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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르 May 05. 2024

나를 쓰다

쉽고도 어려운

우연한 어느 날 책을 읽다가였는지, 산책을 하다가였는지 갑자기 ‘글’을 쓰고 싶었다.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정리가 안 된 글감들이 떠올랐다. 이것에 대해서도 써보고 싶고, 저것에 대해서도 써보고 싶고. 그런데 토막토막의 생각들만 가득하여 막상 그 생각들에 대해 쓰려고 하면 세 줄 정도밖에 쓰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뒤죽박죽의 상태였다.

그렇게 생기게 된 버킷리스트가 바로 글쓰기였다.


나는 글을 써 본 경험이 많지 않다.

초등학교 때 숙제로 쓰던 일기 조금, 학교에서 행사 때 늘 쓰던 글짓기, 고등학교 때 아침 자습 시간에 하던 신문 기사 요약, 대입 준비를 위한 논술 정도...?

무언가 목표를 위해 쓰던 글만 있었지, 나의 이야기를 쓰고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진솔하게 글을 써 본 경험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에도 말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역할을 더 많이 하다 보니 내 이야기는 더 깊이 꽁꽁 숨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하고 표현하는 게 어려워 나름 해결 방법을 고안하여 다이어리에 짤막하게라도 하루하루 내 생각을 적어봐야겠다 결심하였는데 하루 이틀 써보고는 포기하기 일쑤였고, 손으로 쓰는 게 귀찮아서 그런가 싶어서 일기 어플에 글을 써보다가도 백 스페이스를 꾹 눌러 글을 다 지우고 어플을 삭제하는 건 일상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글을 계속 쓸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조금은 까다로운 조건들이 필요했다.

누군가 봐주긴 할 것. 아무도 보지 않는 다이어리나 일기장에 글을 쓰는 것은 왜인지 초등학생 일기 쓰는 수준의 글밖에 나오지 않았다. 혼자만의 공간에 주저리주저리 하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보는 공간에서의 독백이 필요했다.

내가 노출되지 않을 것.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조금씩 드러나긴 하지만 전부를 드러낸 상태로 글을 쓰는 것은 조금 부끄럽다. 아는 사람이 내 글을 보는 것도 부끄럽고 말이다. 그래서 필명으로 활동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글을 쓰기도 전부터 까탈스럽고, 내 마음, 내 감정 한 줄 써놓고는 금세 숨기기 급급했던 내가, 글을 쓰고,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다니 약간은 모순적인 감정이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글을 쓰는 것이 출판과 바로 맞닿아있다 생각해서 어렵게 느껴져 시작조차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다 접하게 된 브런치 스토리...!

브런치 스토리를 알고는 있었지만 워낙 글 잘 쓰시는 작가님들이 많이 계시고, 전문적인 글들이 많아서 아예 생각도 안 하던 플랫폼이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단숨에 가입하여 필명을 짓고, 프로필 사진 하나 올리고, 그때 강렬하게 쓰고 싶던 글 하나를 뚝딱 쓰고는 작가 등록을 해버렸다.

이게 뭐라고 떨리는지... 기세 좋게 가입해서 글 쓰고 등록 버튼을 눌렀던 나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수없이 브런치를 들락날락하였다.

다행히도 운 좋게 처음 쓴 글로 작가가 되어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매일 글 써야지’, ‘일주일에 두 개는 올려야지’하며 각오가 남달랐는데,

생각이 많은 나는 마음이 가득 차오르고, 내 생각이 다 정리가 되어야 글이 써지는 통에 생각처럼 자주 글을 올리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도 내 생각을 글로 쓰고, 내 이야기를 쓰고, 진심을 쏟아붓는 것에 크나큰 희열을 느낀다.

늘 꽁꽁 마음에 숨겨두었던 생각과 감정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누군가에게 공감을 받고, 또 내가 쓴 글보다 더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댓글들을 선물 받으면 글을 쓰는 것이 큰 행복으로 돌아온다.


글을 쓰는 것은 온전히 나의 만족이자, 나의 고해성사이다. 나를 쓰는 것이 어려웠던 나의 도약이고 용기이며, 말하지 못하고 쓰지 못하던 마음을 고백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이기도 하다.

가끔은 내 글이 너무 무겁고, 재미없고, 뻔한 글 같아 글을 쓰면서도, 발행하면서도 망설여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올린다.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가감 없이 내 마음을, 내 생각을, 내 진심을 적기 위해 쓴 글이니까.


생각이 많은 나날, 한차례의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깊고 무겁게 가라앉은 생각의 잔해들을 추슬러 글로 남기며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그저 나의 진심과 생각들을 정리하여 고스란히 글로 적은 것이지만, 이 글을 보고 누군가의 고개가 끄덕여지고 공감된다면 그걸로 된 거라고 말이다.


글을 쓰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는 일은 더 어렵지만, 하고 싶었던 것을 할 수 있게 돼서 더없이 행복하다.

마음을 울리는 수많은 글들을 보며, 나도 더 좋은 글들을 쓸 수 있게 되기를, 그 글이 곧 내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나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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