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를 찾아 도처를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
어릴 때부터 지금이 되기까지 대화 주제에 ‘취미 생활’이 빠진 적이 없는 것 같다.
취미와 특기를 적어야 하는 경우에는 취미가 뭐야? 특기가 뭐야? 하며 둘의 차이를 긴가민가한 채 정석대로 ‘책 읽기’, ‘음악 듣기’, 이런 뻔한 것들로 채워놓기 일쑤였다.
이제 채워야 할 칸이 사라지자 그제야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나의 취미는 무엇이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무엇이지? 하고 말이다.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하는 일
취미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일들을 끝없이 나열할 수 있긴 한데, 또 이걸 취미라고 말하기에는 약간 쑥스럽고 부족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는 뜨개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가끔 쉬는 시간에 수학 문제를 푼다. 책을 읽고 좋은 구절들을 남겨두었다가 필사를 하기도 하고, 밖에 나가서는 오종종한 들꽃들과 풍경, 구름 없는 까만 밤과 이른 아침에 떠있는 하얀 달을 찍기도 한다.
이렇게 여러 개를 써 내려가다 보니 굉장한 취미 부자 같지만, 사실 밖에 나가서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이 중 한두 개밖에 대답하지 못한다.
취미에 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뭔가 너무 사소한 취미이거나, 실용적이지 않은 것은 괜히 말하기가 꺼려지고 취미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망설여지는 것이다.
취미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늘 기승전‘돈’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일단 취미 생활을 하기에 앞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를뿐더러,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그리고 취미를 갖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배워야 하고 나를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취미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투자한 만큼의 시간과 돈을 능가하는 무언가가 있기를 무의식적으로 계산하고 바라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즐겁게 한 일에 눈에 보이는 결과물까지 있다면 금상첨화지만 모든 취미 생활이 금 나와라 뚝딱 하고 결실을 내지는 못한다.
단어의 의의처럼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면서 즐겁고, 재미있고, 힐링이 되었다면 그걸로 돈 값 이상을 한 것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나도 오랜 시간 취미를 찾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그 노력에는 취미가 내 삶에 쓸모가 있고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편견으로 가득했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즐기기 위한 것이 취미인데 왜 이것의 쓸모나 결과, 실용성에 더 주안을 두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 일을 하면서 얼마나 내가 행복한지, 즐거운지, 기쁘게 몰두할 수 있는지, 그 과정만이 내 마음에 가득 들어찰 뿐인데 말이다.
취미를 찾는 것은 보물 찾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눈앞에 있는 사소한 것이 보물이 될 수도 있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보물을 알아보지 못하고 저 먼 곳까지 달려가 보물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그런데 보물은 꽁꽁 숨겨져 있지 않다.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 시간 내어 자주 하는 것, 하면서 스트레스받지 않는 것, 그 모든 것이 취미가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취미 부자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누군가 취미를 물어보면 대충 얼버무리는 대답으로 음악 듣기, 독서라고 답하지 않고 사소하지만 나에게 즐거움을 가득 주는 여러 가지 리스트들을 나열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뜨개질은 내만내입(내가 만들어서 내가 입기)을 하고,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수학 문제를 풀며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고, 예쁘게 글씨를 적지만 나만 보는 필사를 하고, 작고 귀여운 들꽃과 매일 비슷해 보이는 달에 사진기를 들이밀지만...
뭐 어떤가?!
내가 좋고 행복하고 즐거우면 됐지!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은 꽤 행복한 일인 것 같다.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하고 싶은 것을 즐겁게 해낸 기억은 마음속 깊이 새겨져 힘든 순간마다 나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준다.
오늘도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취미로 만들기 위한 보물 찾기는 계속된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