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대천해수욕장
예전에 종암동에 살 때는 강원도가 가까워서 자주 갔었는데, 용인으로 이사 오면서 강원도도 이제 쉽게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게 됐다. 서울을 통과해서 강원도로 가야 하는 게 돼서 토요일 일찍 출발하지 않으면 내비게이션의 도착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서해안 여행은 오래전에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을 마지막으로 한 참 가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강원도보다 서해안 가는 게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오랜만에 서해안 쪽으로 눈을 돌렸다.
나는 가족여행을 계획할 때 휴양림을 많이 가는데, 우선 휴양림 추첨할 때 넣어보고 당첨되면 그 근처를 가거나 하는 식이다. 이번에 간 성주산 자연 휴양림은 매월 1일 날 선착순 신청을 받는데 경쟁이 그렇게 치열하지는 않아서 쉽게 신청할 수 있었다. 성주산 휴양림 근처에는 대천해수욕장과 무창포 해수욕장이 있다. 두 곳 다 휴양림에서 차로 30분 이내의 거리이기 때문에 부담이 없는 곳이다.
휴양림은 보통 입실이 3시부터이기 때문에 토요일 오전에 일찍 아침 8시쯤 출발해서 가는 길에 맛집을 찾아서 먹고 대천해수욕장에서 조금 놀고 휴양림으로 들어가는 식으로 첫날 계획을 세웠다. 토요일 아침에 빨리 출발해야 차가 안 막힐 텐데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항상 그렇듯이 몸이 따라 주지 않아서 10시가 넘어서야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 사실 전 날 밤 침대에 누웠을 때 8시는 어려울 것을 마음속 깊이 이미 알고 있었다.
차에 탔을 때 예상 도착시간은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3시간 안에 도착하면 갈 만하다 생각은 했지만 가능할 리 없었다. 이 여행은 6세, 9세 어린이와 동행하기 때문에 논스톱으로 갈 수 없을 것이 뻔한 일이었다. 가는 길에는 휴게소가 없었다. 휴게소가 없을 때 곤란한 점은 점심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옆에서 열심히 검색한 결과 가는 길에 황태국 집이 있어서 거기서 먹기로 결정했다.
식당 찾는 것은 항상 어려운데 리뷰가 많은 곳은 그래도 그럭저럭 평타는 치는 것 같다. 내비게이션을 찍고 황태해장국집으로 갔는데 차를 잘못 세워서 옆집에 주차하고 말았다. 그냥 모른척하고 옆집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가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수를 보니 잘못 주차한 곳에 사람이 더 많아서 그냥 먹기로 했다. 아이들은 손두부를 먹고 나와 남편은 북어해장국을 먹었다. 색은 뽀얗게 안 매울 것 같은데 청양고추를 넣어서 국물이 칼칼했기 때문에 애들은 또 기겁을 하고 먹지 않았다. 다현이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을 올라가는데 언제 매운 것을 먹게 될까? 궁금한 시점이다. 아직도 떡볶이도 씻어먹고.. 나는 언제쯤 매운 것을 먹었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인가?
다시 차를 출발해서 대천해수욕장에 닿았을 때는 벌써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도저히 놀 상황이 아니었는데 아이들은 갈매기를 잡는다면서 잠자리채를 가지고 나가자고 보챘다. 춥고 바람이 부는 상황에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수많은 갈매기들과 갈매기를 잡으려고 잠자리채를 들고 뛰어다니는 우리 애들만 이 해변에 있었다. 마치 1분이 한 시간처럼 너무 춥고 힘든 와중에 남편이 두통을 호소했다. 추위 때문에 머리가 조여와서 두통이 난다고 난리였다. 20분 정도 놀았을까?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여러 날 중에 최악의 날을 여행 날로 고른 샘이다.
비가 내린 것은 어쩌면 우리 부부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차로 돌아갈 명분이 생겼으니 말이다. 지붕이 있는 곳에서 모래놀이를 하면 된다는 아이들의 의견이 안 들리는 척하며 차로 얼른 발걸음을 재촉했다. 날씨 때문에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다. 해변에서 고즈넉한 석양까지 보면서 늘어지게 놀고 가려고 했는데 20분도 채 놀지 못했다. 그렇다고 바로 휴양림에 가기는 이른 시간이었다. 입실은 가능하지만 3시부터 계속 휴양림에 들어가 있기는 아쉬운 시간이었다. 대천해수욕장 근처에 이마트가 있어서 거기라도 가자고 결정했다. 당장 저녁에 먹을 것도 전혀 없었다. 휴양림은 의례 첩첩산중 속에 있기 때문에 근처에 식당이나 슈퍼는 없다. 아이들은 자주 보는 대형마트인데도 새로운 도시에서 마트에 가면 뭐가 좋은 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우리는 바로 해 먹을 수 있는 쉬운 요리들과 즉석밥 + 애들 장난감을 사서 휴양림으로 돌아왔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날씨는 여전히 추웠다. 아이들은 새로운 숙소를 마음에 들어하며 뒹굴거렸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어서 아이들은 새로운 곳에 가면 tv 보느라 바쁘다. 아이들이 tv 보느라 더 늘어지기 전에 아이들을 재촉해서 밖으로 끌고 나왔다. 휴양림도 쌀쌀했지만 바닷바람보다는 나았다. 원래 산보다 바다가 더 추운 걸까? 휴양림에서 약간 걷다가 저녁을 먹고 자기 전까지 계속해서 어린이 방송을 보다가 잠들었다. 다현이는 집에 가서 오늘 본 방송들을 다시 유튜브로 봐야 한다며 프로그램 제목을 나에게 외우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