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마치고.
그러니까, 해야 할 것들을 마치고
하고 싶던 것들을 몇 가지만 한 뒤
나머지는 스스로와의 어른 같은 타협으로 다음으로 미루었을 때.
아직 쓸 수 있는 마음이 남은 날이면 연필을 깎아 무엇이든 써둔다.
하루 종일 머리를 울리던 생각을 밖으로 집어내는 느낌이 들어서.
흑연이 종이를 긁어내리며 내는 소리에 머리의 작은 틈까지 시원해질 때까지.
어제는 잠에서 깼다.
조용한 밤이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끝 같았다.
다시는 품어주지 못하는 연약해진 네가 간 곳의 풍경 같았다.
모든 게 空 같아, 이제는 웬만한 것에 화도 안 났는데
두 손만 했던 작은 너의 오래된 공백에 새삼 밤을 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