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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Jan 26. 2023

영유 레벨테스트

극성도 싫고 방임도 싫은 ‘어쩌라고표’ 엄마인데

​재작년쯤이었나. 과천에서 판교로 진입하려고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던 때였다. 옆 차선을 보니 노란 버스 안에 콩나물처럼 앉아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영어 유치원 셔틀버스였다. 창문에 머리를 기댄 아이도 있었고 멍하니 하늘을 보는 아이도 있었다.


​문득 든 생각은 ‘저렇게 작은 아이들을 고속도로를 태워 유치원에 보내다니 좀 위험하지 않나. 안전벨트는 잘 맨 건가.’ 기특이가 5살이었는데 그 또래 아이들이라 더 눈여겨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오늘,

그 노란색 버스.

그 어학원에 레벨 테스트 보러 왔다.


​저렇게 작은 아이들을 고속도로에 태워 유치원에 보내는 엄마가 되려고 온 것이다.


​오늘도 과천-의왕 고속도로로 20분 넘게 달려오면서 ‘멀다.. 너무 멀다’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주차마저 힘들어서 주변을 3번 넘게 뺑뺑이를 돈 것 같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어코 넣어보겠다고 여기까지 왔으니.  학교를 들어가기도 전에 ‘우리 아이 영어레벨이 어떤가요’를 묻는 나도 그렇고 그런 엄마가 되어 버렸다.


​지금 유치원은 걸어서도 다닐 만큼 가까운데 쭉 보내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7살 때 영유를 옮기려는 이유는 현재 보내는 영유의 시스템 문제라서 할말하않. 길게 얘기해 봤자 스트레스만 받을 것 같아 생략하려고 한다.


​스스로를 방임도 싫고 극성도 싫은 어쩌라는 거냐 표 엄마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레벨 테스트를 보러 다니는 것도. 지상파 교육 스페셜을 챙겨보고 유튜브로 강사의 이전 강의 이력까지 샅샅이 살펴 타이핑해 놓는 나는 이미 극성 엄마의 라인에 진입한 걸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겐 차마 ‘너의 실력을 검증하러 왔어.’라고 할 수가 없어서 이상한 핑계를 댔다.


​이번주 토요일에 바둑학원에서 캐나다 원어민 선생님이 특강 해주시는데 (이건 진짜다) 신청한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영어를 얼마만큼 할 수 있는지 시험지를 주신대.라고 둘러댔다. 창의력은 내가 있는 듯하다.


아이는 시험을 30분 정도 치뤘고 나는 근처 커피숍에서 대기하다가 결과가 나왔다는 전화를 받고 상담실로 향했다. 아이는 선생님과 도서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아이가 푼 테스트 용지를 들춰 보시는 선생님의 눈을 따라 가며 내 마음도 왜 초조한지. 다시 생각해봐도 참 웃픈 광경이다.  


​이곳은 학습식 영유인데   7세 2년 차도 아니고 1년 차 시작반의 커트라인 기준이 놀랍다. ​알파벳, 파닉스 단모음, 장모음, 이중모음은 물론이거니와 스피킹은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하고 특히 리딩은 AR 1점대를 편안하게 술술 읽고 북퀴즈를 6문제를 맞힐 수 있어야 커트라인을 넘는다고 했다. 올해 7세 반 레테 기준이 높아졌다나.


​당연히 우리 아이는 파닉스 구멍도 있고 간단한 대화는커녕 알아듣기만 해도 다행인 데다가,  리딩은 1점대를 더듬더듬 읽고 있기 때문에 커트 이하였다.


그래도 아이가 가능성이 보인다? 의젓하고 태도가 좋다? 는 선생님의 애매한 답변을 듣고 일단 입학 신청서를 제출해 달라고 해서 홀리듯 대기 명단에 정보를 남기고 왔다.  


​그래서 대기 몇 번이라는 거야. 입학 가능하다고 하면 이 먼 곳까지 셔틀 태워 보내야 하나. 2년 차도 아니고 1년 차인데? 아침에 등원시킬 때 지각 하는데 늦으면 거리가 멀어서 망조겠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혼자 꼬꼬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는 캐나다 원어민 선생님과 바둑을 둘 수 있는지. 오늘의 결과가 궁금하단 얼굴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내가 만약 7살이라면 레벨 테스트 보다가 뛰쳐나왔을 텐데 (진짜 그러고도 남았다)


​너는 오늘 너의 최선을 다해줬구나. 짠하기도 하고 기특한 마음이 들어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축하해! 너 오늘 엄청 잘했대! 토요일에 캐나다 선생님과 바둑 둘 수 있게 됐어!‘


아이는 3월부터 콧대 높은 영유를 다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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