.

어쩐지 삼촌이 일부러 늦게 걸어가는 것 같다.

빨리 가는 길도 있는데 일부러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먼 길을 돌아가는 것 같다.

그것도 나쁘지 않아 모른 척 눈을 감았다. 잠이 스멀스멀 덮쳐와 정말로 눈이 감겼다.

금빛 하늘이 공기를 데워 온 몸이 따듯하다. 뜨끈한 한 삼촌의 체온까지 더 해져 깜빡 잠이 들었다.


“ 현아야, 다 왔어. 눈 떠. 우리 동네야. 이제부터 걸어가. ”

“ 네? 의사 아저씨가 걸어가지 말라고 했는데요, ”

“ 내 등에 업혀 가면 김일성 딸이라고 애들이 놀릴 거야.

여기서 내려서 힘들어도 목발을 짚고 걸어 가.

살살 조심해서 걸어가면 돼. 나는 조금 있다 갈게. “

“ 삼촌, 책임감이 없으시네요? 아까는 외동딸이라고 해놓고? “

“ 내가 언제 그랬어? 네가 외동딸이라고 그랬잖아? ”

“ 삼촌이 내가 딸이 아니라고 정정하지도 않았잖아요.

아까 내가 거짓말할 때 가만히 있었으면서. 그건 내 거짓말에 동조한 거예요.

아빠라고 하는 건 안돼요. 우리 아빠는 사우디에 계시니까

대신 앞으로 삼촌이라고 부를 게요. “


“ 정말? 정말 나를 삼촌이라고 부를 거야? ”

“ 네, 그러니까 나를 조카로 무남독녀 조카로 대해 주세요. ”

“ 어 그래, 알았어. ”

“ 다리 아파요. 우리 집에까지만 업어주세요. 우리 오빠랑 언니들 이제 집에 있을 거예요. “



내가 등에 업혀서 동네로 들어가자

친구들이 언니 오빠들이 아줌마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 현아야, 너 괜찮아? ”

“ 많이 안 다쳤어? ”

“ 너 왜 김일성 등에 업혀있어? 빨리 내려. ”

“ 그런데 저 이는 누구야? ”

“ 그러게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인데. ”

“ 우리 삼촌, 아~~~ 그게 아니고 돼지 문방구 아줌마 동생이에요.

이름은 김수철이에요. 나이는 아직 저도 모르고 미혼이에요. “

“ 어머? 현아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

“ 우리 친해요. 삼촌 나랑 친하죠? ”

“ 응?...... 어..... 그래..... 친하지, 우리 친하지. ”

“ 뭐? 삼촌? 현아, 저거 벌써 삼촌이라고 부르네. 큭큭큭~ ”


“ 집으로 얼른 가. 엄마가 너 다쳤다는 전화받고 너 찾으러 여기저기 병원으로 다닌 거 같던데 ”

“ 네, 삼촌이 제일 병원까지 업고 뛰셨어요. ”

“ 뭐? 제일 병원, 그 먼데를? ”

“ 네, 거기에 정형외과가 있다고 거기로 가셨어요. ”

“ 수철이 총각, 고생했어.

저 바지랑 남방에 피 좀 봐. 현아 피가 다 묻은 모양이네. 현아 엄마가 신세 졌네. “

“ 그러게, 결혼도 안 한 총각이 잘 모르는 동네 꼬맹이를 업고 제일 병원까지 달려갔데.

사람이 인정이 있네. 인정이 있어. “

“ 근데 총각, 나이가 몇이야? ”

“ 네, 스물일곱 살이에요. ”

“ 스물일곱? 우리 큰애랑 동갑이네. ”

“ 수철이 총각, 고생했어. 애썼네. 앞으로 우리 인사하고 지내자고. ”


집에 들어가니 엄마 오빠 언니들 은동이 할머니 대전댁 아줌마네 모두 난리다.


“ 현아야~~~ ”

“ 너 어느 병원에 갔던 거야? 우리가 너 찾으러 여기저기 다녔는데. “

“ 저...... 그게...... 제일 큰 병원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제일 병원에 다녀왔어요. ”

“ 여기서 거기를? 그 먼 제일 병원을? ”

“ 네 ”

“ 아이고,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

“ 돼지 문방구집 아줌마 동생이라고 했죠? ”

“ 네 ”

“ 엄마, 동네 아줌마들이 엄마가 이 삼촌한테 큰 신세 진 거래. ”

“ 뭐? 삼촌? 벌써 삼촌이야? 너 아주~~~

내가 그렇게 내리막길에서 뛰지 말라고 했는데도 뛰어? 그래서 이 사단을 만들어? 내가 아주 속이 터진다.

수철이 총각, 암튼 너무 고마워요. ”

“ 엄마, 삼촌 바지랑 티에 묻은 이 피 내 피야. 엄마가 그때 피 얼룩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지.

삼촌 집에 들어가서 아줌마한테 혼나겠다. 어쩌지? “

“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현아야, 이제 그만해. ”

“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

“ 그래요. 내 정식으로 인사하러 갈 게요. ”


저녁을 먹으며 엄마는 언덕에서 그렇게 뛰지 말라고 일렀는데도 기어이 뛰었다며

여자애가 무릎에 흉이 지면 어쩌냐고, 이제 치마를 못 입을 거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까짓 치마야 안 입으면 그만이고, 뭐 흉이 있다고 치마를 못 입을 이유는 뭔가?

아무도 내 무릎의 상처는 보지 않을 테고 나도 신경도 쓰지 않을 텐데.

흉터야 보는 사람 눈에만 보이고, 내가 보지 않으면 상관없지.

빠르게 달릴 수만 있으면 흉터가 있든 말든 상관없다.

무릎에 커다란 흉터가 있는 사람도 치마를 입을 수 있다.

그까짓 흉터는 내 무릎에 있지, 내 마음에 있는 게 아니니까



다음 날

엄마는 시장에서 남자 바지와 티셔츠를 사서 나와 함께 돼지 문방구로 갔다.

아줌마는 별거 아니라며 새로 담근 겉절이가 맛있다고 접시에 담아주셨다.

나는 그 접시에 사라다를 담아 돼지 문방구로 다시 가져갔고

그렇게 돼지 문방구 아줌마와 우리 엄마는 이웃이 되었다.


“ 와~~~ 김일성이다. 도망가자. ”


아이들은 여전히 수철이 삼촌을 김일성이라고 불렀다.


“ 너희들 자꾸 수철이 삼촌한테 김일성이라고 부르면 같이 안 놀 거야. ”

“ 왜? ”

“ 김일성 이름이 수철이야? ”

“ 그래, 저 아저씨 이름이 수철이야. 김수철 ”

“ 수철이 삼촌은 나 다쳤을 때 저기 먼 제일 병원까지 업고 달려가 준 좋은 사람이야.

너희들이 자꾸 김일성이라고 놀리면 삼촌이 속상하잖아.

만약 너희들이랑 수철이 삼촌 둘 중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삼촌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

우리 엄마가 삼촌에게 큰 신세를 진 거라고 앞으로 삼촌이라고 부르면서 인사 잘하고 잘 지내라고 했거든. “

“ 그래, 이제 우리 김일성이라고 부르지 말자. 저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닌 것 같아. “

“ 맞아. 우리 엄마도 저 아저씨 착한 사람이라고 인사하고 다니라고 했어. ”

“ 김일성은 나쁜 놈이지만 저 아저씨, 아니 수철이 삼촌은 좋은 사람 같아. ”

“ 그래 ”


친구들은 나처럼 수철이 삼촌을 삼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돼지 문방구에 삼촌만 있어도 우리는 문방구로 들어가 시원한 보리차를 달라고 했다.


“ 삼촌 우리 시원한 보리차 ”

“ 어휴~ 그렇게 뛰어다니니 목이 타지? 위험하니까 언덕 아래로 뛰면 안 돼. ”

“ 알았어 ”


삼촌은 이제 유리창 너머로 숨어서 우리들이 노는 것을 보지 않았다.

유리창 밖으로 나와 돼지 문방구 앞에서 우리들이 노는 것을 재미있게 바라봤다.

우리가 언덕을 여전히 뛰어 내려오면


“ 얘들아, 그만 뛰어. 다쳐. 위험해. ”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 수철이 삼촌, 이리 와. 이리 와서 우리랑 같이 뛰어.

언덕을 뛰어 내려오면 정말 재미있어. “

“ 빨리 와. 삼촌, 한 번만, 한 번만 우리랑 같이 뛰어봐. 정말 재미있다니까 ”


우리는 삼촌에게 손을 흔들어 언덕으로 올라오라고 삼촌을 불러댔다.

어느 순간부터 삼촌은 우리랑 언덕을 뛰어내려오기 시작했다.

삼촌은 깔깔깔 웃으며 우리보다 먼저 뛰어 내려갔다.

수철이 삼촌은 바람 같았다.


“ 삼촌, 좀 천천히 뛰어. 맨날 삼촌이 일등이잖아.

어른이 왜 맨날 우리를 이기려 들어? 자꾸 그러면 삼촌이랑 안 놀 거야. ”


아이들의 볼멘소리도 들려왔다.

오늘도 돼지 문방구 아저씨가 나를 의자에 앉히고

밥은 먹었는지, 엄마랑 언니 오빠들은 어디 갔는지, 오늘 선교원에서 뭘 배웠는지 묻고 계신다.

아줌마는 또 시작된 아저씨의 질문에 한숨을 쉬신다.


“ 오늘 선교원에서 들은 얘기 좀 해줘 봐. 아저씨 궁금하다. ”

“ 아저씨, 이따 해 드릴게요. 나도 저기 가야 해요. ”

“ 현아야, 어서 나가 놀아. 당신은 나랑 놀아. 내 얘기나 들어. ”


아줌마가 내 대신 의자에 앉아 얘기를 시작한다.

아저씨가 갑자기 일어나서 물건을 정리한다.

아줌마가 아저씨를 끌어 앉히신다.

예전 삼촌이 우리가 뛰어 내려오는 것을 보던 문방구 유리창 문

나는 그 자리 서서 아이들과 수철이 삼촌이 뛰어내려오는 것을 본다.

내가 없는 틈에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언덕을 올라가서 또 달리기를 하고 있다.

의리 없는 것들

내가 아저씨에게 잡혀 있는 사이 저희들끼리 올라갔다. 삼촌도 의리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또 수철이 삼촌이 일등이다. 아이들은 짜증이 났지만 삼촌은 신경도 쓰지 않고 웃기만 한다.

수철이 삼촌이 넘어질까 걱정스럽다.


‘ 어~어~어!!! 저러다 넘어지겠는데 다치겠는데 ‘


“ 삼촌, 수철이 삼촌, 그만 뛰어. 그러다 다쳐. 그러다 넘어진다니까! ”

“ 현아야, 빨리 와. 이리 와서 같이 뛰자. ”




수철 공방

수철이 삼촌의 공방이 문을 열었다. 삼촌의 이름을 그대로 딴 수철 공방

동네 아이들 사랑방은 돼지 문방구에서 수철 공방으로 옮겨갔다.


“ 돼지 문방구 주인이 만든 연은 한번 하늘에 올라가면 바람이 멈춰도 내려오지 않는데요. ”

“ 나도 들었어요. 그 집이 연을 그렇게 잘 만든다고 ”

“ 그거 참 신기하네. 돼지 문방구 주인이 아니라 그 동생이 만든다는데

우리 애가 그 연 사달라고 하도 졸라서 나도 하나 주문했어요. “

“ 나도 한 번 날려봤는데 정말 잘 날더라고요. 그렇게 바람을 잘 타는 연은 처음 봤어요. ”


삼촌이 만들어 준 내 연이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자 삼촌의 연은 유명세를 탔고

우리 동네, 옆 동네, 어떤 사람들은 차를 타고 와서 연 값을 지불할 테니 연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삼촌은 항상 마당에서 연을 만들었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삼촌이 만든 연을 원하자

이 상태로는 주문한 양의 연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아저씨랑 아줌마, 수철 삼촌은 고민을 했고, 삼촌의 공방을 열자는 결론을 냈다.

따로 가게를 얻지는 않았다.

돼지 문방구가 워낙 커서 아저씨는 문방구의 1/3을 칸막이로 막아 삼촌의 공방을 열기로 했다.


“ 아줌마, 대전댁 아저씨가 목공소에서 일하시는데 이런 공사는 쉬울 거예요.

아저씨가 내 썰매도 만들어주고 큰 언니 책상도 만들어 줬어요.

엄마가 아저씨 손이 야물다고 했어요. “
” 그래? 그럼 다른 기술자를 부를 필요 없겠네. “


대전 댁 아저씨가 큰 나무로 가림막을 만들어주고 탁자며 작업대 장식장 등을 멋지게 만들었다.

나무로 된 큰 간판도 만들고, 출입문도 따로 만들어 줬다.

모두들 만족해하며 아저씨에게 고마워했다.


“ 이까짓 거 뭘~ 암 것도 아닌데. 다들 좋아하니께 참 좋구먼. ”


수철 공방의 개업식이 열렸다.

엄마는 돼지 머리를 제공했고, 쌀집 아저씨는 시루떡, 해피 아줌마는 막걸리, 대전댁 아줌마는 전,

은실 아줌마는 잡채, 동주 아줌마는 사라다를 만들어 주셨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수철 공방의 번영을 기원했다.


“ 수철 공방의 번영을 위하여~ ”


어른들은 막걸리를, 우리는 요구르트를 들고 건배를 했다.

잔치 상에는 돼지머리, 떡, 전, 잡채, 사라다, 막걸리, 우유와 주스 음식이 푸짐히 있었다.

우리는 떡을 먹고, 삼촌 가게 앞에서 다방구와 한발 뛰기를 했다.

밤이면 술래잡기를 하지 못했다.

달빛에 그림자가 지어 몸은 숨겨도 그림자는 숨길 수 없었다.

숨길 수 없는 그림자처럼, 삼촌의 얼굴에도 더 이상 숨기지 못하는 웃음의 그림자가 커져갔다.

우리는 이제 시원한 보리차를 얻어 마시러 수철 공방으로 들어갔다.


“ 삼촌, 보리차 ”

“ 그래, 냉장고에 넣어놔서 시원할 거야. 천천히 마셔. ”

“ 삼촌, 연 주문이 아직도 밀려 있어? ”

“ 응, 주문이 너무 많아서 아직도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해. ”

“ 빨리빨리 만들지 그래? 삼촌은 너무 꼼꼼하게 만들어.

종이, 대나무살, 실타래 그런 걸 다 일일이 만드는 사람은 없다고 하던데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야. 대충 만들면 어때? 아무도 모를 텐데. “

“ 그럼, 그건 내 연이 아니지. 싫어. 내 이름을 건 연인데. 내 명예가 걸린 일이야.

안 팔면 안 팔았지. 속이고는 안 팔아. ”

“ 으휴~ ”


아무도 삼촌이 어떤 재료를 어떻게 연을 만드는지 모른다.


“ 삼촌, 나 이런 종이 처음 보는데? ”

“ 이건 한지야. ”

“ 한지? ”

“ 응, 문방구에서 파는 연 세트에 들어있는 종이는 한지이긴 하지만 너무 약해서 바람을 이기지 못해.

그런 한지는 바람이 조금만 세져도 금방 찢어져. 바람을 타지도 못하고 말이야. “

내가 가는 한지 공방은 장인이 수공업으로 종이를 만드는 곳이야. “

“ 수공업 그게 뭐야? ”

“ 기계로 만들지 않고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만든 다는 뜻이야.

어떤 용도로 쓰이냐에 따라 재료의 배합을 결정해서 종이를 만드는 거야.

연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고 가볍고 질기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드리면 거기에 적합한 한지를 만들어주셔.

얼마나 질긴지 물에 젖어도 잘 찢어지지도 않아. “


“ 그럼 값이 비싸지 않아? ”

“ 값이 비싸더라도 좋은 한지로 만들어야 해. ”

“ 대나무 살은? ”

“ 단단하면서 탄력이 좋은 대나무를 골라서 얇게 쪼개지. ”

“ 위험하지 않아? ”

“ 조심해서 해야 해. 대나무는 칼을 살짝만 대도 금방 갈라져버리거든 ”

“ 대나무 말고 손 말이야. ”

“ 칼 만지는 건 이제 이골이 나서 다치지 않아. ”

“ 실은? ”

“ 동대문에 가면 실만 파는 곳이 있는데 거기 가서 삼 껍질과 나일론이 섞인 실을 사고

타래도 플라스틱 사각형이 아닌 팔각형 이상인 나무 타래여야 부드럽고 빠르게 풀려.

손에 감기는 감촉도 다르고 말이야. “

“ 아~~ 삼촌, 그렇게 만들어서 연을 몇 개나 팔 수 있겠어?

풀도 다 직접 쒀서 붙이고, 일주일에 두세 개나 만들면 다행이겠다. “

“ 아니야, 재료 준비만 끝나면 그다음은 쉬워. ”


나는 선교원이 끝난 뒤 종종 수철 공방으로 가서 삼촌이 연 만드는 것을 도왔다.

연을 만들기에 익숙해질 무렵 삼촌은 행글라이더와 글라이더를 만들기 시작했다.

연에 이어 이번엔 삼촌의 글라이더와 행글라이더가 바람을 일으켰다.

해마다 5월이면 어린이날을 기념해 공군에서 초등학생 글라이더와 행글라이더 대회가 있는데

초등학생이 직접 만든 행글라이더나 글라이더가 공중에서 오래 머물면 우승을 하는 것이다.

참가자격은 어린이 들이지만 대부분 어른들이 많이 만들어 줬고

삼촌은 초등학교 6학년인 민재오빠와 함께 글라이더를 만들었다.

민재 오빠는 동력이 고무줄인 행글라이더를 만들자고 했지만

삼촌은 글라이더가 비행기의 정수라며 만들기 까다롭지만 글라이더에 도전해보자고 했다.


‘ 수철이 삼촌이 누구인가? ‘


삼촌은 글라이더의 재료 하나하나를 또 지극정성으로 만들었다.

대회에서 민재오빠의 글라이더가 하늘을 날자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날렵하고 부드러운 몸체와 날개,

종이는 잠자리 날개처럼 얇게 비추면서도 탄력이 느껴졌다.

사회자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글라이더라며 직접 공을 들여 만든 수공품 같다면서 신기해했다.

민재 오빠의 글라이더는 바람을 타고 연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침 바람도 적당히 불어서 운도 좋았다.

오빠의 글라이더는 5분도 넘게 하늘을 날았다.

누구도 오빠의 글라이더의 비행기록을 깨지 못했다.

민재 오빠가 아홉 시 뉴스에 나왔다.

대회 우승자는 헬리콥터를 타고 한강과 남산 대회장 주위를 비행하고 오는데

잔뜩 긴장한 채로 헬리콥터에 탄 민재 오빠가 서울 상공을 나는 모습이 나왔고

기자 아저씨랑 인터뷰하는 모습도 나왔다.

민재 오빠의 인터뷰 사진은 사진으로 인화해 돼지 문방구에도 수철 공방에도 걸렸다.

우승한 글라이더가 삼촌이 만들어준 것이란 사실이 밝혀지자

글라이더와 행글라이더 주문이 연 대신 물 밀 듯 쏟아졌고

어떤 사람들은 글라이더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글라이더 세트처럼 삼촌의 재료를 사겠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연으로 시작해 행글라이더, 글라이더를 주문에 맞춰 만들어 내느라 삼촌은 바빠서

우리랑은 더 이상 놀지 못했다.


삼촌의 공방으로 사람들이 들끓자 삼촌은 낯선 사람들과의 접촉에 이제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예전의 삼촌은 낯선 사람들과의 인사나 짧은 대화도 꺼려했었다.

우리 동네 아이들, 어른들하고만 지내던 삼촌이 점차 처음 본 손님이나 수강생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대화도 길어졌다. 더 이상 삼촌은 어둠으로 구석으로 숨지 않았다.

모두들 삼촌을 원했고, 삼촌은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이제 삼촌은 거울을 보고 얼굴에 묻은 것은 없는지, 머리는 단정한지 살펴봤다.

거울과 유리창은 더 이상 삼촌이 피해야 할 물건이 아니었다.



삼촌은 모형 비행기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

시작은 삼촌의 공방 천장에 달려있던 나무 비행기였다.

연, 글라이더, 행글라이더를 주문하러 왔던 손님들은

공방 천장에 매달려 빙빙 돌아가는 삼촌의 모형 비행기를 보고 홀딱 반해버렸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날아가는 비행기는 본 적이 없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삼촌이 만든 것이라는 걸 모두 알았다.

또다시 모형 비행기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들어왔지만 삼촌은

모형 비행기 만들기는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주문을 거절했다.

비행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삼촌은 모형 비행기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모형 비행기 값은 글라이더와 행글라이더 가격의 서른 배는 받을 수 있었다.

삼촌의 공방이 점점 커지고 장사가 잘 되자

아줌마가 문방구를 지키고, 아저씨는 삼촌을 도와 재료를 만들었다.

아저씨가 도와주니 수고가 덜 해 주문량을 맞출 수 있었다.


삼촌, 아줌마, 아저씨 모두들 신이 났다.

신이 난 것은 삼촌네만이 아니었다.

수철 공방으로 손님들이 몰려들자 공방 옆 해피 분식, 롯데슈퍼, 식당, 시장 안의 가게들이 모두 바빠졌다.

특히 주말이나 쉬는 날은 수철 공방으로 사람들은 더 몰려들었다.

수철 공방으로 인해 시장 안팎의 가게들이 장사가 잘 되자 동네 사람들 모두 수철 삼촌에게 고마워했다.

삼촌 역시 동네 사람들에게 고마워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