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해주고픈 가지가지 이야기#5
엄마는, 엄마가 미웠어.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래서 줄곧 마음이 괴로웠어. 학창 시절엔 엄마가 원망스러웠고, 엄마와 때론 무관심으로 때론 날 선 말들로 버텨야 하는 시간들이 괴로웠어.
스무 살이 되자마자 대학이라는 그럴싸한 구실로 삶의 공간을 분리한 뒤에서야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했어. 경제적 독립이라는 독립의 최종관문까지 통과하자 엄마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도 같았어. 그렇게 10년 간 엄마의 딸이 아닌 엄마의 삶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엄마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남의 집 자식들 다 한다는 효도도 때맞춰하면서 겉보기에 화목하고 다복한 모녀지간처럼 보낸 시기도 있었지. 그러다가도 종종 지켜야만 하는 감정의 거리를 조금이라도 넘는 순간이면 여지없이 날 선 말들이 오가고, 그 끝엔 언제나 엄마의 하소연인지 저주인지 모를 마무리사가 있었어.
“못된 년. 나중에 아주 너 똑 닮은 딸 낳아봐라. 지 애 낳으면 내 마음 알지.”
역시 말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지, 날 똑 닮은 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날 꽤 닮은 것으로 추정되는 너를 낳았어. 하지만 내 애를 낳아도 엄마의 마음은 알 수가 없더라.
오히려 내가 너를 낳고 엄마가 되니, 나의 엄마를 다시금 이해할 수 없게 되어 더욱더 괴로웠어. 엄마를 나와 상관없는 한 인간으로만 보려고 십 수년을 노력했는데, 내가 엄마의 자리에 앉자 다시금 나의 엄마는 그냥 엄마로 돌아왔어. 케케묵은 원망, 미움과 함께.
결혼을 하며 잠시 살다 올 줄 알았던 미국에 정착하겠다고 말할 때 서운해하는 엄마에게 늘 멀리멀리 도망치려고만 하는 딸인 내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이제 정말 물리적인 거리까지 완벽하게 두고 살 수 있겠구나 싶어 안도되는 마음이 드는 것도 괴로웠어.
그렇지만 가장 괴로운 것은 이 나이가 먹어서까지 어린 시절의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내 모습을 매 순간 만나는 일이었어. 그 꼴 보기 싫음이 극에 달해 더 이상 이 문제를 직면하고 싶지 않아 질 때 즈음에 이 책을 만났어.
나의 인생 책이 된 <숲 속의 자본주의자>라는 책에서 모녀 사이의 정리되지 않는 감정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 있어. 작가는 “세상이 나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라는 말이 가진 결정적인 오류에 대해 얘기해.
세상은 나를 속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단지 내가 세상이 나에게 무언가를 줄 것이라고 혼자 기대하고 나서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뿐이다라고 말이야.
한마디로 세상은 약속 같은 걸 한 적이 없는데 나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했다는 거야. 세상은 나를 속인 적이 없고, 같은 이치로 엄마는 나를 상처 준 적이 없었어.
그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냈을 뿐이야. 그들의 삶의 방식이 주도하는 그들의 세계에 나는 내 방식과 내 기준의 잣대를 들이밀고, 실망하고 상처받았을 뿐인 거야.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바구니 얘기를 해볼까?
어떤 마을에 바구니 파는 사람이 있었어. 자신이 원하는 바구니를 짜고 바구니를 팔려고 했지. 드디어 손님이 왔어. 하지만 손님은 바구니가 맘에 안 든다며 사지 않고 떠났어. 바구니를 만든 사람은 왜 내가 가장 정성스럽게 만든 이 좋은 바구니를 사지 않냐며 화를 내. 누가 잘못한 것일까? 바구니를 사지 않은 사람이 잘못한 걸까, 자기 바구니를 사지 않는 다고 화내는 사람이 잘못한 걸까?
우리가 그래 왔던 것 같아. 우린 각자 원하는 바구니를 짜고, 그걸 사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있었어.
엄마는 나에게 내가 원하는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지만, 나는 혼자 기대하고 실망했어. 엄마도 나에게 좀 더 다정하고 살가운 딸을 기대했겠지만 그건 내가 만든 바구니가 아니었어.
각자 원하는 바구니를 가진 엄마와 딸로 만났다면 우리 둘 모두 행복했겠지만, 그러지 못했을 뿐인 거야. 이해할 필요도 용서할 필요도 용서를 구할 필요도 없는 거야.
그저 엄마는 자신의 삶을 살았을 뿐, 내가 바라는 엄마의 모습을 그녀의 삶에 투영한 것은 나였어.
마찬가지로 엄마가 원하는 살갑고 편한 딸이 되지 못한데 대한 죄책감을 내가 질 필요도 없었어.
이해할 필요도 이해받을 필요도 없어지자 비로소 미움과 원망이 옅어지기 시작했어. 굳이 짊어지지 않아도 될 무게를 이고 지고 20년을 살아온 세월이 무색해졌고, 내 삶은 조금 더 가벼워졌어.
이제 나는 갖지도 못하고 팔지도 못한 낡은 바구니를 붙잡고 고민하는 대신, 새로운 바구니를 어떻게 짤지 공들여 곰곰이 생각해보려고 해.
어떤 일이 있어도 너는 보배롭고 존귀한 사람이라고 매일 얘기해줄게.
아무리 네가 미워져도 다시 태어나도 네 엄마로 살고 싶다는 마음 변치 않을게.
세상이 나를 속이고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만 같은 그런, 울고 싶은 날,
조용히 어깨를 내어줄게.
엄마가 짠 바구니는 성기고, 투박하고 볼품없을지도 몰라. 그래도 딱 저만큼만 내 바구니에 담아내어 줄 수 있다면, 내가 그런 엄마가 될 수 있다면 말이야, 그때는 정말 나의 낡은 바구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그날이 오면 더 이상 엄마는, 엄마가 밉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