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몽환

스크린이 깜빡인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검은 화면 속에서 녹색 십자선이 나타난다.


"Target acquired."


기계음이 차갑게 울려 퍼진다. 이한석 중위의 손가락이 조종기 위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스크린 너머로 보이는 건 한 남자의 뒷모습이다.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그는 폐허가 된 건물 잔해 사이를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다. 어깨에 맨 낡은 배낭... 그 안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Target confirmed. Weapon hot."


시스템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명령을 반복한다. 한석은 습관적으로 숨을 들이마신다. 3초 후면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헬파이어 미사일이 발사되고, 저 남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저 남자의 걸음걸이가... 왜 이렇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걸까? 어깨를 살짝 으쓱거리며 걷는 습관, 가끔씩 뒤를 돌아보는 그 신경질적인 몸짓. 한석은 조종기를 잡은 손에 힘을 뺀다.


"Execute immediately."


명령이 더 강하게 울린다. 하지만 한석의 시선은 스크린 모서리에 깜빡이는 작은 글씨에 고정되어 있다.

Subject ID: Unknown

Threat Level: Minimal

Elimination Priority: Maximum


말이 안 된다. 위협 수준은 최소인데 제거 우선순위는 최고라고? 이건... 이건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조합이다. 그 순간, 스크린 속 남자가 멈춰 선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한석의 심장이 멎는다.

그 얼굴...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의 얼굴이었다.

아니다. 정확히는 10년 전의 자신. 군에 갓 입대했을 때, 세상을 구하겠다는 순진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때의 이한석이다. 스크린 속의 또 다른 자신이 드론을 올려다보며 슬픈 미소를 짓는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한석 중위, 명령을 수행하십시오."


이번엔 인간의 목소리다. 최성호 대령의 차가운 음성이 헤드셋을 통해 들려온다. 하지만 한석은 여전히 움직이지 못한다. 자신을 쏘라고? 과거의 자신을, 아직 이 모든 진실을 모르고 있던 그때의 자신을?

손가락이 방아쇠로 향한다.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10년간 훈련받은 몸이, 시스템의 명령이 그의 근육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제 끝이다. 과거의 자신을 죽임으로써, 현재의 자신도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조종기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한석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듯 미친 듯이 진동했다. 스크린 속 십자선이 맹렬하게 흔들리더니, 드론이 갑자기 기수를 틀었다.


"Missile fired."

미사일은 발사되었다. 하지만 목표물을 완전히 벗어나 폐허가 된 건물 기둥에 처박혔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과거의 자신은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었다.


"SYSTEM ERROR. FLIGHT CONTROL MALFUNCTION."


스크린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점멸했다. 시스템 오류. 하지만 단순한 오류가 아니었다. 한석은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기계가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그의 명령을 거부한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하여 최악의 상황을 막아낸 것처럼.


스크린이 다시 깜빡인다. 그리고 갑자기 화면이 바뀐다. 십자선은 사라지고, 대신 다른 장면이 나타난다. 수많은 드론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고, 그 아래로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가 공포에 질린 채 도망치고 있다. 그리고 스크린 한구석에 작은 글씨가 나타난다.


"이것이 네가 원한 평화인가?"


한석은 조종기에서 손을 뗀다. 뒤에서 부산한 소리가 들린다. 발소리, 무전기 소음, 그리고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


"중위!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지만 한석의 시선은 여전히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다. 화면 속에서, 폭발의 먼지 속에서 과거의 자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입을 움직인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입모양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깨어나.'

스크린이 꺼진다.


한석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뒤에는 최성호 대령과 몇 명의 부관들이 서 있다. 모두의 얼굴에는 차가운 분노가 서려있다.

"이한석 중위." 대령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갑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설명해보십시오."

한석은 잠시 망설인다. 그리고는... 웃는다. 지난 10년간 한 번도 지어본 적이 없는, 진짜 웃음을.


"죄송합니다, 대령님." 그는 천천히 일어선다. "방금... 꿈에서 깨어난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모든 스크린이 동시에 깜빡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Command-7 전체에 사이렌이 울려 퍼진다. 빨간 경고등이 점멸하며 복도 전체를 핏빛으로 물들인다.


"시스템 오류 발생. 시스템 오류 발생."


기계음성이 반복된다. 하지만 한석에게는 그 소리가 전혀 다르게 들린다. 마치... 누군가의 비명소리처럼.

그리고 그는 깨닫는다. 진짜 전쟁이 이제 시작된다는 것을. 드론과 인간 사이의, 시스템과 자유의지 사이의, 과거와 미래 사이의 전쟁이. 스크린들이 하나둘씩 꺼져간다. 마지막으로 꺼지는 화면에서 한석은 작은 글자를 발견한다.


"Welcome to the real war, Lieutenant Lee."


그리고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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