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언니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
우리 집에서 언니가 사라져 버렸으면 소원이 없겠다.
저건 언니가 아니라 원수다. 원수
라면 박스크기의 소포 세 상자가 대구에서 온 날
거기에는 아저씨, 아줌마와 시장에 갔을 때 구입했던 물건과
아줌마가 샀는지, 아저씨가 산 것인지 모를 물건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실로폰, 멜로디온, 리코더, 연필깎이, 샤프 등 입학할 때 필요한 물건들이 다 있었다.
전부 내가 좋아하는 밍키, 독수리 오 형제, 은하철도 999 캐릭터 상품이었고
특히 스위스째 98가지 색연필은 그 중 단연 압권이었다.
항상 12가지나 24가지 색깔의 크레파스나 색연필만 보다가
빨강, 진빨강, 연 빨강 색깔이 하나여도 그 농도에 따라 다양한 색깔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98가지 색연필을 보고 처음 알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웠고 비싼 물건이 확실했다.
생일 파티에 입어도 예쁠 듯한 하얀색 드레스와 흰 구두, 편한 운동복
게다가 내가 좋아할 만한 동화책 서른 권도 담겨 있었다.
" 엄마, 이거 아저씨가 샀을까? 아줌마가 샀을까? “
궁금해진 내가 엄마에게 물었고, 엄마는 박스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주방으로 가버렸다.
“ 현아, 좋겠다. 내년에 학교 들어가면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하겠네. ”
큰 오빠는 자기가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은지 웃으며 말했다.
문제는 역시나 작은 언니였다. 소포를 열자마자 언니의 짜증이 시작되었다.
하나씩 하나씩 박스를 열어갈수록 언니는 엄마에게 신경질을 냈다.
“ 엄마, 왜 현아만 이렇게 새 학용품이랑 옷을 사? ”
“ 언니, 이거 엄마가 산 거 아니야.
대구 아저씨랑 아줌마가 내년에 나 국민학교 입학한다고 사주신 거야.
엄마는 돈 하나도 안 썼어. “
“ 그게 그거지. 너는 옷이랑 신발에 학용품도 많이 받았으니까 나 거기서 색연필만 줘. ”
“ 뭐? 이걸 달라고? 이 색연필을? 절대 안 돼. 말도 안 되지.
이거 내 거야. 아저씨가 내 거라고 사 주신 건데 왜 언니가 가져. 내 거야. ”
“ 저게~ 욕심만 많아 가지고, 엄마 빨리 저 색연필 나 주라고 해. ”
언니가 엄마에게 하소연했다.
“ 현아야, 너는 다른 것도 많이 받았으니까 그건 언니 주자. ”
“ 싫어, 이거 내 거잖아. 이건 내 거 하고, 다른 거 언니가 가져. 이건, 절대 안 돼. ”
“ 야, 내가 니 옷이랑 운동화, 구두 그런 걸 어떻게 신냐? 밍키랑 철이 그림이 그려진 학용품을 어떻게 써?
내가 쓸 만한 건 딱 그 색연필 밖에 없는데. 그거 내놔. 그건 내가 쓸게. “
“ 싫어, 이거 내 거야.
나도 선교원에 이거 가지고 가서 그림 그리고 색칠할 거야.
애들은 24색이나 36색 가지고 오는 데 나만 12색 색연필 가지고 다녔어. 나도 이거 가질 거야. “
언니는 색연필을 내 손에서 ‘ 획~ ‘ 낚아채갔다.
“ 그럼 내가 쓰고 나서 너도 쓰면 되잖아.
그것도 싫으면 내 서랍에 넣어 둘 테니까 네가 필요할 때 가져가면 되지.”
“ 싫어, 왜 내 건 데 언니 책상 서랍에 넣어. 내가 가지고 있을 거야. 빨리 줘. 빨리 내놔. ”
언니는 가슴에 끌어안고 절대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매달리고 달라고 해도 언니는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주아야, 동생 울면 시끄러우니까 그냥 줘라. 애 울리지 말고. ”
마침 학원에서 들어온 큰 언니도
“ 야, 네 것도 아닌 데 그냥 줘. 현아 선물인데 왜 네가 가져? 빨리 줘. ”
하고 쏘아대자 작은언니가 색연필을 마룻바닥에 던져버렸다.
나는 쏟아진 색연필을 주어 담고, 장식장 아래로 들어간 색연필 때문에 울고 있는데
작은 언니의 울음도 터져버렸다.
“ 맨날 현아만, 현아만, 현아만. 나는 뭐야?
큰 언니 옷 물려서 입고, 언니가 매던 가방, 신발, 학용품 다 물려받고
엄마는 나한테 새 옷, 새 운동화, 새 가방 사 준 적 있었어?
항상 나는 언니한테 물려받잖아. 친구들은 다 새 건데. 나만 지저분하고, 낡고 , 그런 것만 입고 쓰잖아.
도대체 왜 나만 헌 옷에 헌 운동화에 학용품에. 왜 오래되고, 떨어져 못 쓰는 것들만 내 차지냐고? 왜?
엄마는 대구나 놀러 갈 때 왜 현아만 데리고 가? 나도 있는데.
토요일에 가면 나도 갈 수 있는 데 왜 엄마는 현아만 데리고 가?
나도 딸인데 왜 엄마는 현아만 이뻐해?
언니도 그렇고, 오빠도 그렇고 현아만 이뻐하고?
허구한 날 왜 나한테 양보만 하라고 해? “
서러움이 폭발한 것 같았다. 언니는 마룻바닥에 두 다리를 쭉 뻗고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큰 오빠는 머쓱해하며 방으로 들어갔고, 큰 언니도 미안한지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엄마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나를 쳐다보며 부탁했다.
“ 현아야, 언니한테 하나만 그거 딱 하나만 주자. 너 다른 것도 많잖아.
주아 언니는 맨날 큰 언니꺼 물려받았었어. 색연필은 나눠 쓰면 되고, 그거 말고도 넌 선물 받은 거 많으니까 그거 주아 언니 주자. 응? “
“ 알았어, 엄마, 언니, 그거 언니 가져. “
내가 색연필을 양보하겠다고 하자 언니는 그제야 울음을 멈추었다.
색연필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 사부작사부작 ’ 소리가 났다.
언니가 찾아보기표에 자기 이름을 써서 색연필 맨 꼭대기에 붙이고 있었다.
‘ 언니가 너무 갖고 싶긴 했나 보다. ’ 안쓰러운 생각도 들었다.
“ 현아야, 이거 버튼 눌러도 세워지지가 않는데. “
“ 어? 뭐야? 내 필통, 내 자동 필통!
앙~난 몰라. 어떡해? 내 밍키 자동 필통, 이거 내가 제일 아끼는 건데.
오빠, 이것 좀 고쳐줘. 이거 입학할 때 쓰려고 일부터 서랍 안에 넣고 한 번도 꺼내지 않은 건데.
이거 언니가 망가뜨렸지? 그렇지? 언니가 그런 거지? ”
“ 야, 내가 왜 네 걸 부수냐?
나한테는 쓸모도 없는 건데. 그리고 밍키 그림도 그려져 있어서 유치해서 난 못 써.
서랍에서 자 꺼내는 데 걸리적거려서 꺼내 본거야. 신기해서 몇 번 만지다 내가 이상해서 말한 건데.
그럼, 대구로 가서 다시 바꿔 달라고 해. 그럼 되잖아? “
“ 대구를 어떻게 가?
엄마! 언니가 고장 냈어. 내 필통, 어떡해? 물어내, 언니가 물어내. “
“ 그래, 물어줄게. ”
언니가 입을 벌리고 내 팔을 물려고 달려들었다.
“ 이게! 사람을 어떻게 보고? 너, 내가 니 필통 만지는 거 봤어?
보지도 않고 왜 사람을 모함해? 엄마, 얘 좀 혼내줘. “
“ 아휴~ 너네 좀 그만 해라. 주아야, 너는 중학생이 왜 맨날 일곱 살짜리랑 싸우니?
네가 얘 친구야? 언니가 되가지고. 내가 진짜 속상해서. “
며칠 전부터 언니가 내 책상 서랍에서 밍키 자동 필통을 꺼내서 만지작거리는 게 눈에 거슬렸다.
몇 번 나 몰래 들어와서 만지다가 다시 넣고 나가는 것 같더니. 언니가 일부러 고장을 낸 것이 분명했다.
내가 아끼는 것만 뺏고, 대구에서 선물 받은 것을 티 안 나게 망가뜨리고 있다.
아저씨에게서 받은 물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증거는 없다. 심증만 있을 뿐
내가 생떼를 쓰고 있고, 자기는 결백하다고 주장하니 모두들 언니의 말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나왔다. 억울했다.
‘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는 없지. 복수해야지. 울지 말고 차분히 생각해 보자. ’
저녁 먹을 7시쯤, 작은 언니는 선물 봉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언니를 쳐다보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빠가 언니를 보고 엄하게 말한다.
“ 왜 이렇게 늦게 다녀? ”
“ 응, 친구들이랑 선물 가게 갔다 왔어. ”
“ 밥 먹고, 얼른 씻어. 내일 학교 갈 준비도 해 놓고. 현아, 너도 얼른 먹고, 일찍 자. “
“ 알았어, 엄마. ”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일찍 잠이 들었고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 나 혼자 일어났다.
작은 언니가 오늘 학교에 갈 때 입으려고 책상 위에 올려놓은 청바지, 분홍색 티셔츠, 청바지를 들고
몰래 마루로 나왔다.
플래시를 켜고 카터 칼로 엉덩이 뒷부분과 가랑이가 연결된 봉합선을 ‘ 살살살 ’ 잘라냈다.
이음선을 확인하지 않으면 터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언니도 엉덩이 연결선이 터져있을 줄은 모를 것이다.
버스 정류장에는 남학생 여학생 다 섞여있으니까 바지가 터진 틈으로 언니 팬티가 다 보일 것이다.
조심조심 티 나지 않게 이음 선을 칼로 갈라내고 있었다.
역시나 작은 언니는 늦잠을 잤고, 아침밥도 대충 먹고,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언니가 나간 지 15분쯤 후에 예상대로 언니가 울면서 뛰어 들어왔다.
“ 나, 학교 안 가. 학교 이제 못 다녀. 창피해서 못 다녀. “
“ 아니, 학교에 갈 시간에 왜 울면서 집으로 다시 들어와? 무슨 일 있었어. ”
엄마가 깜짝 놀라 언니에게 물었다.
“ 바지 엉덩이 뒷부분이 다 터져 있었어.
친구들이랑 버스 정류장에서 수다 떨고 버스 기다리고 있는 데
어떤 남자애가 와서 바지 터졌다고 팬티 보인다고 말하고 웃고 갔어. 난 몰라.
이제 버스 정류장 어떻게 가? 창피해서 못 다녀. “
언니는 학교를 갈 생각이 없는지 펑펑 울어댔다.
엄마는 한 참 언니를 달래다 담임 선생님에게 늦겠다고 전화를 하고, 언니를 달래 학교로 보냈다.
갑자기 언니가 뒤 돌아보더니 나를 째려봤다.
“ 너지? 네가 그랬지? 네가 내 바지 몰래 찢어놨지? ”
“ 얘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일곱 살짜리가 이런 짓을 어떻게 해?
왜 갑자기 동생한테 덮어 씌워? 지가 잘 확인하고 옷을 입었어야지. “
엄마가 되려 작은 언니를 혼냈다.
나는 쳐다도 보지 않고 아침밥을 먹었다. 언니가 대문을 나가면서도 계속 나를 째려봤다.
“ 너, 두고 봐. ”
“ 두고 보자는 사람 하나도 안 무서워. ”
피도 눈물도 없는 복수혈전이다.
오늘의 승자는 내일의 패자고, 금일의 패자는 명일의 승자다.
서로의 눈치를 살피느라 밤에도 편히 잠을 자지 못했다.
누군가의 항복 선언이 있어야만 끝나는 전쟁이다. 굴복할 마음은 전혀 없다.
상대의 피를 봐야 끝나는 대접전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작은 언니가 나를 보고 씩~웃었다.
‘ 느낌이 쎄 하다. 뭔가 내일 벌어질 것 같다. ‘
작은 언니는 내 주위를 늑대처럼 어슬렁 거리며 나를 공격할 적절한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내가 골목길에서 놀고 있거나 심부름을 가서 집에 없으면
선교원 가방이나 책상 서랍 수첩 등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골목길에서 친구들이랑 얘기를 하고 있으면 소머즈 마냥 초 집중을 해서 내 얘기를 엿듣고
굴뚝 뒤 기둥이나 남의 집 대문에 숨어서 계속 나를 살펴보고 있었다.
‘ 중학교 이 학년이 왜 저러나? ’ 싶으면서도 나도 언니를 경계하느라 온 정신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가장 아끼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가장 수치스럽게 여길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괴롭힐지?
하루 종일 오로지 그것만 생각했다.
낮에는 매가 되어 서로를 날카롭게 노려보고, 밤이면 땅굴에 속에 숨은 생쥐처럼 숨죽이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상대의 약점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를 알아내야 한다.
언제 자신이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언니와 나는 밤마다 깊이 잠들지 못하고,
실눈을 뜨고 감시하고 있었다.
선교원에서 목사님, 전도사님은 ' 원수를 사랑하라. ' 말씀하셨지만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겠는가?
죽을 만큼 미운 사람이 원수이다. 원수는 원수일뿐이다.
원수는 절대 사랑할 수 없고, 만약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당했으면 갚아주어야 한다.
분명 언니는 청바지 사건으로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나를 망신주기 위해서 어떻게든 벼르고 있을 것이다.
나의 약점과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염탐하고 있을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옥상으로 올라가 밤새 내 봉숭아가 무사한지 확인해야 한다.
‘ 어? 이게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봉숭아 잎은 여전히 진초록에 무성한데.
꽃잎이며 연두색의 작고 귀여운 꽃봉오리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봄부터 씨앗을 심고 매일 아침마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정성 들여 키운 내 봉숭아
올해는 엄마, 큰언니, 경화, 안나, 안나 아줌마, 롯데슈퍼 혜원 언니까지 봉숭아 물을 들여달라고
나에게 예약을 해 놓은 상태라 넉넉히 열 그루나 심어놓았는데.
초록 이파리만 남기고 활짝 핀 꽃이며 곧 피어나려고 빨간 꽃잎을 살짝 보이는 통통한 봉오리,
연하고 좁쌀같이 작은 아기 꽃봉오리까지 싹 다 없애 버렸다.
잎과 같이 사라졌다면 누가 봉숭아 물을 들이려고 했다지만
작은 꽃봉오리까지 사라졌다는 건 일부러 내 염장을 지르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얼마나 치밀하게 따갔는지 줄기에는 손톱으로 살살 긁어낸 자국까지 있었다.
이런 짓을 저지를 사람은 작은 언니밖에 없다.
내가 가장 아끼는 꽃을 언니가 그냥 둘리는 없다.
나는 설마 언니가 생명이 있는 식물은 건드리지 않을 거라 방심했고, 허탈함과 어이없음에 할 말도 잃어버렸다.
겨울까지 봉숭아로 물들인 손톱을 보며 행복해할 나를 보기 싫어 언니는 봉숭아꽃을 모두 제거해버렸다.
계단을 내려오다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 큰 오빠를 보자 울음이 터져버렸다.
비누칠을 하다가 하얀 귀신같은 얼굴을 한 오빠가 내 울음소리에 깜짝 놀란다.
“ 왜, 왜, 왜 울어? 왜 그래? ”
“ 오빠, 작은 언니가 내 봉숭아 꽃이랑 꽃봉오리까지 다 따버렸어.
내가 봄부터 정성 들이고 아껴서 키운 건데. ”
“ 언니가 왜 그래? 잘 봐. ”
“ 아니야, 오빠 올라와서 봐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