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서 드러내지 않고 휘둘리지 않기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이렇다 할 것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마음이 불안정하니 뭔가를 하려고 해도 잘 안되고, 사람과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도 귀찮고, 취직 준비를 하려고 해도 도저히 집중이 안 됐다.
애매모호하고 우유부단한 전 남자친구와의 통화에서 단호히 "No" 라는 이야기를 듣고, 욕설을 퍼부은 것은 씁쓸한 뒷마무리였지만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도쿄에서처럼 교회에서 바이올린을 키려고 해도, 서울의 유서깊은 모 교회에서는 6개월 이상 출석해야 한다 했다. 등록한 후 출석을 해 볼까 했지만 도쿄 교회와 달리 분위기가 나랑 그리 맞지도 않았고, 영어 예배는 규모가 작다보니 불편할 정도의 관심을 가져주었다. 너무 먼 거리가 부담이 된다는 좋은 핑계로 서울에 나가는 걸 그만두었다.
어릴 적 몇 번 오간 동네 교회에 나갔다. 그냥 뭔가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12월 아카펠라 공연에 참석하기로 했다. 맡게 된 파트는 알토 2, 가장 낮고, 가장 드러나지 않고, 가장 휘둘려서는 안 되는 파트였다.
같이 노래를 부르게 된 파트너 H는 전형적인 교회 아이 같았다. 동갑이라고 하고 조금은 불편할 정도로 과한 칭찬을 해 주었다. 조용한 내가 자신감이 별로 없어보였는지 (사실 자신감이 없다기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계속 말을 붙여주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이전에는 무조건 앞에 나서서 메인 멜로디를 하고, 눈에 띄는 걸 하려고 했어도 뿌리가 없어서 오래 가지 못했다면, 신앙이 생긴 후부터는 오히려 눈에 띄는 걸 피하게 되었다. 자신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관심을 받고 너무 많은 관심사가 생기면 오히려 내가 지금 직면한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에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꿈을 쫓아가봤자 내가 지금 하는 일에 신경이 가 있지 않으면 꿈도 날아가고 현실도 날아간다는 걸 무수히 많은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이전의 나라면 여러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걸 추구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조금 달라지길 원한다. 어딜 가든 얼마를 벌든 상관 없이 지금 현실에 충실하고, 성공 혹은 실패에 연연하지 않기로.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하고 아니면 나와 연이 아니었다는 걸로 생각하기로.
또 내가 뭘 좋아하는지 이제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그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작은 일이라도 정확하게 꼼꼼히 반복해서 점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확장해 나가는 것, 그게 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