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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정 Jan 04. 2018

불행을 브리핑하다.

감정을 두려워 하지 않을 것.

  


  여행을 하다 만난 일행들이 있었다. 여행 중반 즈음 만났는데, 한국으로 돌아가는 방법도 다같이 구할 정도로 오랫동안 붙어 다녔다. 붙어 다니면서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는데, 바쁜 삶을 살다보니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같이 다니던 언니의 제안으로 우리는 매일 하루가 끝나면 행복 브리핑을 했다. 매일같이 서로에게 오늘 가장 좋았던 순간, 행복했던 순간을 물었고, 동시에 불행했던 순간도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브리핑시간이 고정이 된 이후로 하루를 열심히 살게 되었다. 무엇 하나를 보더라도 쉬이 여기고 넘기지 않았고, 기분이 나쁘거나 불행하다 여긴 순간도 바람에 날려 버리지 않고 간직했다.



    다같이 피곤한 날, 혹은 다같이 이 브리핑 시간을 까먹은 날에는 잠들기 전에, 혹은 일기를 쓸 때 혼자나마 오늘 하루의 베스트와 워스트를 골랐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고 어제 브리핑 시간이 없어서 아쉬웠다고 말하면 일행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브리핑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사실 그렇게 많은 순간 행복을 공유했는데, 기억에 남은 것은 몇 없다. 또 그렇게 많은 순간 불행을 공유했는데, 잊지 못할 만큼의 고통에 시달리는 것 또한 몇 없다.



    거의 매 시간 붙어 있었는데 행복을 느낀 순간은 모두가 다른 날도 있었다.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큰 불행이나 불편이 아닌 적도 있었다. 나는 이전에 행복은 나누면 당연히 커진다고 생각했지만, 불행과 부정적인 말은 굳이 꺼내어 공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슬픈'일이 아니라 불행하고 짜증이 나는 순간들은 그저 나누면 짜증만 옮겨갈 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행과 그에 따른 감정들은 바람 불 때 휘리릭 날려 버리는 것이 나에게도 너에게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불행을 공유하던 그 순간에 가장 불행하지 않았다. 여행 중이라는 특수성이 있기는 했으나, 나는 행복한 일상에서 누군가의 불행한 순간을 듣는 상황을 즐기지 않는 사람임을 고려하면 꽤나 의외의 일이었다. 피하려고만 했던 순간들과 잊어버리려고 했던 감정들을 내가 두 눈으로 직시하고 온 몸으로 받아들일 때 나의 불행은 더 이상 불행이 아니었다. 아니, 불행이었으나 그 어떤 불행보다 빨리 행복으로 치환되었다. 여행의 기억이 희미해진 지금까지도 이 시간만큼은 선명히 기억난다. 나의 모든 감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이 시간이 내 인생에 사라지지 않을 흔적을 남겼다. 남의 모든 감정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긍정적인 영항을 끼쳤다.



    물론 세상에는 나눈다고, 혹은 정면으로 마주한다고 사라지거나, 행복으로 치환되지 않는 불행이 많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 나와 같은 방법을 쓰면 고통이 줄어들테니 따라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온전히 내 경험이었다. 항상 말하듯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라는 존재가 다녀갔음을 알리고자 하는 데에 있다. 혹시나 해서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 한다고 하더라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할 지는 알 수 없다. 심지어는 한 장소에서 한 시간에 우리의 일상과 감정을 공유했던 일행들끼리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왔는지는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다.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절대로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적어도 좋았다.






    가을 학기가 개강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수업에서 본 구절이 있다. 


강자의 판단과 정의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강자의 권력은 작동하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 나의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때, 불행이 내 삶을 잡아먹지 못했다. 그저 존재하는 수만 가지 감정 중 하나로, 그것이 존재하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행복 또한 마찬가지였다. 행복이 사라질까 두려워 행복에 대한 강박으로 살 때보다, 불행과 함께 공존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사라질까 두려워하지 않았을 때, 온전히 행복했다. 이 좋았던 기억으로, 오늘 나는 일기장에 두 가지 항목을 추가한다. 쓰고 나면 너무 사소해서 부끄러워지는 일이 있더라도 기록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두 가지다.


오늘 가장 행복했던 순간:

오늘 가장 불행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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