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큼의 찰나를 영원으로 보존할 것인가.
나는 사진을 좋아한다. 누군가 나에게 취미가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아마 사진 찍기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카메라에도 관심이 많다. 몇 달 치 아르바이트 월급을 모아서 카메라 바디와 렌즈를 사는 데 아낌없이 쓰기도 한다. 나는 내가 20대 초반부터 사진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을 가기 전 방안을 뒤져보니 내가 16살 생일날, 조르고 졸라서 받았던 디지털카메라를 찾았다. 아무래도 나는 내가 생각하기 훨씬 이전부터 사진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내 앞으로 된 카메라가 벌써 10살이니 말이다.
사진에 관심이 있다 보니, 카메라를 기술적으로 어떤 식으로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다. 인터넷에서도 많이 배우고, 내가 직접 찍어보기도 하면서 이 상황에선 이렇게, 저 상황에선 저렇게 담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다루는 것은 아마도 셔터스피드가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조작하기가 제일 쉽기 때문일 것이다.
내 카메라는 최고 속도 1/4000초부터 최저속도 30초까지 셔터 속도가 조절된다. 이 말은 찰칵! 하고 사진이 찍힐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미하는데, 1/4000초에서는 말 그대로 1/4000초 만에 찰칵 소리가 나는 것이고, 30초에서는 30초 동안 찰칵 소리가 난다. 표현하자면 차아-------------알칵 정도 되겠다. 사실, 나는 사진 이론을 누군가에게 설명해 줄 만큼 많이 알지도 못 할뿐더러, 재밌게 표현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여기서 셔터 속도에 관한 설명은 이만 줄이도록 하겠다.
흔히, 우리는 찰나를 영원으로 보존하기 위한 행위를 '사진을 찍는다'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 찰나가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너무나도 흥미롭다. 어떤 찰나는 1/4000초에 끝나지만, 또 어떤 찰나는 30초나 걸린다. 게다가 이 보존된 찰나는 동영상과 달리 딱 한 장이다. 수백, 수천 개 이상의 프레임이 연속적으로 지나가는 동영상과 달리, 사진은 딱 한 장의 프레임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그 한 장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느리게 보이고, 어떤 때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게다가 나는 30초의 찰나를 담기 위해서 30초 이상을 움직이지 않아야 할 때도 있고, 움직여야 할 때도 있고, 그 둘을 섞어야 할 때도 있다. 또 나는 1/4000초의 찰나를 담기 위해 마음에 드는 장면이 정확히 찍힐 때까지 했던 일을 또 하고, 또 해낼 때도 있다. 그렇지만 결과물은 한 장에 보인다.
인생을 사진 보듯 볼 수는 없겠지만, 내 인생을 1/4000초로 찍어 볼 것인지, 30초로 찍어 볼 것인지는 인생의 주체인 내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인생은 오히려 동영상처럼 표현하는 게 더 쉽겠지만, 사진으로 받아들여본다면 한 장으로 보이기 때문에 더 힘들 수도 있다. 만약 내 삶을 1/4000초로 나누어 기록한다면 수십, 수만 개의 '그 순간순간의 감정'이 비쳐서 표현되겠지만, 만약 30초로 찍어 내려고 한다면 그 30초의 기록이 모두 담긴 한 장의 사진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1/4000초로 찍은 내 감정이 나쁜 일이 대부분이었다 하더라도, 30초로 찍어낸 사진은 좋은 사진, 혹은 맘에 드는 사진일 수 있다. 반대로 30초로 찍어낸 사진의 결과물은 좋더라도, 1/4000초로 찍어낸 감정은 안 좋을 수도 있다.(같은 말인가?) 이 모든 것들을 반대로 뒤집었을 때도 마찬가지며, 긍정과 부정이 상쇄된 0일 수도 있고, 1/4000초로 보아도, 30초로 보아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다. 인생은 이렇게 찍기 나름이고, 쪼개 보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1/4000초로 본 내 인생이 슬픔으로 채워진 것 같다면, 30초로 보면 되고, 30초로 채워진 내 인생이 나쁜 것 같을 때엔 1/4000초로 쪼개 보면 하루, 아니 한 장쯤은 미소 지은 사진이 있지 않을까. 아, 물론 슬프다고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슬펐지만, 혹은 조금 기분이 나쁘거나, 흔히 말하는 부정적인 감정이 들었다 하더라도 돌이켜 봤을 때 긍정의 기운으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지금의 나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위해 산다. 그래서 하루를, 일생을 1/4000초로 담아보기도 하고, 30초로 담아 보기도 하고, 때로는 시간이 다 지나고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1/4000초를 30초로, 30초를 1/4000초로 바꿔보기도 하면서 행복의 기억을 가지고 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아주 높은 확률로 이 행복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나의 바람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선택이 그 자체로 가치롭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맺는다. 그리고, 1/4000초든, 30초든, 행복은 분명 내 삶에 있었기에 보인 것이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