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새로운 시작

by 몽환

나는 칩을 노트북에 연결했다. 오래된 기계는 윙, 하고 둔탁한 소리를 냈지만 이내 조용히 작업을 시작했다. 칩 내부의 데이터는 예상대로 암호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복잡한 암호는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나에게 해독해달라고 일부러 길을 열어둔 느낌이랄까. 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암호 코드를 분석하며, 칩 안에 숨겨진 꿈 데이터 파일을 추출했다.


파일을 여는 순간, 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모니터 화면에는 낯선 꿈의 풍경이 펼쳐졌다. 안개 낀 숲, 낡은 오두막, 그리고 그곳에서 홀로 앉아 있는 한 소녀의 뒷모습. 꿈은 아주 희미하고 불분명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절망과 외로움의 감정은 너무나 선명했다. 소녀의 어깨는 잔뜩 웅크려 있었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공중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 허우적거렸다.


이상했다. 보통의 의뢰인들은 선명하고 구체적인 꿈을 가져온다. 편집할 부분이 명확해야 하니까. 그런데 이 꿈은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만든 것 같았다. 나는 신경망 분석기를 연결해 꿈 데이터를 역으로 추적했다. 꿈을 꾸었던 이의 뇌파 패턴, 감정 반응, 그리고 기억의 연결고리를 따라가다 보니,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이 꿈은 편집된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정교하게. 단순한 기억 삭제나 감정 조작을 넘어, 꿈의 주체인 인간의 무의식 속에 깊이 파고들어 핵심 기억을 뒤흔드는 기술. 5년 전, 내가 연구소에서 금기시했던 바로 그 기술이었다. '나비 효과'라는 코드명으로 불렸던 위험한 기술. 하나의 꿈을 건드리면 연쇄 반응으로 모든 기억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로 폐기되었던 기술.


그런데 그 기술이 내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술에 대해 아는 유일한 생존자였다. 5년 전, 그 사고의 중심에 있었던 내가. 내 기억 속에 봉인해두었던 그 끔찍한 날의 파편들이 산산조각 난 유리처럼 다시금 내 머릿속을 찌르기 시작했다.


나는 의뢰인, 이서진을 떠올렸다. 그녀는 대체 누구일까? 왜 이 위험한 꿈을 내게 가져왔을까? 단순한 삭제 의뢰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혹시 그녀도 나와 같은 과거를 공유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그녀 자체가 5년 전 사고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의뢰를 거절했어야 했다. 내 직감은 계속해서 경고음을 울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그녀가 남긴 칩을 손에 쥐었고, 그 안의 데이터를 분석해버렸다. 이제 나는 이 거대한 미스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어둠 속에서 발버둥치던 나는, 다시 한번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때, 작업실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노크도 없었다. 한 젊은 여자가 깡마른 몸으로 비집고 들어와선, 내 책상 위로 커피 한 잔을 툭 내려놓았다. 강민지. 나의 유일한 조력자이자, 이 좁고 어두운 작업실에서 유일하게 나를 현실 세계와 연결해주는 존재.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오빠, 밤샜지? 내가 따뜻한 거 가져왔어. 근데 표정이 왜 그래? 혹시 또 이상한 의뢰 들어왔어?"

민지는 나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내가 불안해할 때마다 귀신같이 알아챘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잠이 좀 부족해서." 하지만 민지는 내 거짓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녀는 내 모니터 화면을 흘끗 보더니, 의문의 데이터 칩을 발견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거 뭐야? 엄청 오래된 코드인데... 오빠, 설마 이거 '나비 효과' 기술 아니야?"

그녀의 목소리에는 호기심과 함께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나는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그녀가 이 기술을 알지? 5년 전, 이 기술은 극비리에 폐기되었는데. 민지는 그런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나라고 하루 종일 오빠만 쫓아다니는 줄 알았어? 나도 나름 천재 해커라고. 오빠가 숨기려는 거 다 찾아낼 수 있다니까."


민지의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이젠 숨길 수도, 피할 수도 없다. 나는 그 칩을, 그리고 이서진이라는 여자를 통해 다시 한번 과거의 그림자와 마주해야만 했다. 나의 새로운 시작은, 그렇게 낡은 작업실의 삐걱거리는 문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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