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루나 랩스의 시스템에 침투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민지는 해킹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챙겼고, 이서진은 기억 속에 남아있는 백도어의 위치와 구조를 내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낡은 작업실 한쪽 구석에서 5년 전, 내가 직접 설계했던 '드림 에디터'의 초기 모델을 꺼내 들었다. 이 낡은 기계가 바로 우리의 비밀 병기였다. 최첨단 시스템에는 역설적이게도 아날로그적인 허점이 존재할 테니.
밤이 깊어질수록, 도시의 네온사인은 더욱 화려하게 빛났다. 하지만 그 빛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빛이 없는 곳, 그림자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들이었다. 민지는 루나 랩스의 중앙 서버에 침투하기 위해 노트북 화면을 응시했다. 십여 개의 창이 쉴 새 없이 깜빡였고, 복잡한 코드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오빠, 됐어. 백도어 열었어."
민지의 목소리에는 흥분과 긴장감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루나 랩스의 중앙 서버가 잠시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이서진과 함께 루나 랩스 본사로 향했다. 높은 빌딩의 으리으리한 로비는 텅 비어 있었다. 우리는 민지가 미리 뚫어놓은 보안 시스템의 틈을 타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닥터 정우성의 전용 연구실, '심층부'는 5년 전과 다를 바 없이 차갑고 깨끗했다. 하지만 그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나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벽에 걸린 그림, 책상 위에 놓인 펜 하나까지도 모두 5년 전과 똑같았다. 정우성은 변한 것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우리는 연구실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그곳에는 '나비 효과' 기술의 최종 버전이 놓여 있었다. 칩 하나에 담겨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방대했다. 인간의 모든 기억을 편집하고, 감정을 조작하고, 심지어 존재 자체를 삭제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기술. 나는 그것을 파괴해야만 했다.
내가 칩을 손에 들고 파괴하려는 순간, 갑자기 연구실 전체에 비상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우성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역시... 나를 배신하는구나, 유진아. 나는 너를 믿었는데."
그의 목소리는 슬픔에 잠긴 듯했지만, 그 속에는 분노와 광기가 뒤섞여 있었다. 그는 우리가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민지가 해킹한 백도어도, 그녀의 존재 자체도 모두 그가 미리 예측했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가 이 모든 것을 계획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목소리가 끊기자, 연구실의 모든 문이 잠겼다. 그리고 벽면에서 홀로그램 영상이 나타났다. 그 영상 속에는 5년 전 사고 당시,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던 김민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나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그 영상을 보며 경악했다.
"5년 전 사고는... 내가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이었어."
정우성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그는 김민준을 꿈의 미로에 가두고, 그 기술을 완성시키기 위해 나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나는 그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나는 그저 조종당했을 뿐이었다. 나는 그의 완벽한 계획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허수아비였다.
그때, 이서진이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유진 씨.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당신은... 당신은 그가 예측하지 못한 유일한 존재니까요."
그녀의 말에 나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래,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끝내야만 했다. 나는 내가 만든 낡은 '드림 에디터'의 초기 모델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칩에 담긴 '나비 효과' 기술의 최종 버전을 내 손으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연구실의 모든 시스템이 정지되었다. 그리고 나는, 나를 조종하려 했던 닥터 정우성의 예측을 완전히 뒤엎어버렸다.