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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아 Mar 03. 2021

엄마의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 뜨개질

엄마의 투병 일기 - 200410


 엄마가 폐암 말기임을 알게 된 지 석 달이 지났다. 당시 의사는 더 이상 항암 효과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항암치료를 중단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폐암 말기임을 알게 된 엄마는 일주일 정도를 앓아누우셨다. 통증 때문이 아니라 정신적 충격 때문이었을 게다. 일주일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 엄마는 그때부터 강아지 구충제(펜벨다졸)와 사람 구충제(알멘다졸)를 아침저녁으로 매일 드시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와 피검사를 했고 다행히 암이 커지거나 구충제 부작용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달 말에는 구충제를 드시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CT 촬영을 할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엄마는 불안하신가 보다.


 어제는 연수 휴가 중인 짝꿍과 엄마가 마트를 다녀왔다. 엄마는 마트에 있는 현금지급기에서 40만원을 인출해서 짝꿍에게 줬다. 그러면서 평소 짝꿍이 갖고 싶어 하던 놋쇠 밥그릇과 국그릇을 네 벌 사라고 하셨다. 짝꿍은 너무 큰돈이고 서윤 아비가 반대할 것이라서 못받는다고 했고 엄마는 나 죽고 나면 놋쇠그릇 보면서 엄마와 할머니 생각하라고 하셨단다. 짝꿍은 서윤 아비한테 허락받은 후에 받겠다고 말했고 엄마는 당신이 이야기하시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말이 없다.



 그래서일까? 엄마의 뜨개질 속도가 더욱더 전투적이고 맹렬해졌다. 찢어지고 있는 소파 커버, 입지도 않는 털스웨터에 수세미까지 마치 뭔가 당신의 흔적을 하나라도 더 남기고 싶은 듯, 할 일이라고는 뜨개질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 엄마는 마치 뜨개질하는 기계처럼 보인다. 그렇게 엄마는 평생 뜨개질을 하셨다. 60대 중반까지 청소일을 하셨는데 그때도 그랬다. 새벽에 일어나서 자식이 먹을 밥을 안치고 그 밥이 익을 때까지의 그 짧은 시간에도,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그 차 안에서도, 아침 청소를 마치고 화장실 한 귀퉁이나 계단 밑 창고에 쭈그려 앉아 도시락을 드신 후 그 짧은 휴식시간에도 그렇게. 엄마에게 뜨개질은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였다. 간혹 강남 어떤 부잣집으로부터 디자인을 의뢰받아서 한 벌에 수십만 원을 받고 뜨개질을 하시기도 했으니 말이다. 엄마가 폐암 말기임에도 또 낼모레가 여든임에도 아직까지 정신이 맑은 이유는 뜨개질 때문일 거라 확신한다. 뜨개질하는 엄마를 오랫동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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