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저도 당신이~ 마지막 이야기 EP- 33

by 옥상 소설가

PART- 1 나, 지후, 영자 세 명의 이야기



이 글은 제가 결혼하면서 겪었던 일 들을 쓴 이야기예요.

저는 소설을 좋아해요. 제 이야기를 소설로 읽는 게 훨씬 재미있고

사람들은 스토리를 좋아하니까. 에세이가 아닌 소설 형식으로 썼어요.

이게 소설의 형식인지 잘은 모르지만

저는 이게 소설의 흐름일 거라 믿으며 써 내려갑니다.


이 소설에는

나. 지후 ( 남편 ) , 영자 ( 시어머니 )

세 사람이 등장해 각각의 시선으로 사건을 들여다봅니다.

이렇게 쓴 이유는 지후와 시어머니를 이해하고 싶어서에요.

아직도 남편이 시어머니가 잘 이해는 안 가요.

‘ 그런 이유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 상상하면서 쓴 글이에요.

그리고 내 입장에서, 내 시선으로만 쓴다는 게 왠지


‘ 치사하고 편파적이지 않을까? ’ 하는 치기 어리고, 부끄러운 제 양심도 있었어요.

등장인물들의 이름, 직업, 사는 지역,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 벌어진 시간, 발생했던 순서

등은 허구지만 저와 남편이 겪었던 사실 그대로의 일을 쓴 글이에요.


이 글은 결혼해서 하린이가 태어난 직후까지의 시간이지만

사실은 결혼해서 하린이가 초등학교 5학년까지의 일이에요.


긴 시간을 쓰면 늘어져 버려 압축시켜야 했고, 그중 드라마틱한 사건들로 재구성한 거예요.

그 긴 시간 동안 어떻게 나쁜 일들만 있었겠어요?

좋았던 일도, 서로를 아끼고 행복했던 시간들도 있었어요.

그런 기억들도 있어서 더욱 아파오기도 해요.


지후( 남편 )는 대학교 3학년, 저는 대학교 4학년 때 만나 5년쯤 연애를 하다 결혼을 했어요.

저는 지후가 총명하고 똑똑한 남자라 연애를 시작했어요.

지적인 욕망이 강했던 저는 그런 남자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었어요.

제가 반대라서 그랬나 봐요.

남편은 장래가 촉망받던 공학도였어요.

미국 연구소에서 근무하시다 한국으로 교환 교수로 오신 담당 교수님이 같이 연구소로 가자고도 하셨고

거절하자 카이스트 추천서를 써 주셨으니까요.

취업이 어렵다던 그 시절도 남편의 대학 동기들은 삼성, LG, 현대 대기업으로 취업을 했지요.


지후가 3학년 때 아버님이 퇴직금 6천을 받고 중소기업을 퇴사하시게 되었어요.

없는 집은 돈 6천도 큰 돈이고, 그 돈을 지키려고, 먹고 살려고 지후는

가게를 차려 자신의 스타일대로 운영했어요.

소설에 나온 부분처럼 날로 확장해 가게도 두 개 사고, 집도 한 채 더 사고 재산을 불려 갑니다.


졸업할 무렵

시부모님은 지후에게 가게를 계속 운영할 것을 권합니다.

취업이나 대학원보다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젊은 나이에 자기 장사나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인생에서 빠를 수도 있다고

저는 반대합니다. 이기적일 수도 있으나

저는 지후가 대학원이나 취직. 헤어지더라도 미국 연구소에 갈 것을 권해요.

지후는 부모님의 권유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게를 운영해요.

자신이 떠나면 부모님과 동생 모두 힘들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남편에게 물어보니 대략 가게를 15년 정도 운영했더라고요.

그 기간 동안 남편은 매월 2백씩 받았어요. 그 긴 15년 동안

매년 설, 추석, 여름 휴가비로 30만 원 받은 게 다예요.


가게 운영을 하면서

시부모님들은 ' 사장님 ' 소리 들으며 아주 여유롭게 살아갔어요.

처음부터 그러시진 않았어요.

결혼 전 부모님들은 가난하셨어도 정직해 보이고 성실해 보였어요.

그 점이 좋았어요. 믿을만한 분이고 존경해도 될 분들이라 생각했어요.

지금 돈이 없는 것은 결혼해서 둘이 열심히 벌면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어려서부터 제가 생활력이 강했고, 어떻게 해야 돈이 모일지는 비교적 잘 아는 편이었어요.

두 분은 돈이 모이면서 점점 변해가기 시작했어요.

지후가 취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시간이 흐르자

시부모님의 폭언이 시작되고 계속됐어요.


' 어디 가서 네가 이렇게 속 편히 돈 이백을 받고 사니? '

' 네가 이렇게 나한테 해도 될 것 같아? '

지후가 가장 듣기 싫어했던 말이에요.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과 결정이 지후의 인생을 망가뜨리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돈으로 자식을 협박하는 것.

지후는 견뎌야 했어요.

지후는 자신의 젊음을 바쳐, 포기한 인생의 대가는 꼭 받아내고 싶어 했어요.

그리고 부모님을 믿었어요.


' 나중에 이거 다 니 거야. 제일 크고 좋은 것은 다 너 줄 거야. '

저는 시부모님의 그 말을, 그 약속을 믿지 않았어요.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은 평상시에 그렇게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않아요.

가게를 미끼로 아들을 노예로 만들어버린 부모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것을 믿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남편도 싫었어요.

지후는 폐업할 것을 선언해요.

모든 것을 선언하고 포기하기까지 15년이나 걸렸어요.

가게 경영도 힘들어 지고아무리 일해도 희망이 없다는 것


‘ 더 이상 가게를 운영해도 부모님은 주시지 않겠구나.

더 이상은 바라면 안 되는구나. 더는 미루면 안 되겠구나.

내 인생이 불쌍해지겠구나. ‘


그 당시에 제가 일을 하고 있어서 저도 폐업과 취업을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남편은 가게를 그만둡니다.

가게를 접는 과정에서 남편과 시부모님과의 급격하게 악화돼요.

꺼내지 않았던 많은 말들이 오가고, 지후는 상처를 받아요.

그런 지후를 보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요.


다정하고 사이좋던 부모와 자식 사이가


‘ 자기 몫을 달라는 자와 여전히 그 돈을 지키고 싶은 자 ’

‘ 돈 달라고 행패 부리는 아들과 늙었지만 돈을 지켜야 하는 부모 ’ 로 변해버렸어요.


저는 착하고 순진한 아들과 부모 사이를 이간질시켜

가게를 그만두게 하고 집안을 풍비박산시킨 며느리로 낙인이 찍혀버립니다.

남편은 그제야 모든 것을 버리고 절연을 선언합니다.

“ 명의는 모두 부모님 것

다 가지세요. 이제 저는 필요 없어요. 저희끼리 살 게요.

두 분도 알아서 남은 아들 데리고 사세요.

그 간 열심히 일한 것 죽을 때까지 할 효도 미리 다 했다 생각할게요. “

지후의 마음은 많이 상했지만 단단해졌어요.

믿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사실이란 것을 인정해야 하고 받아들여야만 했어요.

삶은 꿈이 아닌 현실이었어요.

저는 시부모님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예민한 제 성격때문이죠.


‘ 이렇게 시부모님과 왕래를 계속하다가는 그러다 내가 병들어 죽겠구나. ’

‘ 죽을 때까지 놓지 않을 분들이니, 돈을 포기하는 게 내가 사는 길이구나. ‘

모든 것을 포기하니 오히려 편했어요.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아직 희망이 있으니까

남편은 학원을 다니고, 취업에 성공해 지금도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있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힘들어하면

' 그만둬. 좀 쉬다가 나랑 같이 일해. 나 그 정도 능력은 돼. ' 나는 말하곤 했어요.

그런데 그때 정말 지후가 그만뒀다면 큰 일 날 뻔했어요.

코로나로 지금 정말 수업이 엉망이에요.

시부모님의 마음도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요.

큰 아들 내외는 어쨌거나 야무지고 둘이 잘 살게 보였지만

시동생은 여전히 골치 덩어리였어요.

둘째 아들의 흠을 큰 아들이나 며느리에게는 보이기 싫으셨나 봐요. 인정하기 싫었나 봐요.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였어요. 솔직하게 말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

단지 부모라는 명목으로, 돈을 가지고 있다는 구실로 군림하지 않는 것


' 그게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자식보다 가족보다 돈이 더 중요했을까? '


돈보다 가족이, 사람이 더 중요한 거라 생각되는데

시부모님은 저와 지후와는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그것이 저희를 아프게 했어요.

지후는 부모님께 전화를 하지도 찾아가지도 않습니다.

아버지도 지후에게 연락하지 않아요. 괘씸하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시간이 점점 흐르자 어머님이 지후를 다시 설득해요.


' 이거 다 네 거야. 다 줄 거야. 지금은 못 주지만 죽을 때 꼭 줄 거야.

가끔 얼굴이나 보고 그것도 싫으면 연락만이라도 하고 지내자. '

지후는 부모님을 보지 않아요. 아직은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 없데요.

재촉하지 않습니다. 억지로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시간이 더 흐르길 기다려야 해요.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이 아직 남아있다면 언젠가는 보겠죠.

저도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나도 힘들고 상처 받으니까.



PART- 2 브런치와의 이야기

저는 운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브런치 작가 도전에 한 번에 통과하고, 글을 올리자마자

브런치가 제 글을 다음 메인 화면에 올리면서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어요.

매초 매분 올라가는 조회 수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글을 배우거나 써 본 경험은 없어요.

어릴 때부터 일기를 쭈욱 써왔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특히나 매일 2시간씩 혼자 산책이나 등산을 하면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었어요.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은 저를 신이 나서 글을 쓰게 했어요.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역시나 칭찬은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들어요.

처음에 이 글은 맘 카페에 올리기 시작했어요.

반응은 폭발적이었죠. 매일 한 편씩 올리면서 반응들이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다르게 흘러갔어요.

' 고구마 수 백개를 먹는 것 같이 답답하다. '

'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어딨냐? '

' 어떻게 그렇게 참고 사냐? '

' 나는 실제로 그렇게 십 수년을 살아왔는 데

그렇게 산 게 창피해서 몇 년 안 되게 줄였는 데, 그런 나를 보고 답답하다고? '

‘ 내가 미련한 사람이었구나. ‘


저는 글을 쓰는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블로그에도 올렸지만 별반 반응은 다르지 않았어요.

우연히 알게 된 브런치. 맘 카페보다 블로그보다

순수한 글

글을 쓰고, 글을 읽는 것이 목적인

순수한 글로 인해 모여진 사이트라 반응들이 너무나 아름답고 선했어요.

시인처럼 감성적인 분들만 계신 건지

저는 힘을 얻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매일매일 글쓰기에 도전했는데 사정이 있던 시간을 빼곤 거의 성공.

이제 매일 글을 쓰는 게 조금 익숙해진 것 같아요.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사실 저를 위한 일이었어요.

아직도 미련인지 아쉬움인지

저는 잠을 깊이 자지 못해요. 남편도 그러는 것 같아요.

그런데 글을 읽으신 분들이 제게 동감해주시면서

무겁고 짓눌렸던 제 마음이 점점 가벼워지고,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고,

아픔이 덜해지기 시작했어요.

이게 정말 글쓰기의 힘 인가 봐요.

그래서 박완서 선생님이 아들을 잃고 그렇게 글을 쓰셨나 봐요.

만약 제가 만약 작가가 된다면

박완서 선생님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편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 솔직하게 내 마음을, 내 경험을 쓰는 글.

잠깐 멈춰 서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상대를 이해하게 하는 글.

그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사실 저에게 여러분들이 ' 작가님 '

하고 써주시는 데 저는 너무나 쑥스럽고 부끄러워요.

그런데 정말 정말 정말 신기한 게

' 작가 ' 라는 호칭이 저에게 붙여진 후

제가 “작가“라는 호칭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했어요.

‘ 내가 이러면 안 되지! ’

말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기도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에게 먼저 인사하기도 하고, 분리수거도 양심적으로 하고

길을 가다 일회용 커피 컵도 꼭 쓰레기통이 나타날 때까지 가지고 있다 버리기 시작했어요.

빨간 불이어도 차가 없으면 건너기도 했는데 이젠 덜 해요.

아예 안 건넌다고 거짓말은 못하겠어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제 글을 보면서

' 아...... 왜 저는 세희처럼 저렇게 똑 부러지게 당당하게 말을 못 했을까? ' 후회하시는 분들

저도 똑같아요. 저도 그렇게 말하기까지 십 년도 훨씬 넘게 걸렸어요.

연한 속살같이 부드럽고 순진했던 제가 두꺼운 나무껍질 같이 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을 참아내고, 견뎌내야 했어요.

처음 시부모님께 내 말을 내뱉기까지 얼마나 망설였는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는지

' 발발발 ' 비 맞은 개처럼 떨면서 말하기 시작한 거예요.

‘ 이 말을 해도 되나? 안 되나? ’

‘ 남편하고 싸움 나는 거 아냐? 이혼하자고 하는 거 아냐? ‘


말하면서도 고민하고, 두 눈이 초점을 잃어 흔들리고 , 목소리는 염소처럼 떨리고

그러다 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 만약 하린이가 나처럼 결혼을 하고, 이런 대우를 받으며, 이렇게 살아간다면

나는 하린이에게 나처럼 참으라고 얘기할까? ‘

아니었어요. 성인이 된 하린이가 나처럼 참고 살아간다면

친정 엄마인 나는 당당하게 시부모님에게 말하라고 했을 거예요.

그런 하린이에게 사위가 편이 돼 주지 않는다면 이혼하라고 할 거예요.


‘ 나는 하린이처럼 소중한 딸이니까, 사람이니까

나도 참으면 안 된다. 나도 존중받아야 한다. ‘


그렇게 맘을 먹으니 그 후부터는 말하기가 훨씬 쉬워졌어요.

착한 며느리. 순종적인 며느리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고, 저처럼 사는 사람도 있어요.

다양한 색깔로 다양하게 살아가는 거예요.

누구도 남이 사는 모습을, 색깔을 가지고 ' 이래라저래라 ' 평가해서는 안돼요.


남을 평가하는 것. 그 전에 나부터 평가해야 해요. 그러면 아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거예요.

시집와서 어머님께 들은 충격적인 말


' 나는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


다시 한번 듣는 다면 꼭 다시 하고 싶은 말


' 나는 어머니 마음에 들려고 사는 게 아니에요.

나는 내 마음대로, 내 색깔대로 살아갈 거예요.

나도 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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