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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아 Mar 06. 2021

영구 휴거, 꿈을 꾸다!


제시간에 퇴근한 나의 저녁 일과는 온통 녀석(딸내미)과의 전쟁이다. 저녁을 먹고, 녀석을 목욕시키고, 화장품을 발라주고, 양치를 시켜주고, 뽀로로를 한 편 보여주고 재우는 것. 고단한 전쟁이긴 하지만 행복에 겨운 시간들이다. 물론 하기 싫은 날도 있고 피하고 싶은 날도 있다. '하기 싫음'과 '하기 싫은 날'의 차이를 잘 구분해 주시길... 어제도 늦은 저녁을 먹고 녀석을 목욕시켰다  네 살 베기를 목욕시키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머리를 감기고 나면 기진맥진이어서 그냥 쓰러져 축 늘어지고 싶다.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지만 매번 목소리 톤을 높인다.  화장품을 바르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시계를 보니 누군가의 집 초인종을 누르기에는 늦지도 그렇다고 이르지도 않은 시간이다.


옆 집 아주머니다. 워낙 활발하고 붙임성이 좋은 분이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친해졌다고 해서 서로의 집을 왕래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좋은 일 슬픈 일을 함께 나누는 그런 전통적 의미의 이웃은 아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안부를 묻고, 정말로 아주 가끔 음식을 나누는 그 정도가 고작이다. 아주머니는 언제나 그랬듯이 환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인사다. 환한 인사와는 달리 종이 한 장을 내미는 손은 수줍어 있었다. 개를 키우기 위해서는 입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 걸 동의를 받아야 해요?"라는 놀라움은 잠시였다. 개 한 마리 키우기 위해서 허락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현실이 서글퍼졌고 무서워졌다. 층간 소음으로 이웃을 죽이는 세상, 택배 차량 출입이 막혀 그 무거운 택배를 들고 낑낑거려야만 하는 세상, 최저임금 조금 올랐다고 경비 미화 노동자를 자르라고 아우성치는 세상. 타인의 아픔에는 철저히 무감각하지만 자신의 불편함은 한 치도 용납하지 않는 그런 세상이다.


2년 전인가? 강남 어린이들 사이에서 휴거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난 제목만 보고 지구 종말론이 강남에서 떠돌고 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휴거는 그 '휴거'가 아니라 '휴먼시아 거지'의 줄임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휴거다.  게다가 내가 사는 곳은 영구임대니 '영구 휴거'다. 영구 임대 아파트 옆으로는 우리보다 10층이나 더 높은 H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그리고 아파트 사이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언젠가 짝꿍이 한숨을 쉬며 "H아파트 사람들이 우리 아파트를 분양하라고 민원을 넣는다네! 우리 아파트 때문에 집 값이 떨어진다나 뭐라나"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 참!"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녀석을 낳고, 하루가 다르게 녀석이 커가면서 대수롭지 않았던 그때 짝꿍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녀석이 커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임대아파트와 H아파트의 아이들이 함께 다닐 텐데라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와 내가 타는 자동차로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이니...


어쨌든 옆집 아주머니가 수줍게 내민 서명지에는 한 칸도 빠짐없이 서명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이웃 모두가 서명을 해주었나 보다. 그래도 살만 한 세상이라는 상투적인 감정에 안도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고 하지만 나의 철학은 '절이 싫으면 절을 고쳐라'다. 하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와 타는 자동차로 사람을 판단하는 이 절망적인 세상은 절대로 고쳐질 것 같지 않다.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목 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 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을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 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어느 책에서 봤던 글인데 기억이 나진 않는다. 나도 이러고 싶다. 아파트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야말로 아무런 대책 없이 퇴직금을 중간 정산받아 덜컥 땅을 사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토목 설계와 건축 설계를 진행 중이다. 영구 휴거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지만 '에라 모르겠다. 이제 와서 어쩌라고'의 심정으로 추진력을 발휘하고 있다. 짝꿍은 ‘이제부터 집 뜯어먹으면서 살아야지’라며 엄살을 떨지만 ‘장독대를 하나 만들까? 다락도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한껏 들떠있다. 녀석은 ‘매실나무도 심고 장미꽃도 키우고 친구들 모두 초대해도 돼요?’라며 함박웃음을 보여주고 있다. 짝꿍과 녀석의 들떠있음과 함박웃음을 보는 게 좋다. 그렇게 영구 휴거인 우리 가족의 꿈이 영글어가고 있다.



<이 글을 쓴 지가 3년여 전이다. 지금 우리는 서산의 어느 작은 시골에서 장독도 만들고 화단도 만들고 녀석이 타고 놀 그네도 만들어서 그렇게 알콩달콩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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