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7 우리는 다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지후 이야기
‘ 나 거기 안 살아. 다른 데로 이사 갔어.
택배 더 이상 보내지 마. ‘
“ 정말 이렇게 보냈어? 통화하지 않고 이렇게 문자로 보낸 거야?
난 오빠가 어머니한테 전화라도 할 줄 알았는데. “
“ 전화하고 싶지 않아. 할 얘기도 없고,
택배 문제로 세입자를 계속 귀찮게 할 수도 없잖아.
보내고 나니 후련해.
강원도에서 엄마 아빠가 보내는 것들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으니까. “
남편이 중학생 때 이사해서 30여 년을 살았고, 신혼살림을 시작했으며
딸아이를 출산해 중학교 2학년까지 살았던 서울에서 올해 8월 우리는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묵은 감정들은 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결정하고 홀가분하게 떠나왔다.
서울 집은 전세를 놓은 상태인데, 한 달 전 세입자로부터 문자가 왔다.
“ 택배가 왔어요. 무게가 꽤 나가서 현관문 앞에 놓을 테니 찾아가세요. ”
강원도에서 전원생활을 하시던 시부모님이 택배를 보내셨다.
전에 살던 곳과 여기는 거리가 꽤 멀어 출퇴근 시간에 가려면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
무엇보다 남편은 시댁에서 택배가 오는 것을 싫어한다.
시부모님이 보내주신 김치나 농산물은 반갑지 않다.
“ 후회하지 않겠어?
괜히 나 때문에 그러는 거면 그냥 만나. 나는 며느리고 오빠는 아들이잖아.
보고 싶을 땐 전화하고 찾아가도 괜찮아. 나한테 같이 가잔 소리만 안 하면 괜찮아.
** 도 데리고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나는 이제 괜찮으니까 오빠가 가서 얼굴 보고 싶으면 그렇게 해.
더 이상 밉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아. 나는 며느리니까
오빠랑 부모님은 천륜인데 나중에 돌아가실 때 후회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게 좀 겁이 좀 나.
내가 어머님 말대로 부모, 자식 간 연을 다 끊어놓은 나쁜 며느리가 아닐까 말이야. “
“ 아니, 난 그러고 싶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부모님 돌아가실 때 슬프지도 않을 것 같아.
눈물이 나오려나? 보고 싶을까? 생각해 봤는데, 그냥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아.
내가 부모가 돼서 우리 ** 를 키우면서 더 이해가 안 가. 우리 부모님이
이해를 할 수가 없네. “
“ 그래, 그럼 편한 데로 해.
연락도 하고 싶음 하고 왕래하고 싶으면 하고 말이야. “
“ 그래, 내가 알아서 할 게. ”
작년 봄
2년 만에 시어머님이 만나자는 연락을 하셔서 남편 혼자 만나고 돌아왔다.
“ 뭐라고 하셔? 어머님이. ”
“ 얼굴 보기 힘들면 연락만이라도 하고 지내자고, 사는 낙이 없다고 하시네. ”
“ 어때 보여? ”
“ 엄마가 많이 늙었어. 계속 내 눈치도 보고, 미안한 기색은 보이는데 미안하다고는 말 안 하네.
다 오해라고, 7년 후에 가게를 주시겠다고 하더라.
재산을 정리하러 온 것 같기도 하고. 다 필요 없다고 했어. 난 이렇게 사는 게 더 좋다고. ”
“ 오빠 기분은 어때? ”
“ 그냥, 그래. 슬프지도 않네. ”
그 후에도 남편은 시부모님과 계속 연락을 하지 않았고, 시부모님의 연락도 없었다.
1년 6개월 만에 시댁에서 택배가 왔다.
세입자로부터 택배가 왔다는 연락을 받아 남편이 찾아온 커다란 박스에는
사과 고구마 참기름 애호박 등이 담겨 있었다.
키친타월에 돌돌 말려진 애호박 두 개를 보다 ‘ 울컥 ’ 해졌다.
시부모님에 대한 미움과 원망은 조금 사라진 것 같았다.
‘ 뭘 저런 것까지 보내셨을까? '
작은 애호박을 보다 시어머니의 작은 몸과 손, 발이 생각났다.
한적한 시골 생활이 좋을 것도 같지만 한편으론 많이 외로우실 것 같다.
두 분 사이는 좋으려나? 몸은 건강하시려나? ’
“ 오빠, 우리 한번 강원도에 내려가 볼까? 부모님들 보고 싶지 않아. ”
“ 거길 내가 왜 가? 안 가.
너 왜 갑자기 거길 가자는 소릴 해? 난 안 가. ”
남편은 버럭 짜증을 냈고, 더 이상 나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아직 남편에겐 부모님과의 만남에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 선뜻 왕래를 시작했다가 과거의 일들이 반복될까? ‘
하는 두려움이 나에게도 있고,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아침이면 아삭아삭한 사과를 먹다
된장찌개에 넣을 애호박을 썰다
나물에 참기름을 넣다 멈칫하게 된다.
‘ 시부모님과 우리는 과연 화해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