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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성일 Apr 09. 2021

7요일의 세계에서
8요일을 사는 사람들

<미얀마 8요일력> 1화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서는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 글을 공유하는 2021년 4월 9일 현재, 미얀마 군부에 저항하며 민주화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미얀마 시민들을 지지하며 글을 시작한다. #saveMyanmar #JusticeforMyanmar



새롭게 시작하는 <미얀마 8요일력> 시리즈는 일주일을 7요일로 세는 방식이 이 세상 누군가에게는 상식이 아닐 수 있다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동남아시아 시각 문화 연구 프로젝트이다. 앞으로 진행될 글은 미얀마 문화에 뿌리내린 인도의 천문학, 점성술과 운명론을 아우르는 가운데, 더 나은 하루를 기약하며 철저히 현실에서 투쟁하는 그들의 저력을 미얀마 달력을 중심으로 알아보려 한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미얀마 8요일력>의 세계로 함께 떠나보자!





일반적인 달력은 일주일이 월화수목금토일, 7일이다. (c) Noh Sungil



일주일은 월화수목금토일, 7일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에서 지듯, 일주일이 7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불변의 법칙과 같다. 나는 너무나 당연한 이 법칙에 질문을 던져 본다. 


정말 전 세계 모든 사람이 7요일제를 따르는 걸까? 



바로 이 질문에서 미얀마로 떠나는 우리의 여정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미얀마에서는 일주일을 8요일로 세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7요일을 따르고 있다. 

아니, 그렇다면 미얀마에서는 일주일이 도대체 7일이란 말인가, 8일이란 말인가? 이 아리송한 질문을 두고 셀 수 없이 먼 옛날 미얀마에서는 하늘과 바다가 흔들릴 정도의 거대한 싸움이 일어났다.


어느 날 인간 세계를 살펴보던 두 신이 크게 맞붙었다. 머리가 셋인 코끼리를 타며 번개를 부리는 위대한 드쟈민(Thagya Min, သိကြားမင်, 불교의 제석천, 힌두교의 인드라 신) 신과 브라흐마(Brahma) 신 사이에 갈등이 생긴 계기는 이 질문이었다. "미얀마에서는 일주일이 도대체 7일일까, 8일일까?" 
일주일이 7일이라는 드쟈민 신과 8일이라는 브라흐마 신은 틀리는 사람의 머리를 베는 무시무시한 내기를 시작했다.
여러 인간에게 찾아가 물어본 결과, 일주일은 7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드쟈민 신이 내기에 승리하고, 패배한 브라흐마 신은 패배를 인정하며 스스로 자신의 목을 잘랐다.
그런데 떨어진 브라흐마 신의 머리가 하늘에 닿으면 새들이 모두 죽고 비가 내리지 않았다. 머리가 바다에 빠지면 물이 모두 끓어 물고기가 살 수 없었고, 땅에 떨어지면 땅이 바싹 말라 동물들이 죽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멸망을 막기 위해 드쟈민 신은 자신의 딸 일곱에게 부탁해 매년 한 명씩 브라흐마 신의 떨어진 머리를 번갈아 들게 하였다. 그제야 세상이 멸망하지 않게 되었다. 


드쟈민 신. 손에 콘치(conch)라 불리는 소라를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c)Roger Price (오른쪽)



이 신화는 양력으로는 4월 중순에 해당하는 미얀마의 음력 새해 '띤잔(Thingyan, သင်္ကြန်)' 신화의 여러 버전 중 하나이다. 새해는 어쩌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1년 중 가장 특별하고 의미 있는 기념일일 것이다. 미얀마 사람들이 평소 요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새해를 기념하며 '요일' 신화를 입에서 입으로 전하게 된 걸까? 


양곤 외곽 벌판에 솟아 있는 황금빛 불탑들. (c) Noh Sungil



생일 말고 생요일


미얀마의 옛 수도이자 제1의 도시 양곤(Yangon) 공항에 비행기가 서서히 착륙하는 동안, 창밖으로는 점점 가까워지는 너른 벌판과 도시의 건물 사이로 반짝이는 금빛 첨탑들이 보였다. 

"황금의 땅, 미얀마(Golden Land, Myanmar)" 

이 슬로건이 왜 미얀마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는지 발을 딛기도 전에 이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양곤에 도착해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와 도로의 소실점 한가운데에서 빛나는 거대한 금빛 탑, 술레 파고다(Sule pagoda)를 향해 길을 나섰다. 가까이에서 본 술레 파고다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빙- 빠르게 지나는 사거리 로터리 한가운데에 섬처럼 오롯이 솟아 있었다.   



양곤 시내 한가운데 섬처럼 높이 솟은 술레 파고다 황금 첨탑



술레 파고다 앞에서 황금빛 위용을 카메라에 담던 중, 열린 자동차 트렁크 문을 그늘 삼아 쉬고 있는 한 미얀마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환히 웃으며 내게 다가와 물었다. 

"양곤을 안내해줄 일일 가이드를 찾나요?" 

우연한 만남은 때로 여행을 맛깔나게 하는 감미료와 같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신을 수린(Sulin)이라 소개한 그와 함께 술레 파고다 안으로 향했다.


미얀마 사원은 신성한 곳이기에, 들어가려면 어느누구든 신발을 벗어야 한다. 맨발로 사원 안쪽으로 들어가보니, 미얀마 사원을 처음 방문하는 나는 술레 파고다의 독특한 구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열린 입구 안쪽에는 8 각형의 탑이 중심에 거대하게 서 있었고, 탑 외곽으로는 햇빛을 피할 수 있는 회랑이 원형으로 둘러 있었다. 8 각탑 각 변 앞에 조그맣게 세워진 제단이 눈에 띄었다. 


수린 씨와 술레 파고다를 한 바퀴 도는 중에 그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요일에 태어났나요?”

"태어난 요일... 이요?"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고, 궁금해하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난감한 표정으로 멋쩍게 대답했다.

“글쎄요. 모르겠어요. 한 번도 태어난 요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당황한 나보다도 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수린 씨가 말했다.

“아니, 어떻게 태어난 요일을 모를 수 있어요? 정말 이상하군요.”


수린 씨가 사원 한쪽을 가리키며 요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쪽을 보시면 작은 제단이 있죠? 저 제단은 바로 요일 제단입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태어난 요일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어요. 미얀마 불교 사원에는 8요일이 적힌 작은 제단이 있어서 사람들이 각자 태어난 요일의 제단에서 기도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Monday', 'Tuesday' 라고 적힌 조그만 제단 앞에서 사람들이 기원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제단에 앉은 불상과 동물 상에 물을 끼얹은 뒤 손을 모아 합장하며 소원을 비는 모습이었다.


술레 파고다에 있는 화요일, 금요일 제단. (c)Noh Sungil



얘기를 나누던 중 수린 씨의 말에서 독특한 부분을 발견했다.

"수린 씨, 방금 8요일이 적힌 제단이라고 하셨나요? 7요일이 아니라 8요일??"

"네. 미얀마에서는 일주일을 셀 때 8요일을 셉니다. 수요일은 정오를 기준으로 수요일 오전과 수요일 오후로 나뉘기에 8일이 됩니다. 수요일 오후는 다른 말로는 '라후(Rahu)'라고도 해요." 


수요일은 정오를 기준으로 두 요일로 나뉜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7요일이 보편화된 세계에서 8요일을 살아가는 미얀마 사람들을 보면 소설 해리 포터(Harry Potter) 시리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평범한 인간(머글)으로 살던 주인공 해리 포터가 '9와 4분의 3 승강장'으로 뛰어들었을 때 마법으로 움직이는 세계를 발견하는 장면 말이다. 지금까지의 삶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움직이는 세계를 발견한 해리는 얼마나 놀랍고 신비로웠을까? 해리가 살아가는 세계에도 마법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았을 뿐. 


미얀마 8요일에서 수요일 오후에 해당하는 '라후'도 가려진 존재이다. 다른 요일처럼 일주일 중 하루에 속하지만 온전히 하루일 수 없는 수요일 오후, 라후는 '일식과 월식'을 상징한다.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는 악마 라후는 창조 신화 '젖의 바다 휘젖기(Samudra Manthan)'에서 영생의 약을 마시려다 비슈누(Vishnu) 신에게 머리가 잘린다. 입에는 닿았으나 삼키지 못했기에 머리만 영생하게 된 라후는 자신을 고발한 해의 신 수리야(Surya)와 달의 신 찬드라(Chandra)에게 복수하기 위해 해와 달을 삼키지만, 머리만 남은 라후이기에 삼켜진 빛은 목구멍을 빠져나오자 금방 다시 밝게 빛난다.


(왼쪽) 원반 차크람을 던져 라후의 목을 자르는 비슈누 신.  (오른쪽) 해를 삼키는 라후.


식(蝕)은 이렇게 신화로 만들어질 만큼, 수없이 뜨고 지는 해와 달의 에너지를 무색하게 하는 강력한 경험을 준다. 누구든 빛이 사라지는 광경을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그 강렬한 사건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나도 어릴적 친구들과 함게 간유리(frosted glass) 판을 들고 우주의 신비한 이벤트를 지켜본 경험이 아직 생생하다.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는 해와 달이 합쳐지고 세상이 어두워지는 한 낮의 소름돋는 어둠을 경험했다. 

일생에 몇 번 보기 어려운 순간을 붙잡아 반복되는 일상에 새겨놓은 미얀마 사람들의 일주일을 보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보편적이다'는 말은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숨기는 말인가? 


코로나 19가 인류의 보편적인(normal) 삶을 위협한 2020년 이후 1년. 인류는 진보의 표상이었던 기술과 시스템이 손쓸 수 없이 무너지는 것을 끊임없이 지켜보았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불확실해진 세상, 현재를 사는 감각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해졌다. 그렇게 민낯이 드러난 뉴 노멀(New Normal)의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일주일, 어떤 하루하루를 살게 될까?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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