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게시글에는 소설 언급 없습니다
21일 차
22일 차에 쓰는 일기이다.
어제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보냈던 것 같다. 어제 들은 바이오이미징 수업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수업이 끝나고 어디서 점심을 먹었나 고민해봤는데, 샐러드를 먹었던 것 같다. 두 시간 정도, 배터리가 닳을 때까지 글로벌 라운지에 앉아 있다가 컵밥을 포장해 만화를 보며 먹고는 초콜릿도 8개 가까이 먹은 것 같다. 뭔가 밖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진 하루였던 것 같다.
22일 차
일어났을 때는 목이 너무 아팠는데, 방을 나오니 괜찮아졌다. 일단 방을 좀 깔끔하게 만들고, 환기를 하고 푹 쉬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점심으로 데리야끼 치킨 가츠를 먹었다. 생각보다 당기는 맛은 아니었고, 먹을 때 목이 따가워서인지 금방 남겼다.
오늘 들은 AI와 관련된 강연은 뭔가 깊이 다룬다기보다는 AI가 사회성이 있어야만 한다라는 주제 외에는 세부적인 실적이 소개되지 않아서 크게 느낀 건 없었다. 사람들도 의무적으로 듣는다는 느낌이었고. 역시 첫 강연이 느낌 측면에서도 장소 측면에서도 크게 와닿는 것 같았다.
(첫 강연에 대한 내용은 나중에 따로 쓸 생각이다.)
오늘은 여기 온 이래로 가장 센 비를 보았다. 도로 한가운데를 강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내리는 많은 양의 비였다. 그동안은 비가 내려도 하늘이 맑았는데 오늘은 어디든 어둡게 느껴질 정도로 비구름이 무거웠다. 살짝 따가운 목과 감기 기운도 한몫했지만, 날씨가 오늘은 시원한 음료보다는 따뜻한 걸 마시게 했다. 스타벅스의 얼그레이 홍차와 살짝 단 특강에서 나눠준 차. 그리고 맥도널드에서 먹은 따뜻한 마일로까지. 이날 하루만 음료를 세 잔이나 마셨다.
할머니의 수채화가 떠올라 인터넷에 혹시나 하고 할머니의 이름과 수채화를 쳐보았다. 처음에는 할머니 그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색채가 너무 강렬해서. 그러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 동안은 수채화의 색이 강해졌던 것이 떠올랐다. 두 번째 그림을 보는 순간 할머니가 맞다는 걸 알아버렸다. 흐릿한데 마음에는 자국이 남는 색채가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손이 떨려 미처 색이 이어지지 못한 부분이 있어도 꽃은 여전히 예뻤기에.
23일 차
목은 안 아픈데 무기력하고 코감기가 온 느낌이 난다. 교내 확진자 얘기는 없었지만, 그래도 솔직히 코로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보건소에 가보니 감염의 흔적은 없다며 안심하고 푹 쉬랜다.
오늘은 편의점 음식으로 저녁을 때웠는데, 그거 먹으면서 넷플릭스를 보니 최근 들어 이것보다 큰 행복이 있었나 싶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과제로 수채화 그리면서 집중이 잘 안 될 정도로 머리가 아팠다.
아, 그리고 오늘 드디어 한국에서 택배가 왔다. 덕분에 넉넉하게 마스크를 쟁여둘 수 있었다.
24일 차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원래 일찍 일어나려고 계획은 하고 있었는데, 8시 반쯤 일어날 줄 알았거늘 모기 물린 곳이 너무 간지러워서 7시가 되기도 전에 일어나버렸다. 방에서 조금 뒹굴거리다 아침을 먹고 와서 다시 짐을 챙기고는 글로벌 라운지로 왔다.
솔직히 프레젠테이션 준비하려고 간 건데, 할 게 생각보다 없는데도 수업 전인지 집중이 안 돼서 가만히 앉은 채 방황했다.
오늘 수업을 듣고 난 뒤 전과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이곳의 수업은 학생들에게 현재 학계 내 새로운 발견이나 연구 트렌드 등을 실시간으로 인지시켜주고, 그 과정에서 그에 대해 자신의 뚜렷한 생각을 갖도록 해준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한국에서 다닌 대학에서는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은 채 연구를 위한 지식만 가르치는 수업을 듣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가 뒷전으로 미뤄지는 헬스케어 컨퍼런스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싱가포르의 의료 시스템에 관해 토의하는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데에만 수업시간의 반을 사용했다. 배우는 내용은 쉽지만 그만큼 필요한 내용만 배우는 전개 방식.
예전에 같은 대학 분들과 이야기하다 여기 졸업생이 우리 학교 2-3학년 수준밖에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이었던가. 지식은 필요하면 배우면 되지만 시야는 열 기회조차 찾기 힘들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인지 다음 수업시간은 예정과 다른 내용을 다룰 예정이란다. 아마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해 다루려는 거겠지. 고등학교 시절 지진이 난 뒤 태풍 부분은 미루고 지진만 심층 탐구했던 지구과학 선생님이 떠올랐다. 고등학교에서마저도 경험했던 유동적인 수업을 대학에서 느끼지 못하고 다시 여기 와서야 느끼는가.
아직은 프레젠테이션 때 영어가 잘 안 들리지만, 설명을 피피티에 간결하게 적어주셔서 읽으면서 발표 내용을 들었다. 학부생임에도 우리 학교에 비해 현재 상황에 대한 대안을 잘 내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3학년이면 꽤 많은 나이임에도 왜 이 학생들의 시선을 나는 따라가지 못했을까. 교환학생들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보아하니 다들 비슷한 방식으로 교육받는 듯 보였다. 본교에서 강의를 들으며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배움의 범위는 얼마나 좁았던 것인지 인지했다.
(이 부분은 지금 수정해야 할 것이 있는 게, 이후로 학생 자율 세미나 등의 참여형 수업을 들으면서 본교에도 이런 수업이 꽤 있다는 걸 느꼈다. 다만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 뿐.)
오늘 먹은 크림 파스타는 생각보다 짜고 느끼했다. 지금은 글로벌 라운지에서 좀 놀다가 해석 개론 책을 보고 있다. 이번 주말까지는 그나마 쉬운 1단원을 다 보는 게 목표다.
숙소에 가면 청소 좀 하고 씻은 뒤 생각해둔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25일 차
너무 학교에만 있었더니 답답하다는 느낌에 J 언니와 밖을 나가기로 했다. 사람이 몰려 있지 않으면서도 바람을 쐴 곳이 어디 있을까 싶어 선택한 곳이 국립박물관이었다.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다르게 구성이나 디자인이 잘 되어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했다. 특히 근대 시대의 싱가포르 전시품들은 재밌게 봤다. 편지를 봉할 때 쓰는 왁스와 도장도 구매했다.
기억에 남던 것은 일본의 싱가포르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 침략 위주로 다룬 현대 시대 부분과 일본의 침략만을 다룬 소규모 전시였는데, 일본이 얼마나 큰 피해를 주었는지 정량적으로 보여주는 부분과 그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묘사하는 감성적인 부분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일본에 침략당했다는 점에 이입이 됐는지 한참이나 그곳에 머물렀던 것 같다.
저녁으로는 두끼(떡볶이 뷔페)를 먹었다. 오랜만에 한국 음식을 먹으니 살 것 같았다.
26일 차
오늘은 별거 없었다. 소설 쓰는 게 늦춰지는 게 조금 불안할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소재가 없었다.
27일 차
온 지 한 달이 되어가니 더운 날씨와 피로함의 콜라보인지 수업에 흥미를 서서히 잃어간다.
28일 차
바이오이미징 수업을 듣긴 들었는데 이날은 하루 종일 기력이 없었다. 대신 해석개론 인강을 다른 날보다는 많이 들어서 좀 뿌듯한 정도.
29일 차
내 생일이 되려면 아직 며칠이 남은 날이었다. 그런데 당일날 J 언니가 시간이 되지 않는대서 W 언니가 사 온 케이크와 행사를 한다길래 내가 싸게 사온 피자로 생일 파티를 하고 언니들 방에서 자고 갔다.
서로 힘들었던 이야기, 연애담, 웃긴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훨씬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이날은 이상하게 별로 한 게 없는데도 온종일 쌩쌩했다. 기력이 없는 이유는 그동안 너무 혼자서 오랜 시간을 보내서 그런 게 아닐까 싶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