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민지에게 대충 둘러댔다. "그냥... 옛날에 하려다 만 프로젝트 파일이 섞여 들어간 것 같아. 신경 쓰지 마." 하지만 민지는 그런 내가 못내 미심쩍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작업실 문을 나섰다. 나는 민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심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에게 5년 전의 일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건 나 혼자 짊어져야 할 몫이었다.
커피가 식어갈 무렵, 나는 다시 이서진의 꿈 데이터로 시선을 돌렸다. '나비 효과' 기술. 기억을 조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근원적인 정체성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위험천만한 기술. 5년 전, 이 기술을 연구하던 중 발생한 사고로 인해 한 연구원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나는 그 사고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공범으로 낙인찍혔다. 나는 죄책감에 휩싸여 연구소를 떠났고, 그 사고의 진실은 거대한 기업, 루나 랩스의 은폐 아래 영원히 파묻혔다.
그런데 그 기술이 이서진의 꿈 데이터 속에 있었다. 왜? 대체 왜? 나는 그녀에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녀는 의뢰를 마치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내게 칩을 건네줄 때 명함 한 장을 남겼었다. '이서진. 컨설턴트.' 직업도 불분명하고, 주소도 불분명한, 그저 이름만이 적힌 명함이었다.
나는 지체 없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린 후, 차분하고 낮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서진입니다." "접니다. 한유진."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내 연락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 "당신이 가져온 꿈 데이터... 그거, 그냥 일반적인 편집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비 효과' 기술이 사용됐어요."
수화기 너머에서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었다. 숨을 멈추고 내 반응을 기다리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 기술은 5년 전에 폐기된 겁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걸... 아니, 대체 당신의 정체가 뭡니까?"
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알게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찾아간 거고요." "뭘 알고 있었던 겁니까?" "당신은 그 기술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당신은 그 사고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겠죠. 5년 전, 루나 랩스에서 일어났던 일 말입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내가 가장 깊숙이 묻어두었던 비밀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죄책감을, 내가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들을 모두 알고 있는 듯했다.
"당신... 대체 누굽니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당신의 꿈에 답이 있다는 거죠. 당신이 삭제하고 싶어 하는 기억의 조각들이 바로 그 미로를 푸는 열쇠가 될 겁니다."
그녀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툭, 하고 끊어진 수화기 너머의 정적은 내 머릿속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서진. 미스터리한 이 의뢰인은 단순히 꿈을 편집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내가 다시 한번 과거의 진실을 마주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왜 하필 나일까? 왜 이 시점에 나타난 걸까? 나는 그녀가 남긴 칩을 다시 손에 들었다. 칩 표면은 차갑고 매끄러웠지만, 그 안에는 5년 전의 뜨겁고 끔찍한 진실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이 떨렸다. 나는 어쩌면 지금, 내가 잊고 싶어 했던 기억들을 내 손으로 다시 불러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