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으면 그 날 아침은 무사했다.
주삿바늘이 꼽힌 지 삼일을 넘어가면 혈관이 부어 손이 퉁퉁 붓는다.
그러면 수액이 들어가지 못해 다른 혈관을 찾아야 했다.
오른손, 왼손, 오른발, 왼발 그렇게 돌아가며 수액을 맞아야 한다.
요로감염이 왜 걸렸는지도 찾아야 하므로 원인을 찾는 각종 검사들을 해야 했다.
하린이가 울어대면 간호사 선생님들은 당황했다.
신생아.
너무나도 작은 아이이고 작은 몸이라
혈관을 찾거나 검사를 하기 위한 과정이 어려웠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가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겪어야 할 일들이 고통을 참아내는 것이라는 것이
그것을 꼭 해야만 하는 것이 나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간호사 선생님이나 검사를 하시는 분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하린이가 한 번에 검사를 끝마칠 수 있도록
'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 '
그들을 차분하게 진정시키는 그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간혹 혈관을 찾지 못해 당황하는 신입 간호사나 경험이 없어 미숙한 검사관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는 보호자들이 병원에는 많다.
소동을 피우면 수간호사나 능숙한 검사관이 대신할 거라는 생각과
내 귀한 자식이나 가족이 아픔을 느끼면 그 순간을 참아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다.
병원에는 병원 나름의 규칙이 있으니까
나는 아침마다 이어지는 각종 검사와 혈관 찾기에 최대한 협조를 했다.
그러나 의료진들이 병실에서 나가거나
검사실에서 검사를 하고 입원실로 돌아오는 길에
탈진해서 울고 있는 하린이, 목이 터져라 우는 하린이를 안고
숨을 죽여 같이 우는 수밖에 없었다.
우는 내 모습을 보기 싫어 언니는 두 눈이 벌게져 하린이를 안고 들어오곤 했다.
‘ 하린아, 이번만 참자.
엄마가 다시는 우리 하린이 아프지 않게 할게.
다음엔 정말 잘할게. 어떤 것으로부터든 너를 지켜줄게. ‘
언니는 아침마다 조카들을 등교시키고, 밤새 하린이를 지킨 지후와 교대를 해주었다.
낮과 밤으로 지후, 나, 언니가 번갈아 하린이를 지켜내고 있었다.
언니는 간호사 데스크에 아이스크림이나 빵 쿠키를 수시로 나르며
' 우리 하린이 잘 지켜봐 주세요. ' 부탁하곤 했다.
그 덕분에 보호자인 내가 산모복을 입을 수도, 온돌방으로 옮겨 몸조리도 하며 편히 지낼 수 있었다.
하린이와 나는 그렇게 열흘을 병원에서 지내고
염증 수치와 황달수치, 피검사, 요로 기관에 이상이 없는 것을 다 확인한 뒤 퇴원할 수 있었다.
나는 하린이와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산후조리는 다음에 아이를 낳으면 그때 제대로 하고
내 집으로 와서 하린이와 지후 이렇게 셋이서 지내고 싶었다.
언니네 집에서 몸조리를 다시 하기에는 언니와 형부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이제 언니도 쉬어야 했다.
산후조리를 잘하신다는 분이 이주 동안 우리 집으로 출, 퇴근을 하기로 했다.
청소, 빨래 식사 등을 챙겨주시고 내가 자는 동안 하린이를 돌봐 주셨다.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잘 지내었다.
이주가 지나고 이제 하린이와 나만 남았다.
지후가 출근을 하면 하린이와 나 이렇게 둘이서 하루를 보냈다.
하린이는 종일 잠만 잤다.
젖을 먹고, 기저귀를 갈아주면 정말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밀린 잠을 몰아 자듯이 너무나 자서 걱정이 될 정도였다.
숨을 쉬는지 몇 번을 확인할 정도로 그렇게 잠을 잤다.
하린이도 그 옆에 누운 나도 그렇게 계속 잠만 잤다.
지후가 출근을 하고 젖을 먹고 하린이는 잠을 자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 어....... 어머니네, 전화를 받아야 하나? ’ 시어머니의 전화였다.
‘ 이 전화를 받아야 하나? 받지 말아야 하나? ’ 몇 초의 시간 동안 나는 고민하고 있었다.
“ 여보세요, 어머니 ”
“ 그래, 은서야 잘 지내고 있었니? ”
“ 네, 잘 지내고 있어요. ”
“ 지후는 출근했지? ”
“ 네, 저랑 하린이 둘만 있어요. ”
“ 은서야, 네가 나오기는 힘들 테고 내가 집으로 가도 될까? ”
“ 아, 네 오세요. 제가 아파트 동이랑 호수 문자로 찍어 드릴게요. ”
나는 이사 간 아파트의 동과 호수를 찍어 보냈다.
잠시 뒤 현관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먹한 인사가 오갔다.
“ 들어오세요. 하린이는 자고 있어요. ”
“ 그래, 손 먼저 씻고 볼 게. ”
화장실에서 손을 닦고 안방으로 가서 하린이를 잠시 동안 보다 거실로 나오셨다.
“ 이사를 가서 조금 놀랐다. 미리 알려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
“ 지후 씨가 알리지 말라고 해서요. 당분간은 연락 안 하고 지내고 싶다고 해서.
저도 얼마 동안은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한백에서 잘 지내고 계시죠? 두 분 모두 고향에 내려가서 살고 싶어 하셨으니까. “
“ 그래, 한백에 내려가서 잘 살고 있어. 모두들 우릴 부러워한다.
남들 보기는 그렇지. 너는 어떠니? 이제 출산 휴가 끝나면 다시 복직할 거니? “
“ 아, 네 잘 모르겠어요.
원래는 복직할 생각 했는데 하린이가 몸이 약한 것 같아서 조금 지켜보려고요.
일보다 하린이가 우선이라고, 지후 씨도 하린이를 제가 직접 키웠으면 하기도 하고요.
아직 생각 중이에요. “
“ 하린이가 몸이 약해? 하린이 어디 아팠니? ”
“ 아..... 네 하린이가 좀 아파서 태어나서 며칠 안 돼서 병원에 입원했었어요. “
“ 왜? 왜 입원을 했어? ”
갑자기 어머니의 얼굴이 벌게지면서 목소리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 요로감염이었어요. 오줌이 나오는 길이 감염이 되는 건데
산부인과에서 퇴원하고 언니네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데
이 틀 뒤쯤 열이 나서 병원에 갔더니 요로 감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열흘 정도 항생제 치료받고 퇴원했어요. “
“ 요로감염? 그런 게 왜 걸리는 거래? ”
“ 다행히 하린이 신장이나 몸에 이상은 없고
산후조리원이나 병원에 있을 때 기저귀가 오염된 상태로 오래 있거나
목욕할 때 감염이 될 수도 있는 데 원인을 찾아내기가 힘들데요.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하기도 쉽지 않고
하린이도 무사히 잘 퇴원해서 소리 내지 않고 마무리했어요. “
“ 아...... 시설이 잘 된 조리원에 들어가거나 내가 몸조리를 해주어야 했어. ”
어머니가 깊은 한 숨을 쉬며 나지막이 말했다.
“ 네? 어머니? 그게 무슨 소리세요? ”
“ 기저귀나 목욕할 때 오염이 원인일 수 있다는 거잖아.
신생아는 살균되어 있고 깨끗한 곳에 있어야 하는 데.
너희 언니가 그렇게 청결하고 깨끗하지는 않잖아? “
“ 네? 어머님? 저희 친정이 지저분해서
하린이가 요로감염에 걸렸다는 말씀이세요? 그런 거예요? “
“ 아무래도 그럴 확률이 높지 않니?
병원에서는 여러 간호사들이 돌봐주고 있는데 거기서 걸렸을 확률은 적지.
지후가 예전에 말한 적 있었어. 언니들은 일 다니느라 바쁘다고.
엄마가 계속 일하시느라 언니들이 살림을 배운 적이 없는 것 같다고
그래서 집이 그렇게 깨끗하지는 않다고. “
한 숨이 나왔다. 지후가 원망스러웠다.
‘ 어머니한테 할 소리가 따로 있지. ’
시어머니는 굉장히 깔끔하고 청결했다.
결혼 전 지후 집에 와서 식사를 한 적이 있는 데
집은 오래되었으나 화장실은 거의 호텔 수준으로 청결했다.
수건은 모두 새 하얗고, 매번 삶아서 파란빛이 돌 정도였고
행주와 걸래 수건 모두 용도를 파악하거나 정체를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살림살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군더더기 없이 모든 것이 제자리에 정리정돈되어 있었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지후는
나나 우리 집이 지저분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결혼을 하고 나도 시어머니에게 살림을 배워
시어머니를 따라갈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는 모두 깔끔하다는 말을 한번씩은 할 정도였다.
‘ 그런데, 그렇다고, 그게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소리인가? ’
‘ 피가 거꾸로 돈다는 말이 이런 느낌이구나. ‘
“ 어머니, 저희 집에 왜 오신 거예요? “ 날이 선 내가 말했다.
“ 하린이가 보고 싶기도 하고, 말할 것도 있어서 왔다.
은서야, 네가 지후한테 말을 좀....... “
나는 어머니의 말을 싹둑 잘라냈다.
“ 어머니, 저는 기대하고 있었어요. 어머니가 저한테 직접 전화해서 오신다고 해서
관계가 회복될 때가 왔다고 생각했어요.
아버님이나 어머님이 지후 씨한테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저도 옆에서 지후 씨에게 잘 말해서
가족관계가 다시 관계가 회복되길 바랬어요.
하린이한테 친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어주길 그 사랑받으며 자라길 바랬어요.
그런데 이제 더 이상은 아니에요.
이제 어머니에게 아무 기대도 없어요. 바라지도 않아요. 어머니는 변하지 않을 거예요. “
“ 아니? 넌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이러는 거니? ”
“ 하린이가 우리 친정 때문에 병에 걸렸다는 말.
그 말은 하시는 게 아니었어요. 설사 그런 생각이 있었다고 해도
말로 뱉어서는 안 되는 말이었어요. 제가 들어서는 안 될 말이었어요.
하린이가 우리 친정 때문에 우리 언니 때문에 아팠다는 말.
며느리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신 거예요.
저는 이제 더 이상 기대하지 않아요. 잘 지내고 싶지도 않아요. “
“ 은서야, 내가 화가 나서..... 너무 화가 나서
하린이가 아팠다는 말에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한 말이야.
내가 원래 화가 나면 말을 막 하는 성격이야. 그래서 그런 거야.
내가 한 말은 다 잊고, 네가 이해해라. “
본인도 놀라고 당황하셨는지 무안해하시면서 말씀하셨다.
“ 아니요, 저는 이해 못해요.
화가 나면 말 막 한다고 하는 사람
그러면서 내가 뒷 끝은 없다고 잊으라고 하는 사람
저는 싫어해요. 같이 못 지내요.
말로 사람 상처 주고. 사람 다 죽여 놓고 그제야 미안하다고
그러는 사람 싫어해요.
어머니, 어머니를 돌아보세요.
한 번이라도 지후 씨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신 적 있으신가요?
지금까지도 없잖아요. 안 하시잖아요.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어머니와 저는 정말 다른 사람이에요.
같이 있으면 어머니는 편하실지 몰라도 저는 불편하고 계속 상처 받을 것 같아요.
이해 못하겠어요. 더 이상 같이 지 낼 수 없을 것 같아요. “
어머니는 놀라 말없이 일어나 가셨다.
안녕히 가시라는 말만 하고 배웅은 하지 않았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 딸깍 ' 현관문을 잠갔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를 보냈다. 내 마음속에서 지워냈다.
슬픔도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다. 한 방울의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니까. 이제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니까
당신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